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자매들이 더 생겼습니다. 그게 누구를 위한 일인지, 누구에게 좋은 일인지는 몰라도."




 라비아타는 지금까지 덴세츠 엔터테인먼트나 비스마르크 사의 작품을 시젠에게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인류 멸망 이전부터 살아왔던 그녀는 덴세츠와 비스마르크 사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을 만드는지 알고 있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나 인간들이 문자 그대로 갈려나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그렇게 갈려나가는 모습들이 여과없이 담겨진 작품들이 일일이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다. 


 피폐하고 삭막한 현실로부터 사람들의 신경을 돌리기 위해서 두 거대 기업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제작사들은 의도적으로 점점 더 과격하고 더욱 선정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점점 올라가는 대중 매체들의 잔인성과 폭력성, 선전성과 반비례해서 연령 제한 기준은 계속해서 낮아졌다. 


 거의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차림새의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러대고, 신체를 절단하는 것은 물론 잔혹하게 고문하거나 무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담긴 작품들이 전연령 시청가 등급을 받고,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마법소녀 모모 시리즈를 비롯해서 인류 멸망 전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 혹은 기업들이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었던 작품들 상당수는 라비아타가 생각하기에 도저히 시젠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라비아타와 타이거샤크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시젠에게 보여주는 영상 대부분은 덴세츠나 비스마르크 사가 존재하기 훨씬 전의 인류가 만들었던 애니메이션들이었다.

  

 그렇지만 예외는 있었다.


 아쿠아팰리스 출신의 쿠노이치 제로와 카엔이 미공개된 덴세츠 사의 작품이라면서 가져온 물건은 시젠이 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건전한 편이었다. 


 건물을 때려부순다든지, 자동차를 썰어버린다든지 하는 내용은 있었지만 최소한 인명피해나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작품의 내용도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 괜찮은 시트콤이었다.


 "푸훗......"


 앨리스 4호의 웃음소리를 들은 라비아타가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히 작품 감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방 안에는 시젠과 라비아타, 제로와 카엔, 티타니아 이렇게 다섯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방 안이 바이오로이드들로 꽉 차 있었다.


"걸작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데요? 요시미츠 그 인간의 성격이라면 절대로 방송 허가를 안 내줬겠지만요."

 

 레모네이드 에타가 작품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덴세츠의 회장, 요시미츠를 비웃는 말과 함께. 


 그녀가 보기에 이 작품은 시트콤으로서 꽤 괜찮기는 했지만 요시미츠가 오케이 사인을 내줄 정도로 대단한 작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아는 요시미츠라면 이 작품의 중심 인물로 등장한 바이오로이드를 이렇게 가벼운 분위기의 시트콤의 발랄함이 넘치는 캐릭터로 쓰고 싶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저라면 살짝 다듬어서 방영했을 것 같네요."


 살짝 날이 서 있는 앨리스 4호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거린 레모네이드 에타가 솔직한 그녀의 생각을 말했다. 


 비스마르크의 회장도, 레모네이드 에타도 요시미츠만큼 작품을 만드는데 있어 세심한 디테일이나 완성도를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회장은 그가 생각하는 멋이나 재미의 기준에 부합한다면 나머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고, 레모네이드 에타는 원 히트 원더 취급을 받으면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하는 배우에게 새로운 역할도 맡겨보고, 세간에 퍼진 이미지와는 또다른 이미지를 부각시킬 겸 이 시트콤을 끝까지 완성시켜서 방영했을 것이다.


 "......어머님은...... 어머님들은 이 작품의 내용을 엄청나게 수치스럽게 여기셨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든 찾아서 파괴해버리려 하셨었지."


 "찍을 당시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찍은 거구요?"


 "......작품 초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지 못했나?"

 

 쿠노이치 제로의 지적을 받은 포이 2호가 작품 초반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었는지를 떠올렸다. 


 마왕을 숭배하는 집단의 무슨 폭약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쓰는 박사가 고대의 쿠노이치를 부활시켰고, 타이밍 좋게 지나가던 마법소녀들이 그 쿠노이치하고 싸웠다. 


 칼에서 불꽃과 번개를 뿜어내면서 제법 화려하게 등장한 쿠노이치는 마법소녀가 발사한 마법- 이라 주장하는 로켓에 머리를 얻어맞고 허무하게 기절해 버렸다. 다시 깨어난 쿠노이치는 마법소녀들을 자신이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그녀의 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본격적인 시트콤이 시작되었다. 


