[곧 그쪽 세계로 가겠다, 사령관txt]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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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델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마리오네트 감마가 말했다.

들려오는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응? 누구더라? 왜 거지 같은 년이랑 목소리가 똑같지?"

"...감마입니다."

"아~!! 기억났다. 들어와."


'자기가 만들어 놓고 까먹었나.'


기억을 건네 받기 전과 후의 감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창조주를 향한 무조건적인 충성심은 사라지고 짙은 회의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호감이 없어졌다고 한들, 그녀의 창조주.

바이오로이드들이 자신의 주인에게 쉽게 악의를 가지지 못하듯,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마리오네트 감마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방은 어두컴컴했다.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복도 빛을 제외하면 암흑 그 자체.

델타는 그런 방에서 얼음을 넣은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다.


"아하하! 다시 봐도 정말 감마랑 똑같잖아. 만족스러워."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마리오네트는 델타가 베시시 웃는 얼굴을 보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보고해. 어떻게 됐지?"

"제가 이끌던 부대는 전멸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델타가 키득키득 웃는다.


"...알고 계셨습니까?"

"아하하! 병신이야? 고작 그 정도로 죽일 수 있었으면 벌써 죽였겠지! 사령관이 왜 사령관이겠어. 저쪽도 필사적으로 지킨다고."


델타가 고약한 미소를 짓는다.

평소 성격도 결코 곱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저 미소는 조금 더 짓궂은 악의가 있었다.


'내게서 레모네이드 감마를 보는가.'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서, 자신이 증오하는 인물을 투영하다니.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말들이 많았지만 꾹 참는다.


"하지만 아무 소득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말해봐."


그녀는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말한다.

게임이라는 제약이 풀리면서 그들이 얼마나 강해졌으며, 현재 어디에 묶고 있는지, 도주 시 루트는 어떤 식으로 짜여졌는지 까지 전부.

하지만 델타는 심드렁했다.


"아아, 그래 알았어. 그런 부분은 관심 없고, 사령관은 어떻게 됐어? 성과라 하면 당연히 그 위대하신 인간님을 다치게 했느냐, 않았느냐잖아?"

"사령관은...."


마리오네트는 감마는 거짓을 보고한다.


"...중상은 아니지만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래?!"


델타가 기뻐한다.


"아하하! 잘 됐어. 오드리 그 망할 년의 면상이 구겨지는 걸 상상하니 이렇게 기쁠 수가!!"

"...."


마리오네트는 그런 델타의 태도를 유심히 살펴본다.

어긋나고 일그러진 정신.

감마가 회장들을 보는 시선이 이러했을까.


-내 기억을 이어받았으니 내가 무얼 고민하는지 알겠지.


감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비슷한 상황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다음에는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아직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쯧. 멍청하기는."

"오르카호 대원들이 강해진 것도 문제지만, 오메가의 간섭이 더 컸습니다."

"오메가가?"


마리오네트는 전송에서 인형이 절반 사라진 사실을 말했다.


"쳇. 하긴, 넋 놓고 보고 있었을 리가 없지."

"경고 차원에서 한 짓 같습니다. 당분간은 병력을 이끌고 넘어가는 것은 자제하고 소규모 정예를 육성해야 합니다."

"뭐?"


델타가 그녀를 쏘아본다.


"네가 뭔데 멋대로 그딴 판단을 해?"

"오메가가 병사의 수를 제한하고, 오르카호 대원들이 지나치게 강해졌습니다. 이대로는-"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인형 주제에 나서지 마. 감히 내 앞에서 입을 놀려?"

"...죄송합니다."


델타는 조금 으르렁 거리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절반이 사라졌다고?"

"예."

"그럼 스물 남짓이면 눈감아준다는 거 아냐?"

"...."


델타가 웃음을 터트렸다.


"너 표정이 좀 거슬린다? 왜, 터무니없는 사고방식이라 놀라워?"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랬다.

스물 남짓이면 눈감아준다고 그 규모로 계속 병력을 보낸다?

제대로 된 전쟁을 모르는 애송이나 생각할 법한 전략이었다.


"넌 앞으로 심심할 때마다 나가도록 해. 건방진 생각은 하지 마. 이건 명령이니까."


명령.

그 한 마디에 몸과 성대가 저절로 반응한다.


"알겠습니다."

"킥킥킥. 명령이라는 말에 바로 반응하다니, 웃겨. 처 맞아도 꼬리 흔드는 개새끼 같잖아."


델타는 혼자 킥킥 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돼도 않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그녀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지독한 악취미군.'


일부로 신경을 살살 긁는 듯한 언행.

그런데 그 대상은 그녀만이 아니라 레모네이드 감마와 오메가에게도 거침없었다.

마치 싸움을 원하는 것처럼.


레모네이드 감마가 델타를 죽이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메가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참! 죽은 것들은 어떻게 했어?"

"제거했습니다."

"멍청하기는."


델타가 혀를 찼다.


"기껏 좋은 육체를 줬는데 활용하지 않으면 쓰겠어? 다음부터 죽은 것들은 흡수해. 힘을 키우라고."


마리오네트는 레모네이드 감마가 기억을 넘겨줄 때를 떠올린다.


