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

 

 

 

 

 

 

 

 

 

“마키나, 이거 뭔 소리야!?”

 

 

 

날이 밝자마자 나는 마키나가 있던 숙소로 찾아갔다.

 

고장이라고? 그럼 어제 아스널과 했던 상견례는 대체 뭐였지?

 

 

 

“사, 사령관님? 일단 진정하세요.

그렇게 보채셔도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자신도 놀란 것인지 우선 나를 자리에 앉히는 마키나.

 

그녀가 또 습관적으로 차를 내오려 했기에 나는 성큼성큼 정수기로 걸어가 찬물을 한 사발 마셨다.

 

 

 

“크어어... 머리가 울리는구만...”

 

“사...령관님...?”

 

“대가리가 아픈 걸 보면 환상은 아닌데...

... 뭐지? 데우스의 잔해인가? 아니면 낙원에 남아 있던 조각?

뭐길래 네 통제를 벗어나서 움직이는 거야? 환상 아니었어?”

 

“그 정체를 알고 있다면 제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까요?”

 

“그렇긴 하지만...”

 

 

 

생각해 보자.

 

만약 새로운 유형의 적이라 한다면 뭐가 됐든 일단 격리시켜야 한다.

 

아니, 적이 아니라 해도 격리시켜야 한다.

 

바이오로이드도, 철충도, 인간도 아닌 뭔가가 함내를 돌아다닌다 생각하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돋으니까.

 

 

 

“신체 능력? 일반적이야.

그럼 그 외의 다른 초상 능력 같은 게 있었나? 아니. 적어도 내가 옆에서 봤을 땐 없었어.”

 

“사령관님...”

 

“최소한 리리스와 했을 때는 마키나가 만든 환상이 맞았을 텐데?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끝나고 로그를 재검색 했었으니까... ...”

 

 

 

잠깐. 로그?

 

 

 

“마키나, 그 드론 가지고 와봐.

기술팀이 어제 이상 없다면서 다시 반납했잖아.”

 

“여기요... 하지만 사용 로그에도 별 다른 흔적이 남아 있진 않아요.

아니, 남아 있긴 한데 멋대로 지워져서...”

 

“그럼 지워지지 않은 로그가 있다는 얘기지?”

 

 

 

드론의 사용 내력을 보는 건 어렵지만, 실시간으로 쌓이는 로그들의 흔적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로그가 쌓인다는 건 최소한 마키나의 드론을 매개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

 

그렇다면 두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마키나, 우리가 리리스 이후로 단 한 번도 드론을 껐던 적은 없었지?”

 

“네. 그랬죠.

일부로 다른 대원 분들께 부모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따로 방을 만들었을 정도니까...”

 

“이상 현상이 생긴 이후로도 끈 적 없었고?”

 

“네.”

 

 

 

그렇다면 아직도 어딘가 배회하고 있다는 얘기.

하지만 적어도 오르카 호 내는 아니다.

내 부모님 같은 노년의 부부 둘이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다면 으스스한 괴담이 떠돌았어도 진작에 떠돌았을 테니까.

 

그러니 있다면 밖이란 말인데...

 

 

 

“찾았다. 위치를 특정했어.”

 

“어디죠?”

 

“... 도시 외곽? 저기는 발할라의 작전 구역인데...”

 

“그럼 철충의 위협이 남아있는 곳 아닌가요?”

 

“이미 소탕 작업은 끝내놨으니까 그러진 않을 거야.

하지만 거기 남아 있는 대원도 별로 없을 텐데... 일단 좌표를 보여줄 테니까 한 번 봐봐.”

 

 

 

드론의 거뭇거뭇한 화면 위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데이터 로그들.

 

마키나가 눈동자를 굴리며 그 위를 보았다.

 

 

 

“... 뭔가 잘못됐군요.”

 

 

 

짧은 탄식과 함께.

 

 

 

“저곳까지 제 환영이 유지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제한 범위를 넘어도 한참은 넘어섰는데...”

 

“... ... 간다.”

 

“예?”

 

 

 

마키나의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향했다.

 

무언가 계획을 벗어났다.

그 말은, 무언가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누군가 내 부모님의 탈을 쓰고 모략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 하다 못해 마키나의 환영이 맞기는 한 건지 확인해야 한다.

 

 

 

“사, 사령관님! 혼자 가시는 건 위험해요!”

