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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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몇 센티미터의 철제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빛과 어둠이 나뉘었다.

머리 위에서 힘겹게 마지막 생명을 불사르고 있는 전등을 제외하고는 빛 하나 통하지 않는 어두운 독방,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리리스는 무너져 있었다.

 

독방에 갇히며 멀어져가는 발소리와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마지막으로 처연하게 바라본 사령관의 모습은 이대로 마지막일 것만 같아서, 뒤늦게 손을 뻗어봤으나 관계의 마지막을 고하듯 차가운 문은 그대로 닫히고 말았다.

 

몹시 추웠다.

늘 곁에 있을 수는 없었어도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따뜻함이 느껴졌었건만, 이제는 자그마한 온기마저도 느낄 수 없었다.

 

은발의 머리 위의 전등이 깜빡거렸다.

어쩐지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이성의 끈을, 저 전등이 꺼지면 놓아버릴 것만 같아 리리스는 두려웠다.

 

“참았어야지, 그러지 말았어야지…….”

 

당장에 잠긴 문을 뜯을 수 있는 완력이 있다.

구태여 그러지는 않았다.

이 이상 무언가 하려 할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버릴 것만 같아서, 발버둥을 쳐 보았자 더 깊게 몸을 끌어당길 늪에 빠진 기분이라서, 리리스는 그저 눈을 감고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줄 때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독방으로 이송되던 중 마주친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선을 기억한다.

저마다 웅성거리며 리리스를 바라보았다.

리리스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모든 정황이 모두 리리스의 잘못이라며 손가락질 하고 있었다.

 

동화 속에서 성에 갇힌 공주는 왕자님이 구하러 와주건만, 이곳은 성이 아닌 감옥이며 그녀는 공주도 아니고 그저 죄수였다.

그토록 바라던 왕자님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이곳에 그녀를 가두고는 떠났다.

 

리리스에게 사령관은 너무나 눈부시고 차마 가까이 갈 수 없는 태양 같은 사람이었다.

온 세상을 밝은 면 만을 그의 빛으로 가득 비추어야 하기에, 한낱 죄수에게 내리쬐는 온기와 빛은 그저 사치였다.

 

얇은 문밖으로는 빛이 가득하겠건만, 이곳의 빛이라고는 간신히 닿는 머리 위 꺼져가는 전등뿐이었다.

저 희미한 빛마저도 꺼지면 이곳은 온통 어둠일 것이 분명했다.

 

끝내 고독함만이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리리스는 그저 자신의 눈을 감는 것을 택했다.

눈을 떴을 때는 빛이 있기를, 춥고 어두운 방이 아니라 태양에 가까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리리스는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자신의 옷이, 나머지 흰 부분마저 검게 물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전부 제 탓이에요……. 나쁜 리리스가 잘못했어요. 제발 꺼내주세요, 주인님…….”

 

훌쩍이는 소리가 좁은 방안을 메웠다.

회한과 눈물이 이 방을 가득 채우고 스스로 만든 수조에 갇혀 숨이 막히기 전에, 누군가 꺼내주어야 했다.

 

야속한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

 

“후우…….”

 

걱정과 불안이 연기의 형태로 입 밖으로 피어올랐다.

이벤트는 적절히 막을 잘 내렸다고 생각했지만 리리스의 사건은 분명 이벤트와 관련이 없었을 터였다.

 

사령관은 복잡한 심경에 애꿎은 머리만 거칠게 긁어대었다.

주인공의 자리를 대체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의 변화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이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나리오 외의 사건은 원인을 찾아보려 해도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실제로 이번 할로윈 이벤트에서는 리리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딱히 필요하지 않았고, 변수가 작용할지 몰라 최소 인원만 운용했다.

그렇기에 아르망과 리리스의 뒤틀려버린 관계가 몹시도 의문스러웠다.

 

“자꾸 피우시면 몸 상하십니다, 폐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뺨에 거즈와 의료용 투명 반창고를 덧댄 아르망이 다가왔다.

총에 맞을 뻔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의연한 그녀의 모습에 사령관은 자신에게로 총구가 겨누어지던 예전 일을 떠올렸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소름 돋는 기억, 그녀가 저토록 태평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풍파를 겪은 일이 잦았다는 의미일 터였다.

