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아주 작은 씨앗만 심어주고 나오는 것도 하나의 공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함.



가령, 오르카 호 내부나, 오르카 호가 수용한 난민이나 모두 완전 깨끗한 세력이라고 가정하자고.


그렇지만, 펙스나 혹은 철충에 오염된 부류가 몰래 잠입해서 이것이 첩자의 소행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만 건드려놓고는 다시 이탈해서 원대복귀했다고 치자.


그래서 드러난 게 게임센터의 AI를 휘저어놓은 거라든지, 플룸라이드의 출력을 31.98654배 고쳐놓았다든지 하는 그런, 언뜻 보면 '첩자랍시고 들어와서 고작 한다는 짓이 이런 유치한 수준'이라고 할 만한 그런 일들밖에 없었어.



자. 이렇게 되면 분명 첩자가 조금 살살 장난치고 휘저어놓고 간 것은 맞다.


근데, 그 첩자는 오르카 호 내부나 오르카 저항군 세력에 합류한 난민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아. 오히려, 이미 원대복귀해버린 상태라서 펙스 입장에서의 적 진영인 오르카나 난민 그룹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그런데, 이로 인해 오르카 수뇌부에서는 '우리 내부에, 혹은 새로 합류한 난민 그룹 중에 첩자가 섞여 있다'는 '작은 의심'을 품게 되고, 그 의심이 싹을 트고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저항군으로서도 저항군 내부와 신규 합류한 난민들을 믿지 못하고 계속 불신하는 그런 피로도가 점증하겠지.


난민들도, 프로젝트 오르카 선전영상 같은 걸 보고 기껏 펙스 세력원에서 이탈, 탈출해서 오르카로 합류했더니 실제로 마주한 건 기존 오르카 호 구성원들의 의구심에 찬 눈초리와 그에 기반한 냉대라면? 야 이거 씨발 괜히 탈출했네 쳐맞더라도 그냥 펙스에 남을걸 이러면서 속으로 씨발씨발거리는 게 늘어가면서 불화가 점증하겠지.



요지는 이거야.

이렇게 서로 믿지 못하고 충돌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고 봄.

적을 하나로 단결하게 하지 못하고 의심을 확산시켜 사분오열시킨다는 거.


겸사겸사, 오메가를 비롯한 펙스 세력은 오르카에 합류한 난민들의 동태를 감시하며 그들이 오르카에서 받는 처우에 불만족스러워하며 씨발씨발거린다는 나름대로의 정보를 입수해서 프로젝트 오르카 영상을 비롯한 오르카 저항군의 프로파간다 공작에 대항하는 역정보 공작을 자기네 휘하 세력권에 실행할 수도 있겠지.



공작이라는게 굳이 거창할 필요도, 정의로울 필요도, 도덕적일 필요도 없이, 다만, 목적만 달성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공작이랍시고 한 게 플룸라이드 압력을 한 32배 높게 설정했다느네, 게임센터 AI 좀 휘저어놓은 것밖에 없다느네 하는 건 무의미한 입씨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만약 내가 맛조이 스토리팀이었다면 차라리 이런 식으로도 스토리를 한번 전개해봤을 거라는 망상으로 한번 글써봄 ㅇㅇ


이 역정보 때문에 3부 혹은 9.5지 절반 가량은, 사령관의 구조와 합류 이래로 이제껏 순항을 이어오던 오르카 저항군이 처음으로 첩보전, 정보전에 휘말려 고생하는, 그리고 9.5지 후반부나 10지에서 저항군이 비로소 그 난국을 타개하고 해소하며 펙스 측의 공작을 깨버리는 그런 전개로 간다면 어떨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