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때는 일요일! 그것도 저녁! 직장상사가 저녁을 먹자며 부른다! 


아아! 이것은 인생에 있어 최대의 위기인가?! 아니면 정말 만에 하나의 가능성 속의 실낱같은 희망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모른다! 무엇때문에 부른건지는 슈뢰딩거의 상자속에 갇힌 고양이도 모른다!


하지만! 호출받은 이는 뭐라도 마음속에 걸리는게 있을것이다!


아내에게 갑자기 풀네임을 불린 남편처럼! 학교를 다녀왔더니 여기 좀 앉아봐라 라고 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아들처럼! 개발중인건 없는데 있다고 거짓말쳤다가 훗날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게임회사의 개발자처럼!


언제나 후폭풍이 두려워지는 상황속에 던져지면 누구라도 잘못한게 있는지부터 떠올리는것은 당연한것!


자아, 과연 이런 위기에서 호출을 받은 이는 이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것인가?!


"개봉박두...두둥."


나는 능수능란하게 헤쳐나갈...리가 없지. 어떡하지? 일단 오긴 했는데...진짜 어떡하지....


지금 나는 홍련 사모님이 나를 호출한 식당, <소완>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후우, 이게 뭐라고 선물까지 사오냐...? 아니, 찔리는게 있어서 사온것처럼 보이려나?"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고민하는 내 손에는 꽃다발 하나가 들려있었고, 이것은 여기 오기 전에 들른 꽃집에서 사온 보라색 히아신스였다.


-30분 전-


사모님과의 약속장소가 도착하기 전, 꽃집과 메이드카페를 겸업하는 수상?한 카페인 페어리를 들렸다. 미호의 성적하락에 대한 사과를 해야하는데, 맨손으로 가서 고개를 박는건 조금 약할것 같았으니까.


왜 꽃인가 하면...그냥 선물세트 사가지고 가는건 조금 효과가 없을것같아서...? 나보다 부자한테 비싼 선물세트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꽃을 골랐다. 아무리 부자라도 꽃을 선물해야하는 순간에는 서민이 꽃을 살때와 같은 가격으로 살 수 밖에 없으니까.


"사과를 위한 꽃이요...?"


나는 꽃에 대해서 잘 모르니, 다프네씨에게 상담했다.


"네, 여성분한테 줄거라서요."


"사과...사과를 위한 꽃...으음...꽃..."


다프네씨는 내 질문이 조금 어려운지, 계속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음, 보통 사과에는 꽃보다는 다른 선물이 맞긴 하지? 아, 맞다. 상대방에 대해서도 얘기해야지.


"아, 맞다. 저보다 상급자라서 좀 정중해야하는데...그것까지 고려한건 없을까요?"


"상급자분한테요?"


"네, 그냥 선물로 해도 될것같지만 돈으로 때우는 느낌이 들어서...아무튼 정중해야해요."


"어머, 하긴. 꽃은 사서 선물하더라도 마음이 담기는 선물이니까요. 금방 찾아드릴게요."


다프네씨는 내 대답에 웃더니 지난번처럼 꽃을 키우는 방으로 들어갔다. 고민하던 시간이 길었는데, 정중함이란 말에 바로 떠올렸나보다.


그렇게 추천받은게 보라색 히아신스로, 사과나 화해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져온 꽃은 다프네씨의 언니, 리제씨가 손질해서 예쁘게 다발로 만들어주었다.


"자, 손질은 끝냈어요. 이용해주셔서 감사해요, 주인님."


재빠르고 현란하게 가위로 꽃대와 잎들을 자르고 정리하는 모습이 프로중의 프로였다.


"아, 감사합니다."


"우후후, 히히히히..."


"....?"


꽃다발을 건네받고 밖으로 나갈 때,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것 같았지만 기분탓이었겠지.


그렇게 곧바로 사모님과의 약속장소로 왔고.....꽃을 들고 들어서자 누군가가 맞이해주었다.


"<소완>에 어서오시옵소서. 예약은 하셨는지요?"


은발에, 셰프복을 입은 여자가 어째서인지 주방이 아니라 입구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네, 홍련이라는 이름으로..."


"아,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철컥.


여자는 나를 안으로 들인 뒤, 곧바로 문의 잠금장치를 잠궜다.


"오늘의 예약손님은 모두 받았으니, 문을 닫은것입니다. 만일 식사를 모두 끝내기 전에 밖으로 나가실 일이 있다면 소첩...소완을 불러주시옵소서."


후우, 긴장된다. 내가 직장생활은 안해봐서 그런가, 이런 상황을 살면서 처음 맞이하니까 너무 긴장돼.


