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

 

 

 

 

 

 

발할라 부대의 작전 구역.

 

인적이 드문 이곳은 폐건물들 위로 덩굴이 흐드러지게 붙어 있어 도시가 아닌 숲처럼 보인다.

 

 

 

“엄마! 아빠!”

 

 

 

그런 곳에 왠 사람 두 명이 떡 하니 있으면 안 보일래야 안 보일 수가 없지.

 

이미 내가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두 분은 무너진 콘크리트 위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숨이 차게 달려왔건만, 보는 내가 기운이 빠지는 광경이다.

 

 

 

“하아... 하아...”

 

“오, 아들 왔구나?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여기 오는 길이 워낙 험했거든.”

 

“평소에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단 증거겠죠. 호호.”

 

 

 

지금 상황을 전혀 모른다는 듯이 소소한 잡담을 나누는 두 분.

 

시치미를 떼시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정말 알고 있는 게 없다는 건가?

 

 

 

“... ...”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 상황에 마키나는 전혀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두 사람은 괜시래 뭉친 어깨를 풀며 능청을 떨고 있었다.

 

 

 

‘부모님 앞에서 총을 꺼내는 건 영 꺼림칙한데...’

 

“왜 그러냐?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그러게 말이야. 무슨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저 목소리.

 

아무리 들어도 부모님의 목소리가 맞다.

 

 

 

“못 볼 건 본 거냐 물으신다면...”

 

 

 

아닌 건 아니란 말이지.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뒷주머니에 챙겨둔 권총을 손에 쥐며 조심스럽게 입을 땠다.

 

 

 

“... 일단 그것부터 물어보겠습니다.

두 분, 여기는 대체 왜 오신 거에요?”

 

“음...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마침 여기 만나고 싶은 아가씨가 있어서...”

 

“그건 어떻게 아셨고요?”

 

“... ...”

 

 

 

대답이 없다.

 

 

 

“하하하... 그, 그건 말을 하지 말라고...”

 

“여보! 그렇게 말하면 다 알아차릴 거 아니에요!? 이 인간이 눈치가 왜 이렇게 없어?”

 

“뭘 알아차린다고요?”

 

 

 

내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두 분.

 

얼굴에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것이 산보를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긴장해서 그런 것인지 분간 되지 않을 정도다.

 

이젠 의심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

 

총을 꺼내지 않으면 내가 먼저 당할 수도 있다.

 

 

 

철컥!

 

“아버지. 어머니.”

 

“으... 응?”

 

“제가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요.”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확인해보자.

 

 

 

“여기에 발키리가 있었다는 건 어떻게 아셨죠?”

 

“... 여보. 어떻게 하죠?”

 

“어쩔 수 없지. 말하는 수 밖에...”

 

 

 

어쩔 수 없다라?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지? 하는 수 없이 날 해쳐야겠다, 뭐 그런 뜻인가?

 

그렇다면, 숨겨둔 무기가 있는 건가? 아니면 외부의 조력자가?

 

방심하면 안 된다. 지금 들고 있는 저 지팡이가 곧장 총으로 변할 지도 모를 일이다.

 

두 명이 입고 있는 등산복은 오르카엔 있지도 않는 물건.

저게 방탄복인지 아니면 무슨 철충의 요술 장갑일 지 어떻게 아나?

 

방심해서 뒤통수 맞는 건 이제 지긋지긋...

 

 

 

“이봐요.”

 

 

 

순간, 아버지께서 한숨을 내쉬며 허공을 쳐다보았다.

 

아무 것도 없는 맨 하늘일 뿐인데 대체 무슨 생각을...

 

 

 

“이미 장가 보낸 자식이라지만 이렇게 간담 서늘하게 싸우는 꼴을 원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말해도 되겠습니까?”

 

“지금 뭐라고...”

 

“그래요. 정체를 숨기는 것도 여기까지 했으면 됐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한테 그런 거 시키면 지쳐서 못 하겠다고요.”

 

 

 

마치 투정을 하는 듯이 따지는 모습.

어딜 봐도 싸우거나 전투를 하려는 제스쳐는 아니지 않나?

 

나도 모르게 총을 쥐던 손에 힘이 빠졌다.

