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


 

 

“주인님!”

 

 

 

말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것은 리리스의 호통이었다.

 

 

 

“직접 가시다뇨, 안 될 일입니다!”

 

“안 되다니.”

 

“지금 주인님의 몸을 보세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숨조차 헐떡이고 계시지 않습니까?”

 

 

 

리리스는 내 손목을 가로 채듯이 빼앗은 다음 손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맥을 집었다.

 

공기가 아닌 무언가가 손목에 닿자 맥동하는 떨림이 피부를 타고 흘렀다.

 

두근- 두근-

 

한 번 뛰어야 할 시간에 두세 번씩 뛰는 맥박이 내 몸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고작 산보였어요. 고작해야 산책이었을 뿐이라고요!”

 

“경호대장님, 이번 사태는 폐하가 아니면-”

 

“경호대장이 아니라고 했지!”

 

 

 

다가오는 아르망을 향해 리리스가 성난 황소처럼 팔을 휘둘렀다.

 

츠츳! 아무 것도 쥐지 않는 맨손이었을 뿐인데도 리리스의 손톱은 아르망의 붉은 케이프를 단숨에 잘라냈다.

 

허공에 그어지는 날 선 궤적.

 

아르망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당황한 듯 눈을 꿈뻑였다.

 

 

 

“철충을 몰아냈으면 그걸로 된 거잖아! 왜 자꾸 내 주인님을 사지로 내모는 건데!”

 

“애석한 일이지만 폐하만큼 이번 일에 적합하신 분은 없으십니다.”

 

“사보타주라면서? 그럼 작전관에게 얘기하든, 아니면 다른 대원들에게 얘기하든 하면 될 것이지 왜 주인님께 행패야!”

 

“행패가 아니라 보고...”

 

“이젠 하나하나 보고할 필요 없다고!”

 

 

 

리리스가 나와 아르망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틈새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길게 팔을 벌려 이를 으드득거렸다. 마치 품고 있던 도토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지키려는 다람쥐처럼.

 

전과 달리 여유를 보이지 못하는 아르망.

 

무력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님을 잘 알고 있던 탓이었다. 아르망이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리리스의 주먹이 그녀의 안면을 가격하는 게 훨씬 빠를 테니까.

 

 

 

“당신이 나에게 부탁한 건 ‘주인님을 데리고 이곳으로 오는 것’까지였지, 테러니 엠프레시스 하운드니 하는 것들은 포함되지 않았어. 내 말이 틀렸나?”

 

“하등 틀린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내 소관대로 하겠다.”

 

“소관이라 하시면.”

 

“전(前) 경호대장 권한으로.”

 

 

 

리리스는 서둘러 내 손목을 낚아 챈 다음 성큼성큼 콘크리트 계단으로 향했다.

 

행여 내 몸에 상처라도 날까, 앙상한 철골이 뼈다귀처럼 삐져 나온 벽들을 손으로 아그작 으스러뜨린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커다란 발소리를 내며 걸어나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등을 헐떡이며 뒤따랐다. 아직 제대로 된 휴식도 하지 못한 마당에, 가뿐 숨을 내쉬는 허파에게 그런 격렬한 움직임은 독약이었을 뿐이니까.

 

그럼에도 내가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은, 뚜벅뚜벅 걷는 그녀의 발소리가 지독한 분노로 가득 차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리, 리, 리리스. 조금만 기다려...”

 

“아뇨. 제 남편될 사람이 또 다시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할 수는 없어요.”

 

“내 말이라도 한 번 들어봐주면 안 되겠어?”

 

“싫다고요!”

 

 

 

그녀는 꽥, 소리를 내지르며 나를 원망하듯 노려보았다.

 

 

 

“제가 들어드리면, 무슨 말씀을 하시게요?”

 

“......”

 

“사령관이니까, 마지막 남은 인간이니까, 그러니까 애들을 지켜야 한다. 뭐 이런 말씀 하시려고 그러세요?”

 

“리리스, 나는...”

 

“아뇨. 안 돼요.”

 

 

 

애석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만큼, 또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만큼, 그녀도 나에 대해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또 구하시려고요? 엠프레시스 하운드, 그 악독한 년들까지? 전에 이미 한 번 봐서 아시잖아요. 그것들은 분노에 눈이 먼 악종들이에요!”

 

“......”

 

“구하지 마세요. 손 잡아주지도 마시고, 말도 섞지 마세요. 구하려 했다가 그 와이어에 몸이 양단될 수도 있고, 손 잡아주려다 단검에 꽂힐 지도 모르고, 말을 섞으려다가 독무에 취할 수도 있어요.”