"...손님? 어떤 연유로 땀을 그리 흘리고 계시는지?"


"아, 그냥 좀 긴장해서요."


긴장도 긴장이지만, 차를 식당에서 좀 떨어진곳에 대고 뛰어왔기때문에 땀이 더 나고 있었다.


"땀을 계속 흘리시면 비위생적이고, 만나는 분께도 민폐가 되옵니다. 저곳을 보면 화장실이 있으니 먼저 땀을 좀 식히고...읏."


땀을 흘리는 내가 신경쓰였는지, 소완씨는 나한테 다가와 조언을 해주었다. 하긴, 좀 정돈을 해야겠지.


꽃을 대충 어딘가에 놔두고 땀을 닦기 위해 화장실을 가려던 그 때, 화장실의 위치가 어디였는지 까먹었다. 아니, 애초에 어딘지 명확하게 못들었다. 어디 가리킨것도같은데...그걸 못봤고.


"네? 아, 조금 그렇죠? 화장실이 어디라고요?"


내가 제대로 듣지 못한 화장실의 위치를 다시 물을 때, 고개를 저은 소완씨는 어딘가를 가리켰다.



"후후, 걱정마시옵소서. 저곳으로 들어가서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소첩이 해결해드리겠나이다."


아니, 방금전엔 닦으라고 하지 않았어...? 뭐...뭐지?


소완씨는 작게 웃으며 어디론가 향했고, 일단 해결해준다고 했으니 나는 그녀가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미닫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거기에는 사모님이 미리 기다리고 계셨다.


"어서오세요, 철남군."


아, 안되겠다.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턱 막히네. 조금씩 숨이 막히고 덥다는 느낌을 받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진짜 사우나에 들어온듯 갑갑한 느낌이다.


"앉으세요. 좋아하는 음식으로 대접하고 싶었는데, 이곳 오너가 매번 다른 요리를 해서 그건 힘들것같네요."


사모님은 나를 웃으면서 반겨주었고...미소에 진심이 묻어나는데? 뭐지? 그래도 안심할수가 없는데...


"저, 잠깐 화ㅈ..."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잠깐 도망치려고 할 때, 내 뒤에 누군가가 다가와 퇴로를 가로막았다.


"손님, 이렇게 문을 막고 계시면 아니되옵니다."


내 도주로를 막은것은 다름아닌 소완씨였다.


젠장! 막혔다! 그러고보니, 가게 문도 잠겼지! 도망은 불가능!


"네, 죄송합니다."


나는 사모님의 앞자리에 앉았고, 소완씨는 나와 사모님의 앞에 각각 다른 음료를 내려놓았다.


"홍련님께는 평소의 보리차를. 그리고, 오늘 처음오신 손님께는 같은것을 드리려 했으나...너무 긴장하신데다 땀이 나시길래, 다른것을 가져왔습니다."


뭔가 갈색의 액체가 담겨있는데...수정과는 아니고....


"이게 뭔가요?"


"제호탕이옵니다. 오매육, 사인, 백단향, 초과를 넣어 만든 음료이며...여름을 나는데에 좋은 음료이지요. 열을 다스리는데에 도움이 될것이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땀이 나는것도 그렇고 더운것도 사실이라 냅다 마셨다.


....맛은 모르겠다.


지금 너무 긴장해서 맛을 제대로 느낄 새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이런거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아무튼 맛은 잘 표현하기 어려운데 아무튼...괜찮았다.


그리고 무슨 탕을 다 먹자, 나는 시원하게 식혀져있는 흰 수건을 건네받았다.


"후후, 그리고 여기...수건이옵니다. 적어도 얼굴과 목만큼은 닦아주시지요."


여기 서비스 엄청나네...이런데서 밥먹으면 대체 얼마나 나오는거야?


땀을 대충 닦은 뒤, 나는 수건을 돌려주었고 소완씨는 그것들과 음료를 마신 잔을 쟁반에 담았다.


"혹시, 손님께서는 못드시는 식재나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식재가 있으시옵니까?"


"아니, 그런건 없어요."


"감사하옵니다. 그럼 이만."


알레르기 조사가 끝난 뒤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가자, 방 안에는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거라곤 물컵과 물병,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 뿐.


아무것도 할게 없는 상황이면 대화밖에 없을텐데, 왜 아무말도 안하시지?


".........."


"..........."


결국 침묵을 견디지 못한 나는 먼저 입을 열고 말았다.


"...그러니까, 으음. 저를 왜 부르신거죠?"