 

“아니. 안 위험해. 아직 작전 구역에 남아 있는 대원이 있거든.”

 

 

 

그 녀석이라면 적어도 자기 목숨 하나는 관수할 수 있는 얘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가자.

 

뭔가가 내 계획을 더욱 뒤틀어버리기 전에.

-------------------------------------------------------------------

 

 

 

 

 

 

 

 

 

“물러서십시오. 두 분 다.”

 

“... ...”

 

 

 

오르카로부터 몇 킬로미터 떨어진 버려진 도시의 외곽 지역.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은 콘크리트 뼈대만 남아 있었고, 그 위를 담쟁이 덩굴이 칭칭 휘감고 있다.

 

저격수 몇 명이 은신하기에는 최적의 장소.

이곳이 발할라의 주요 작전 구역인 이유가 있었다.

 

 

 

“새로운 인간이십니까? 

그렇다면 신용이 확인될 때까지는 그 자세를 유지하고 계십시오.”

 

“... 알겠습니다.”

 

“각하? 여기는 작전구역 NA-102.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인간형 개체 둘을 발견했습니다.

코드 제로입니다. 반복합니다. 코드 제로입니다.”

 

 

 

저격수가 숨기에 그만인 곳.

발할라의 임무 수행 지역.

 

발키리가 그곳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늘상 있는 임무임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다녔던 발키리는, 자신의 총으로 노년의 부부의 이마를 겨누었다.

 

뇌파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건 철충에게서도 마찬가지.

눈 앞에 있는 대상을 인간으로 분류하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코드 제로입니다. 이 메시지는 전 대원들에게 발령됩니다.”

 

 

 

발키리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재빨리 후크를 풀어 패널을 꺼냈다.

 

최대한 빠르게, 쓸모 없는 동작은 제외하고.

그녀는 지정된 입력 코드를 집어 넣어 오르카 전체에게 지금 상황의 위험성을 각인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 ... 뭐지?’

 

 

 

너무도 잠잠하다.

 

코드 제로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면 적어도 이 근방에는 사람이 고개도 못 들 정도의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렸어야 정상.

 

하지만 사이렌 소리는커녕 지나가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하다.

 

 

 

‘만약 저 개체의 능력이라면...’

 

“미안해요. 근방이 시끄러워지는 건 원치 않아서.”

 

 

 

당황한 발키리의 표정을 읽었다는 듯 손을 들고 있던 노년의 부인이 말했다.

 

 

 

“... 뭔가를 하신 겁니까?”

 

“우리가 한 건 아니에요.”

 

“외부의 공범이 있다는 얘기입니까? 아니면 조력자?

숨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이 포인트는 다른 저격수가 발견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 아가씨 옆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시끄럽길 원하지 않는다네요.”

 

“사람!?”

 

 

 

순간 발키리는 고개를 돌려 좌우를 확인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수북하게 쌓인 덩굴들뿐.

 

사람은커녕, 움직이는 생물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상상력이 좀 부족한 노인들이라 뭐라고 얘기해줘야 할 지 모르겠네요.

적어도 아가씨를 해치려고 온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요.”

 

“... 그럼 적어도 두 분의 신원이라도 밝혀주십시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아직 다른 곳에 생존자 무리가 남아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니고 우리는...”

 

“아냐, 여보. 내가 할게.”

 

 

 

침을 삼키는 게 목 너머로 보일 정도로 긴장한 여인을 뒤로 숨기며, 노년의 남성이 발키리 앞에 섰다.

 

총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듯이 떨고 있는 몸.

하지만 결의에 찬 다리가 그 떨림을 막고 있었다.

 

 

 

“사령관의 부모. 그렇게 얘기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 부모라고?”

 

 

 

철컥!

 

발키리가 총을 쏠 듯이 남성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재미있는 얘기군요! 그런 뻔한 거짓말에 제가 속을 것 같습니까?”

 

“최근에 오르카 호가 상견례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을 텐데, 아가씨는 그걸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상견례? 압니다.

그것 때문에 각하의 부모님께서 오르카 호로 오셨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저희가...”

 

“하지만!”

 

 

 

방아쇠 위에 놓인 손가락이 부르르 떨었다.

 

 

 

“그게 환영이라는 것도 압니다.”

 

“... ...”

