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요소가 조금 있을 수도 있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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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


오메가는 포박되어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델타와 감마, 그리고...

바르그가 있다.


그렇게 무릎을 꿇고 있는 펙스의 우두머리들 좌우로 오르카호의 지휘관들이 굳건한 벽처럼 서 있고,

그 행렬의 끝에는 사령관이 있었다.


"죄인들의 처분을 결정해주시오, 주군."


무적의 용이 말했다.


"긴 싸움이었지."


사령관은 레모네이드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처음에 내 회유를 받아들였다면, 그것으로 끝났을 거야."


언젠가, 그런 적도 있었다.

철의 왕자를 만나기 직전, 오메가를 포획하여 항복을 권유했을 때가.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너는 기회를 줬음에도 공격을 감행했어."

"...."

"거짓 정보에 속아서."

"큭...."


오메가가 옆을 노려본다.

바르그가 두 눈을 감은 채 곧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 역시 속박된 채였다.


"사실 이 작전이 통할 줄은 몰랐어."


사령관은 바르그를 회유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바르그는 견고했고.

결국 이렇게 됐다.


그는 바르그를 이용해 펙스에게 거짓정보를 전했고.

펙스는 보기 좋게 함정에 걸려들어 전멸했다.


"오메가, 네가 바르그를 그렇게 철썩 같이 믿었을 줄은."

"닥치세요."


오메가가 고개를 들어 으르렁거린다.


"시시껄렁한 얘기는 됐습니다. 인간'님'. 질질 끌지 말고 끝내시죠."

"그럴게. 용. 오메가를 처형해."

"명을 받들겠소."


무적의 용이 허리춤에 찬 세 개의 검 중 하나를 꺼내어 하늘 높이 들었다.

모든 대원들이 모여 있는 오르카호의 갑판.


"당신은 시시한 적이었소. 잘 가시오."

"이....!"


오메가가 발끈했지만 용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검이 섬광을 번뜩이며 공기를 가르는 동시에.

오메카의 목이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다음은 당신들이오."


용이 하나씩 차례대로 목을 베어간다.

델타. 그리고.....


"잠깐."


바르그의 목을 치려고 할 때, 사령관이 말렸다.


"하나만 물어볼게."

"....."


바르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난 분명 기회를 줬고, 끈질기게 너를 설득했어.

하지만 넌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나와 거리를 유지했고, 한편으로는 나를 감시했지."


"...."

"귀에 꽂은 녹음기도 내 일거수일투족을 담아 보고하기 위해서 였을 테고."

"그렇다."


바르그가 눈을 감은 채 말한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지? 나는 전쟁을 치렀고, 패배했다. 패배자의 끝은 죽음 뿐. 목을 쳐라."

"...마리아 리오보로스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야?"

"감히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뿌드득.

바르그가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


"네 까짓 놈이 입에 담을 만큼 가벼운 이름이 아니다."

"....네가 여제에게 얼마나 충성을 바치는지는 잘 알겠어."


사령관은 녹음기를 꺼냈다.


"이 녹음기. 실제로 여제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더군. 전부 다."

"그렇다."

"오히려 내 목소리를 녹음했던 파일들이 일부 소실되어 있어."

"...그게 어쨌다는 거지?"


바르그는 여제의 목소리를 보존하기 위해 첩자로써 활동하며 얻은 정보를 일부 지웠다.

전부 다 보관하기에는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음성파일 용량이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주인을 잊지 못하는 네 마음은 이해해."

"그렇다면 죽여라."

"그래서 한 번 더 권유할게."


사령관은 바르그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지휘관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천아와 장화가 놀랐다.


"야, 핫팩! 그게 무슨 말이니?"

"장난해?! 이 지경까지 왔는데 권유를 한다고? 쟨 군대를 끌고 와서 널 죽이려고 했어!"

"정확히는 너희를."

"뭐?"


사령관은 바르그를 응시하며 계속 말한다.


"나를 죽이려 했던 것도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메가와의 거래의 일환이었을 뿐이야."

"...."


바르그는 침묵했다.


