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연주가 뚝- 멈추고 아르망의 시선이 돌아간다. 거듭 망설이던 끝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던진 질문에, 아르망은 그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올린을 내려 놓고 근처의 소파에 몸을 안착 시키며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이런 취미가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한 듯 보이네요."


찰랑이는 금발 머리를 한 손으로 슥 넘기는 아르망. 사령관은 그런 아르망을 점잖게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르망에게 그런 취미가 있을 줄은 전혀 몰랐어."

"취미라.. 후훗, 폐하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취미 아니었어?"


사령관은 낡은 것 같지만 아직도 고귀한 기품을 느낄 수 있는 바이올린을 아르망에게 건네주었다. 아르망은 바이올린을 건네 받으면서 조금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낡은 바이올린을 쓰다듬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많이 낡았지요?"

"확실히.. 좀 더 새것을 구해볼까?"


아르망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 구할 요량이 충분히 있는 사령관은, 그렇게 질문하며 책상 구석에 놓여있는 전화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침 탐색을 나간 인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부탁하면 구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기에, 사령관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아! 폐하,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닌데..."

"저에게는 소중한 바이올린이니까요. 낡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이죠."


손을 멈칫한 사령관은 아르망의 대답에 피식 웃으며 수긍했다. '낡았기에 소중한 것' 아르망의 짧은 설명에도 대략적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사령관은 아르망에게 다가가 그녀의 옆에 앉으며 어느 물건을 꺼내 들었다.


"난 아르망의 보물처럼 낡은 것은 아니지만.. 이게 가장 소중해."

"이건.. 후훗, 3주년 파티를 했을 당시의 사진이군요?"


겨우 사진일 뿐이지만, 세밀하게 코팅까지 해서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령관의 보물 1호. 힘들 때나, 중대한 결정을 하기 전 이 사진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 사령관이기에, 코팅까지 했으면서도 달아버린 모양새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난 이 사진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거든. 뭐, 너희들이 있으니 언제나 사진 따위는 다시 남길 수 있지만.."


마음을 다잡는다는 이유 하나로 보물이라 거창하게 말하는 것은, 역시 사령관에게도 낯이 뜨거워지는 일이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설명하면서 거창한 이유는 불필요 할지도 모르지만, 역시 다른 설명보다는 솔직한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에 가까웠다.


"폐하."

"응?"

"각자의 보물이란, 거창한 이유가 없어도 된다고 저는 생각한답니다."


모든 것들을 예측하는 아르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을 곁에서 보낸 아르망이기 때문일까. 그녀는 사령관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는 것 마냥, 날카롭게 그의 심리를 이해했다. 아르망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서 사령관의 앞에 바이올린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턱을 괴고, 어깨에 바이올린을 바치면서 아르망의 아름다운 선율이 작은 방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


어느새 시작된 아름다운 독주. 사령관은 감탄사도 잊은 채 아르망의 선율을 즐기며 미소 지었다. 자신 스스로도 웃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사령관을 바라보며 한동안 계속 이어지던 아르망의 연주가 끝나고, 아르망은 바이올린을 살며시 내리며 사령관에게 허리를 숙여 마치 교향악단의 단장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 마냥, 우아한 인사를 남겼다.


"제 연주를 듣고, 이렇게 폐하께서 웃을 수 있어서. 그래서 저에게는 이 바이올린이 소중한 보물이랍니다."


비록 화려한 무대가 없어도


비록 훌륭한 기교가 없어도


사령관의 미소를 보고 싶은 아르망의 마음이 충실히 전달되는 단 둘만의 작은 공연.

그 공연이 갖는 의미에 대해 사령관은 아르망을 안아줌으로써 감사를 표현했다.



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