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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은 여전히 얼이 빠진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별의 아이는 뭐고 저 사람의 손 위에 튀고 있는 스파크는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

나는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땅으로 숙여 고여 있는 핏물을 바라보았다.

 

피부가 투명해진 것처럼 붉게 빛나는 혈관과 깊은 심해 같이 아득한 자주색 홍채.

 

어깨를 뚫고 돋아난 기묘한 촉수, 머리 위로 떠오른 푸른색의 헤일로.

오소소 돋아난 솜털 사이로 미세하게 갈라진 균열.

전신의 심줄은 힘을 주지 않아도 철근처럼 팽팽했고, 눈처럼 하얀 강철이 몸에 난 상처를 수복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사령관이 저렇게... ...!”

 

“사령관! 설명도 없이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고!”

 

 

 

슬레이프니르와 레오나가 외쳤다.

원망인지 분노인지 모를 얼굴. 그렇게나 많은 시간 함께 해왔음에도 저 아이들이 지금 짓는 표정만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라비아타, 마리, 용, 레아, 칸과 아스널... ... 심지어 닥턴와 발키리까지.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너희는 교황을 죽일 거다.”

 

 

 

쿠구구구구구.

 

하늘에 별빛들이 대경한 듯이 떨려왔다.

게다가 저것들은 둘째 치더라도 당장의 내 의식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 지 모를 상황.

 

 

 

“시간이 많지 않아. 빨리 시작해.”

 

 

 

실시간으로 갈라지는 내 몸을 보며,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죽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교황의 백금색의 강철이 찢어지는 육체를 억지로 붙들었다.

그러니 싫어도 우리 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빌어먹을 것의 회복력을 보면, 말없이 맞아주기만 해도 죽을 수 있을 지 없을 지 의문일 정도니까.

 

마리와 아스널이 절박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저는 각하에게 총을 쏠 수 없습니다!”

 

“그 명령은 따를 수 없다, 사령관!”

 

 

 

저 아이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나는 여유롭게 상담이나 해줄 시간이 없었다.

 

 

 

“내가 내린 마지막 명령이 뭐였지, 마리?”

 

“냉정해져라... ...”

 

“너희는 교황을 잡으러 온 거다.

이 이상도, 이하도 생각하지 마라.”

 

 

 

나는 내 자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여기, 교황이 있다.

내가 내린 명령을 수행해라.”

 

 

 

명령과 명령이 충돌할 때, 바이오로이드는 자의적인 판단을 진행할 수 있다.

사령관을 지키라는 명령과 죽이라는 명령이 정면으로 맞부딪힌 상태.

이제 여기서부터는 온전히 아이들의 영역이다.

 

 

 

“각... 각하... 저는... ...”

 

 

 

명령이면 산을 옮기란 부탁도 기쁘게 들어주던 마리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오리진 더스트 시술로 부분적으로나마 자유로워진 상태.

지금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는, 그녀가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곳일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행동이 무슨 결과로 이어질 지도 잘 모르고 있겠지.

나는 일부로 그녀들을 향해 웃어주었다.

 

 

 

“왜들 그리 심각해? 다들 내가 누군지 몰라?

나 게임 속으로 환생한 놈이야.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다 안다고.”

 

 

 

내 말에, 순진한 마리의 표정이 요동쳤다.

 

 

 

“... 그... 그럼 이번에도 다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그래. 카르디아 일도 내가 다 생각한 대로라고 했잖아.”

 

“하지만 지금 각하의 몸 상태로는... ...”

 

“원래 게임에서도 이렇게 되는 시나리오가 있어. 거기 주인공 원래 철충이었거든.”

 

 

 

물론 이번에도 반쪽짜리 진실이다. 주인공이 철충이긴 했지만, 그건 이미 변경된 지 몇 년이 됐으니까.

하지만 그런 농담 같은 이야기에도 일행들의 얼굴에는 갈등이 비지땀과 함께 흘러 내리고 있었다.

아마 저 환생자를 믿어야 할 지, 공격해도 되는 것일지, 불신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믿어. 내가 전술을 잘 짜는 놈은 아니지만, 끝이 나빴던 적은 없잖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들이라면 나를 공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이것보다 나은 방법을 떠올릴 순 없었을 테니까.

 

내가 죽으면, 교황도 죽는다.

라비아타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애가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신호를 주었다.

 

 

 

“내 목에 칼 들이민 거, 예전부터 늘 트라우마였지?”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한순간 창백해졌다.

