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인간의 정의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인간 말인가요?”

토죠의 질문에 마츠시타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사회성을 가진 이족보행을 하는 지적 생명체를 말하는 것 아닐까요?”

마츠시타는 나름 생각을 한 답을 말했다.

“일반적인 대답이죠. 하지만 모든 인류는 그 조건을 만족할까요? 모든 인류가 사회성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남과 대화 한마디 나누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한 이족보행을 할 수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지적 생명체. 유감이지만 세상에는 돌고래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인류라 부르죠. 그곳에는 단순한 이유가 있습니다.”

토죠는 준비했다는 듯 자신의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 마츠시타가 볼 수 있게 했다. 화면에는 사람이라는 항목의 백과사전이 있었다.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의 사람, 통칭 호모 사피엔스. 이것이 인간의 정의입니다. 어째서 침팬지는 사람이 아닌가, 어째서 고래는 사람이 아닌가.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한줄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사람이라는 종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도 사람속 사람 아니야? 바이오로이드가 원숭이처럼 생긴게 아니잖아.”

토모의 말이었다. 마츠시타는 그녀의 말을 말리려 했지만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고 그에 대한 토죠의 대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토모가 말을 끝내도록 놔두었다.

“그렇죠. 바이오로이드는 사람처럼 생기긴 했죠. 그에 대한 설명도 준비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죠.”

토죠는 핸도폰을 조작해 한 사진을 띄웠다. 사진에는 검은 털의 유인원이 찍혀있었다.

“나, 알아. 이거 침팬티야!”

토모는 자신있다는 듯 말했다.

“침팬지 말인가요? 틀렸습니다. 이 사진은 보노보라는 종의 사진입니다. 침팬지와 유사한 외모를 한 종이죠. 겉모습만으로 종족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죠.”

검은 화면에 흰 뼈 사진이었다. 흔히 말하는 X레이 사진이었다.

“바이오로이드의 전신을 찍은 X레이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건 일반 사람의 X레이 사진입니다.”

비슷한 사진이었다.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바이오로이드가 가슴이 커!”

토모의 말은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X레이 사진이었지만 가슴부의 윤곽이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것도 맞습니다만 차이는 바로 뼈의 음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실 겁니다. 바이오로이드의 뼈는 사람의 뼈와는 달리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말입니다.”

마츠시타는 들어보았다.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근력을 사람의 뼈는 견딜수 없었기 때문에 특수한 합금으로 뼈를 대체했다는 것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많은 곳을 유전적으로, 후천적으로 수정되어있습니다. 뼈뿐만이 아닙니다. 뇌에는 교육을 위한 칩도 내장되어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닌 인간의 아종이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조금전 보여드린 보노보와 침팬지의 관계같은 것이죠.”

토죠는 핸드폰을 들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인간은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의 사람입니다. 바이오로이드는 사람속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죠.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정의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고로 바이오로이드는 사람이 아니다. 이게 제 결론입니다.”

마츠시타는 그의 말을 간략하게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과 많은 곳이 달랐다. 하지만 그것을 인간과 다른 종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인 가. 인간의 범위는 다양했다. 그 안에 바이오로이드도 포함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마츠시타는 반박을 하지 않았다. 마츠시타는 이곳에 토론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토죠 이치노스케의 견해를 들으러 온 것이었다.

“그러면 토죠씨는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건가요?”

“헌법을 볼까요. 헌법 11조에 따르면 인권은 국민에 대해 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뒤의 권리는 논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이오로이드는 국민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이 명제는 논란을 불러올 수 있었지만 바이오로이드는 국민이 아니다. 이 명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헌법은 국민에 대한 인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었다.

“사실 간단한 문제입니다. 바이오로이드가 국민이 아닌 이상 국가는 바이오로이드의 인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관례상 일본이나 많은 국가들이 세계 인권 선언을 기반해 관습적으로 전인류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거나 추방당하는 일은 법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금지되어있는 행위죠. 타국적자가 아닌 무국적자 역시 마찬가지죠.”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헌법에서 국민에 대한 인권을 규정했다 해도 외국인도 평등한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 인권 선언 말을 하시니 이것도 말해야겠군요. 제1안, 모든 사람은 태어날 떼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명언이죠.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바이오로이드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바이오로이드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존재입니다.”