우선은 저 두 사람의 긴장감 없는 모습에 맥이 빠진 탓이었고, 그 다음에는.

 

 

 

“... 그러지요.”

 

 

 

두 분의 시선이 향하던 허공 위에 흐릿한 일렁임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다른 이들이 저를 힐난하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내하겠습니다.”

 

“너...”

 

“저를 알아 보시겠나요?”

 

“너는... ...”

 

 

 

사람이나, 사람 같지 않은 것.

 

팔과 다리 각각 두 개씩 제대로 달려 있지만, 기다란 머리카락은 거대한 촉수처럼 흐느적거린다.

 

오른눈으로 볼 땐 눈 앞에 있지만, 왼눈으로 응시하려 할 땐 보이지 않는,

3차원 세계 속에 2차원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별의 아이...?”

 

“’어떤’ 별의 아이인지가 중요하지요.

뭐, 지금 당장은 그리 중하지 않지만.”

 

 

 

놈은 기다란 머리카락 한 올을 손가락에 꼬며 바닥을 보았다.

 

땅에 닿을 만큼 긴 장발은, 그 경계면에서 흐릿하게 사라졌다.

발목 부근에서부터 나무 뿌리 같은 무언가가 땅 속으로 길게 뻗어 있다.

 

존재, 흥미, 사고, 행동, 무엇 하나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없으나, 그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엄청난 강자(强者)라는 것.

손짓 하나에서부터 차원이 다른, 그런 존재라는 것.

 

 

 

‘... 이길 수 있을까?’

 

 

 

만약 저것이 오르카를 노리고 있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게임 속에서도 별의 아이 세력이 아군이란 말은 없었는데, 지금 당장 싸워야 한다면... 승리를 점칠 수 있을까?

 

머리 속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쳤다.

 

별의 아이는 그런 나를 보며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 걱정하지 마세요. 당장 싸울 생각은 없으니.”

 

“... ... 너도 교황처럼 사람 마음 같은 걸 읽을 수 있나 보지?”

 

“약간의 통찰력만 기른다면 당신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죠.”

 

“통찰력이라...”

 

 

 

오르카 전체가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는 괴물이 지금 사람의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났는데, 통찰력?

 

그건 고사하고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으면 다행이다.

게임에서도 별의 아이를 본 레오나가 바르르 떨기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내 꼴이 딱 그렇다.

 

짐승의 울음 소리에 오금이 저려오는 기분.

방아쇠에 건 손가락이 시도 때도 없이 절면서 딸깍거리는 철 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으이구, 예나 지금이나 겁 많은 건 마찬가지구나.”

 

 

 

그런 내 등을 두들겨주신 것은 부모님이셨다.

 

두 분이 가까이 다가오시고 나서야 겨우 볼 수 있었다.

희미하게 흩날리는 빛의 입자들을.

 

 

 

‘... 적어도...’

 

 

 

마키나가 만든 환영인 것은 분명하다.

단지 그걸 유지하는 근원이 마키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 것일 뿐.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의 원인이 되어줄 만한 인물은 단 하나뿐이다.

 

 

 

“... 너구나?”

 

“그렇습니다.

두 분을 이곳으로 모시고 온 것은.”

 

 

 

별의 아이가 팔을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스르륵. 두 분이 매고 계시던 커다란 가방이 순식간에 햇살 속으로 스며들었다.

 

 

 

“무거우실 듯하여 이렇게 하였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말씀하시죠.”

 

“오, 고마워요. 안 그래도 오십견 때문에 어깨가 아팠는데.”

 

 

 

숨 쉬듯이 두 분께 호의를 베푸는 별의 아이.

 

분명 저것들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 미지의 존재인지 말씀 드렸음에도 두 분은 아무렇지 않게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 선의를 베푸는 것이 당연하지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이 믿지 않을 것 아닙니까.”

 

“별의 아이를 상대로 뭔가를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은 아닌데.”

 

“가끔은 순진한 사람이 되어보시죠.

제가 일개 인간에게 계략을 꾸며야 할 만큼 연약하게 보이십니까?”

 

 

 

그럴 리가.

지금 보이는 모습만 봐도 팔 다리가 후덜거려서 조마조마한데.

 

그런데 이리 생각하니 또 이상한 것이 눈에 보였다.

