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바에서의 업무를 끝내고 퇴근할때 1층의 편의점(유미가 아닌 다른 알바생이 일하고 있었다)에서 에너지드링크랑 맥주를 몇캔 산 뒤,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스토커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나에겐 붕권이 있다.


물론 이긴다고 보장할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수단은 있는만큼 자신감이 생긴다.


뭐...지금 쿠노이치 자매가 근처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테니 큰 걱정도 안된다.


내일 할 일이나 걱정해야지.


고아원 아이들을 위한 식사라...


"내일 뭐 만들지...?"


성당에서 만들 요리에 대해 생각하며 걸으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집 문 앞에는 리리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어서오세요. 주인님."


리리스가 왜 여기있지?


"분명 통상경호로 전환하는건 내일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못한게 있어서요."


"말하지 못한것들?"


그게 뭐지?


나의 물음에,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그러나 그 웃음은 그저 둘러대기위한...그냥 가면같은 웃음이란 느낌을 받았다.


"주인님께서 모르는, 삼안의 비밀들을 말씀드리겠어요. 일단, 안에서 얘기할까요?"


내가 리리스를 오래 봐온것도 아니고, 그녀의 웃는 얼굴을 자주 본것도 아니지만 지금의 웃음은 기쁨에서 짓는 웃음이 아니란건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들어가자."


그러나 나는 그 꺼림칙함이나 불길함보다는, 엄마의 비밀과 삼안의 비밀이 더욱 신경쓰였다.


지금의 내가 가진 이상한 능력과, 무엇인가 연관이 있다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집 안으로 들어서자, 리리스는 곧바로 문의 잠금장치들을 전부 잠근 뒤 창문도 닫고 그 위에 이불을 거는 등 집안을 철저하게 밀폐하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야?"


"보안상의 이유에요. 컴퓨터에 쓸 스피커는 있나요?"


"...없어."


모종의 이유로, 나는 이어폰이나 헤드셋밖에 안쓴다.


애초에 여기 방음도 잘 안돼서 스피커로 소리내면 소음때문에 조용히해달라고 요청한다고.


"그럼, 어쩔 수 없군요. 블루투스 스피커는?"


"그것도 없어."


블루투스 스피커도, 그냥 스피커도 없다는 소리에 리리스는 고개를 돌려 욕실쪽을 바라보았다.


"그럼 심플하게 가야겠네요. 주인님? 잠시 이쪽으로."


리리스는 나를 붙잡고 욕실로 데려간 뒤, 곧바로 세면대와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촤아아아-


"그리고...이렇게 하면, 어느정도 되겠죠."


거기에 더해, 리리스는 휴대폰의 음량을 최대로 높인 뒤 경쾌하고 즐거운 팝 음악을 틀었다.


스피커를 찾는 발언과 지금의 행동들을 모두 들어보면, 이 모든게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이겠지.


물소리와 좁은 공간, 그리고 음악소리까지.


"이렇게까지 할만큼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는거네?"


"네, 지금이라도 듣는것을 거부하시고 그냥 경호만 받으시겠다고 해도 만류하지 않겠어요. 들으시겠어요?"


"...들을게."


"역시, 그래야 주인님으로 모실 가치가 있죠. 그럼, 이제부터 설명드릴게요. 준비는 되셨나요?"


"...그래."


나도 나름대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당황하지 않는다.


"우선, 저와 하치코, 그리고 다른 동생들을 포함한 컴패니언들은 삼안에서 만든 슈퍼솔져...강화인간이에요."


"....뭐?"


시작부터 캡틴이 나와버리면 조금 당황스러운데.


"으음, 자세한 것은 설명드리기 힘들지만 본래 삼안에서는 질병치료를 위한 약물을 만들고 있었어요. 난치병과 불치병을 위한 약이었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의도치않게 인간을 강화하는 약이 나온거에요."


"어디 영화나 소설에서 볼법한 상황이네."


보통은 그런 과학자 집단에서 빌런이 생기던데...용케 그런건 안생겼나보다.