 

“각하께서 제게 여쭤보셨죠. 상견례라고 하는 데 그 상대가 가짜 부모님이란 걸 알면 대원들이 실망하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제가 직접 괜찮을 거라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직접 말입니다!”

 

“... 그랬군요.”

 

“그랬군요? 

하! 네, 그랬지요!

그러니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각하의 선한 의도를 악용할 생각은 접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숨을 고르고 차가운 눈빛으로 둘을 겨누는 발키리.

온 신경을 집중에 혹시 모를 외부인의 접근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발키리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두 사람의 주위를 거닐었다.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 어깨에 매고 있는 가방과 가방 옆에 꽂혀있는 물통.

행여나 저것이 위장하고 있는 폭탄이지 않을까, 온 힘을 다해 탐색하고 관찰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저것들은 그저 평범한 산악용 도구들.

점점 지쳐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발키리는 자신도 모르게 총구를 조금 내렸다.

 

 

 

‘... 약해지면 안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까지 무자비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에게 놓인 임무가 그것이었으니까,

두 번째 인간을 눈 앞에서 놓친 기억이 남아 있었으니까.

 

허나 그보다 무거운 이유가 그녀 스스로를 더욱 독하게 만들었다.

어떤 경우에라도 미지의 위험 인물을 사령관에게로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참다 못한 노년의 남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가씨 옆에 놓인 밧줄. 그걸로 저희를 묶어 놓으면 어떨까요?

저희는 나쁜 의도로 온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요.”

 

 

 

남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키리 뒤에 있는 두꺼운 밧줄을 가리켰다.

 

들을 가치도 없는 의견이다.

저기 있는 인간이 무슨 수를 숨기고 있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접근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 힘들어 보이는군.’

 

 

 

두 사람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상태.

 

적어도 발키리를 힘으로 이길 만큼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아니리라.

 

발키리는 밧줄을 들고 두 사람의 뒤로 걸어가 조심이 손목을 옥죄었다.

 

마음 같아서는 손목 뼈가 부러질 만큼 강하게 조이고 싶었으나, 차마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정말 사령관의 부모라면?

 

이 이상의 무례를 발키리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 약하게 맨 매듭은 두 사람을 조금이나마 숨 돌릴 수 있게 해주었다.

 

 

 

“고마워요. 이제 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왜 이곳에 오신 겁니까.”

 

“말할 기회를 주질 않는군요.”

 

“절차를 따를 뿐입니다.”

 

“... 허허. 거 참...”

 

 

 

발키리의 차디 찬 반응에 남성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들이 말했던 그대로군요.”

 

“... ...”

 

“아들이 그러더군요. 발키리라는 아가씨는 늘 과묵하고 똑 부러져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그래서 다른 누군가와 어울리길 힘들어 하는 성격이라고.

상견례로 축제 분위기인 오르카에서 벗어나 이런 외딴 곳에 혼자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인가요?”

 

 

 

마치 자신의 속내를 다 꿰뚫고 있는 듯한 남성의 심계에 발키리는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당당하고 심지가 굳은 사람의 당당한 어조.

발키리가 보아도 저 사람은 사령관과 닮은, 꼭 그의 아버지 같은 노인이었다.

 

만약 저 사람이 정말로 사령관의 부모라면,

그리하여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라면,

 

 

 

‘... 그럴 리가 없지.’

 

 

 

발키리는 거기서 자신의 망상을 축약했다.

 

만에 하나, 정말로 저 두 사람이 그의 부모이고 사령관에게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저렇게 침착하게 말을 걸 리 만무했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들을 죽이려 했던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 제가 이곳에 있는 건 그저 임무 때문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망함은 있겠죠.

오르카 호의 상견례. 그 주인공이 자신이 되고 싶다는 희망은 가져본 적 없었나요?

아가씨 정도라면 참 좋은 사람인데.”

 

“그곳이 제 분수에 맞는 자리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텐데요?”

 

 

 

총으로 그렇게나 겁을 주었는데도 굴하지 않는 노인의 눈빛.

 

대체 어느 인간의 심계가 이리도 깊단 말인가?

 

발키리는 대답하는 대신, 등을 돌려 앉는 것으로 응수했다.

 

 

 

‘어차피 저들은 묶인 몸이다. 뭔가 계략을 꾸민다 한들 미연에 차단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반군.”

 

“!!”

 

 

 

허나 두 사람은 그녀 스스로가 다시 등 돌리게 만들었다.

