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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볼 수 있었다.

 

빚더미로 광산에 끌려간 한 젊은 선생은, 안에서 더치걸들을 가르치며 밝은 빛을 빛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폐가 약했고 방독면도 없이 일해야 했던 탓에 선생은 광산의 뿌연 재 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죽음은 빛을 검게 물들였다.

 

바이오로이드 반대 시위에 참여하던 한 남성은, 동네에서 주인 대신 빵집을 운영하던 바이오로이드 한 명과 눈이 맞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동료들에 의해 자신이 사랑한 바이오로이드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시위대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얀 두건을 쓴 채 시위를 계속했던 남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녀와 똑같이 생긴 공장의 바이오로이드를 떼려 죽였다.

그의 등 뒤에서 잠시 발하던 빛은, 그가 한 명을 죽일 때마다 다시 칠흙처럼 어두워졌다.

 

정원을 좋아하던 부자는, 자신의 정원을 가꾸기 위해 바이오로이드를 불러 들였다.

하나는 열이 되었고, 열은 백이 되어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행복한 바이오로이드로 가득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의 사랑을 갈망하던 한 바이오로이드에 의해 그는 생을 마감했다.

내가 보았던 것 중 다섯 손가락에 안에 꼽힐 정도로 환했던 빛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어떤 집에서 퇴직금으로 데리고 온 가정용 바이오로이드는,

 

굶어 죽어가는 한 노인을 채 가만 둘 수 없었던 버려진 바이오로이드는,

 

회사에서 학대 당하는 바이오로이드를 보고 참다 못한 한 회사원은,

 

아레나의 바이오로이드들을 관람하며 전투의 환호성 대신 상처에 안타까워했던 소년은,

 

 

 

“... ...”

 

 

 

사람이, 사람이, 사람이,

집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바이오로이드가, 바이오로이드가, 바이오로이드가,

집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크고 작은 수천 개의 빛이, 수만 개의 솜털들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 빛들은 생애주기가 끝난 별들처럼, 하나도 빠짐 없이 어둡게 변해버렸다.


이것이 별의 아이가 세계를 보는 방식임을 나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별의 아이에게 하나의 존재는 곧 하나의 빛이다.

그리고 지금, 이 별 위에 존재했던 모든 빛이 전부 꺼져버렸다.

 

 

 

“... ... 대체.”

 

 

 

사람이 있었고, 빛이 있었다.

 

바이오로이드가 있었고, 빛이 있었다.

 

빛이 있었고,

 

이제는 없다.

 

그 말 끝에 붙을 수 있는 수식어가 과거형 밖에 없음에 나는 침음했다.

 

 

 

“왜 이걸 나에게 보여주는 겁니까.”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밤인 듯이 어두운 천장을.

 

처음에는 저것도 은하수처럼 아름다웠다.

수많은 별들이 하나의 강줄기로 화했고, 이윽고 거대한 대양처럼 넘실거렸다.

하지만, 여기는 너무 넓었다.

대양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하늘의 어둠은 빛을 집어 삼켰고, 하나 둘 꺼져가던 빛은 어느새 한 톨도 남지 않은 채 증발해버렸다.

 

 

 

“보이느냐.”

 

 

 

꿈 속을 유영하던 나의 옆으로 어느 인간의 신형(新型)이 다가왔다.

 

 

 

“빛이 없는 세계다.

촛불은커녕, 불씨 하나 남지 않은 땅.”

 

“... 매섭군요.”


"네 이전에 천칭의 후보였던 자들이다.

... 그래. 그저 후보였을 뿐이지. 안타깝게 생각하진 않겠다."

 

 

 

바람 한 점 이지 않았지만 살갗 위로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너무도 짙은 어둠은 내가 눈을 뜰 때마다 더욱 짙어져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점차 원근감마저 사라져가는 가운데, 나는 그나마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보며 희미해지는 감각을 유지했다.

사람 같진 않지만 다섯 손가락이 달린 손이 있고, 그 안에 희끄무리한 반딧불이 같은 빛들이 비산해 있는 존재.

이 존재 옆에 있을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역시나, 라고 해야 할까. 조금씩 생생해지는 느낌에 나는 기억 한 켠을 더듬어 올라갈 수 있었다.

