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 서쪽 출구로 나오자 넓은 광장이 눈에 들아왔다. 마루노우치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고층빌딩으로 둘러쌓인 마루노우치 광장의 동서 양쪽은 시원하게 한줄로 뚫려있었다. 그중 동쪽방향에는 낮은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었다.

 흔히 도쿄 구역사라 부르는 붉은 벽돌과 회색 콘크리트의 조화로 유명한 건물이었다. 도쿄에 얼마 남지 않은 다이쇼의 상징중 하나였다. 도쿄의 상징을 헤이세이 세대는 스카이트리를 가리켰고 쇼와 세대는 도쿄타워를, 전쟁전 세대는 도쿄역을 가리켰다.

 어째서 도쿄역이 도쿄의 상징이자 도쿄역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는가. 그 질문의 답은 마루노우치 광장의 서쪽에 있었다. 마루노우치 광장에서 대로를 향해 서서 바라보면 얼마되지 않는 도로의 끝에 작은 숲을 볼 수 있다.

 그 숲은 단순한 숲이 아니었다. 황거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도쿄의 진짜 중심이었다. 해자라는 현대에 맞지 않는 구조물에 둘러쌓인 일본국 천황의 궁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황거의 정문에서 이어지는 곳에 있는 역이었기 때문에 도쿄역은 도쿄역이라 불릴 수 있었다.

 “마츠시타! 궁전이래! 보러가자!”

 토모는 황거라는 명칭을 보자 마츠시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애도 아니고. 우리는 여기 관광하러 온 게 아니잖아.”

 마츠시타의 말대로였다. 마츠시타가 아무 이유도 없이 치바에서 이곳까지 먼 길을 올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토모의 관광을 위해서라기에는 그녀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도쿄 여행은 기사를 다 쓰면 하는 걸로 해. 지금은 이것저것 생각할 게 너무 많아.”

 마츠시타는 마루노우치 광장을 가로질러 대로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전날까지 오늘의 일을 준비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 그녀였다. 피곤한 일은 늘리고 싶지 않았다.

 “미유키 거리… 마츠시타, 이거 미유키라고 읽는 거 맞지?”

 토모는 길거리의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쿄역에서 황거로 이어지는 넓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의 거대한 대로였다. 판타지 소설이었다면 양쪽에 수많은 기사라도 서있을 법한 도로였다.

 “교코 거리. 저 글자가 어디를 봐서 미유키야.”

 그렇게 말하는 마츠시타였지만 마츠시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했다. 역시 그녀의 말대로 교코 거리였다. 하지만,

 ‘또는 미유키 거리라 부르기도 한다.’

 “어째서.”

 라는 문구를 본 마츠시타는 놀란 얼굴로 토모를 바라보았다. 토모는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마츠시타, 한자 그정도도 못읽는 거야?”

 토모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화가 났다.

 “저게 미유키라 읽힐 리가 없잖아. 대체 일본어 체계는 누가 만든 거야.”

 마츠시타는 변명을 대며 걸어갔다. 그녀의 목적지는 도쿄역도, 황거도, 마루노우치 광장도 미유키 거리도 아니었다. 거리 오른쪽에 있는 높이를 알 수 없는 고층 건물이었다. 이제는 낡은 디자인이 된 유리로 도배된 건물이었다.

 신 마루노이치 빌딩. 마루노이치에 있는 새로운 빌딩. 참으로 성의도 없는 건물 명칭이었다. 마츠시타는 맞은 편에 있는 마루노이치 빌딩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건물을 한채 더 짓는다면 신 신 마루노이치 빌딩이라고 이름짓는 것은 아닐까. 그런 실없는 농담을 생각만 하며 마츠시타는 건물로 들어갔다.

 마츠시타와 토모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신 마루노이치 빌딩 37층의 작은 오피스였다. 창가에 위치한 그 방에는 흰 테이블과 흰 의자 세개만이 놓여있었다. 창 밖으로는 도쿄의 남쪽과 황거와 도쿄역 주변이 한눈이 들어왔다.

 “마츠시타! 여기서는 다 잘보여! 저기 후지산도 보여!”

 이곳에서 후지산이 보일 리가 없었다.

 “저기 빨간 것 위에 하얗게 쌓인게 만년설이야!”

 도쿄타워를 말하는 것이었고 그건 만년설이 아닌 페인트였다. 마츠시타는 일일히 지적하지 않고 지적인 모습으로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에 녹음기를 내려놓고 수첩을 꺼낸 그녀는 인터뷰를 할 준비를 했다.

 이번 마츠시타의 인터뷰 대상은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제일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인물이었다. 덴세츠 사이언스가 첫 바이오로이드를 선보이기도 전의 일이었다.