"인체의 호르몬을 통제해서 병을 극복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고 하니까요. 그 호르몬이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면 사람을 강하게 만들 수 있죠."


"아드레날린이나 테스토스테론, 스테로이드같은것들?"


"네, 잘 아시네요. 대중적으로도 이름있는 그런것들을 외부 주입이 아니라 내부에서 몇배의 농도와 양으로 생산하면 인간의 근력이 폭발적으로 뛰겠죠?"


리리스의 말에, 나는 하치코가 보여준 뛰어난 근력과 신체능력을 떠올렸다.


"혹시 하치코가 나이에 안맞게 강하고 튼튼한것도..."


"네, 프로젝트의 결과죠. 강화인간 프로젝트 중 동물 유전자를 배합하여 특유의 발달된 능력을 얻게해보려는 <컴패니언> 프로젝트의 결과였어요."


"동물과의 배합...? 그거 안전한거 맞아?"


"네, 다행히 인체가 기반이라 인체에 위험할 정도면 성공할 수 없었죠. 다만 그때문에 동물의 특성 일부만 성공했고, 동물들의 우월한 운동능력과 신체능력을 따라가진 못했어요."


하치코가 주먹을 대충 날리는데도 바람가르는 속도가 날 정도였는데, 만약 프로젝트가 제대로 성공했다면...어떻게 됐을지 감이 안온다.


"이런, 이야기가 다른곳으로 샜네요. 아무튼 삼안에서 만든 강화인간 약은 곧바로 정부가 눈독을 들였고, 이내 무기화와 군사화를 위해 국가예산을 지원해주고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추진했어요."


"국가가 주도하는 슈퍼솔져 프로젝트...성공했을리는 없겠네."


그게 성공했으면 내가 군대를 갈 이유가 없잖아.


"네, 실패로 끝났어요. 같이 참여한 회사...블랙리버측에서 시작한 인체 실험에서 사고가 발생했거든요."


블랙리버...분명 사모님이 다니는 기업이었지. 그런곳에서 강화인간 프로젝트를 한다고? 아니, 분명 사모님은 음식계라고 했지. 문어발 기업의 일부일 뿐이잖아.


"프로젝트가 폐기되려던 그 때, 삼안에서는 정부측에 성공이라는 소식을 전했어요."


"...삼안만 성공?"


"네, 블랙리버는 슈퍼솔져를 만들겠다고 전직 용병출신에 특수부대 출신의 군인들을 곧바로 실험에 투입했지만 삼안측에서는 기존에 진행하던대로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실험에 지원한 사람들을 썼거든요."


"무슨 차이가 있었던거야?"


"삼안측에서는 여성 실험체를 썼고...블랙리버는 군인과 용병출신을 고르다보니 대부분 남성이었죠."


"남자와, 여자..."


"네, 약물을 투여받은 블랙리버의 실험체들은 어느순간 갑자기 서로를 적대하기 시작했고...발달한 신체능력으로 서로를 찢고 부수며 모든걸 박살냈다고 하죠. 그 폭력성과 광기에 정부는 삼안의 성공보고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실험의 중단을 지시했어요."


....이야기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나는 내가 알아서는 안되는 비밀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건 아닐까.


하지만, 이미 고개를 들이민 이상 물러날수도 없다.


"그럼, 그 남자들은 왜 서로 적대한거지? 여자들이 멀쩡했던 이유는?"


이왕 한번 알기 시작한거, 가능한 모든걸 속속들이 알아야한다.


엄마가 왜 날 멀리했는지, 내가 가진 능력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학자들은 본능적인 부분에서 그 이유를 찾았어요. 아주 원시적인 본능...자신의 무리와 생존을 위해 적대 대상을 제거하려는 그 행동을요."


"원시...무리...? 설마 자기들끼리 영역싸움 한다고 그렇게 된거야?"


"뭐, 정리하자면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실험이 진행되어 호르몬분비가 늘어 몸이 강화될수록 서로가 서로를 불쾌하고 적대적인 대상으로 느끼기 시작하고, 머지않아 사소한 계기로 곧바로 싸움을 일으켰죠."


"어떻게 그게 되는거지?"