 

바로 두 분.

부모님은 저것에게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마치 옆집 사는 이웃을 만나는 것처럼.

약간의 거리감만 둘 뿐,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러자 머리 속에 한 가지 가설이, 아니, 확신이 생겼다.

 

 

 

“너지? 부모님을 데려온 게.”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시원하게 대답해주네.”

 

“말했잖습니까? 계략 같은 걸 꾸밀 이유는 없다고.”

 

 

 

... 할 말이 없다.

 

 

 

“그럼... 어떻게 데리고 온 거지?

나를 데리고 온 것처럼 설마 원래 세계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죽여버린 거냐?”

 

“아뇨.”

 

“그럼 대체...”

 

“잠결을 잠시 빌려 저 분들의 영혼을 이곳으로 이끌어 드린 겁니다.”

 

“... 그러니까, 주무시는 부모님을 여기로 데리고 온 거다?

죽인 건 아니고?”

 

“네.”

 

“그렇다는 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저 부모님들이, 마키나가 만든 환영이 아니라 진짜라는 뜻인가?

 

환영치곤 너무 사실적이라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 그럼 대체 언제부터였지?”

 

“네가 힘들다고 찡찡댔을 때부터였단다.”

 

 

 

찰싹!

 

권총을 쥐고 있던 내 손을 아버지께서 내리 치시며 말씀하셨다.

 

 

 

“... 잠깐. 내가 찡찡댔다고요?”

 

“그래. 아주 눈물까지 흘리면서 울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마키나 양과 또... 아, 그래. 메리.

메리 양이 같이 있었을 때였어.”

 

“그럼 거의 시작부터...”

 

“그랬지.

브라우니란 아이들 때문에 네가 진땀을 흘리던 게 엇그제 같구나.”

 

 

 

옛날... 이라고 하기도 뭐한 얼마 전의 추억에 잠기며 두 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종 잡을 수 없는 별의 아이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시는 듯한 부모님.

이 둘 사이에서 현실감을 놓치지 않으려 하니 아주 죽을 맛이다.

 

 

 

“아들아.”

 

“...”

 

“이젠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구나.”

 

“... 아빠.”

 

“그러게요.

우리가 여기 왔다는 걸 아들한테까지 숨기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는데.”

 

“엄마도...”

 

 

 

그나마, 그래도,

 

내가 없는 세계에서도 두 분은 잘 계시다는 걸 확인하니 마음이 한결 평안해졌다.

 

오르카로부터 멀리도 떨어져 있는 외곽.

별의 아이가 나타났다는 걸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에 이젠 감사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만약 들키기라도 했으면...’

 

 

 

적이 아니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했어야겠지.

리리스 같은 애들이었으면 설명을 했어도 ‘주인님을 농락한 죄’ 같은 걸 물으면서 적이라 간주했을 테고.

 

애초에 나도 저것이 적인지 아닌지 확언할 수 없는 상황.

 

최소한 초면에 칼날을 들이대는 교황에 비하면 훨씬 유순한 편에 속한다는 건 알 수 있겠다.

 

 

 

“마키나라 불리는 바이오로이드가 실체를 만들어준 덕분에 두 분을 이곳으로 모시고 올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여기로 온 것처럼요. 환생을 당신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가 되셨습니까?”

 

“... 잘 모르겠어.”

 

 

 

닥터를 데려다 놔도 똑같은 반응이었겠지.

 

 

 

“이해가 되든 말든,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두 분이 여기 남아계실 수 있는 시간이지요.”

 

“얼마나 남았지?”

 

“대략 일주일 정도.

그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별들의 반발이 심할 테니까요.”

 

 

 

일주일... 일주일...

 

아스널의 증언에 따르면 이젠 두 분에게서 뇌파도 느껴진다고 했다.

 

아마 별의 아이가 일부로 숨겨놓았던 것이었겠지.

발키리가 여기 있단 걸 알려준 것도 그 때문일 테고.

 

뇌파가 느껴지는 사람.

사실상 나를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이 나타난 셈인데 그런 사람을 오르카 안으로 데리고 갈 수 있을까?

 

심지어 며칠 뒤에는 사라진다잖아.

