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주군."

"사령관님."

레모네이드 알파가 긴급히 보고할 사항이 있다고 하여 각 부대 대장들이 긴급 소집했다. 용과 에이다도 화상통신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사령관니 회의실 정중앙 의자에 앉으며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알파는 두개의 스크린을 회의실 탁자 위에 띄웠다. 하나는 에이다가 지구의 성층권 궤도에서 관측한 사진이었고, 또 하나는 용의 함대가 보낸 사진이었다.

"이건...!"

에이다가 보낸 사진에는 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괴생물체가 있었고, 용의 사진에도 각도와 거리만 다를 뿐이지 그 괴생물체가 담겨있었다.

"별의 아이가 나타난 거야?"

오르카호의 대장들도 사진을 보며 놀랐다.

"걱정 마시오. 이건 이미 활동이 정지된 상태의 별의 아이이오."

용이 오르카호의 대장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용과 에이다가 별의 아이를 발견했을 때부터 이렇게 떠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메이가 의문을 던진다.

"활동이 정지됐다고? 외상이 전혀 없는데?"

"그렇소. 우리 호라이즌 측에서 이 별의 아이가 죽어있는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소. 하오나 외상이 전혀 없음이 기이하여 일단은 활동이 정지됐다고만 하였소."

레오나가 물었다.

"철충과 별의 아이는 적대적 관계잖아. 철충이 다녀간 흔적은 없는 거야?

그 물음에 에이다가 답했다.

"별의 아이의 시체를 중심으로 100km 반경을 관측한 위성의 기록을 확인한 결과, 철충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별의 아이가 죽었다. 그런데 외상이 전혀 없고, 철충의 공격도 아니었다. 그럼 대체 왜 죽은 거지?"

모든 대장들이 침묵했다. 별의 아이. 이 우주적 생물체에 대해서 알려진 건 정말 빙산의 일각조차도 아니다. FAN파를 발산하여 인간을 영원한 수면에 빠지게 한다는 것과 철충과 적대적이라는 것, 철충이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만 알 뿐이다. 이들의 수명은 얼마나 하는지, 어디서 유래했는지, 어떤 목적을 갖고 지구에 왔는지는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철충, 펙스, 별의 아이 그 외의 또 다른 세력이 나타났을 가능성은?"

마리가 의문 섞인 의견을 제시했다.

"성층권에서는 철충과 펙스, 별의 아이와 오르카호를 제외한 UFO나 외계 생물을 관측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별의 아이를 외상 없이 죽일 수 있는 병기를 철충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예를 들어 전자기기만 망가뜨리는 EMP 처럼 별의 아이를 특정 전자파로 죽이는 병기일 가능성은?"

칸도 의견을 제시했다.

"제 케스토스 히마스와 오렌지에이드의 카두세우스로는 FAN파와 오르카호에서 나오는 음파, 해양생물들의 초음파 외엔 별다른 음파는 발견하지 못했어요."

"이 전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군."

아스널이 별의 아이 사진을 보며 눈을 찡그리며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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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다. 눈을 뜨기도 전에 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몸이 긴장됐다. 제인과 더치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으응, 아저씨. 거기."

제인이 잠꼬대를 한다.

"잠꼬대 할 시간 없어, 제인."

"우웅. 아저씨. 무슨..."

더치가 잠에서 깨고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상황을 파악했다.

"제인, 철충이다. 일어나."

제인의 눈이 번쩍 떴다.

"뭐?"

"철충이 점점 오두막으로 온다. 미리 싸놓은 짐을 들고, 철충이 오는 쪽의 반대방향으로 돌아가 몸을 숨긴다. 최대한 전면전을 피하자. 미처 챙기지 못한 짐들은 버린다."

우린 각자의 짐을 들고 철충이 오는 대문쪽이 아닌 반대편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저 철충들 사이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

"무저갱의 존재가 숨이 멎었다. 이는 이단자도, 우리들의 업적도 아니다. 그렇다면 외신을 죽인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심연을 주시하라! 또 다른 위협을 주시하라! 철의 교황님이 말씀하신다! 붉은 인간을 죽여라! 심연의 먹이가 되어 외신의 주린 배를 채우게 둬선 안된다!"

저 철충들이 말을 할 수 있다니. 무저갱의 존재라느니 이단자라느니 이상한 말을 한다. 조심스럽게 제인과 더치에게 물어본다.

"너희들, 저것들 목소리가 들려?"

"응. 분명 우리가 아는 언어가 맞는데 어떤 뜻인지 모를 말들이야."