"라이벌을 제거한다는건 종족보존...어떻게 보면 생존본능으로 하는 일이니까요. 죽기 전에 죽여야한다는 충동이 매 시간 몸을 자극하는데 참을 수 있을리 없겠죠. 그렇다고 호르몬의 근원지를 없애자니, 홍수가 두려워서 저수지를 없앤다는것과 다를바가 없었고요."


근원지를 없앤다는건...아마 거세겠지. 그 부분이 사라지면 여러 호르몬도 사라지니 근력강화 효율이나 사기도 급하락하겠고...


"차라리 귀찮게 이것저것 재느니 이미 검증된 여자 실험체를 쓰기로 한건가?"


"네, 정확하시네요. 하지만 남자들을 군대로 쓸 수 없다면 필요없다고 생각한 정부는 프로젝트의 지원을 중단했고, 각 기업에서 준비하던 다른 강화인간 프로젝트들도 엎어지게 되었죠."


프로젝트가 엎어졌다...라. 그렇지만 리리스는 그 강화인간인데도 내 눈앞에 살아 숨쉬고있다.


"...너도 분명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네, 그때부터가 기업들의 전쟁이 시작된 시점이에요."


"기업의...전쟁?"


"각자 기업에는 무장하진 않았어도 강력한 강화인간 사병들이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절박하거나 기업 외에는 기댈곳이 없는 이들 뿐이었죠."


"기댈곳이 없다니?"


"기존에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어 최후의 방법으로 신약 실험에 참가한 이들, 그리고 돈이 없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임상시험에 자원한 이들, 그리고...부모도 형제도 없어 길거리를 떠돌다가 흘러들어오게 된 고아들. 그런 이들이 많았어요."


리리스의 대답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었고...그 중 가장 내 마음에 큰 충격으로 다가온것은 마지막의 고아들이었다.


"혹시 그 고아들이..."


"네, 저희 자매들이죠. 불법적인 경로로 흘러들어온 임상시험체들. 저희는 고아인만큼 더더욱 활용하기 쉬웠고, 그만큼 더 많은 일에 나갔어야 했죠..."


리리스는 그 이후로 나에게 여러가지를 설명해주었다.


기업간의 싸움에 참전하게 된 이후로, 블랙리버의 강화인간들과 맞서싸워 삼안의 여러 시설들을 지켜낸 일.


역으로 블랙리버의 시설에 쳐들어가 기물을 파괴하고 강화인간들을 제압한 뒤, 기밀 정보 등을 빼온 일.


그리고, 처음으로 사람을 죽여본 일과 눈앞에서 동료가 죽었던 일까지.


"그런 일들이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한 일이라고 아직도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죠."


리리스의 말을 계속 들어준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음에도 손이 떨리는걸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그런 사람일줄은...너랑 하치코같은 애들을 그런곳으로 내밀줄은 몰랐는데...."


비록 거리는 있더라도, 나를 걱정하고 이래저래 챙겨주려고 그러는줄 알았다. 그렇지만 엄마가 그런 행동을 할줄은...


"미안, 내가 대신 사과할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그나마 아들인 내가 대신 사과를 해야겠지."


내가 엄마의 비밀에 충격받고 리리스에게 사과할 때, 리리스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에요! 에바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뭐...?"


"제가 전에 말씀드렸죠? 에바님에게는 모든걸 걸고 은혜를 갚아도 모자랄 분이라고. 저희 자매를 <컴패니언>이 될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분이라고."


분명히 테마파크에서 리리스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것같다.


"그래, 그런 말은 했었지."


"에바님은 기업간의 암투에 뛰어들어 사투를 벌이는 저희 자매들을 삼안의 아래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어요. 저희에게 합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반도 만들어주셨고요."


"엄마가...?"


"물론 회사 상층부가 그것을 반기진 않았지만, 블랙리버와의 싸움이 소강상태에 들어선데다 에바님께서 강하게 밀어붙인 덕에 저희 자매는 자유와 구원을 얻었죠."


엄마는...나쁜 사람은 아니었구나.


