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으... 음..."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밀실 안.

기절한 사령관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뭐야... 여긴 어디지...?"


정신이 돌아온 사령관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약 10평 정도 되는 어두운 방 한 가운데서 자신은 의자에 손이 묶인 채 갇혀 있었다.


"시발!"


덜컹! 덜컹!


아무리 힘을 줘서 풀어보려 해도 밧줄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더욱 강하게 사령관의 손목을 조여올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쇠로 된 의자 또한 바닥에 고정되어 있어 탈출의 의지를 완전히 꺽어버렸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사령관은 미간을 찡그리며 바로 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되짚어 봤다. 

오늘은 스카이나이츠, 스틸라인의 합동훈련이 밀로스 섬에서 실시되었다. 한 때는 관광지로도 유명한 그 섬은 근 몇달 간 오르카 호 안에서 서류작업만 한 사령관이 참관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령관은 회의에서 모든 지휘관들의 동의를 구하고 나서야, 5시간이라는 외출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사실 각 지휘관들은 사령관이 참관훈련이라는 핑계로 외출을 하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근 몇달 간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묵묵히 혼자 처리하는 그의 모습에 그 누구도 사령관에게 모질게 대할 수 없었다.


"분명 옆에 컴패니언 애들도 있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이번엔 리리스를 포함한 컴패니언의 모든 자매들을 동반한 외출이었다. 한명 한명의 실력으로도 사령관쯤은 얼마든지 보호할 수 있는 뛰어난 아이들인데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생각하던 그때, 한가지 기억이 사령관의 뇌리를 스쳐갔다.


"설마... 그 가스!!!"


2시간의 합동훈련 참관을 마치고, 해안 근처에서 수영하면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때 주변이 갑자기 안개로 뒤덮히며 의식을 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 사이에 납치 됐을 터.


"앞으로 외출은 꿈도 못꾸겠군."


사령관은 혼자 중얼거리며 발 밑 아래로 지나가는 바퀴벌레를 콱콱 찍어 죽였다. 그리고 그때,


철컹-!!! 끼이익....


앞에 있는 견고한 철문이 천천히 열리며, 밝은 빛줄기들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사령관은 갑작스럽게 밝아진 시야에 눈을 찡그리며 앞에 서있는 인물을 쳐다봤다. 

그녀는 다름아닌...


"데... 델타?"


"후후 오랫만이군요 사령관님."


진한 향수냄새를 풍기며 이런 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녀는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어왔다. 비록 적이지만 사령관은 속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장미빛 머리카락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외출은 걱정할 필요없어요. 앞으로는 쭉 이곳에서만 살게 될테니까."


"글쎄, 그건 두고봐야 알겠지."


사령관은 델타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흠... 역시 역전의 영웅답게 패기있는 모습이로군요."


델타는 조소를 머금으며 파이프를 한모금 물었다.


"후... 지금 필시 그 오르카 잡년들이 구하러 올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을테죠."


"그래, 우리 애들이 워낙 뛰어나서 말이지."


"후후후... 이 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면 그런 소리는 못할텐데요."


"여기가 어딘데?"


"여기는... 뭐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랍니다. 앞으로 당신은 아주 바빠지게 될테니..."


"그래? 내가 예상해볼까. 아마 내 머리를 잘게 해부해서 뇌를 적출한 다음, 너의 그 소중한 늙은이를 부활시키는 게 목적일테지."


사령관은 분노를 담아 델타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델타는 분노하기는 커녕,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천장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의 눈빛에선 짙은 슬픔이 묻어나왔다.


"후후... 걱정마세요. 사령관님의 몸에 손 댈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빌어먹을, 그럼 도대체 나를 왜 납치한거야?"


"그건..."


그녀는 입술을 다문 채 사령관을 지그시 내려봤다. 그녀의 표정에서 조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델타는 그저 사령관을 그윽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거친 방법으로 모셔온 점은 사과를 드리죠. 우선 씻고 식사부터 할까요?"


그녀는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겼고 델타의 뒤에선 메이드 바이오로이드 둘이 두 손을 얌전히 모은 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콘스탄챠나 바닐라와는 다른 처음 보는 모델이었다.


"결박을 풀어드려. 그리고 늦지 않게 내 앞으로 모셔오도록."


"네 델타님."


델타는 방 밖으로 나가기 전 나를 쳐다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적장이자 희대의 악녀라는 타이틀만 없었다면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령관은 어차피 자력으로 이 시설을 빠져나가는 건 무리라 판단하고 얌전히 메이드들의 안내를 받았다.

방 밖으로 나가자, 이런 칙칙한 곳이 있던 장소와는 무색하게 복도는 티끌하나 없이 깔끔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벽에는 족히 수십억에 달 할 명화들이 걸려있었고, 기둥은 흰 상아색 대리석에 황금 장식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델타답네 델타다워..."


사령관은 메이드들과 같이 복도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그리고 엘레베이터 위에 뜬 숫자는 사령관을 경악시키기 충분했다.


"B 215?!"


위로만 쌓아도 200층 이상 되는 건물은 손에 꼽을텐데 이 미친 시설은 지하로도 아득히 뻗어져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었다.


"이래서 나를 풀어준거군.... 어디 빠져나갈테면 나가봐라 이건가."


사령관은 괜히 의기소침해지며 엘레베이터에 탑승했다. 안에도 역시 온갖 장식들이 수 놓아져 있었고 위에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돈지랄을 해도 이런 지랄도 없을 터.


"약 10분 정도 소요 될 예정입니다. 사령관님께선 모쪼록 편하게 즐겨주시길..."


메이드는 터치 스크린에 손을 대고 엘레베이터를 작동시켰다. 

도대체 위로는 얼마나 뻗어 있길래 10분이나 걸릴까...