 

 

 

“전에 한 번 뵙던 것 같습니다.”

 

“기억하느냐.”

 

“예. 제 부모님을 모시고 오신 분인데, 얼굴 정도는 알고 있지요.”

 

“얼굴이라. 우스운 얘기를 하는구나.”

 

 

 

저것의 어깨가 조금 떨렸다.

어둠과 어둠이 교차하는 존재의 윤곽선이 너무도 희미해 그걸 알아차리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그걸 보고 난 뒤에는 웃고 있다는 것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신도 별의 아이겠죠?”

 

“마음대로 생각하거라.”

 

“그럼 당신도 사람들을 잡아먹었나요?”

 

 

 

마음이 한층 너그러워진 덕분일까, 나는 가식을 거치지 않고 질문을 날렸다.

 

 

 

“그래.”

 

 

 

그것은 일체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나 역시 수많은 인간의 영혼을 폭식했다.”

 

“... 그랬군요.”

 

“실망했느냐?”

 

 

 

저것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당신도 제 꿈에서 보였던 다른 별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여서 그랬을 뿐입니다.

당신도 그 자리 어딘가에서 절 지켜보고 있었겠죠.”

 

“... ...”

 

 

 

들리지 않는 목소리 사이로 빗소리 같은 웃음이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웃음으로 흘려 보내려 작정했다는 듯이. 

캐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나도 용기와 만용쯤은 구분할 수 있다.

 

 

 

“위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있거라.

나는 너희 종족을 먹었다. 단, 그건 어디까지나 저 빛들이 꺼진 뒤였다.”

 

“... 예?”

 

“별들의 회당에 참석하지도 않았었고.”

 

"그게 무슨..."


"아이야."


 

 

일렁이는 신형이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너는 이 ‘별이 없는 세계’를 보고 무엇을 느꼈느냐?”

 

“... ...”

 

“이해하기 어렵더냐? 그럼 쉽게 말해주지.

너는 인류를 복원할 것이냐? 이토록 악한 인간들을?”

 

 

 

웅혼한 기운에 어깨가 츠르르 떨려왔다.

 

 

 

“... 사람은 악하지 않습니다.”

 

“허나 악에 쉽게 전염되는 존재이다.

네가 맨 처음으로 보았던 엠프리스. 그걸 팔아버린 인간이 태생이 악했더냐?

아니었지. 다만 악해졌을 뿐이다.”

 

“인간이 그렇다고 해도, 살아남은 바이오로이드를 위해서 노력해야죠. 인간이 없더라도 그 아이들은 살아나갈 것 아닙니까?”

 

“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제 주인의 사랑을 갈망하다 사고로 죽여버린 아이처럼 그들도 쉽게 악해진다.”

 

 

 

그렇게 말하던 별의 아이는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빛을 꺼내 가느다란 실처럼 뽑아냈다.

올곧은 직선을 나오던 실은, 이내 막대기가 되었고, 종국에는 어떤 저울처럼 변해버렸다.

 

양 팔에 무게추를 놓을 곳에 있는 천칭.

내 손에 그게 올려졌을 때, 저울의 균형은 이미 심각할 정도로 무너져 있는 상황이었다.

 

 

 

“빛을 잃은 세계가 다시 빛나기 위해선, 누구 하나가 스스로를 불살라야 한다.

그렇게 타고 남은, 가볍디 가벼운 재로 천칭의 균형을 붙잡아야지. 그러려면 몇 번이나 죽어야 할 것 같더냐?”

 

“지금... 겁을 주시려는 겁니까?”

 

“네 각오를 확인하려는 것뿐이다.”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풍겨져 나오는 따스함에 나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내 편인 건가? 하지만 그러기엔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할 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진 않는다.

그럼 나를 농락하려는 걸까? 죽일 듯한 살기로 나를 압살하려던 시선은 이미 받아본 적 있었다. 다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나도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놈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전에 당신이 말했죠. 제가 이 세계로 온 건 제가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그래.”

 

“그건 과거의 제가 했던 선택이었습니까, 아니면 미래의 제가 내린 선택이었습니까?”

 

 

 

이 존재는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던 것일까,

내가 이런 세계로 오게 된 것은 정말로 내가 했던 선택 때문이었을까,

그랬다면 그 선택은, 내 과거와 미래, 둘 중 어느 곳에서 이뤄졌을까,

 

별의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네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다.”