그걸 설명해주지 않으면 일대 아수라장이 펼쳐질 것이고, 그걸 설명하려니 일주일로는 턱도 없이 모자라다.

 

 

 

“... 이걸 대체 어떻게...”

 

“아들?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아?”

 

 

 

불쑥 얼굴을 들이미시는 어머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반갑지 않아?”

 

“... 이럴 때마저 엄마는 참 낙관적이네.”

 

“에이, 그거 조금 혼란스러워진다고 걱정할 것 같으면 세상에 걱정할 일이 얼마나 많겠니?

엄마 아빠도 이 아가씨들 앞에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단다.”

 

“이 애들의 집착이 오죽 심한 게 아닐 텐데요...”

 

“걱정도 참.

너희 아빠 직업이 뭐지?”

 

“... 목사요.”

 

“그래. 비록 성도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엄연히 한 교회의 목사였던 사람이지.

그런 사람한테 사람 걱정하라고 하는 것만큼 웃긴 일이 없어.”

 

 

 

뒤에서 가슴을 쭉 펼치고 계신 아버지를 향해 어머니께서 손으로 가리키셨다.

 

 

 

“게다가 여기 있는 사람들, 하나 같이 착하고 온순한 사람들 밖에 없더라.

LRL이었나? 그 애들 노는 것만 보면 엄마는 아주 웃음이 절로 나던데?

네가 저 나이 때는 아주 밥도 안 먹고 옷도 자기 입고 싶은 거 입겠다고 난리 부르스를 떨었는데, 그거에 비하면 선녀지. 선녀야.”

 

“... 나도 어렸을 때는 꽤나 얌전...”

 

“더치걸은 또 어떻고?

벌써부터 조숙하니, 애가 완전 세상 쓴 맛은 다 본 것처럼 공손하게 굴더라.

그런 모습을 보고만 있는 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어차피 들키기로 한 거 제대로 들켜야 하지 않겠냐? 아들 내미 혼자서 못할 일, 엄마 아빠가 나눠 들어준다 생각하면 되지.”

 

 

 

주섬. 주섬.

 

땅에 떨어진 지팡이를 다시 줍는 아버지와 어머지.

두 분의 발끝이 오르카로 향해 있음을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 어디 가요...!”

 

“우리 아들 내미 신혼집 간다~”

 

 

 

저벅 저벅.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 이럴 때는 잘도 걷는단 말이야.

 

하긴, 잘 다니던 직장도 내팽겨치고 교회를 개척한 아버지를 누가 말리겠나.

어머니도 마찬가지.

그런 사람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똑같이 독한 사람뿐이다.

 

나는 멀어져 가는 두 분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만 볼 뿐이었다.

 

 

 

“말리지 않는군요.”

 

“말릴 명분이 없으니까... 하아. 돌겠네.”

 

“오히려 좋지 않습니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나눠줄 수 있다는 게.”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별의 아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푸른색 눈. 홍채 안에 담긴 빛은 하늘의 별자리 자체를 그대로 담아 놓은 듯했다.

 

 

 

“이 세계는 일개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나약합니다.

당신이 가장 잘 알잖습니까?”

 

“나약하다라...”

 

 

 

건들면 부서질 것 같은 애들 투성이니 그 말도 맞기는 맞다만...

 

 

 

“... 하긴. 아직까지 식물 인간 상태인 더치걸도 있는데. 뭐.”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비밀의 방 속 더치걸 구출이었다.

 

그 중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은 거의 다 살렸지만,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아이도 있었다.

거진 몇 년을 병상에 누워 있는 아이.

그저 더치걸이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길게 자란 머리카락만이 그 아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집착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뭐가?”

 

“보통 인간들은 그 정도로 한 생명에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한 것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해야지요.”

 

“... 별의 아이의 눈으로 봐도 그 애는 죽은 건가?”

 

“인간의 기준이라 말씀 드렸습니다.”

 

“...

그래도 아직 죽진 않았어. 일주일 전보다 머리카락도 5mm 길어졌단 말이야.”

 

“생명 유지 장치를 붙여놓았으니 그렇겠죠.”

 

 

 

잔혹하리만큼 맞는 말.