"무저갱의 존재는 뭐고 이단자는 뭐지? 붉은 인간은... 아저씨 말하는 거 아니야?"

흡사 사이렌이 여러개 달린 것 같이 이상하게 생긴 철충에게서 들리는 말에는 나를 지칭하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날 죽여야 한다. 그 이유가 '외신'의 주린 배를 채워선 안된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다. 어쨌든 적어도 저것들이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날 죽이려고 한다는 건 알게 됐다.

철충 한 무리가 지나갔다. 이유가 있어 날 죽이려 한다면 하나의 부대만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주시하라는 것도 있었으니. 또 다른 부대가 오기 전에 어서 가야한다.

"강을 건너고 저 풀숲으로 들어가자. 최대한 숲 속에서 그 벙커를 찾아가야 해."

난 더치를 들고 안아 강을 건넜다. 여기는 강의 중류인데, 강의 폭이 조금 넓었다. 내가 이틀 전에 본 강의 하류는 정말 끝부분에서 갈라진 가지의 일부분이었다. 강의 중류의 깊은 곳은 더치의 키보다도 높았다.

젖은 옷을 버리고 다시 코트와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젖은 옷을 고기가 든 가방에 넣으면 보존식으로 만든 고기의 상태가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아저씨 몸 좋네."

"칭찬은 고마운데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그 벙커로 안내해줘."

"알았어. 우리가 위치는 확실히 기억하니까."

풀숲에 몸을 숨기고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가지와 풀을 밟으며 길을 만들어 이동했다. 비행체의 소리도 들려온다. 뇌파가 있다는 걸 알고 정찰기를 보냈다.

제인이 뒤를 따르는 더치와 나에게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제인의 어깨 너머를 보니 프로펠러 달린 드론 모양의 철충이 나무 사이를 요란하게 통과하며 감시하고 있다. 드론형 철충이 공중에 멈춰서 정지비행을 하면서 동체에 안테나 같은 것이 나왔다. 안테나가 한 바퀴 두 바퀴 돌더니 우리가 있는 곳을 알아채서 이쪽으로 온다.

"제인. 넌 더치를 안고 풀숲에 숨어있어."

"뭐?"

난 제인이 들고 있는 길다란 나무상자를 뺏어갔다. 이 안에는 내 혈액이 채워져 있고 목검이 들어있다. 풀숲에서 뛰쳐나와 다가오는 드론에게 나무상자를 힘껏 던졌다. 나무상자가 드론형 철충을 강타하며 부서지면서 안에 있는 혈액이 터져나왔다. 철충은 혈액이 응고하고 남은 노란색 혈청으로 흠뻑 젖었다. 나무상자가 부서지면서 완성된 도 형태의 목검이 튕겨져 나왔다. 높게 도약해서 완성된 검을 잡고 위에서 아래로 베었다. 드론형 철충의 동체가 깔끔하게 좌우로 갈라져 추락했다.

바닥에 착지하여 완성된 목검을 자세히 보았다. 혈액에 담그기 전에 날카롭게 갈려서 목검 치고 절삭력이 있었던 목검이었지만, 그 표면이 검붉은 굳은 혈액으로 감싸였다. 하지만 약품으로 코팅한 것처럼 아주 매끄러웠으며 날카로움은 지난 번에 쓴 환도보다 아주 좋았다. 내 피는 마감 약품으로 쓰기 매우 좋다. 내가 수라도를 지옥이라 부르지만, 그래도 엄연히 인간도 보다도 위의 세계니까. 그리고 인간도 보다 위의 세계에서 아주 오래 산 인간의 피니까.

"어서 가자."

풀숲 뒤에서 더치를 안고 웅크린 제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갑자기 뒤에서 날카로운 공기음이 날아온다. 다시 제인을 풀숲에 밀쳤다.

"윽!"

제인이 신음을 낸다. 순간 제인의 어깨에 피가 나오는 게 보였다. 뒤에서 날아온 총알이 제인의 어깨를 지나갔다.

"뭐-"

총알이 날아온 뒤를 보았다.

"제인!"

더치의 울음이 숲을 울렸다.

두 다리로 움직이고 동체 하부에 기관총이 달린 로봇 철충이 다섯대가 모였다. 내 심장이 제 힘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빠르게 뛴다. 모든 피를 쥐어짜내듯이. 몸이 공기를 원한다. 코로 들이마시는 공기로 부족해서 입으로도 마신다. 호흡이 빨라진다. 시야가 흔들린다. 실이 끊어진 느낌이 든다. 힘을 강하게 쥔다. 온 몸의 근육이 끊어져도, 뼈에서 근육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숲은 어두워지고, 철충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연기처럼.