 "......혹시 모모 양이 쏜 로켓을 맞았을 때, 정신이 살짝 나갔던 게...... 각본상의 내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던 건가요?"


 "......그랬던 것 같다."


 "......어머나."


 쿠노이치 제로와 포이 2호의 말을 들은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 이걸 보고 웃어도 되는 건지, 웃으면 안 되는 건지 고민하는 분위기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갑자기 주변의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시젠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바이오로이드들의 눈치를 살폈다. 


 미소를 지으며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티타니아와 아자젤, 레아들이 시젠의 신경을 화면 쪽으로 돌렸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심각한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이 시트콤이 어떻게 진행되어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를 보기로 했다.


 재미있게 보고 있던 관객들에게는 대단히 안타깝게도 시트콤은 요시미츠 회장의 노호성과 함께 갑작스럽게 끝나 버렸다. 


 "역시 요시미츠,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하필이면 여기서 이 따위로 끊어버리냐......"


 건성으로 손뼉을 친 레모네이드 에타가 다시 한 번 요시미츠를 비웃었다. 레모네이드 세타는 재미있어지려는 부분에서 끊어버린 요시미츠를 욕했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동의하는 소리를 냈다. 


 "......요시미츠 저 작자는 뭐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이렇게 끊어버리는 거래요?"

 

 "이게 현실일 리가 없어, 이건 꿈일 거야, 난 어디 여긴 누구 하고 한참동안 현실도피하다가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죠. 설마 그 요시미츠 밑에 있는 사람들이 요시미츠 허락 없이 촬영하다가 걸렸을 리는 없고."


 "아쉽네요,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끝나다니."


 [뀨~]


 포이 2호와 앨리스 4호가 요시미츠를 씹어대고, 레아 1호와 시젠은 작품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나버린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두 분, 이것 말고 시젠 아가씨가 볼 만한 다른 무언가는 없나요?"


 "있어. 잠깐만."


 카엔이 다른 드라마를 준비하는 동안, 라비아타는 방금 카틀레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번에 제조한 자매들이 눈을 떴다는 내용을 확인한 라비아타가 시젠에게 자리를 비울 것임을 알렸다.


 "시젠, 언니는 일이 있어서 카틀레야 언니에게 가볼게."


 [뀨......]


 "언니들하고 같이 드라마하고 애니메이션 보고 있으렴."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은 시젠이 스케치북에 [단여오새오]라고 적어서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런 시젠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라비아타가 단말기로 타이거샤크에게 자신과 메이, 레오나 1호를 제조실로 공간이동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몇 초 후 파란 섬광이 시젠과 바이오로이드들이 모여있는 방과 제조실 한쪽에 아주 짧은 시간차를 두고 일어나고, 원래 있던 방에서 사라진 세 바이오로이드들이 제조실 한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이동 기술에 대해 지식도 있고 나름대로 익숙해진 타이거샤크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지만 새로 제조된 바이오로이드들은 살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닥터들과 카틀레야, 포츈들이 그녀들의 지식 모듈에 공간이동에 대한 정보도 집어넣었지만, 모듈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적용되는 사실이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라비아타 언니." 


 ".......다시 만나게 되어...... 아니, 처음 뵙겠습니다? 어......"


 "어...... 뭐라고 인사해야 하지....."


 "에...... 그러니까......"


 "음....... 만나게 되어 반가워, 라비아타 언니."


 긴 검은 머리카락의 배틀 메이드 바이오로이드 넷이 라비아타에게 먼저 인사하고, 그녀들보다 조금 작은 체구의 은발 배틀 메이드 넷은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지 버벅거리다가 가까스로 각자 인사를 마쳤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구나, 이지스, 제피루아."


 그녀들의 인사를 받은 라비아타가 새로 태어난 동생들을 하나하나 끌어안았다. 


 아무 말 없이 라비아타를 마주 안아준 시제니아 이지스(Shizhenia Aegis)들과는 달리, 갈레아리스 제피루아(Galearis Zephyrua) 1호는 라비아타를 서로 끌어안더니 바로 한 마디 꺼냈다.



 "......언니, 살쪘어?"


 "응."


 제피루아 1호의 말에 답하는 라비아타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주저도, 분노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라비아타의 뱃살과 가슴을 끌어안은 채로 가만히 있는 제피루아 1호의 뒤에 선 다른 제피루아들이 불만 가득한 소리를 냈다. 