 

닥터가 직접 만든 기계가 아니었더라면 그 아이는 진작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반군과 싸웠을 때부터 데우스 사건까지.

오르카 호가 휘청거릴 때마다 그 아이의 목숨은 좌우로 저울질 당했다.

 

 

 

“생(生)에 대한 집착이 광기에 다다랐군요.”

 

 

 

그것이 별의 아이가 내린, 나에 대한 평가다.

 

 

 

“적과의 싸움에서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전투에서도 누구 하나 잃지 않으려는 그 열망.

어떤 별은 그것을 만용이라 부르고, 다른 별은 그것을 과욕이라 부릅니다.”

 

“... 그러면 안 되는 거였나?”

 

“아뇨.

적어도 이 땅은 우리가 당신에게 쥐어준 무대.

그 위에서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우리는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다만?”

 

 

 

별의 아이는 잠시 입을 다물고 하늘을 보았다.

 

슥.

 

스스슥.

 

가장 크게 반짝이는 별이 웅웅거린다.

그걸 보고 나서야 별의 아이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 언젠가 그것에 대한 심판이 있겠지요.”

 

“심판?”

 

“아하. 심판은 너무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정정하지요. 평가라 하겠습니다.”

 

“... ...”

 

 

 

심판이라.

 

문득 옆에 놓인 건물의 뼈대가 보였다.

 

다 닳아버린 콘크리트와 잔뜩 녹슨 철근만 앙상하게 보이는 폐건물.

그렇게 보면 이미 심판 당한 존재들이 분명히 있었다.

 

 

 

“인류를 멸망시킨 사람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오니 꽤나 섬뜩하네.”

 

“인류가 벌인 일이 더욱 섬뜩하지 않습니까?”

 

“... 정곡을 찌르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오르카에 있었던 내가 어찌 저 말에 반박하겠나?

 

 

 

“이야기는 많이 할 수 없겠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하늘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별의 아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묻고 싶은 것이 많겠지요.

답할 수 있는 것은 답해주겠습니다. 물어보시지요.”

 

 

 

부모님께 향하던 호의가 이젠 나에게로 향했다.

 

... 코스믹 호러 덩어리인 놈들이 이렇게 다가오니 조금 무서운데?

 

막 원숭이 발처럼 잘못 물어봤다가 낭패 보는 건 아니겠지...

 

 

 

“... 너희가 인간을 멸망시킨 건 맞아?”

 

“그렇습니다.”

 

“왜 그런 거야? 배가 고파서?”

 

“그건 아니라 해두지요.”

 

 

 

하긴, 이런 괴물들이 굶어서 아사(餓死)하는 꼴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럼 철충을 멸망시킨 건...”

 

“솔룸의 원주민들을 묻는 것이라면, 맞습니다. 저희입니다.”

 

“이유도...”

 

“인류와 동일합니다.”

 

 

 

덤덤하기 그지 없는 별의 아이의 대답.

 

어쩌면 저 종족에게 한 행성의 멸종 정도는 별 거 아닌 가십거리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별거 아닌 별의 별거 아닌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지만...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잘 해주는 거야?”

 

“개인적인 빚이라 말씀 드리겠습니다.”

 

“빚?”

 

 

 

빚이라고?

그럼 설마 부모님을 여기 데리고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나?

 

하지만 대체 왜?

아무리 기억해봐도 별의 아이에게 뭔가를 해준 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게 도움을 받을 만한 족속이 아니지 않나.

무언가 얼버무리기 위한 임기응변처럼 들린다.

 

 

 

“그만. 이 이상의 대화는 불가합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하나로 만족하십시오.”

 

 

 

별의 아이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몸 전체가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역시나. 이것 역시 놈의 본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지막 질문이라...’

 

 

 

부모님을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이 별의 아이라면,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것 역시 별의 아이일 것.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있었지만, 그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내가 여기 와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잊지 않고 고민했었던 물음이 있었으니까.

 

 

 

“... 왜.”

 

 

 

왜 하필.

 

 

 

“나였어?”

 

“...”

 

“부모님을 모시고 온 것처럼 누군가를 특정해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면, 그게 나였을 이유는 없었잖아.

왜 나였어? 왜 나를 데리고 온 거야?”

 

 

 

분노, 원망, 절망.