"응? 아아, 대화를 나누려면 평일에 과외를 하고 났을때가 제일 적합한데...퇴근시간이 과외종료 시간과 안맞아서 말이에요. 토요일에 부르려고 했었는데, 그땐 제가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오늘 부르게 됐네요. 철남군? 혹시 당일에 불러서 곤란한 점이 있다면 말해줘요. 다음에는 미리 약속을 잡고 부를테니까."


...뭐지? 내가 미호 성적을 조져서 부른게 아닌가?


"그러니까...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1대1로 대면 하시려고...?"


"네, 적당히 상담도 좀 하고. 과외비도 드려야하고."


아, 역시. 상담이 그 부분이구나! 저 상담에서 내가 사망하는구나!


"네, 네에..."


"우선, 이야기는 밥을 다 먹고 할까요?"


사모님은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20분 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 20분이었다. 아니, 20분이 아니라 20년같았다.


뭐...아무생각도 못하던 와중에도 맛있었다는것 자체는 확실히 기억나지만.


"후우, 맛있었네요. 역시 소완양의 요리실력은 확실해."


사모님이 만족한듯한 웃음을 지으며 소완씨를 칭찬하자, 미리 듣고 있었다는듯 미닫이 문이 열리며 장본인이 들어왔다.


드르륵.


"칭찬해주니 몸둘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우후후."


"그래서 내가 여기를 자주 오잖아요?"


뭐야, 분위기 화기애애하잖아. 이정도면 나도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는거 아닐까?


"언제나 감사하옵니다. 그렇다면, 후식을 드리기 이전에...오늘 처음 온 손님분. 식사는 어떠셨는지요?"


사모님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소완씨는 갑자기 나에게 만족도 조사를 시작했다.


"네, 네? 아...맛있었어요."


"단순한 감상만이 아니라, 어디가 어때서 좋았다...어디가 좋은 느낌이었다...그런건 없으셨는지? 부족하거나 좋았던 점을 말씀해주셔야 추후에 그것을 반영하옵니다."


단순 만족도 조사가 아니라, 손님 하나하나에 맞춘 맞춤식 식단을 운영하나보다.


하긴, 아까 사모님이랑 내가 받은 요리가 같아보여도 사모님 요리에 없거나 뭔가 더 있는것도 있었으니까.


그런데...뭐가 어땠는지 어떻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는데 맛 평가를 어떻게 하냐고.


"그냥...맛있었어요."


내 대답에, 미소를 싹 거두더니 나를 째려보기 시작한 소완씨.


그녀의 눈빛은 날이 잘 선 중식도처럼 싸늘하고 무서웠다.


"손님? 미식의 가치를 모르시는겁니까?"


"아, 아니. 그게..."


내 대답은 그녀의 심기를 제대로 거스른건지, 소완씨는 나를 보고 말을 폭풍처럼 쏟아냈다.


"그저 비싸기만 하면 된다고 만족하고, 미식에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떻게 존중해야하는지 모르는 그런 무뢰한을 가게에 들였다니...홍련 고객님? 참으로 실망을 감출 수가 없사옵니다."


아, 망할...아무리 내가 책임을 물을까봐 쫄려있다고 해도 은인인 사모님한테 피해가 가게 할수는 없지. 이렇게 된거 까발리자.


"후우,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진짜 솔직하게, 저 오늘 뭐 먹었는지 기억도 제대로 못하겠어요. 맨 처음 마신 그 무슨 탕 말고."


나는 먹은게 기억 안난다는 대답을 했고, 그 대답에 소완씨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첩의, 소첩의 요리를 기억못하신다니?"


말을 들어보니 미식을 무시하는것보다, 본인의 요리가 잊혀졌다는 충격이 큰듯했다.


"철남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사모님과 소완씨, 두 사람 모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자 나는 솔직하게 모든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미호의 시험성적이 망한것, 그게 중간고사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오늘 호출받은게 미호의 성적 하락과 그것에 대한 문책이 아닐까 하는 걱정.


그것때문에 너무 긴장해서 식사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는것까지.


모든것을 털어놓자, 소완씨는 석연치 않지만 일단 납득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소첩은 다음 코스를 위해 물러나겠사옵니다. 후우, 언젠간 복잡한 사람의 감정도 파고드는 요리를 만들어야겠군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모님은...


"...철남군."


비장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계셨다.


"네."


이제 잘리는구나...



"솔직하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사실, 미호의 성적은 크게 중요한게 아니었어요. 혼자두어도 알아서 잘 하는 똑부러지는 딸이니까요. 그저...미호가 말했던, 철남군같이 불의에 반응하고 세상을 곧게 살아가는 어른이 주변에 있어줬으면 했어요. 그래서 철남군을 과외선생으로 채용했답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야?