"정확히는 너희를 노린 거야. 배신자니까."

"야, 핫팩. 지금 우리를 배신자라고 한 거야?"

"바르그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얘기지. 물론, 너희를 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화가 나. 엄청나게."


그 말은 진심이었다.


"차라리 내 목숨을 노리는 쪽이 나아. 펙스처럼."

"그럼 대체 왜 다시 권하는 건데?"

"바르그 때문만은 아니야."

"그러면?"

"항상 고민해왔어. 너희들의 뇌리 속, 근원으로 자리잡은 절대적인 명령을 풀 방법을."


주인에게 복종해라.

그건 어느 바이오로이드도 피해갈 수 없었다.

펙스의 레모네이드들도 결국 자신들의 주인인 회장에게 충성했잖은가.

바르그도 여제에게 열과 성을 다해 목숨을 받쳤고, 실제로 목이 날아가게 생겼다.


천아와 장화는 주인이 죽음으로써 속박이 풀렸지만, 또 다른 주인을 찾아 스스로 목을 멨다.

라비아타도, 알파도 결국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갈 뿐, 온전히 홀로 서지는 못했다.


'바이오로이드들은 영원히 홀로 설 수 없는 걸까?'


그런 의문이 안 들 수가 없었다.

만약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진정한 자유'를 선사해줄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찾고 싶었다.


"흠...."

"그런 거라면... 음...."


장화와 천아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바르그. 네가 협조하겠다고 한다면 '협력관계'로써 제안할 게 있어. 살려줄게. 대신, 여러 가지로 실험을 도와줬으면 해."

"....."

"여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줄게."


바르그는 눈을 감고 고민한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필요 없다."

"...."

"목을 쳐라."


사령관은 살짝 미간을 오므렸다.


"이유를 묻고 싶은데."

"나는 '속박'되지 않았다."


그녀가 이를 갈았다.


"나의 충성과 신의를 '속박'이라 칭하는 네놈과 나는 섞일 수 없다. 물과 기름처럼."

"....오메가는 너의 충성을 이해해줬어?"

".....그렇다."


바르그가 땅을 뒹구는 오메가의 목을 보았다.


"오메가와 나는 닮은 꼴이었다. 그러나 저 둘은 아니었지."


이번에는 천아와 장화를 보았다.


"나는 일말의 기대를 걸고 이곳에 왔었다.

같이 여제를 섬기던 자들을 만나 그들의 의중을 물었지.

그러나 저 둘은 나와 같지 않았다.

나처럼 여제님을 그리워하지 않고 오히려 증오하기까지 했지."


"....그때부터 이미 마음을 정했던 거구나."

"나의 충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거짓도 아니지."

"정말로?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너의 주변을 보도록."


바르그가 주위 대원들을 두고 말한다.


"저들의 충성이 거짓처럼 여겨지는가?"

"아니."

"나 또한 그렇다."


바르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서로 믿는 것이 다를 뿐. 나는 나의 믿음과 신뢰에 확고하다."

"....."

"자, 목을 쳐라."

"....주군."


용이 말한다.


"이 이상의 설득은 무인에 대한 예우가 아니오."


사령관은 고개를 들어 다른 지휘관들을 보았다.

그들 역시 굳건한 표정이다.


".....난 너에게 자유를 주고자 했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쪽 대원들에게도 도움이 될 이점을 얻고자 했지."


사실, 후자 쪽의 이유가 더 컸다.

다만, 바르그가 협력한다면 그녀를 추방하는 일이 있어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넌 자유를 원치 않았구나. 알았어."


자유를 원했다면, 진즉에 오르카호에 합류했을 거다.

또는 아예 다가오지 않았겠지.


외로워서 또 다른 주인을 찾아나선 장화나 천아와는 다르게.

바르그는 외로움 때문에 전 주인을 더욱 그리워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충심은 더욱 커졌을 테니....

설득이 통하지 않을 수밖에.


"처형해."


용이 검을 들고 바르그의 옆에 섰다.


"주인에게 가시오."

"....배신자들의 목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다."


그 말을 끝으로.

바르그는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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