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부상하여 공기를 순환 시키지 못하는 잠수함의 생활에서 맑고 상쾌한 공기를 맡는 것이란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방에서 느껴지는 탁한 공기에도 기분이 좋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기 때문에? 이유야 무엇이든, 그저 작금의 상황을 즐기며 몸을 살며시 돌려 곤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후후.. 지난 밤중에 소첩의 육체를 짐승처럼 탐하시던 모습은 어디 가시고.."


마치 때 묻지 않은 아이 같은 평온하게 잠든 그의 얼굴과 그것과 대비되는 지난 밤의 뜨거운 열락. 지금도 하복부 언저리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가 남긴 사랑의 흔적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살며시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니 그는 조금 신음을 내뱉으며 뒤척이더니 다시 고른 숨소리를 내며 수면에 빠져들었다.


"그것 아시옵니까? 부군, 소첩.. 처음에는 부군을 이해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처음으로 모시게 된 인간 님이자, 처음으로 마음을 모두 내던져 헌신하게 된 남성. 견마지로의 헌신으로 그를 받들어 모시며 살아온 지난 날들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어렴풋이 스쳐 지나갔다.


"소첩은...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그런 식으로밖에 얻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사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식으로 그를 독점하고자 했다. 물론, 지금도 그의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다른 여성들을 질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홀로 주방에 틀어박혀 그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회의감 마저 들 정도였으니.


"허나, 부군은 소첩의 무지몽매함을 부군 만의 방식으로 깨우쳐 주셨지요."


넓은 아량과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그는 새로운 방식의 사랑을 일깨워주었다. 그저 독차지하고 상대방을 무력화 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포용하고 수용하며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소첩.. 그래서 부군의 사랑을 받는 것이 두렵사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죄인을, 그가 품어주는 것이 두렵다. 스스로가 저지른 죄를 사해 주었다는 이유로, 그에게 죄악의 굴레가 함께 씌어질까. 그것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밤을 얼마나 보내왔던가. 그럼에도 결국 그를 벗어나지 못했다.


"소첩의 죄로 부군이 질타 받을까, 그것을 두려워 하면서도.. 소첩은 부군의 곁을 벗어나는 것이 더욱 두려웠기에.."


그래서 나약하게도, 비겁하게도 그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말았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어리광은 끝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떨치지 못한 죄악감이 짓누르는 고통에 결국 언제나 그러던 것처럼, 그의 품에 안겨 헐떡이던 시간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분명 달콤했사옵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부군의 품과 부군의 손길은 달콤했사옵니다."


거부하지 못한 스스로의 나약한 의지를 원망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선 '부군이 원하시기에 어쩔 수 없었다.' 라는 합리화가 떠올랐다. 결국 죄악감을 떨쳐내고 그와 다른 동료들에게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보다, 그의 사랑을 선택한 악녀라는 평가가 스스로에게 잘 어울리는 것이라는 자각을 하면서도, 똑같은 밤을 보내고 말았다.


"후훗, 돌이켜 보면 참 웃기지요... 소첩은 분명... 다른 분들의 눈치를 보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그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조금이라도 봤다면 적어도 지난날 그런 일들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을 받으며 스스로도 웃길 정도로 변해버렸다. 스스로의 욕망보다 그의 안위와 기분을 먼저 고려하고,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최대한 정중하고 부드럽게 대하려 노력한다.


"모두 부군이 바꾼 것이옵니다. 이기적이고 교활한 악녀를.. 부군이 바꾸셨지요."


옛날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필시 비웃고 있으리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방해되는 상대방은 없애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쟁취하고 말리라. 라면서 오히려 칼을 갈았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군에게 안겨서 그런 것일까요... 부군은 옛날의 소첩이나.. 지금의 소첩이나.. 모두 사랑해 주시는지.. 그것이 궁금하옵니다."

"물론! 옛날의 소완도 매력적이었고, 지금의 소완도 나에겐 최고의 여자지."

"부, 부군..?"


그가 잠들어 있기에 꺼낼 수 있었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어느새 눈을 뜬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었기 때문에 머릿속이 더욱 하얗게 변하며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언제나 소완은 나에게 맞춰 주니까.. 잘 모르고 있었어.. 정말 미안해."


오히려 사과해야 할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그는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넸다. 과거 그와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그는 오늘도 넓은 아량으로 죄인인 몸을 용서하고 품어주었다.


"부군.. 소첩은.. 부군의 사과를 받을 자격...읍!"


강한 손길과 함께 우악스러운 입맞춤으로 그가 입을 막으며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눈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죄를 지었음에도 오히려 웃으며 용서해준 그의 사랑에, 감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격이 벼락처럼 몰아쳤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에게 날카롭게 대한 것은 내가 대신 용서하진 못하겠지만.. 그건 기억해줘, 소완. 난 너를 처음부터 용서했어.. 사랑하니까."

"부군..."

"아! 그래도 이제 숨김 맛은 안된다?"


살며시 윙크를 하며 농담을 덧붙이는 그의 모습에 슬픈 감정이 사라지고 행복한 감정이 솟아났다. 결국 오늘도 그에게 응석만 부린 꼴이 되었으나, 이렇게 행복하다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그의 품에 안겨 응석을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숨김 맛은..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사옵니다. 그건... 부군을 기만하는 것이기에..."


맛을 숨기지 않는 것처럼, 이제 그를 향한 마음을 숨길 수 없기에.

오늘도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온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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