 

 

 

“오늘은 그래도 봐줄게.

그러니까 어서 해. 네가 아니면 해줄 사람이 없어.”

 

 

 

나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바이오로이드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었던 라비아타.

라비아타의 힘도 힘이지만, 마지막 인간을 발견하기 전에 오르카 호를 진두지휘했던 그녀의 결단력이라면 믿을 만하다.

그녀는, 이곳의 누구보다 강한 존재다.

 

 

 

“... 항상 그런 식이시죠, 주인님.”

 

 

 

그녀는 이를 갈 듯 말했다.

 

 

 

“저라고... 저라고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 줄 아세요?”

 

 

 

라비아타는 잠시 나를 일별하더니, 일행들을 뒤돌아 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마치, 그녀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되리라는 것처럼.

팔을 들어 눈물을 훔친 그녀가 무거운 서두를 떼었다.

 

 

 

“모두 정신 차리세요. 주인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싫어! 싫다고! 내가 어떻게 저 사람한테...”

 

“주인님이 아직 주인님이실 때 끝내야 합니다!”

 

 

 

사자후와도 같은 음성이 주변의 공기를 갈랐다.

 

 

 

“슬레이프니르 전대장. 불평하지 마세요.”

 

 

 

한순간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슬레이프니르가 숨을 헐떡이며 몸부림 쳤다.

라비아타는 그런 슬레이프니르의 어깨를 으스러질 듯이 붙잡고 어금니를 갈며 말했다.

 

 

 

“주인님을 살리고 나서도 교황을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면... 징징거리지 마세요.”

 

“아, 으아아... ...”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주인님이 주신 기회를 헛되이 날릴 게 아니라면 칼이든 총이든 하나라도 꺼내란 말입니다!”

 

 

 

촤르르르르!

 

융합로가 달린 라비아타의 플라즈마 양손검이 웅웅거리는 푸른빛을 발하며 날카로운 칼날로 으르렁거렸다.

 

 

 

“닥터. 시간은 얼마나 남았죠?”

 

“워, 원래라면 아예 진정시킬 수 있는데 교황의 뇌파가 자꾸 변해서... ...”

 

“그래서.”

 

“3... 30분... ...”

 

 

 

반 시간이라.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한손 그립에서 양손으로 검을 고쳐 쥔 라비아타가 나를 향해 빗발치듯이 검격을 내질렀다.

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울려치는 충격파. 하지만 별의 아이의 힘과 교황의 강철이 스며든 육체에는 별다른 상흔도 남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라비아타의 트롤스버드에 이어 날카로운 네 자루의 검이 날아들었다.

 

 

 

“... 사령관.”

 

 

 

바다와 닮은 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무적의 용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오른쪽 옆구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무엇을 결심한 것인지, 그녀의 눈빛은 내가 읽을 수 없는 심해처럼 어두웠다.

 

 

 

“소관은 그대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일을 벌였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소.

무언가 계략이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일부로 이렇게 이야기를 유도한 것이고. 소관의 말이 맞소?”

 

“그래. 맞아.”

 

“... 환생자란 이유로 온갖 정보를 숨겨온 대가를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것이오.”

 

 

 

그녀의 뺨에는, 자그마한 물줄기가 흐른 자국이 있었다.

 

 

 

“소관은 그대를 믿지 못해 큰 실책을 저질렀었소.

그러니 이번만큼은... ... 그대를 믿겠소.”

 

 

 

그 믿음을 선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었을까,

누구보다 인간을 불신했고, 그랬기에 누구보다 인간인 나를 죽이려 했던 용.

그녀가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무언가 가슴 한 켠이 찢어지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스가각!

 

잘 연마된 장검을 한 손으로 빼어든 용이 전투에 참전했다.

라비아타와 용이 휘두른 검격에 내 어깨와 등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 전투 센스라면 1, 2위를 다투는 둘답게 그들의 칼날은 새겨진 균열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나와 이들의 차이는 고작 센스 따위로 메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부족한 것은 본질적인 파워.

나는 슬레이프니르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야. 왜 나를 보는 건데...!”

 

“슬레이프니르. 부탁한다. 우리 중에 누구보다 빠른 너니까 할 수 있는 일이야.”

 

 

 

생각해 보면 그리 달가운 첫만남은 아니었다.

그리고 중간도.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것이었고, 나의 이야기는 나의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오르카 호라는 장소는 원래부터 그런 곳이었다. 수만 개의 사연이 있고, 내가 그 중에 읽을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빙산의 끄트머리일 뿐.