"...사모님?"


"후후, 그냥 과외 선생으로 채용했다면 그만큼의 액수를 줄 이유도 없었죠. 하지만...제가 딸들을 못 돌보는 대신에 아이들을 엇나가지 않게 붙잡아줄 믿을만한 어른이라면 그만한 액수도 아깝지 않았어요."


이제보니, 사모님은 나를 단순히 과외선생이 아니라 미호의 인생선생으로 채택하신것 같았다.


그럼 이제 과외는 안해도 되나? 다행이다. 가끔 문제풀때 머리터질것 같았는데.


"아...그렇다면..."


"아, 물론 과외는 계속해주세요. 중간중간 놀때도 있던 미호가 요즘 공부를 밤까지 하더라고요. 이왕 공부에 욕심이 생겼으니, 그 부분은 계속 해야겠죠?"


계속 해야하는구나. 젠장...뜻하지 않은 부가효과가 생겨서 선생으로 고정됐다.


"그럼, 이제 마음이 좀 풀렸나요?"


과외만을 위한게 아니니 잘릴 위험은 사라졌지만, 인생선생이라 하니 해야할 일은 더 막중해졌다. 그래도....내가 실수하지 않는 이상 잘리진 않겠지.


"네, 후식만큼은 제대로 즐기고 갈 수 있겠네요."


"어머, 그럼 다음번에는 코스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또 한번 불러야겠네요."


"실례하옵니다."


후식을 가지러 갔던 소완씨였지만, 그녀의 손에는 후식...이 아니라 뭔가 다른것이 담긴 쟁반이 있었다.


"후식이 나올 차례 아니었나요?"


"어머, 손님께서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셨다길래...너무 분한 마음에 순서를 조금 어겨 새로운 요리를 하나 가져왔사옵니다."


소완씨가 가져온것은 3점의 회였고, 회는 간장에 재운건지 묘하게 갈색으로 물들어있었다.


"회는,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어머, 편식은 아니되옵니다. 그리고...평범한 회가 아니니, 드셔보시길."


소완씨의 권유와, 하나라도 제대로 먹어보잔 마음에 회를 입에 넣은순간...


"오."


개쩐다. 원래 회라는게 간장을 묻혀도 뭘 해도 맛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아니다.


안과 밖, 모두가 간장이 고루 묻어있다. 어떻게 한거지? 거부감도 없다. 그냥 양념된 고기를 씹는것같은 기분이다.


"우와, 이건...."


"맥염법으로 손질한, 저의 자신작 중 하나이옵니다."


그게 뭔진 몰라도, 진짜 쩐다는건 알겠다.


"...최고네요. 진짜 최고."


"쿠후후, 정말 짧고 담백하지만 알기 쉬운 칭찬이로군요. 감사드리옵니다. 그럼, 이제 후식을 가져다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옵소서."


그 이후에, 후식으로 나온 유자&자몽셔벗도 매우 맛있었다.


"오늘 정말 맛있었어요, 소완양. 그리고, 철남군. 다음에 또 봐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사모님은 계산을 끝내고 쿨하게 떠나가셨고, 나는 소완씨에게 할 말도 있었기에 그자리에 남아있었다.


"정말 맛있었어요. 그리고, 아까는 제대로 못먹어서 죄송합니다."


아까 알게모르게 소완씨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으니, 사과는 해야했다.


"괜찮사옵니다. 그보다, 말을 편히 하시옵소서. 고객이시잖사옵니까?"


"아니, 제가 실례를 한 입장이라...응?"


내가 사과를 하던 그 때, 문득 옆쪽에 놓여있는 보라색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꽃집에서 가져왔던, 보라색 히아신스였다.


"어머, 꽃 아니옵니까? 그보다 이게 왜 여기에?"


"....이거 드릴게요."


"어머, 꽃을...? 소첩에게 주시는것이옵니까?"


"네, 사과와 화해의 꽃말이라던데...이제 이걸로 저희 화해할 수 있을까요?"


사모님께 드리지 못했고, 또 눈앞에 사과해야할 대상이 있으니 적합하다. 물론 누군가에게 주기위해 가져온 선물을 다른사람에게 준다는건 조금 그림이 안좋았지만...이정도면 사과 받아주지 않을까?


"안되옵니다."


안되는구나!!!


"네?"


"화해란 양쪽에서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지, 어찌 한쪽의 일방적 마음으로만 그리하시옵니까?"