"ꙢꙢꙣꙣꙣꙣꙣꙣꙣꙣꙣꙣꙣꙣ-----"

연기 속에 달려들어 선명하게 보이는 내 손의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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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뭔가를 느꼈는지 일으키던 날 다시 풀숲에 밀쳤다. 순간 내 오른쪽 어깨에 총알이 스쳤다. 단순히 스치기만 한 것일 뿐이다. 피가 나오긴 하지만.

"제인!"

더치가 울며 내 어깨를 본다.

"괜찮아. 스친 거 뿐이야. 아저씨는?"

난 아저씨 쪽을 다시 보았다. 아저씨는 총에 맞지 않은 것 같았다.

"아저씨, 괜찮아?"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폴른 철충들이 나무 사이에서 나온다. 아저씨는 나한테서 뒤돌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에게 다가가 얼굴을 보니, 안색이 너무 창백했다. 눈도 빛을 잃었다.

"아저씨!"

순간 아저씨의 얼굴이 빨개졌다. 굳이 가슴에 귀를 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심장 소리가 매우 커졌고, 계속 빨라진다. 아저씨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평소의 그 잘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아-----"

아저씨의 거친 포효가 숲에 퍼진다. 아저씨의 몸에 붉은 아지랑이가 나온다.

"어-"

그 잠깐의 탄식이 나온 사이에 아저씨가 사라지더니, 폭발음이 들렸다. 내 앞에서 사라진 아저씨는 내 뒤의 폴른을 검으로 수차례를 빠르게 내려쳐 난도질을 했다. 철충들은 기관포를 돌려 아저씨를 쐈다. 아저씨의 몸에 피가 튄다.

"아저씨!"

아저씨가 총을 맞는다. 머리에, 몸통에, 팔 다리에도. 중기관총에 맞는 몸은 그럼에도 미동이 없다. 그는 계속해서 철충 하나를 난도질한다. 철충들은 당황하여 사격을 중지한다. 저만한 구경의 중기관총에 한발이라도 맞으면 장기가 파열되어 죽는다. 그런데 총알은 아저씨의 살갖을 뚫긴 했으나 완전히 관통되지 않았다. 아저씨가 난도질을 멈췄다. 아저씨 몸에 난 총알구멍 안에서 붉은 연기가 나온다. 송곳 같은 탄두 수백개가 뿜어져 나오는 피와 함깨 몸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순간, 아저씨의 몸에 상처가 전부 사라졌다.

"아아아아아아아-----"

그가 다른 철충들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철충의 다리가 끊기고, 거대한 구체 같은 동체에 거친 자상이 순식간에 생긴다. 철충 유체가 폴른의 몸을 버리고 뚫고 나와 그의 검격 사이를 비집고 나와 그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철충 유체의 기습에도, 그 유충의 꼬리를 잡고 바닥에 내팽개친 다음 발로 유충의 머리를 짓이겼다. 철충들이 다시 사격하지만 총알을 베어넘기거나 몸을 순간적으로 비틀어 날려 피했다. 그가 팔을 뻗으니 손목의 살갗을 뚫고 피가 뿜어나왔다. 뿜어나온 피는 길다란 칼 같은 모양으로 변했다. 그는 두 손에 각각 하나씩 검을 들고 거칠게 난도질한다. 남은 네대의 철충을 부수는데 들어간 시간은 단 2초였다. 16번의 난격은 철충의 다리와 하부 기관총, 코어와 동체 속 유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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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제인의 목소리다. 제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몸의 열이 식고 흥분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제인!"

제인에게 달려가 팔을 잡았다.

"제인, 괜찮아? 어깨는?"

"괜찮아. 총알이 스치기만 한 거야. 정말로 스치기만 했어. 피가 조금 났지만 더치가 지혈해줬고. 이거 봐."

제인의 오른쪽 어깨에 천이 감싸였다.

"더치는 괜찮아?"

몸을 숙여 더치의 상태를 보았다. 다행히 상처는 없었다.

"괜찮아요, 아저씨."

"다행이야. 정말. 정말로 다행이야."

난 두 팔로 제인을 세게 끌어안았다.

"자, 잠깐!"

눈물이 났다. 눈물이 떨어지며 제인의 어깨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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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1화 빌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