느낌일 줄 알았던 융합은 실제로 이루어졌었다.

레모네이드 감마의 손이 그녀의 머리에 쑥 들어와 합쳐졌던 것이다.

그 순간은 손과 머리의 경계가 사라지고 두 존재가 이어졌다.

말랑한 찰흙이 서로 합쳐진 것처럼.


"알아들었어?"

"알겠습니다."

"좋아. 이만 가봐."


마리오네트 감마는 방을 나간다.


-타고난 힘은 다르나, 정신은 나와 같으니 너도 나라고 할 수 있겠지.


복도를 걸으면서 레모네이드 감마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네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보고 싶다.


레모네이드 감마는 차원의 균열이 생겨 자의식이 생겼을 때, 회장들을 향한 충성의 족쇄가 일부 풀렸다.

그리고 오메가에게 진실을 들은 다음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고민이 생겼다.


'그래서 내게 기억을 넘겨준 거로군.'


차원의 균열이 레모네이드들의 족쇄를 살짝 풀어주었듯이,

레모네이드 감마의 기억이 그녀의 사고 영역을 넓힌 것이다.

델타가 만들어둔 '인형장 감마'라는 틀을 깨부수고 더 넓은 세상을 깨달았다.


그러나 온전한 자유를 얻지는 못했다.


-넌 앞으로 심심할 때마다 나가도록 해. 건방진 생각은 하지 마. 이건 명령이니까.


그 한 마디 명령에 가로 막혀 버렸으니까.


한평생 갇혀 있던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면 반응이 제각각으로 갈린다.

어떤 아이들은 두려워하며 다시 안으로 처박히고.

어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뛰어 나간다.

또는, 다른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어떻게 할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부류도 있다.


'내 선택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건가.'


사실, 그녀는 방금 전의 대화로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본래 무적의 용을 쫓고, 델타를 섬기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둘 다 가짜였다.


무적의 용을 쫓는다는 목적은 진짜 레모네이드 감마의 것이며,

델타를 섬기겠다는 것은 그녀를 가지고 놀기 위해 델타가 심어둔 세뇌였다.


그 두 가지가 전부 가짜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내가 가짜고, 진짜에 비해 약하다는 것은 인지했다.'


허면.

진짜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가짜가 진짜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순수하게 자신이 쌓은 무력으로 진짜를 뛰어 넘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몇 년이 걸리든 말이다.


'난 힘을 흡수하지 않겠다.'


그녀가 델타의 명령에 거부하자, 갈비뼈가 죄여오며 폐를 압박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족쇄....'


델타의 존재가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기억을 넘겨 받음으로써 족쇄가 어느 정도 여유로워지긴 했으나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이 족쇄는 나 혼자서는 풀 수 없다.'


창조주를 배반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레모네이드도, 마리오네트도 아니다. 나는...'


감마.

오직 그 두 글자의 이름으로 태어난 존재.


'나는 나의 족쇄를 스스로 끊고, 저 하늘로 날아오르겠다.'


그녀는 레모네이드 감마가 준 수신기에 대고 말한다.


"협력하겠다."









무적의 용은 난간에서 맞은편 모텔의 창가를 본다.

사령관이 머무는 모텔 방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사실, 휴대폰을 챙겨왔으니 언제든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곳에 온 건 단순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보고 싶었다. 서방님의 얼굴을.

그래야 마음이 좀 진정될 것 같았기에.


'오드리와의 대화는 잘 되어 가고 있는지....'


그녀가 창문 너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총사령관 대리가 쥐처럼 숨어 들어오는 꼴이라니."


옆에서 늘씬한 다리를 가진 여인이 걸어왔다.


"드높은 함장의 권위가 바닥으로 추락했군, 용 대장."

"칸."


무적의 용은 살짝 웃었다.


"소관을 놀리지 말아주시오."

"어쩐지 비수에 젖은 표정이군."

"...생각할 것이 많아 그렇소. 보기 안 좋았다면 사과하지."

"그런 뜻은 아니었다."


칸이 그녀의 옆에 서서 난간을 내려다본다.


"사령관은 한참 걸릴 거다. 오드리의 마음을 풀어주고 있으니까."

"델타의 정보를 주군께 전파하는 것이 목적 아니었소?"

"그렇다. 얘기를 하다보니 감정이 격해진 것이지."

"오드리 양 답지 않군."

"그건 우리 모두가 그렇다. 전과는 달라졌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모두가 슬픔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 쌓인 감정이 많을 수밖에."


무적의 용은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그렇군. 소관이 생각이 짧았소."

"반동으로 찾아오는 상실감은 짊어진 게 많았던 자일수록 거대하지. 오드리는 모두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었다."


사령관과 가장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것 중 하나가 복장이다.

오드리는 선내의 모든 대원들을 위해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옷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허깨비를 위한 일이었음이 밝혀졌다.


"그 지경이 됐는데도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 대단한 거지."

"그렇소."


무적의 용은 오드리를 본다.

항상 밝은 미소와 높은 텐션으로 모두를 대하던 그녀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뭐, 저쪽은 사령관이 알아서 할 일이고."


칸이 말한다.


"내가 그대의 짐을 거들어주고 싶군. 무슨 일인지 말해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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