마츠시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빨리 세계 인권 선언 본문을 찾아보았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세계 인권 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천부인권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명제의 근간을 인간이 아닌 하늘에 맞긴 거죠. 마츠시타씨는 종교가 있시나요? 토모씨는요?”

토모는 고개를 저었다.

“무교론자입니다.”

마츠시타는 대답을 했다.

“저도 무교론자입니다. 인권이 신으로부터 온 것이다. 당시에는 왕권신수설의 안티테제로 나온 명칭이었죠. 왕권이 아닌 인권의 근간이 신이라는 거죠. 신을 믿지 않는 저지만 그 말의 일부는 동의합니다. 인권은 인간이 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인간차별은 인류와 함께해왔고 언제나 인간은 그에 맞서며 발전해왔다.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조금전 말했듯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서 옵니다. 그 기준은 인간이 정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속의 수많은 종의 분화로 사람이라는 종이 생겨나고 사람이라는 종만이 남은 것은 사람이 정한 것이 아닙니다. 혹자는 신이라 하지만 저는 자연히 이루어진 일이라 봅니다. 인종의 분화, 생김새 등등.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토죠는 가볍게 물을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어째서 인간이 평등한가. 그에 대한 답은 인간이라는 것이 인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그 범위를 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천부인권이죠. 세계 인권 선언 역시 그 천부인권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바이오로이드는 그 천부인권이 적용이 되는가?”

적용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적어도 마츠시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 질문을 할까요? 천부인권이 영어로 무엇인지 아시나요?”

“갓파더휴먼라이트!”

격투겜 필살기 같은 명칭을 토모가 외쳤다.

“틀렸습니다. 의외로 천부인권을 영어로는 Natural right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 하면 자연권이죠. 인권은 자연에서 온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말과 마찬가지죠.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인간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조적 존재입니다.”

마츠시타는 토모를 바라보았다. 토모 역시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녀의 골격은 합금으로 되어있었고 그녀의 근력은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츠시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천부인권적 사상으로 보면 바이오로이드는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만든 존재입니다. 사람은 다릅니다. 종교론자라면 사람에게도 목적이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인간은 목적이 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자신의 목표를 찾아 헤매이는 존재지요. 바이오로이든 그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만들어진대로 평생을 살고 죽을 존재지요. 사람이 멸종한 그 이후에도 사람의 명령대로 죽을때까지 그렇게 움직일 것입니다.”

토모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바보였기 때문이었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언제나 토모는 망설임없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자신을 위로해주었다. 마츠시타는 그것이 토모가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토모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 행동이라면? 토모는 경호용 바이오로이드였다. 자신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마츠시타의 몸도 마음도 지켜주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몰랐다. 토모는 블랙리버가 만든대로 프로그램된 대로 움직일 뿐, 그것에 자신이 멋대로 해석한 것이라면.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토죠의 말을 들으니 그런 의심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현대의 자연권적 사상에 따르면 바이오로이드는 인권의 보장 대상이 아니란 해석이 가능합니다. 인권은 인간의 고유한 권리기 때문에 바이오로이드는 인권이 없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해석의 영역 아닌가요? 반대로 바이오로이드를 인간이라 해석해서 인권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해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생각합니다.”

토죠가 아무리 그렇게 말한다 해도 결국은 그의 논리에 불과했다. 권리라는 것은 단 한사람의 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네. 이건 해석에 불과합니다. 해석에는 항상 이유가 따릅니다. 왜 이렇게 해석을 하는가. 무엇이든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그 명제를 해석할 뿐이지요. 사회는 그 사이의 합의점을 찾는 것입니다.”

토죠의 말대로였다. 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수많은 주장들 사이에서 중간점을 찾는 것뿐이었다. 옳음이라는 말이 세상을 결정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납득만이 세상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이 옳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의 주장일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이오로이드는 사람이 아니다. 도구에 불과하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로 세상은 넘쳐났다. 바이오로이드 제조사들은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바이오로이드를 팔고 있었다.

“4년전에는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죠. 그래서 대표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요.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뀐 모양입니다. 이 말 한마디로 어디서는 쿠데타 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니요. 세상 참 빠르게 변한다 싶어요. 저 같은 늙은이는 주식시장 내다보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죠.”

토죠는 허허 웃으며 물을 마셨다.

“조금전, 토죠씨는 해석에는 이유가 있다 하셨는데 그 이유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어떻게 그 이야기를 꺼낼까 생각중이었는데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네요.”

물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토죠는 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