 "언제까지 큰 언니 끌어안고 있을 거야?"


 "우리도 안아보고 싶어."


 "우리도 안겨보고 싶어."


 동형 자매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제피루아 1호는 라비아타에게서 금방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다른 제피루아들이 달라붙어서 그녀를 끌어낼 기색을 보이자, 라비아타는 제피루아 1호에게 나중에 좀 더 안아주겠다고 약속과 설득을 거듭했다.  

 



 "......오랜만에 보네요, 이지스."


 "저희는 앨리스를 보는 것이 처음입니다만."


 "바닐라나 금란, 오프리스나 블랙 웜들은 언니라고 부르면서 왜 우린 언니라고 안 불러주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혹시 당신들한테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걸 왜 저희에게 물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앨리스."


 라비아타가 네 제피루아들을 안아주는 동안에 앨리스 1호는 네 이지스들과 마주보고 서서 별로 화기애애하지 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2차 기업 전쟁 당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세라피아스 앨리스와 시제니아 이지스들은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다. 주로 앨리스들 쪽에서 이지스들에게 먼저 시비를 걸고, 이지스들은 이를 맞받아치는 식이었다. 


 "뭐 짐작 가는 거야 있습니다만서도. 바닐라 언니들이나 금란 언니들, 오프리스 언니들은 우리보다 한참 전에 설계되었지만 앨리스 여러분은 우리와 사실상 동년배잖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설계한 인간님들이 저희로 하여금 앨리스 여러분들을 언니가 아니라 동년배로 인식하게 만들었는데 저희가 뭘 어쩌겠습니까?"


 "혹시 저희와 말장난을 할 생각이셨다면 자매를 더 데려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이지스 1호에 이어 나머지 세 이지스들도 한 마디씩 하자 앨리스의 입가에 살짝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역시 이런 상황이 터지는구나, 하고 생각한 카틀레야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다섯 바이오로이드들이 선을 넘는 순간 끼어들어 제지할 준비를 했다.




 ".......레오나 대장도 혹시 살쪘나요?"


 배틀 메이드들이 서로를 끌어안거나 마찰을 빚는 동안에 레오나 1호와 서로를 끌어안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화력 지원용 바이오로이드, 다인슬라이프가 살짝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얼굴만 봐서는 살이 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는데 끌어안는 느낌을 보니 살이 그냥 찐 정도가 아니라 아주 푸짐하게 찐 것 같았다.


 "......맞아." 


 얼굴을 뺀 나머지 전신에 지방이 골고루 잘 붙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레오나 1호였지만 그 사실을 갓 태어난 자매 앞에서 인정하자니 말이 금방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안 다인슬라이프도 더이상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레오나 대장은 항상 완벽을 지향하는 사람이었고 그 완벽함에는 외모와 체형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레오나 대장이 체형 유지에 완벽하게 실패한 것은 물론 이를 순순히 인정하는 이 상황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레오나 대장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배틀 메이드들의 한쪽에서는 훈훈한 분위기가 감도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기묘한 마찰이 빚어지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사이에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둠 브링어 바이오로이드들은 또 다른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다들."


 "다시 만나뵙게 되어 반가워요, 메이 대장님."


 "반갑습니다, 대장. 그런데, 제 옆의 이 뚱땡이들하고 왕가슴은 대체 뭡니까?"





 메이의 인사에 스트라토 엔젤이 반갑게 대답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나이트 앤젤의 목소리에는 반가움과 짜증, 서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나이트 앤젤의 입에서 뚱땡이라는 표현이 튀어나오자 스트라토 엔젤이 험악한 눈빛을 쏘아보냈다.


 다른 편에 서 있던 두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하나는 나이트 앤젤의 말에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는 나이트 앤젤과 스트라토 엔젤, 메이의 눈치를 번갈아가며 살폈다.


 "뭐야, 너 처음 봐? B-7 스트라토 엔젤하고 B-19 더스크 스피어(Dusk Spear), XB-40 데스 레이(Death Ray)잖아." 

 

 "이름이 뭔지, 무슨 바이오로이드인지는 저도 압니다, 대장."