 

그리고 약간의 고마움을 더하여 나는 별의 아이에게 물었다.

 

 

 

“... 우리는.”

 

 

 

점차 흐려지는 모습으로 별의 아이는 입을 열었다.

 

 

 

“초인과적인 존재입니다.

시간도, 공간도, 성체가 된 별의 아이에겐 무의미합니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그러니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잠시 눈을 감은 별의 아이는, 자신의 하체가 전부 사라질 때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 기다란 머리카락이 단발이 될 때까지, 하늘 위 태양의 움직임이 눈에 보일 때까지.

 

별의 아이는 시간을 뒤섞으며 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 과거의 결과는. 미래의 원인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는 법이지요.

별의 천칭이여.”

 

“... ...”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은, 당신의 선택이었습니다.”

 

 

 

... 뭐?

 

 

 

“이제 멈췄던 경종이 울립니다.

당신이 걸었던 길 위로 다시 올라설 준비를 하십시오.”

 

“자, 잠깐!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오고 싶어서 왔다니?

 

난 별의 아이 같은 건 여기 와서 처음 봤단 말이다! 하물며 꿈에서도 본 적 없었는데?

 

 

 

“멈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비록 달은 죽었지만, 별들이 항상 그대를 주목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대가 딛고 있는 이 땅 역시 별임을. 가련한 아벨이여.”

 

“무, 무슨 수수께끼 같은 소리만 하는 건데?

잠깐만! 하나만, 하나만 더 물어보고...”

 

 

 

스르륵.

 

거의 다 사라져 있었던 별의 아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데 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바람 한 점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텅 빈 공터.

발이 어디로 향해야 할 지 갈팡질팡거린다.

 

 

 

“... ... 이... 일단 발키리부터 챙기자. 분명 이쪽 건물 어딘가에...”

 

 

 

아직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늘 하던 일을 했다.

 

대원들이 있는 곳에 가는 것. 가서 별 다른 일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

 

습관처럼 하는 일이었기에 지금 같은 때에도 몸은 움직일 수 있었다.

 

 

 

“... ...”

 

 

 

물론, 정신은 하나도 없었지만.

 

 

 

‘내가 오고 싶어서 왔다고...? 그게 대체 무슨...”

 

 

 

지금까지 느꼈던 좌절과 원망을 한 순간에 없애버리는 대답.

없앴다기보단 허무하게 증발시켰단 말이 더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집중해선 안 된다.

 

이야기가 다시 흘러야 한다고 했으니까.

여왕과 카르디아의 치료도 거의 다 끝나가는 상황.

교황 역시 뭔가를 꾸미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시간이다.

 

 

 

‘... 그런 걸 안다고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단 말이야...’

 

 

 

그래도 최소한 나만큼은 기억하고 있자.

무슨 일이 있어도 대비할 수 있게.

 

생(生)에 대한 집착이 광기에 이르렀다고 했던가?

 

그래. 그러니 어디 한 번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도록.

---------------------------------------------------------------

 

 

 

 

 

 

 

 

 

 

“주인님.”

 

 

 

그로부터 며칠 뒤, 부모님께서 사라지신 뒤의 어느 날.

 

라비아타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이건 1급 기밀인 것 같아 직접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절대방위지역으로부터 구조 신호가 하나 왔습니다.”

 

“구조 신호!? 혹시 다른 인간이야?”

 

“그건 아닙니다. 바이오로이드가 보낸 신호였는데...”

 

“... 그래? 거긴 AGS들만 잔재하는 구역 아냐?”

 

“그렇죠. 그래서 평소에는 조용하기 그지 없는 곳이었는데...”

 

 

 

라비아타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 예. 그런 곳이죠.

그런 곳인데, 구조 신호를 보낸 바이오로이드가...”

 

“누군데 그래?”

 

 

 

별의 아이가 했던 말처럼, 멈춘 이야기의 수레 바퀴가 다시 굴러 가기 시작했다.

 

 

 

“... 에바 프로토타입입니다.”

------------------------------------------------------





두둥.


절대방위지역이니, 에바니, 아벨이니.

점점 아는 사람만 아는 설정이 나오네오.

하지만 아무도 다루질 않는 걸 어떻게 해... 나라도 해야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