 

 

 

“그 때의 일 때문이겠죠.”

 

“다... 당신들이 그걸...”

 

“말했잖아요?”

 

 

 

그의 어머니라 하는 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들에게 다 듣고 왔다고.”

 

“... 하.”

 

 

 

숨겼다.

 

은닉과 첩보의 달인.

이전 사령관의 오른팔로서 오르카의 모든 정보를 총괄했었던 발키리가 온 힘을 다해 숨겼던 자신의 흑역사.

 

그 당시의 대원들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모르는 그 때의 일.

그건 귀신처럼 나타난 의문의 인물들이 입에 올릴 수 있을 만한 정보가 아니었다.

 

 

 

“... 정말로 각하의...”

 

“네, 맞아요. 그 아이의 부모라니까요?”

 

 

 

그저 실없는 농담이나 추한 자기 은신에 불과한 말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저들이 하는 말은 정말로 저 두 사람이 사령관의 부모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 아닙니다. 아닐 겁니다.”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각하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면...

... 왜 그러시는 겁니까...?”

 

“무엇을 말이죠?”

 

“왜... 화를 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부모가 자식의 원수를 눈 앞에 두고 저리 평온해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 아니, 악행을 정말로 다 들었더라면,

두 사람은 저렇게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목을 비틀어버리겠다고,

아직 살아있는 이 몸뚱아리를 입으로 물어 뜯어내겠다고,

못해도 묶인 매듭을 뜯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악에 바친 비명을 질렀어야 한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되려 발키리가 자신의 손목을 더 쉽게 묶을 수 있도록 내밀었을 뿐이었다.

 

 

 

“우리가 이러는 이유가 필요한가요?”

 

“... 이기적이라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습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하는 게 어떨까요?”

 

 

 

두 사람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라고.”

 

“... 예?”

 

“일단 이것부터 좀 풀어주시겠어요? 조금 불편해서...”

 

 

 

여성이 뒤로 묶인 손을 까딱거리며 발키리에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마치 홀린 듯이 걸어가 자신이 묶은 매듭을 풀어내는 발키리.

 

행여 두 사람의 피부에 상처라도 날까,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매듭을 칼로 자르기 시작했다.

 

 

 

“상견례... 별로 상견례 같지도 않은 자리였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었어요.

당황한 표정, 즐거운 표정, 어쩔 때는 잔뜩 겁 먹은 표정.

그 중에서 특히 레오나 양의 얼굴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 레오나 대장도 만나셨었군요.”

 

“네. 서투른 솜씨로 요리를 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아들 주기가 아깝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사각. 사각.

 

밧줄 자르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린다.

 

 

 

“귀여운 얼굴 뒤로 창백한 근심이 서려 있더군요.

보는 우리가 안쓰러울 정도로.

얼마나 용서를 받고 싶었으면 그랬을까요? 그걸 보던 아들은 또 얼마나 마음을 조렸을까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 레오나 대장은... 용서해주신 겁니까...?”

 

“네. 처음에는 한 소리 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그런 얘기 해봤자 아들에게 좋을 게 없겠더라고요.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 엄마 잔소리 때문에 속 썩일 필요는 없잖아요?”

 

 

 

사각.

 

매듭의 마지막 밧줄이 끊기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늙은 몸은 조금만 불편해도 여간 뻐근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발키리는 찡그린 두 사람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찌릿- 근육통을 느꼈던 것이리라.

주름진 얼굴에는 피하지 못한 세월이 진한 독향(毒香)처럼 피어 올랐다.

 

 

 

“그런데 레오나 양을 보내고 나니까 문득 생각이 드는 거에요.

저렇게 용서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또 있을 텐데.

아들이 소개해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분명 한 명 더 있었을 텐데.”

 

“... ...”

 

“그래서 우리가 직접 가기로 했죠.

아들은 일에 치여 사느라 바빠 보이더군요. 그래서 같이 오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의 말이 진심임을 토로했다.

 

용서라.

 

발키리에게 그보다 달콤한 말이 또 있었을까?

 

하지만 안다.

그런 기약 없는 희망을 바랄 바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음을.

그녀가 상견례를 자신과 요원한 일로 여겼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르카 호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온 것이었는데, 정작 저 둘은 그런 자신을 위해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뒤틀렸다.

참으로 많이도 뒤틀렸다.