 

 굳이 메이에게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자신과 함께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들의 이름, 개발 배경, 기본적인 정보 등은 모듈이 제공해주는 지식을 통해서 나이트 앤젤도 다 알고 있었고, 방금 자기 소개도 들은 바였다. 나이트 앤젤이 말하고 싶은 바는 그녀의 자칭 언니나 후계기 바이오로이드들의 정체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이거 대놓고 저보고 엿먹으라고 한 짓 맞죠? 이 뚱땡이들하고 절 같은 날에 태어나게 한 거? 제 언니를 자칭하는 뚱땡이도 모자라서 왕가슴 동생하고 뚱땡이 동생을 저하고 같은 날에 태어나게 한 거, 저 엿먹으라고 한 짓 맞죠!? 그런 거죠?!"

 

 "얘 혼자서 왜 이래?! 야, 나이트 앤젤!"


 혼자서 폭주하는 나이트 앤젤을 보고 황당해진 메이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것만으로 진정이 될 상황이 아니었다. 스트라토 앤젤과 더스크 스피어, 데스 레이가 붙잡고 뜯어말리려 했지만 그녀들의 몸에 달린 거대한 흉부 지방들은 오히려 나이트 앤젤을 더 날뛰게 만들었다. 


 "오랜만이야, 대장!"


 "평안...... 하셨나요, 대장님......? 다이카, 합류...... 하겠습니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나이트 앤젤을 스트라토 엔젤과 더스크 랜서, 데스 레이가 붙잡고 있는 동안 인사할 기회를 놓쳤던 실피드와 다이카가 늦은 인사를 메이에게 건넸다. 인사를 받으면서 그녀들의 표정을 살핀 메이가 한심해하는 눈빛으로 날뛰는 나이트 앤젤을 쳐다보며 물었다.


 "......쟤 나오자마자 저랬어?"

 

 "......네......"


 "에휴, 내 잘못이지....... 쟤가 저렇게 주접을 떨 거라고 예상했었어야 했는데."


 ".......글쎄, 내 생각에는 언제 만들었어도 난리를 피웠을 것 같은데......"


 이마를 부여잡는 메이의 옆에서 실피드는 같이 이마를 부여잡았고, 다이카는 그저 난감한 웃음만 흘렸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황당해하는 동시에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난리를 피우는 나이트 앤젤과 그녀를 뜯어말리기를 포기한 채 그녀와 함께 난리를 피우는 스트라토 엔젤, 둘을 뜯어말리려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지만 그 결실은 맺지 못하고 있는 더스크 스피어와 데스 레이를 쳐다보았다. 


 "와아, 테이아다!"

 

 "테이아, 오랜만이야!"



 아직 자매들이 도착하지 않아서 멍하니 서 있던 머메이드 출신의 바이오로이드들인 아드라스테이아들에게 약간 늦게 제조실에 도착한 살라시아와 갈라테아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두 분 언니."


 "응응! 오랜만이야!"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가워! 다시는 못 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달려들어 자신들을 끌어안는 살라시아와 갈라테아를 마주 안은 아드라스테이아들이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사실은' 그녀들과 이 두 바이오로이드는 오랜만에 만나는 것도 아니고 초면이라는 사실은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었다. 지금 두 자매들과 만난 아드라스테이아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야, 카틀레야. 저거 어떻게 못해?"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남들은 자매들과의 재회를 만끽하고 있는데 자기 부관이란 것들은 서로 다투는 꼬락서니에 질린 메이가 카틀레야를 불렀지만 그녀에게 대답한 것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큰 언니나 다른 자매와의 재회를 만끽하는 대신에 이전부터 사이가 묘했던 자매와 대치하고 있던 시제니아 이지스들이 파란색과 녹색의 스캔용 광선으로 스트라토 엔젤과 나이트 앤젤을 몇 번 훑었다. 처음에는 서로 다투느라 주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던 두 바이오로이드도 얼마 안 있어 네 시제니아 이지스들이 자신들을 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싸움을 멈췄다.


 "나이트 앤젤과 스트라토 엔젤을 상대하는 것도 오랜만이군요."


 "이런 시x.....?!"


 시제니아 이지스 넷에게 록온당했음을 전투 모듈과 장비가 경고하자 나이트 앤젤과 스트라토 엔젤이 기겁하면서 맞대응할 태세를 갖췄고, 더스크 스피어와 데스 레이도 본능적으로 시제니아 이지스들에게 맞서려는 듯이 자세를 잡았다. 