 

 

 

그녀의 양손으로 쥐어져 있는 내 손목이 찌릿거릴 만큼 떨려오고 있었다.

 

나의 떨림은 아니었다. 내 심박수보다 몇 배는 빠르게 뛰고 있는 그녀의 맥동 탓이었다.

 

일전에 몽구스 팀이 장화를 만난 적이 있었다. 교황과의 결전이 있기 전, 한반도에서 몽구스 팀이 장화를 붙잡아 오르카 호로 이송했던 때의 기록이 아직 함선 내에 남아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당시 몽구스 대원들이 다친 부상의 기록들까지도 전부 다 남아 있었다. 경호대장으로서 리리스는 그 모든 기록을 전부 열람해야만 했다.

 

그녀의 눈이 섬찟하게 나의 목을 응시했다. 아직 와이어에 잘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기적이라 해도 좋고, 멍청한 년이라 해도 좋아요. 구하지 말라고 하는 게 제 개인적인 욕심이라 생각하셔도 되고, 직접 나서지 말라 막아서는 년을 보고 제 남편의 뜻조차 모르는 모자란 아내의 일탈이라 멸시하셔도 되요.”

 

“...”

 

“하지만, 그것만은 알아두세요.”

 

 

 

그럼에도 그녀의 행동에 명분이 있음은, 그녀의 아랫배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이젠 아빠잖아요. 주인님은.”

 

“......”

 

“그러다가 죽으면, 하다 못해 눈가에 상처라도 생기면, 그때 우리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하시려고 그러세요?”

 

 

 

그녀는 처연하게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주인님은 이제 약해요. 제가 보살펴드려야 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녀가 부드럽게 내 가슴 위로 손을 얹었다.

 

산보의 영향으로 아직까지 뛰고 있는 심장의 맥동이 두근거리며 들려왔다.

 

 

 

“엠프레시스 하운드가 사용하는 무기는 살상용이 아니에요. 와이어, 단검, 원격 폭탄. 무언가를 깔끔하게 죽이려기보다 고문하기 위해 포획하려는 용도가 짙은 무기죠. 만약 그게 주인님을 향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얹어진 손 위로 차분한 온기와 함께 그녀의 맥동이 더해졌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느껴지는 맥박은 하나가 아니었다.

 

 

 

“주인님을 지켜야 하나요, 아니면 주인님과 저의 아이를 지켜야 하나요?”

 

“......”

 

“저는, 도저히 못 고르겠어요. 아마 주인님도 마찬가지시겠죠.”

 

“나는...”

 

“그러니까 가지 마세요. 가려고 해도 대원들을 보내고, 만약 발견한다면 그 자리에서 즉살하게 명령하세요. 우린 이제 강하잖아요. 그럴 힘이 있잖아요!”

 

 

 

리리스가 내 손목이 지끈거릴 만큼 힘을 주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의 판단이 옳았다.

 

우리에겐 이제 힘이 있고, 고작 사보타주 따위로 위협해오는 바이오로이드 무리는 얼마든지 숙청할 능력이 있다.

 

임신하지 않은 대원 중에도 싸움에 잔뼈가 굵은 아이들이 수백, 수천이다. 그 애들만 보내도 이번 사건의 범인을 잡는데 3일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싸움이란 단어가 성립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무력 차이. 그런 상황에서 내가 나서는 것만큼 멍청한 판단은 없을 터였다.

 

 

 

“사랑한다고 하셨잖아요.”

 

 

 

리리스는 울먹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울먹임에 녹아 있던 것은 짙은 향취로 범벅이 된 원망이었다.

 

아내인 자신을 생각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자신의 자식을 떠올리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

 

무거운 바구니를 이고 있는 것처럼 아랫배를 감싸고 있는 리리스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맑고 청아했다.

 

다만, 더할 나위 없이 진중했을 뿐.

 

그와 같이 진중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전 경호대장님.”

 

“뭐요?”

 

“폐하께선 여전히 저희를 사랑하시죠. ‘저희’를 사랑하신단 말입니다.”

 

 

 

아르망이 들고 있던 책을 착- 소리가 나게 덮은 뒤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계단에서 몇 발자국 내려와 있던 우리는, 창가에서 길게 뻗어 나오는 햇살에 아르망의 그림자가 우리쪽으로 길게 늘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아직 제 몸이 비루한 터라 폐하와 저의 사랑의 결실은 맺지 못하였습니다. 허나 그 말씀만큼은 믿고 있죠.”