 

“... ... 얘기해주고 싶지 않으면 안 해줘도 됩니다. 그렇게 얘기해도 어차피 못 알아들으니까.”

 

“환생이란 것은 본래 그런 것이다. 언젠가는 너도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

 

“그럼 그거라도 말해주시죠. 제가 교황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것 역시 미래의 너에게 달려 있구나.”

 

“... ...”

 

 

 

별의 아이는 흐붓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무슨 당연한 말을 저렇게 분위기 잡으면서 하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얼굴이라도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얼굴이라 부를 만한 이목구비가 마땅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손에 힘을 풀었다.

 

 

 

“이제 돌아갈 시기구나. 자각몽을 너무 오래 꾸는 것도 좋지는 않지.”

 

“이런 걸 꿈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지 않나요?”

 

“그래. 너희의 ‘꿈’이라는 단어는 ‘허상’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잠 자고 있는 중 아니더냐. 그러니 어울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탁!

 

별의 아이가 가볍게 손벽을 마주 쳤다.

내 손에 들렸던 천칭이 어둠 속으로 녹아 사라졌고, 무언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투석기에서나 날법한 소름 돋는 소리... 이런 게 들릴 만한 곳은 오르카 호 수복실 밖에 없는데...?

 

 

 

“사랑 받는다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구나.”

 

“자, 잠깐만요! 이대로 가기엔 아직 물어봐야 하는 게...”

 

 

 

비 오듯이 쏟아지는 잠. 점차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내 몸이 휘청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팔을 휘저으며 말을 끊으려 했지만, 되려 끊기는 것은 나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건, 사랑을 해주는 거란다.

그러니 마지막 남은 빛아, 계속 걸어가거라.”

 

 

 

시야가 쓰러지듯이 구부러졌다.

온통 어둡기만 한 세계에서 쓰러진다는 걸 알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휘청임과 동시에 내 발 밑에서 여린 빛이 반짝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점차 강렬해지는 솜털 같은 덩어리. 그게 이 어두운 우주를 빛내고 있는 유일한 광원이었다.

나는 그 위로 쓰러졌다.

 

 

 

“이 별의 진정한 '아이'가 누구일지, 증명해주길.”

 

 

 

내 시야 위로 희붐하게 흩어지는 아지랑이.

어린 아이의 자장가 같은 따스함이 내 몸을 덮자, 나는 그대로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잔잔한 기계음이 가득한 병실 한복판에서 깨어났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과 모래사장을 부수는 파도의 물비늘.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 내 옆을 어떤 바이오로이드가 간호해주고 있었다.

 

 

 

‘... 리리스...?’

 

 


달빛에 반짝이는 흰 머리카락을 보자 마음 한 켠이 이지러졌다.

언제나 보았던 풍경이었지만, 언젠가 보았던 장면처럼 뭉근한 그리움이 천천히 번져간다. 


비록 이제 막 깨어난 탓에 입도 제대로 열 수 없었지만, 나는 팔을 조심히 뻗어 곤히 자고 있는 그 아이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갰다.

블랙 리리스의 두근거리는 맥동이 손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아이는 작게 잠꼬대를 했다.

 

 

 

“... ... 주인님...”

 

 

 

세상은 내가 봤던 별이 없는 세계처럼 고요했다.

그럼에도, 헤아릴 수 없는 행복함에 고요함은 두근거림으로 충만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는 그녀를 조용히 껴안았다.

약간의 부산스러움을 느꼈던 탓이었을까, 리리스가 천천히 눈을 뜨며 잠에서 깨어났다.

꼭 나처럼.

그녀의 눈가의 끝에 붉그스름한 눈물자국이 나있었다.

 

 

 

“... 주인님...?”

 

“그래. 오랜만에 늦잠 좀 잤어.

미안해.”

 

 

 

얼마나 놀랐을까, 지금과 똑같은 장면에서 내가 아닌 이전 사령관이 일어나는 모습을 봤던 그녀가 얼마나 마음을 조렸을 지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처럼 놀라지 않았다.

단지 작게 대답해줬을 뿐.

 

 

 

“... 괘... 괜찮아요.

...