"그 자유와 구원에 대한 은혜는 에바님의 아드님인 주인님께 갚기로했답니다. 그리고...단순한 은혜갚기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모시기에도 주인님은 모자람이 없으시고요."


"내가...?"


"네, 방금전에 저희 자매를 걱정해주셨잖아요? 그리고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사과하려 하셨고요. 에바님도 그러셨죠, 굳이 신경쓸필요도 이유도 없는데 저희 자매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주셨어요. 그런분이라면, 얼마든지 충성을 바쳐도 좋아요."


충성을 바쳐도 좋다는 말과 함께 리리스는 나를 보고 웃었고, 그 얼굴에서는 아까 집으로 들어올때 봤던 거짓된 미소나 웃음을 터트릴때보다 훨씬 밝고 명확한 기쁨이 느껴졌다.


나에게 충성을 바치는 또다른 부하가 생겼지만, 이번에는 카엔이나 제로처럼 약간 떠밀리듯 된것과 달리 내가 거둬주고 충성을 기꺼이 받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에 걸리는것도 있었다.


"저기, 혹시나 싶어서 묻는데...하치코나 다른애들도...사람을...?"


리리스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에게 총을 겨누는 시점에서 그런 경험이 있다는게 사실인건 짐작이 간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니, 아니에요. 그 아이들은 주요인사와 목표시설을 지키는 훈련만 받았을 뿐. 공격에는 나선적이 없답니다. 손에 피를 묻히는건, 저 하나로 충분하니까요."


"...맏언니답구나."


"네, 동생들을 위해 나서는것...그게 언니의 역할이죠."


"그리고 다른것을 묻고싶은데...그때 삼안에서 시행된 강화인간 프로젝트, 정말로 남자는 없었어?"


"...없었던것으로 기억해요. 애초에 저도 다른 실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은데다 나중에 요원으로 활동하며 여러가지로 주워들어서 전후사정을 알 뿐, 자세한 실험데이터는 알 수 없어요."


"그런가...그래. 알겠어."


"....혹시 필요하시다면, 알아봐드릴수는 있어요."


잠입과 암살과 파괴공작...리리스에게 또다시 그런 일을 시킬수는 없다. 


"아니, 잠입같은건 하지마. 그냥 하지마."


"무슨 일을 걱정하고 계시는지는 알겠지만, 괜찮아요. 잠입이 아니라 지인을 찾아가는거니까요. 과거 실험에 참여했고, 처음부터 실험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있으니까요. 참고로, 지금 민간인 신분이에요."


실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다고? 거기다, 실험대상자? 심지어 자유롭게 다니고 있어?


"...그 사람이 누구길래?"


"어딘가에서 메이드카페를 경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컴패니언>에 메이드의 분위기가 섞이게 된것도 그 사람이 원인이죠."


"알아봐 줄 수 있을까?"


"네, 주인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너무 알아낸 정보가 많다.


엄마가 다니는 회사는 슈퍼솔져를 만들었었고, 리리스와 컴패니언 애들은 그 실험의 수혜자이면서 피해자이고...


또 내가 알지 못하던 기업간의 더러운 암투와 권모술수가 그 뒤에 숨어있었고, 리리스는 그 사이에서 손에 피를 묻혔다.


나의 능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건 알게되었다.


....정보가 많아서 머리가 좀 어지럽다.


맥주 사온거...나중에 먹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술이라도 먹어야겠다.


나는 맥주를 연신 들이켠 뒤 곧바로 침대에 누웠고, 머지않아 잠에 들었다.


그날 밤의 꿈에서는, 어째선지 엄마가 나에게 알 수 없는 주사를 놓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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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원래 이런거 설정 줄줄이 늘어놓는거 별로 안좋아하고 재미도 없어서 빠르게 대충 풀었습니다.


12시에 올리려고 했는데 너무 설명충 에피소드라 좀 손질했습니다....


지난 화에 금방이라도 3얀이 등장할것처럼 예고하긴 했는데, 리리스 입지를 조금 넓히려고 쓰다보니 설명충 에피소드가 됐네요.


다음화에는 진짜로! 진짜로 3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