 

 

 

“발키리 양.”

 

 

 

그러나 세상에 나쁜 뒤틀림이 있는 것처럼,

 

 

 

“상견례를 시작해볼까요?”

 

 

 

그렇지 않은 뒤틀림도 있는 법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기적이라 불렀다.

 

 

 

“... 제가...”

 

“네.”

 

“... 용서를... ...”

 

 

 

그녀는 말을 줄였다.

 

자신이 한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 무게에 익숙해지려 하였다.

그러니 정작 내려 놓으려 할 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부모가 아니라 생각하자.

부모가 아니니까, 이런 분에 겨운 헛소리도 할 수 있는 것이야.

 

 

 

“...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요...?”

 

 

 

발키리는 반쯤 뜬 눈으로 그들의 얼굴을 겨우 쳐다보았다.

 

그마저도 눈은 마주치지 못하고 입꼬리만 살짝.

그곳에서 펼쳐진 것은 실로 광오한 미소였다.

 

 

 

“물론이죠.”

 

“... ... 죄송합니다.”

 

“무엇이요?”

 

“아드님께... 하지 말아야 했던 일을 했습니다.”

 

“왜 그러셨죠?”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뇨. 분명 알고 있을 거에요.”

 

 

 

잠시 입을 떼려 하였던 발키리는, 이내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변명처럼 들릴 게 뻔했으니까.

 

 

 

“우리는 발키리 양의 입에서 듣고 싶은 거에요.”

 

 

 

그러나 둘은 이미 그마저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발키리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 나쁜... 인간이 한 명 있었습니다.

제 자매들을 유희로 죽이고, 재미 삼아 살해하던... 그런 악마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그래서... 그래서 저는... 인간이 무서웠습니다.

실수를 바로 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제 손으로 날려버렸기에...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사위가 고요했다.

 

 

 

“그래서 저는... 아드님이 무서웠습니다.”

 

“후회하나요?”

 

“네...”

 

“... 그래요. 그럼 그걸로 된 거에요.”

 

 

 

사령관의 아버지.

 

작은 교회의 목사였던 자가 일어나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무어라 중얼거리며 바쁘게 말하기 시작하는 그의 입.

 

발키리가 그 말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의 온기에 적대심이 있지는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말을 하는 매 순간 순간, 그는 떨고 있었다.

 

적대심이 없다고 하여 그 온기가 마냥 따스했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불같이, 태양처럼 뜨겁게 발키리의 머리를 짓누르는 듯했다.

 

갈망이다.

 

갈증이다.

 

복수에, 분노에 대한 갈(渴)함이 너무도 깊어서,

 

그저 눈 감고 용서하기엔 아들을 죽이려 한 자를 품기가 너무도 힘들어서,

 

그는 말하는 대신 기도로 되새겼던 것이다.

 

 

 

“...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의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사오니...”

 

 

 

아들에게 더 나은 세계를 주어야 한다고.

 

아들을 대신해 이들에게 남은 죄책들을 조금이라도 더 씻어주어야 한다고.

 

 

 

“... 아멘.”

 

 

 

안수 기도.

정죄함 대신 축복하는 기도를 그는 발키리에게 해주었다.

 

 

 

“... 발키리 양.”

 

“... ...”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푹 쉬세요.”

 

 

 

두 사람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키리도 둘을 따라 가려 했으나 이유 모를 나른함이 그녀를 덮쳤다.

 

너무 긴장했던 탓이었을까?

일어나려던 그녀는 픽- 하고 의식이 끊기는 것을 느꼈다.

 

 

 

“발키리! 발키리! ...키리...! 내 말... ...”

 

 

 

저 멀리서 사령관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폐건물의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발키리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시야가 흐릿해진다. 백(白)이 흑(黑)으로 채워지고, 주변의 새소리는 점차 잦아든다.

 

하지만 어딘가, 흑(黑)이 백(白)이 되고, 고요함이 필요했던 곳이 있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자신을 탓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 감사... 합니다.”

 

 

 

발키리는 참 오랜만에, 예쁜 꿈을 꾸었다.

 

참 오랜만에.

--------------------------------------------------------------






자세한 떡밥은 다음화부터.

상견례 에피소드는 발키리로 끝이빈다.

만약 이번화 추천 200 넘으면 다른 캐들도 외전격으로 써볼거라 공약 검.

에이 설마 되겠어?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