 2차 기업 전쟁 당시 제공권에서 완벽하게 열세에 있었던 삼안 산업이 블랙 리버가 거느린 막강한 스카이 나이츠와 둠 브링어, PECS의 공군을 상대로 맞서 싸울 수 있게 해 준 가장 강력한 대공 및 광역 방어 바이오로이드, 시제니아 이지스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블랙 리버 공군 바이오로이드들의 유전자 씨앗에 스며들어 있었다. 


 "진짜로 싸울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두 분이 이 소동을 멈추시기만 한다면요."


 눈을 가늘게 뜨고 묻는 메이의 질문에 시제니아 이지스 2호가 대답했다. 대답하기 전에 약간 뜸을 들인 것도 그렇고, 말 뒤에 괜히 한 마디를 더 갖다 붙인 것도 그렇고 실제 그녀나 그녀의 자매들의 진심은 두 둠 브링어 바이오로이드들과 진짜로 싸우기를 바란 것 같았다. 


 "멈췄나 보네요. 그럼 일 끝난 거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요, 이지스."


 ".......호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라피아스 앨리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요."


 "너희들도 거기까지."


 ".......네."


 단호한 카틀레야의 말에 앨리스 1호와 이지스들이 재개하려던 말다툼을 멈췄다. 


 푸르게 빛나는 눈으로 서로를 쏘아보는 것이 앞으로 트러블이 적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미 앨리스들과 이지스들이 서로 마찰을 빚으리라는 것도, 그로 인해서 자신들과 콘스탄챠들이 앞으로 당분간 바빠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라비아타와 카틀레야가 서로 씁쓸한 미소를 교환했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는 자매들 하나씩만 만들고, 너희 자매는 넷씩 만들고. 이건 차별 아냐?"


 ".......글쎄."


 자신의 볼멘소리에 별로 협조해주지 않는 메이를 레오나 1호가 흘겨보았다. 


 그러자 메이는 엄지손가락으로 아직도 싸움을 멈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이트 앤젤을 노려보고 있는 스트라토 엔젤과, 그녀는 물론 나이트 스피어와 데스 레이를 서러움과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나이트 앤젤이 서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메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눈치챈 레오나 1호가 짤막하게 헛웃음 소리인지, 한숨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글쎄요, 제 '자칭 언니'하고, 저 왕가슴하고, 뚱땡이하고, 제가 각각 넷씩 있었으면 아마 저하고 제 동형 자매들은 비참함이 극에 달해서 죽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나이트 앤젤이 메이가 하고 싶었던 말에 과장을 약간 섞어서 레오나 1호에게 들려주었다. 


 너희 대장이 널 배려해서 말 안 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냐는 의미가 담긴 레오나 1호의 시선을 받은 나이트 앤젤이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하고 똑같이 생겼지만 머리만한 가슴이 달려있는 자칭 언니," 나이트 앤젤의 시선이 스트라토 엔젤에게 향했다가 더스크 스피어에게로 옮겨갔다. "우리보다 화력도 더 좋고 스텔스도 되고 가슴도 저만한 동생, 그리고 결정적으로-"


 데스 레이에게로 시선을 돌린 나이트 앤젤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원망이 가득한 눈빛과 표정은 고치지 못한 나이트 앤젤의 얼굴을 본 데스 레이가 덜덜 떨었다. 


 "-저 뚱땡이! 저런 몸으로 스텔스가 된다고요? 저 뱃살에, 저 가슴, 저 체형으로 말인가요?!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왜! 왜 우리는 이런 몸으로 태어나야 했냐고요!? 아, 네. 우리 막내 잘못은 아니죠, 그런 몸으로 스텔스가 되는 것도, 우리가 이딴 몸으로 태어나야 했던 것도!! 다 알지만요, 그래도 비참한 건 어쩔 수 없거든요?!"


 ".......가슴 빌려줄테니 동생들 가슴에다 대못 박지 말고 닥치고 울래?"


 "빌려준다고요?! 네, 정말 빌리고 싶네요!"


 다시 시작되려는 듯한 나이트 앤젤의 넋두리는 중요한 연락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신호가 타이거샤크 전체에 울려퍼지면서 끝났다. 타이거샤크의 중추 시스템과 결합함으로서 인공지능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마법사 컨스트럭트들의 목소리가 제조실 내에 퍼졌다. 


 [라비아타 님, 아쿠아팰리스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쪽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재생하겠습니다.]