그러니 슬레이프니르는, 그런 빙산의 어디선가 내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 나는 못해...! 내가 어떻게 사령관을...”

 

“우리 제비가 오늘따라 자신감이 없어 보이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마.”

 

“... ...”

 

“이건, 마하 99에서 딱 1만 더 올리면 되는 일이니까.”

 

 

 

내 말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날개에 달린 네 개의 엔진 끝에서 불꽃을 내뿜을 뿐.

슬레이프니르는 고글을 뒤집어 쓴 채, 나를 향해 자세를 낮게 잡고 입술을 짓씹었다.

피가 흐르는 입술로 그녀는 간신히 입을 뗐다.

 

 

 

“이게 뭐야... 싫어. 사령관이 해줬던 크툴루 신화 이야기보다 몇만 배는 더 싫다고.

아프게 할 거야. 엄청 아프게 때릴 거니까... ...”

 

 

 

순간,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내 몸을 덮쳤다.

 

 

 

“꼭 복수하러 찾아와.”

 

 

 

날아드는 그녀를 받아 들면서, 나는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품으로 감쌌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글라스.

순간 시간이 멈춘 듯이 변하면서 내 눈에 들어온 얼굴이 있었다.

비행할 때 슬레이프느리가 짓는 날 것의 표정. 

 

아마, 내 평생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이겠지.

 

콰아아아아앙!

 

단단한 육체가 벽에 부딪히며 내 전신에 강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시야.

가까이 들러 붙어 자신의 날개로 내 몸을 양단시키려는 슬레이프니르의 모습은, 차라리 공격이라기보다 안기려 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이어서 들려온 것은 어느 드론이 내 몸 전체를 스캔하는 기계음이었다.

 

삐비비비빅!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짬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각하의 신체 부위별 예상 내구도를 체크합니다. 

날개뼈 부위에 촉수가 튀어나온 부분이 약점입니다. 그곳에 화력을 집중하십시오.”

 

 

 

눈물이 맺히지 않도록 있는 힘껏 인상을 찌푸린 마리가 네 개의 드론을 조종하며 날아드는 촉수들을 피했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움직이는 어깨 쪽의 촉수 다발. 

말랑하게 생겼으면서 라비아타의 검마저 맞받아치는 기괴한 생물체를, 마리의 드론은 나비처럼 가볍게 피했다.

물론, 나라고 그저 맞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 끝까지 본좌에게 저항하겠다는 것이냐?

어디 한 번 해보자구나! 내 친히 너에게 악몽을 선사해주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육체는 달려드는 아이들의 총탄과 칼날을 양 손으로 막고 있었다.

전두엽 전체가 수천 마리 벌레들에게 갉아 먹히는 기분. 교황의 존재감이 뇌 속에서 타오를 듯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악몽’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이 밀었다.

 

 

 

‘죽--- 인---------다--!!!---너만큼은----내---가----“

 

 

 

몇 년 동안 억누르고 억눌렀던 존재.

이 몸의 원래 주인이 기어코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며 교황의 손길을 따라 내 정신을 파고 들었다.

신체가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몇 개부터 시작해서 종아리까지.

점차 잠식되어가는 상황에서 변해가는 뇌파를 아이들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 이건... ...”

 

“잘 봐. 마리. 이건 나를 죽이는 게 아니야.”

 

 

 

그럼에도 다행히 아직 나는 나의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이건 복수다. 너희가 평생을 소망했던 복수.

브라우니를 만들고, 만들자 마자 분쇄기로 떨어뜨렸던 그 개새끼에 대한-“

 

“누가 개새끼라는 거냐!!”

 

 

 

그러나 그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입이 내 것이 아닌 말을 더러운 쓰레기처럼 내뱉었다.

역시, 버틸 수 있는 건 이제 몇 분이 고작이다.

교황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더 수준 높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테고, 그걸 기회 삼아 달려드는 이 개새끼의 원혼을 감당하기엔 내가 힘이 부족했다.

 

 

 

“이 씨발, 개 좆같은 새끼! 내가 너 때문에 몇 년을 그 씨발 호로 좆같은 곳에서 썩었는 줄 알아?

넌 씨발 내가 뭔 짓거리를 하든 반드시 죽-“

 

“닥쳐, 개새끼야.”

 

 

 

탕!

 

경박한 욕짓거리를 멈추게 한 것은 우아한 손짓으로 쏘아낸 권총 한 발이었다.