 

“아르망 추기경...”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현재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표적이 된 홍련 작전관은, 폐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아르망의 푸른 눈동자가 리리스의 아랫배를 관통할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홍련 작전관 역시 폐하의 아이를 밴 몸입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자신의 아내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심이 백 번, 천 번 맞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굳이 주인님께서...!”

 

“폐하께선 약하지 않으십니다.”

 

 

 

아르망이 조용히 내 등 뒤로 다가와 나를 내려다 보며 얼굴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정보의 앎은 수천 명의 병사보다 값진 법이지요.”

 

“그게 뭐가 어쨌다고-”

 

“폐하께선 저희가 모르는 정보를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1회차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셨고, 2회차에서 전설적인 승전보를 이어가실 수 있으셨지요.”

 

 

 

아르망이 교묘한 눈웃음을 흘리며 리리스의 손을 내 손목으로부터 떨쳐냈다.

 

 

 

“묻겠습니다, 전 경호대장님. 당신은 그런 전설을 써내려갈 수 있었겠습니까? 폐하보다 무위가 출중한 당신이라면 말입니다.”

 

“......”

 

“폐하는 전 경호대장님의 생각만큼 약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몇 가지 도움이 필요하실 뿐이지요.”

 

 

 

아르망의 말에 리리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기 스스로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르망의 화법은 늘 날카로웠다. 교묘하게 흘리는 듯하면서도, 때가 되면 날 선 검처럼 유려한 궤적을 수놓아 퇴로를 막아버리는 기이한 어투.

 

저리 호통하듯 말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의견을 갈구하듯 순박한 눈동자를 반짝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사견이라 말하는 것처럼.

 

 

 

“폐하. 저희는 언제나 폐하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알고 있어.”

 

“그럼 이제 어찌 해야 할지 말씀해주시지요.”

 

 

 

사견은 명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명의 의견은 언제나 묵살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명령이 될 수 없다.

 

허나 그 위험성이, 우리의 눈높이를 맞춘다.

 

리리스는 나의 의견을 반박했고, 아르망은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각자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서로에게 동의할 수 없는 사고이 영역이 있었다.

 

 

 

“리리스.”

 

“네.”

 

“나는 내 아내를 버릴 생각이 없어.”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림자에 가려 볕을 보지 못하던 리리스의 표정은 근육의 움직임만 보아도 기쁨이란 감정을 표현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띠고 있던 미소를 허공으로 흘려보냈다.

 

아마 깨달은 탓일 것이다.

 

내가 말한 ‘아내’가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 건지.

 

 

 

“아르망, 자료 보내주고 새로 들어오는 정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쪽에 인간이 있다는 정보도 뿌려. 원격 폭탄을 사용한 걸로 봐서 장화일 확률이 높으니까 그 정도 정보에도 움직임을 보일 거야.”

 

“그 외에 다른 건 없어도 괜찮겠습니까?”

 

“글쎄, 다른 거라면...”

 

 

 

슬며시 시선을 돌려 리리스의 얼굴을 보자,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원망보단 애절함이 섞여 있는, 조금 말려 올라간 미간의 주름이 금방이라도 떨리며 울음을 쏟아 낼 것처럼 보였다.

 

후회, 연민, 죄악감이 새벽녘의 안개처럼 흩뿌려진다. 기어코 고개를 들이미는 추악한 감정 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간사하게도 새로 만나게 될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동정이었다.

 

손 끝에 흐르는 저릿한 죄스러움은 내가 안고 있는, 이 과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의 단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 그녀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이 산책을 끝내는 것부터 해야겠어. 그때까진 방해하지마.”

 

 

 

내가 지키고자 하는 아내는, 너라는 것을.

 

다른 모두와 함께, 너만큼은 지켜내리라는 것이 내 마음임을.

 

아르망은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발소리를 죽인 채 나에게서 멀어졌다.

 

어느새 고요해진 카페 안, 저 밖에선 휴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조용히 리리스를 껴안은 채, 우리는 들어왔던 입구와 반대 방향인 계단 아래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것이 너무 많고 복잡해, 나는 멍하니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촉감보단 시각이 조금 더 선명해 느껴지는 감각은 한층 가벼운 추상의 단계로 내려왔으나, 두근거리는 그녀의 아랫배를 바라볼 때마다 한 단계 하강하는 것으론 한없이 모자람을 느꼈다.

 

다만 우리의 대화는, 입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나는 가볍게 눈웃음을 지었고,

 

 

 

“...조금만 더 걷죠.”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잘 봤으면 추천 좀 해줘


다음화:   https://arca.live/b/lastorigin/61207592?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