... 믿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나를 믿어주었다.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녹아 내릴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서 믿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눈물 한 방울로 참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씹어 삼켰을까, 그녀는 내 몸을 부드럽게 안고 조심스레 힘을 주었다.

 

아직 어긋나지 않았다.

별의 아이가 바라볼 때, 나는 아직 내가 빛으로 발하고 있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말.

나는 처음으로 별의 아이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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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나는 몇 가지 건강 검진을 받은 후 사령관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눈물 콧물 다 빼며 나를 걱정해주던 아이들 때문에 돌아오는 걸음이 좀 더디긴 했지만, 그리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지 지난한 잠수함 속에서 질리도록 보아도 볼 때마다 행복해지는 얼굴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환생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어깨가 절로 올라갔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했던 선택, 아니, 앞으로 할 선택까지 전부 다 포함해서 가장 잘한 선택 아니었을까?

 

 

 

“하아... 여기 앉는 것도 오랜만이네...”

 

 

 

벽 한 켠을 전부 차지하는 유리창 너머로 어지러질 듯이 밝은 하늘과 바다가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탓에 태양은 수평선 전체를 하얀 선으로 두껍게 칠했고, 덕분에 하늘의 푸른색과 바다의 파란색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책상 위에 빼곡히 쌓인 결제 서류를 보며 내 자리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아이들의 손떼가 가득 묻은 종이 자락.

 

 

 

“... ...”

 

 

 

벽처럼 두터운 하얀 더미를 바라보며 나는 추기경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는 네가 사랑하는 자들에 의해 죽을 것이다.’

 

그 섬찟한 문장 덕분에 나를 부드럽게 감싸던 따스함이 한 순간에 얼어붙는 듯했다.

 

 

 

‘사랑이라...’

 

 

 

부모님도 사라진 마당에, 사람 한 명 남아 있지 않은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고 있을 아이들은 명확했다.

바이오로이드. 그것도 오르카에 있는 아이들일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누군가 나를 죽인다고 한다면 그게 철충일 리는 없다. 세 번째 추기경까지 죽인 덕분에 이전 같은 철충 무리는 절대방위지역에서나 가끔 보이게 되었으니까.

 

<인근 소규모 철충 급습 작전>

<유기된 철충 소탕 보고서>

<철의 탑 주변 지역 정리 경과>

...

 

그 어디에도 철충의 거대 부락 이야기는 없다. 쌓여 있는 보고서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 머리 아프게 하네. 이런 게 예언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을 것이라니. 꼭 신화 속에 한 구절 같은 문장에 문득 몇몇 인물들이 떠올랐다.

예언을 피하려고 했다가 되려 예언을 실현시켜버린 인간들.

살면서 그런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정작 내 차례가 오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나는 천천히 숨을 몰아 쉬며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꺼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바뀔 테니까.

 

 

 

“후우... 그래. 일단 용은 반군 때문에 나 죽이려고 했고, 라비아타도 마찬가지였지.”

 

“리제 때문에 절벽에서 떨어지기까지 했었고... 발키리는... ...

... 에이 씨발.”

 

 

 

어떻게든 미운 점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감미로웠던 추억이 해일처럼 그 위를 덮쳐버렸다.

이거, 역시 사람이 못할 짓이다. 저렇게 예쁜 애들을 어떻게 미워하란 말인가?

차라리 일이라도 하자. 바쁘게 살다 보면 사랑하는 것도 까먹을 수 있는 테니까.

 

 

 

“이쪽 섹션은 됐고... 바이오로이드 구출도 제대로 되고 있고...

별의 아이의 살점 연구... ... 응?”

 

 

 

능숙한 솜씨로 서류 작업을 계속 해나가던 나는, 기술팀에서 보낸 의문의 보고서 한 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그쪽에서 뭔가를 발견하면 못해도 60장짜리 논문이 하나 나오기 마련인데 고작 한 장이라고?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나는 적혀 있던 글들을 속독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자마자, 곧 바로 지하 연구실로 달려나갔다.

 

 

 

“이 미친놈들이 대체 뭔 실험을 하는 거야!?”

 

 

 

왜냐하면, 그 보고서 맨 마지막에 적혀 있던 문장이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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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구운 별의 아이는 너무 덜 익어서 다시 살아나 네스트도 죽일 수 있겠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