소완씨는 정론으로 나를 정면에서 찍어눌렀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


"하지만, 소첩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어주고 솔직하게 감상평을 말하는 손님은 그리 싫어하지 않사옵니다."


응? 반응이 의외로...?


"그 말은...?"


"받아드리겠습니다. 손님의 사과. 다만 가끔 여기로 찾아와서 실험작의 감상평을 해주셨으면 하는데...맛이 없을수도 있고, 가끔 몸에 안맞는 식재가 있을수도 있사옵니다."


소완씨는 나를 실험대상으로 삼겠다는 말을 하며, 화해의 조건을 내걸었다.


"뭐, 그정도야 얼마든지 하죠."


내가 괜히 마음대로 했다가는 사모님한테 폐가 갈지도 모르고. 사모님...여기 단골같던데. 괜히 나때문에 출입금지 받으면 고개를 못들게 분명하다.


"진심이시옵니까?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소완씨, 음식에 있어서는 프로잖아요? 저는 소완씨 믿어요.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뭐, 제 안목이 문제였던거로 할까요."


"어머...어머, 어머어머.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여기에 연락처와 이름, 나이만 기재해주시지요. 연령대에따라 바꿔야하는 식재도 있으니 말이지요."


나는 순순히 이름과 연락처, 나이를 적어주었고 소완씨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


"후후후, 23세. 동갑이군요. 말을 편히 놓으셔도 되옵니다." 


"그래도 한쪽만 말을 놓는건..."


소완은 저렇게 사극말투같은걸 쓰는데, 나는 괜히 편하게 말 놨다가는 조금 이상할것같은데.


"고객이지 않사옵니까? 더군다나, 소첩은 요리의 품격에 걸맞은 고귀함을 위해 고상한 말투와 존대를 고집하는것이옵니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또다른 수단이지요."


"아아, 그렇구나...그럼...앞으로 잘 부탁해, 소완."


"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철남님."


그렇게 나는 요리사 친?구?를 만들었고, 월요일 아침에 미호를 데려가야 했기에 일찍 집에 돌아갔다.





-소완의 주방-


소완은 가게의 문을 닫은 뒤, 주방으로 들어와 선반에 놓은 물건들을 쳐다보았다.


다 먹은 식기, 내용물이 바닥에 조금 남은 컵, 그리고 모양이 흐트러진 수건 등.


모두 철남이 사용했던것들 뿐이었다.


"우후후후, 후후, 후후후후후....드디어...드디어 평생의 요리를 먹이고 싶은 사내를 만났사옵니다....! 이 어찌나 행운인지! 심지어 제게 꽃까지 선물로 주실줄은! 아아, 오늘은 인생 최고의 날...!"


주방 한가운데에서 기쁨에 겨워 몸을 비틀고 있을 때, 소완은 갑작스럽게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


그녀는 말 없이 도마쪽으로 다가갔고, 도마에는 방금 전 철남에게 내어갔던 회를 손질한 생선이 남아있었다.


반으로 갈라져서 배의 살을 완전히 드러낸 생선의 시체와, 그것을 갈라내고 손질했던 식칼.


본래라면 모두 정리해야했으나, 소완은 본인이 먹기 위해 이것들을 조리에 쓴 후에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나가기 전과 아무것도 다를 바 없어보이는 그 도마에, 소완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한가지 흔적이 있었다.


"이 뱃살과 꼬리살 사이에는 아주 작은 살점이 있지요. 일반적인 회처럼 먹는다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이 부분만 잘라내어 먹는다면 최고의 맛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부위. 오늘 손님께는 천천히 맛에 적응하실 수 있도록 다른 부위를 내드렸지만...이 부분은 소첩이 언제나 신경쓰는 부위이옵니다. 그런만큼..있을때와 없을때는, 구분한단 말입니다! 침입자 나리!!!"


카앙!


혼잣말을 내뱉던 소완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식칼을 들어 어디론가 던졌고, 칼은 벽이나 바닥에 떨어지며 텅빈 금속의 소리를 내는 대신 다른 금속과 충돌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소완이 말한 침입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도-모, 소완=상. 쿠노이치 카엔입니다."


"여긴 어쩐 일이신지?"


"너, 위험해. 주방에. 독. 왜 있는거야?"


"생선도둑주제에...말이 많으시군요."


소완은 카엔을 앞에 두고 식칼을 빼들었고, 그런 소완의 태도에 카엔은 가면을 내려쓰고 검을 들었다.


철남의 집에 잠입할때와 제로와 싸울때, 그 어떤 때에도 쓰지 않았던 가면을 지금 이 순간 소완을 상대로 쓴 것이었다.




다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