사령관은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 고개를 까딱 거리며 엘레베이터 유리창 밖을 쳐다봤다. 

이제 곧 지하층을 벗어 날 거고 밖은 과연 어떤, 세상에...!


그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밖은 온통 빙하로 이루어졌고, 하늘 위에는 오로라가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었다. 지구에서 이런 장소는 한 곳밖에 없을 터. 누가봐도 그는 북극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와..." 


사령관은 유리창 넘어로 보이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시는 오르카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암습했다.


띵-!


"도착했습니다 사령관님."


두 메이드는 완벽하게 똑같은 동작으로 걸어나가 문 밖 양쪽에서 고개를 숙였다.

눈 앞엔 아까 전보다도 훨씬 더 고급스러운 복도가 보였다. 그는 메이드들의 안내를 받으며 귀빈실로 향했다.


"정확히 한시간 후에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씻고나서 복장을 단정히 준비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들은 복도로 걸어갔다.


그는 귀빈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역시... 세상에서 제일 비싼 스위트룸에서 묵는다면 아마 이런 기분일 것이다.


사령관은 욕조 안 물을 틀었다. 침대 위엔 지금 입고 있는 누더기는 벗어 던지고 이걸로 갈아 입으시오라고 강력하게 피력중인 수트 한벌이 개져있었다.


그는 온갖 값비싼 입욕제와 샴푸를 마구 쓰며 땀범벅인 몸을 씻었다. 그리고 머리를 말린 후 침대 위에 놓여진 수트를 입었다.

본인이 보기에도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근사하고 멋 들어진 회색 수트였다. 


이쯤 되니, 사령관은 내가 포로로 잡혔나 VIP로 왔나 헷갈릴 정도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들이 있었다.

수트는 완벽하게 내 사이즈였고 옆에 놓여진 향수와 담배도 내가 오르카에서 즐겨 쓰던 상품들이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도 나를 잘 알고 세팅된 품목들이었다.


"설마... 오르카 내부에..."


사령관은 괜시리 불안한 생각이 들어 침대 위에 걸터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우연이겠지... 우연일꺼야..."


그는 재떨이에 담배를 털며 중얼거렸다. 그는 담배를 물며 벽에 붙어있는 시계를 쳐다봤다.

시침은 밤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분 후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사령관님, 준비는 다 끝나셨는지요?"


"어 그래 그래, 지금 나갈게."


사령관은 피다 만 꽁초를 재떨이에 꾹꾹 누른 다음, 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두 메이드들의 표정이 이싱하다.


내 모습을 보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얼굴엔 홍조들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진짜인가 보다.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쑥쓰러워 하는 두 메이드들의 안내를 받아 대연회장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가운데엔 고풍스러운 원형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고, 뒤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연주 중인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다.


"후후... 역시 본판이 남다르니 옷에서도 빛이 나는군요."


테이블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델타가 와인잔을 흔들며 말했다.


"앉으시죠 사령관님."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의자를 끌어 델타의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 한 가운데엔 은으로 장식 된 촛불이 놓여져 있었고, 도저히 값이 가늠되지 않는 비싼 와인들이 올려져 있었다. 누가보면 꼭 두 남녀가 데이트 중이라고 생각 될 정도였다.


델타가 손가락을 튕기자, 시중을 드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음식덮개가 씌어진 쟁반들을 내오기 시작했다.

뚜껑을 열자 상에는 온갖 진미들이 차려졌고, 오늘 아침도 거른 그의 침샘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명색이 오르카 호의 사령관이자 최후의 인류.


"이 안에 뭐, 독이라도 탔나?"


"후후후... 제가 만약 사령관님을 해코지 하고 싶었다면,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은 쓰지도 않았을 겁니다."


"흠..."


듣고보니 그녀의 말이 맞다. 독살을 할거면 뭐하러 굳이 씻기고 광까지내서 테이블에 데려왔겠는가.

사령관은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앞에 있는 스테이크를 썰어서 크게 한입 물었다.


"맛은 어떠신지요?"


"마... 맛있어!"


오르카 호 안에서도 소완에게 온갖 진미를 대접받는 사령관이었지만, 이 앞에 놓인 음식들은 그 이상이었다. 

틀림없이 실력이 소완에 버금가는 인물이 요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음식들은 재료의 질이 압도적으로 상급이다보니 이런 경우가 벌어진 것이었다. (소완 미안해...)


허기진 사령관은 그녀가 쳐다보는 가운데, 음식들을 개걸스럽게 먹어치워 갔다. 

델타는 음식엔 손도 대지 않은 채 와인만 가끔씩 홀짝이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지 않던가. 사령관은 최후의 만찬이라는 생각으로 음식들을 하나씩 쓸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델타는 음식엔 손도 안대는군.


델타가 보는 앞에서 한참동안 진미를 먹어치운 사령관은 이내 곧 포만감에 만족하며 입가심으로 와인을 따르려했다.


"제가 따라드리죠."


"어...?"


"후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로마네 콩티입니다.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 게 참 안타까울 뿐이지요."


사령관은 그녀가 따라준 와인을 한모금 홀짝였다. 입 안에서 진득한 포도향이 콧속까지 퍼지며 긴장한 몸을 느슨하게 풀어줬다.

그녀답게 와인도 일류만 골라 마시는 듯 했다.


탁!


"그럼, 말해보시지. 나를 왜 이런 얼음덩이 대륙까지 끌고 왔는지."


그는 빈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맞은편에 앉은 델타는 잠시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이내 눈을 뜨고 사령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을 새로운 회장으로 추대할 생각입니다."









원래 타채널에서 글 싸질렀는데, 최근에 라오에 푹 빠져버렸음


라스트오리진 잘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