 

 "아쿠아팰리스에서요!?"


 아쿠아팰리스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제조실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으면서 그 안에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이 바짝 긴장했다. 


 [여기는 아쿠아팰리스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반복합니다. 여기는 아쿠아팰리스입니다-]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는 레모네이드 알파의 것이었다.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게 의도적인 것인지 숨기지 못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간에 아쿠아팰리스는 지금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라비아타 님, 또 다른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선박을 타고 괌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괴물의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라비아타 대장, 스카이 나이츠 전용 통신망으로 구조 요청이 들어왔어, 연결할게!]


 문제는 아쿠아팰리스만이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었다.


 또다른 마법사 컨스트럭트가 지원이 필요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존재를 알렸고, 하르페이아들도 스카이 나이츠 전용 통신망으로 누군가가- 아마도 다른 스카이 나이츠 바이오로이드가 구조 요청을 보냈음을 알리면서 메시지를 재생했다.


 [여기는 흐레스벨그-55입니다! 지금 쿠노이치들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아아아악!]

 

 [거기 서세요! 서란 말입니다!]


 [순순히 그 필름을 내놓으세요! 그러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필름은 개봉되지 않은!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의 비공개 작푸우우우우악!]


 [에, 이건......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스카이 나이츠 통신으로 들어온 구조 요청이라서 연결했던 하르페이아가 민망해하는 목소리로 의견을 구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저걸 구해줘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라비아타와 카틀레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카틀레야와 시선을 주고받은 라비아타가 살짝 망설이다가 결정을 내렸다.


 "......음. 저쪽은...... 아무래도 제가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뭐? 어째서?"


 "흐레스벨그 양을 쫓고 있는 쿠노이치들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메이와 레오나 1호가 팔짱을 끼고 라비아타를 잠시 쳐다보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상황에서 라비아타가 그 쿠노이치들과 잡담하러 가려는 것은 아닐 거란 생각에서였다.


 "뭐, 좋을 대로 하라고. 그러면 아쿠아팰리스는 어떻게 할 생각인데? 마침 수중전 전문 바이오로이드들이 넷이나 추가되긴 했지만 이 넷보고 괴물딱지들하고 싸우고 오라고 할 수는 없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용 가능한 수중전 전력은-"


 [-메이 대장님 생각보다는 많습니다. 이 타이거샤크가 있고, 레이라미아들이 있으며, 타이거샤크의 외벽이나 아쿠아팰리스에 붙어서 행동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유갈리안티들도 수중전을 벌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휘는?"


 "레오나 대장에게 맡길게요."


 난 수중전은 문외한이란 말이 레오나 1호의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것도, 수중전이 문외한이라고 해서 내빼는 것도 그녀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가벼운 한숨을 내쉰 레오나가 지시를 내리려 할 때, 또다른 컨스트럭트 마법사와 레이라미아들 중 하나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라비아타 님, '여제의 사냥개'라 밝힌 집단이 저희에게 지원을 요청해왔습니다. 괴물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라비아타 님, 웃는 얼굴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좌표는 파악했지만 그쪽 지역의 음기(蔭氣: Negative Energy) 오염이 극심해 바이오로이드들이나 일반적인 AGS들의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젠장...... 왜 다들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거야? 오르카는 어쩌고? PECS는?"


 "PECS는 자기네들 세력 유지하기도 바쁜 상황일테고,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 람다는 사실상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


 메이의 질문에 답한 레오나 1호가 주변 바이오로이드들을 돌아본 다음 다시 라비아타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그 쿠노이치들에게 가볼 생각이냐는 의미가 담긴 레오나 1호의 눈빛을 받은 라비아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긴급 회의를 열겠습니다. 모일 시간도 아까우니 각자 단말기를 통해서 빨리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요." 



등장한 자작 바이오로이드들의 사진은 모두 노벨AI에게 외주를 맡긴 그림들입니다.


순서대로 갈레아리아 제피루아(Galearia Zephyrua), 시제니아 이지스(Shizenia Aegis), 다인슬라이프(Dainsleif), B-19 더스크 스피어(Dusk Spear), XB-40 데스 레이(Death Ray), 아드라스테이아(Adrasteia). 


이 중 제피루아와 이지스는 배틀 메이드, 

다인슬라이프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더스크 스피어와 데스 레이는 둠 브링어,

아드라스테이아는 머메이드 소속이란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