 당시 미츠비시 은행 대표였던 토죠 이치노스케가 바로 그였다. 바이오로이드 도입초기의 발언이었고 그의 발언은 논란이 되었다. 결국 그는 대표직에서 물러나 작은 투자회사를 만들어 신 마루노이치 빌딩에 자리를 잡았다. 미츠비시 은행에 비하면 ‘작은’ 곳이었다.

 마츠시타가 인터뷰를 하려는 대상은 젊은 벤처기업 대표도, 아무것도 아닌 중년 남성도 아니었다. 일본 최고의 은행의 톱을 맡았던 중년 남자였다. 마츠시타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 필요하십니까?”

 직원이 들어와 마츠시타에게 물을 건냈다.

 “아, 감사합니다.”

 마츠시타는 생수병을 받아들어 조금 마셨다. 목이 마른 그녀는 물병을 전부 들이키고 싶었지만 인터뷰중에 화장실이 급해지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물 드시겠습니까?”

 “고마워!”

 직원이 내민 생수병을 낚아챈 토모는 그 자리에서 물병을 하나 비웠다. 마츠시타가 적당히 마시라고 말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대표님께서는 조금 뒤에 오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남은 생수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직원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복도쪽이 통유리로 된 방에서는 그 직원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까지 보였다.

 “마츠시타, 이 물 마셔도 돼?”

 토모는 놓여있는 생수를 탐내며 말했다. 마츠시타는 조심히 뻗는 토모의 손을 찰싹 때렸다.

 “누가 봐도 인터뷰 상대의 물이잖아. 물은 조금만 마셔. 입술만 적시고 목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만.”

 그리고는 물을 다시 조금만 마셨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목이 점점 타들어가는 그녀였다. 다시 한모금 마시려고 하는 찰나, 유리벽 너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마츠시타는 그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토죠 이치노스케. 그녀의 인터뷰 대상이었다.

 문 앞에 멈추어선 그는 옷을 다시 가다듬었다. 어쩌면 버릇일지도 몰랐다. 보통의 방이라면 벽 너머가 보이지 않아 무슨 행동을 하고 들어오는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의 벽은 유리로 되어 무슨 행동을 하는지 다 보이는 곳이었다. 토죠가 그 사실을 잊는 것인지 단순히 오랜 경험에서 오는 습관인지는 몰랐다. 어쩌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계산된 것일지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토죠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섰다. 머리가 희끗한 주름살이 많은 남자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급히 처리할 안건이 있어서 말이죠.”

 아마도 형식상 한 사과일 것이었다. 세상에는 자신의 잘못을 남이 받아주는 것으로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그도 그런 부류중 하나겠지.

 “아닙니다. 저희도 조금 전 도착했습니다. 월간 치바의 마츠시타 쥰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보조인 토모입니다.”

 마츠시타와 토모는 일어나 방으로 들어오는 토죠를 맞았다.

 “아, 마츠시타 기자님. 오늘 이야기가 뭐였죠? … 아 맞다. 해상자위대의 총파업으로 인한 해운사업의 단기적,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였죠?”

 “네?”

 아니었다. 마츠시타가 이곳에 온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라 라는 명제를 다루기 위함이었다.

 “하하, 농담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직원들이 깜짝 놀란단 말이에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런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을 때 농담을 해야죠.”

 마츠시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건망증인 것처럼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마츠시타는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할지 몰랐지만 대충 그에게 맞춰주었다.

 “풋, 재밌으시네요. 그러면 제가 무슨 일로 왔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네요.”

 “이미 3년도 전 이야기에요. 그런 발언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요.”

 토죠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마츠시타와 토모도 그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츠시타는 타블렛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화면에는 영상이 떠있었다. 마츠시타는 가볍게 재생버튼을 눌렀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죠. 사람은 사람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 열악한 모조품만을 만들어낼 뿐이죠.

 2056년 삼안산업에서 바이오로이드 양산을 발표했을 때 당시의 토크쇼의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그 말을 좀 후회하긴 했죠. 바로 이틀만에 대표직을 사임해야 했으니요.”

 “당시에는 이요?”

 토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느 정도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거든요. 회사규모는 작아도 직급은 똑같이 대표고 제게 돌아오는 돈은 훨씬 많아요. 결과적으로는 은행을 나오길 잘한 거죠. 허허.”

 토죠는 웃자 그의 얼굴의 주름살이 많아졌다.

 “그러면 대표님은 당시와 지금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생각은 같은 건가요?”

 마츠시타는 본격적인 인터뷰를 기습적으로 시작했다. 마츠시타의 말에 토죠는 여전히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이게 제 생각입니다.”

 토죠는 검지 손가락을 세워 강조를 하며 말했다.

 “그러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마츠시타의 말에 토죠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제가 먼저 질문을 하나 할게요. 이 사건을 관통하는 가장 큰 질문이죠.”

 마츠시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물을 들고 뚜껑을 열고 병을 입게 가져간후 물을 한모금 입에 물고는 꿀꺽 삼켰다.

 “마츠시타 기자님, 인간의 정의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