입 속의 혀를 노린 총알은 치명상을 새기진 못했지만 격렬한 고통을 줬고, 덕분에 내가 놈의 의식을 잠시 억누를 수 있었다.

 

 

 

“레... 오나... ...”

 

“만약 우리가 달링을 공격하게 만들려고 했던 연기라면, 완벽했다고 해줄게.

좋지? 달링은 언제나 칭찬을 좋아했잖아. 특히 내 칭찬이라면 더."




평소처럼 당당한 그녀의 행동에 나는 왠지 모를 미소가 나왔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레오나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엉엉 울 것처럼 처량한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연기는 내가 아니라 저쪽이 하고 있는 거겠지.




"... ... 미안하다."


"... 칭찬 좋아하잖아. 얼마든지 해줄게. 달링 귀에 차고 넘칠 때까지 해줄 거라고.

그러니까.”

 

 

 

두려웠다. 이 놈의 영혼이 다시 나를 이기고 나타났다는 것이.

교황에게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내색하지 않았지만, 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내가 버티지 못한다면, 교황은 아이들에게 이 괴물을 풀어놓을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을 날려준 것은, 따스한 두 명의 포옹이었다.

 

 

 

“... 그러니까 지금 하는 짓이 전부 다 연기라고 말해줘. 부탁이니까...”

 

“각하.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

 

 

 

마리. 레오나.

서로가 서로에게 비슷하도록 만들어진 존재.

똑같은 금발이 내 눈 앞에 살랑였고, 똑같이 따뜻한 온기가 점점 차가워지는 내 몸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럼에도, 나에겐 너무도 다른 두 명.

나라는 인간에게 한없이 벅찬 두 명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말없이 둘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곧장 일어났다.

이런 괴물 같은 몸으로 안아줘봤자 저쪽에서 사양일 테니까.

 

 

 

“... 사령관.”

 

“... ... 칸.”

 

“나는 그대를 평생토록 원망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를 향해 리볼버 캐논을 겨눈 포니테일의 여성이 서있었다.

 

 

 

“마음 주는 법을 모르는 나에게 그걸 알려준 건 그대였고, 말솜씨 없는 내 풀피리 소리를 들어준 인간은 그대뿐이었다.

그러니, 일말의 언질조차 없이 이런 일을 시킨 그대를, 남은 평생에 걸쳐 원망할 것이다.

... 그러니... 그러니... ...”

 

 

 

그녀가 이어가려던 말꼬리는, 눈물로 지워진 그녀의 위장용 눈화장처럼 흐릿했다.

 

신속의 칸. 하지만 다가가는 것만큼은 굼벵이만큼 느렸던 그녀.

그랬던 그녀가, 어쩌면 생애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내게 미움 받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돌아와라.”

 

 

 

리볼버 캐논이 뜨거운 화염을 토해내려는 듯, 총 끝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보았던 광경이었지만, 그 화염이 나를 향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라비타아 함께 오르카 호에서 두 번째를 다투는 최강의 전사.

연약한 케시크에서 시작해, 수십 억의 확률을 뚫고 기적의 상징이 된 존재.

작은 나이트 칙부터 거대한 칙 엠페러까지. 수천 종류의 적을 말살한 그녀가 기어코 우주를 다스리는 별의 존재를 향해 전의를 불태웠다.

 

언젠가, 그녀가 케시크였을 때 습관처럼 드렸던 기도가 떠올랐다.

‘분노의 늑대 송곳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벤트 중 하나였었지.

 



[언젠가 기도가 이뤄져서, 인간이 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만약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그건 마지막 인간이 죽는 오늘일 것이다.

 



[청하옵니다, 신이시여. 저는 그 정도로 과분한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어쩌면 반쪽짜리 신이 된 지금, 나는 그녀의 물음에 답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게임 속 화면을 보며 수천 번씩 되새겼다.

 



[다음 생에서는 저를 늑대로 태어나게 하소서. 무리의 동료를 결코 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지켜낼 수 있는, 이빨과 발톱을 내리소서.]

 



그렇게 해주겠다고.

 



[제발, 이젠 누구도, 저보다 먼저 죽이지 말아주세요.]

 



교황이 사라지게 되면, 어느 누구도 너보다 먼저 죽을 리 없게 될 것이라고.

 

다만,

 

 

 

“케시크.”

 

“... ...”

 

“이제 싸우지 않아도 돼.”

 

 

 

그 ‘누구’에, 내가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다.

리볼버 캐논의 총구에서 터져나온 고고한 불길이, 외신의 가슴에 난 상처를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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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