 

“괜찮아 아르망? 다프네는 뭐래?”

“흉이 남을 것 같진 않다고 합니다.”

“다행이네.”

 

별거 아니라는 듯 반대쪽 뺨을 긁는 아르망에게 사령관은 아르망의 기분을 살폈다.

트라우마가 남을 법도 한데, 어린 모습과는 다르게 그녀는 강인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래서,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폐하를 만나지 못하게 손을 썼던 일을 수습하러 간다는 말, 기억하시나요?”

“분명 그랬었지.”


이벤트를 해결하느라 아르망과 헤어질 때, 분명 저런 말을 했었다.

이벤트에서는 테마파크로 간 사령관을 그저 믿고 바라봐주는 역할이었기에, 괜찮다고만 여겼다.


“모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고 부탁드렸으나, 다른 분들과 다르게 리리스 씨는 제게 총을 겨누시더군요.”

“허…….”

 

사령관은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복잡해 보이는 퍼즐이 아귀가 맞아 풀리는 것만 같았다.

사령관의 존재가 이야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간접적으로 무대 밖의 이야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사령관이 필요 인원만으로 이벤트를 넘기려 하더라도, 사령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사건이 일어날 여지가 다분하다는 의미였다.

 

“미래를 알고도 여전히 무능하구나, 나는.”

“그런 말씀 마세요. 폐하께서는 제가 있잖아요.”

 

사령관은 아르망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믿으라며 가슴을 펴고 당당히 말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녀들의 사정을 듣기 전까지는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인공이 뒤바뀜으로써 각본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다고 깨달았을 때는 조심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준비해 둔 각본이 쓸모없어진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 사령관은, 마치 처음 이곳에 온 날 처럼 무능했던 과거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아르망, 연극에서 샬럿이 폭주할 때 네가 쓰였다고 했지?”

“네, 저희는 실제 같은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이들이니, 사고에 대비해야만 했기 때문이에요.”

“너는 그 연극에서 극에 오른 인물 외에, 관객의 행동도 예측할 수 있나? 더불어 그날 처음 네 연극을 보러 온 관객이라면?”

“연극에서 일어날 학습된 사고에 의한 관객 쪽의 인명 피해라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외의 원인이라면, 저는 막지 못합니다. 그거야말로 제게 학습되지 않은, 예상치 못한 사고죠.”

“사고인가.”


자신도 그렇지만 그녀도 불완전했다.

만능이라고 여겼던 능력이 그 치부를 드러내는 순간, 나태함과 오만함에 대한 단죄가 사령관에게 내려졌다.

지금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이미 일어난 사고를 수습하는 것, 그리고 진상파악.

 

“…돌아가지. 혼자 있고 싶은데, 숙소에서 대기해.”

“하지만 폐하의 곁에는 제가 있어야….”

“아르망.”

 

처음 듣는 사령관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아르망은 새어 나오는 말을 다시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망은 당황스러움을 애써 숨기며 지금은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 여기고는 고개를 숙였다.

 

“먼저 가지.”

 

함교의 문이 닫히고 사령관이 떠난 자리에는, 붉은 옷의 소녀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뭔가 깨달으신 것 같지만 어차피 거기까지입니다, 폐하.”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람이 싫다.

정확히 말해서는 나만의 공간에 누군가가 예의 없이 흙발로 들어오는 것만 같은 감각이 싫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기 전에 내가 먼저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마음을 지킬 수 있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지키려면, 내가 먼저 남들에게 발톱을 드러내야 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이기적이라 했고, 누군가는 불쌍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나를 한없이 잔인한 사람이라 했고, 누군가는 나를 떨고 있는 초식 동물 같다고 했다.

 

같은 사람을 놓고도 이토록 보는 관점이 다르니, 타인의 시선이야 전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각자의 시선으로 재단하고는 멋대로 기대하고 실망하는 걸지도 모른다.

 

직접 달을 탐사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보는 것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들과 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기에, 나는 진실로 뒷면을 보고 싶었다.

타인의 속마음이야, 내비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진심을 내비치는 상대를 원해왔고, 그런 사람은 전생에서 찾을 수 없었다.

눈치 보기 바쁜 세상에선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 내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모두 사라진 이곳에선, 그들보다 인간 같은 이들이 진심을 내비쳐왔다.

가지런히 신발을 벗고 내 영역으로 들어와 가슴 위에서, 머릿속에서 춤을 췄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춤을 추려다가, 용기가 부족해 손을 거두고 말았다.

모두가 사라졌어도 여전히 이곳은 혼잡하고, 때때로 이들의 마음도 알 수 없었기에.

하지만 진심을 내비친 누군가가 이런 나라도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면, 그때는 거침없이 손을 내밀 것이다.

 

“리리스…….”

 

적어도 내 눈앞에서 같은 오르카호 인원에게 적대감을 드러낸 것은 세이렌과 같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리리스가 처음이었다.

 

안전을 위해 독방에 잠시 격리했으나, 한시바삐 꺼내주어야 했다.

그곳은 너무 춥고 어둡다.

내가 어릴 적 인간 껍데기를 묻고 나온 방이 그랬다.

 

그녀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격해질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충성심이 깊다.

의외로 타인과 잘 어울리는 편이며 원한을 살 성격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식적이란 소리다.

 

그녀가 사과하는 아르망에게 총을 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르망과 다툴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굳이 사과하러 온 사람에게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총을 쐈다.

 

“둘의 관계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억지로 맞지 않는 퍼즐의 아귀를 맞추다가 알아낸 사실 하나는, 둘 사이의 관계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로 귀결된다. 

아르망은 뺨에 상처를 입었다.

둘의 전력 차이를 생각하면 아르망이 리리스를 도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리리스는 백발백중의 사격 실력 보유자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녀의 실력대로라면 아르망을 ‘적’으로 인식했다는 전제하에 아르망은 큰 상처를 입어야 한다.

아르망은 스스로 치료하면 흉터도 남지 않을 가벼운 상처라고 했다.

그도 아니라면 완벽히 허공에 쐈어야 했다.

 

나는 늘 그렇듯 정리되지 않는 머리를 대신하여 백지에 펜을 놀렸다.

신경 쓰이는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 리리스의 실수로 아르망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가능성.

‘이퀄리브리엄’ 영화의 건카타 장면처럼 그녀의 적중률은 높다.

분위기상 춤추듯이 사격한 것도 아닐 테고, 얕은 상처만을 냈다는 사실이 수상하다.

 

두 번째, 실제로 아르망을 죽이려 했으나 아르망이 피해냈다.

그녀는 예지능력이 뛰어나다.

심지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수준이다.

오르카호의 전투 데이터는 모두 아르망에게 누적되어 있다.

당연히 리리스의 데이터도 마찬가지이다.

 

이쯤 되면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무엇이든 맞추는 총과 무엇이든 피해내는 예지라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내가 봐온 리리스는 철충이 아니고서야 누군가를 공격할 성격은 아니다.

여기서 사실상 리리스의 사격 명중률을 0%로 봐야 한다.

반대로 아르망의 예지능력은 100%로 가정하였을 때, ‘무조건 맞지 않는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맞추려는 의지도 없고, 맞으려는 의지도 없으니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게나마 아르망은 맞고 말았다.

명중 여부는 리리스가 아닌 아르망이 주도하고 있다.

모종의 이유로 아르망이 일부러 상처를 입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그녀로서 얻게 되는 것이 없다.

인간과 인간을 닮은 바이오로이드는 합리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생명체다.

자신이 손해를 보는, 더군다나 예지능력을 가진 이가 손해를 보는 일은 지성을 가졌더라면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다.

 

리리스는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것을 잃은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무기, 호위대장의 지위, 관계. 리리스가 과연 총을 쏠 때 이를 고려하지 않았을지가 의문이다.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그녀가 모든 것을 잃는 상황이 아르망이 의도한 바라면, 살갗을 내주고 진정으로 아르망이 원했던 것이 이것이라면 아주 위험하다.


아르망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대로라면 리리스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되고, 앞으로 피해자가 더욱 늘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건의 진상을 알아낼 방법, 그것은 당사자의 심층 면담뿐이었다.

 

“후욱, 함 내의 아르망은 방송을 듣는 즉시 집무실로 올 수 있도록, 이상.”


나는 방송용 마이크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체스판을 준비했다.

그녀를 이기기는 힘들겠지만, 이쪽 또한 질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와라, 라플라스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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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리물.

셜록 그만봐야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