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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의 협조가 공인된 이후부터 상황은 꽤나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건 언제 준비하고 있었던 거래?”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해두지.”

 

 

 

작전에 필요한 무기들이 공급되었고, 장화가 사용하던 날 빠진 와이어들은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어디 와이어뿐이랴? 조잡하게 만들어진 사제 폭탄들이 번쩍거리는 고급 폭약으로 바뀐 것 역시 괄목할 만한 변화였다.

 

 

 

“하이애나 언니가 저걸 가지고 가겠다고 어찌나 설쳐대던지...”

 

“하이애나?”

 

“그런 사람이 있어. 자기 목숨보다 화약 냄새를 좋아하는...”

 

“...”

 

 

 

거 참 별 독종이 다 있겠구나. 하지만 세상 별종이란 별종은 죄다 모아놓은 오르카 호였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장화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여전히 수갑을 차고 있는 장화였지만 팔이 묶여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녀는 이제 거의 자유의 몸이 되었다.

 

팔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리로 걸을 수도 있다. 이제 더이상 시체처럼 침대 위에 죽치고 앉아 빵이나 깨작이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물론 옆에 있는 닥터의 통제를 따라야 하긴 했지만 이게 어딘가?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게 된 장화는 자신에게 보급된 무기들을 천천히 살폈다.

 

 

 

“솜씨 좋네.”

 

 

 

머리카락보다 얇은 철사.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쪽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연마되어 있다.

 

폭탄 역시 마찬가지. 자칫 잘못하면 허투루 날려버리기 일수였던 이전 모델과 달리 확실한 안전 장치로 사용하기에 더 용이해졌다. 

 

거기에 화력 역시 몇 배는 증가했으니 어지간한 싸움에선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콘크리트 벽 정도밖에 부수지 못하는 이전 폭탄과 달리 이건 어지간한 강화 합금 방벽도 부술 수 있다고 하니까.

 

자신을 잡은 장화가 그렇게 강력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의외로 장화에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와이어가 더 이상 붉은색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그걸 누가 만들었는데.”

 

“누가 만들었는데?”

 

“오르카 최정예 공순이 언니들이 했지. 어차피 설명해줘도 모를 테니 최고 중의 최고들이 했다고만 알아둬.”

 

 

 

후줄근한 실험복을 어깨에 걸친 채 으쓱거리던 닥터. 그 모습이 장화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한때 죽어라 싸웠던 상대에게서 이빨을 빼지는 못할망정 더 좋은 어금니를 달아주다니.

 

아니면 죽어라 싸웠던 건 자신뿐이었던 걸까?

 

부정적인 가능성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생각이 없는 건지, 도통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닥터에게서 장화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런 것 정도는 해줘도 죽일 자신이 있다는 건가.’

 

 

 

늘 손수 다듬었던 장비로만 싸워야했던 장화에게 새로운 무기의 등장은 배 이상의 화력 증대를 의미했다.

 

그렇게 강해졌다고 느꼈건만, 어쩌면 오르카의 인간들에겐 그게 그렇게 대단한 변화가 아닐 지도 모른다.

 

고작해야 어린애에게 장난감 검 하나 쥐어준 느낌?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마 비슷하긴 할 거다.

 

게다기 실제로 그런 생각을 뒷받침 해주듯, 아직 장화를 향한 오르카의 원조는 끝나지 않았다.

 

 

 

“무기에다가 기름칠 다 끝났으면 말해. 오리진 더스트 강화 시술 스케줄 잡아놨으니까 움직여야 하거든.”

 

 

 

닥터가 별 것 아니라는 듯 패널을 뒤적이며 말했다.

 

강화 시술. 장화 역시 이번 생을 통틀어 한 번 밖에 받아본 적 없는 개조였다.

 

마리아 리오보로스에게서 한 번. 그마저도 불법 개조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오리진 더스트를 사용하지도, 충분한 양을 투입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효과는 발군이었고, 마리아는 장화를 필두로 더 많은 인간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받는 강화 시술이라 한다면? 그 효과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두려운 것은,

 

 

 

“...오리진 더스트에 이상한 짓을 해놓진 않았겠지?”

 

 

 

그 시술을 핑계 삼아 자신의 모듈에 손을 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해놨으면 어쩌려고?”

 

“시술은 받지 않아도 충분하다 말하려고.”

 

“그래? 그러면 우리야 좋지. 물건 아낄 수 있으니까.”

 

 

 

닥터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냥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신 그건 알아둬. 전에 싸웠던 장화 있지? 그 언니도 묘지로 들어간 적 있었어.”

 

“그 년이 왜...”

 

“왜긴 왜야. 오빠... 아니, 사령관을 구하려 간 거지. 그런데 거기서 까딱 잘못했다가 뒤질 뻔했다. 조금이지만 시술을 받은 상태였는데도.”

 

 

 

툭툭, 손가락으로 패널의 화면을 눌러대던 닥터가 이내 몇 가지 사진이 담긴 보고서를 장화에게 들이밀었다.

 

반쯤 녹아버린 사지. 건틀렛이 끼워져 있을 왼쪽 손은 강산선 용액에 녹아 사라져 있었고, 나머지 멀쩡한 몸 역시 철근 같은 말뚝으로 관통된 채 삐걱이고 있었다.

 

제 얼굴과 똑같이 생긴 바이오로이드의 최후를 바라보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죽어도 골백번은 죽었을 저 모습을 하고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그보다 배는 더 기괴하게 느껴지는 장화였다.

 

 

 

“죽기 싫으면 강화 시술은 받고 가는 게 좋을 거야. 레아 언니나 칸 언니쯤은 되야 상처 없이 나올 수 있지, 저길 단독 작전으로 들어가서 살아나오는 건 미친 짓이니까.”

 

“... 김지석, 이 인간은 자기 묘지에 대체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모르지 뭐. 멸망 전 갑부들은 세상 사는 게 다 퍽퍽했나봐.”

 

“갑부라...”

 

 

 

순간 장화의 머릿속으로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변 데이터를 보니까 해당 섹션을 담당하는 인공지능 때문에 고블린들이랑 시설 내 경비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강화되고 있어. 설비 시설도 거기 있고 철충과 싸운 전투 데이터도 있으니 개량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거야.”

 

“어느 정도로 강하지?”

 

“철충 연결체 하나 정도는 15분만에 죽일 정도? 전에 데이터 추출이 완료된 구역으로 한 마리 들여보낸 적이 있었거든.”

 

“뭐?”

 

 

 

연결체에 대한 이야기는 장화도 드문드문 들어본 적이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달린 두 팔로 바이오로이드 수십을 두부처럼 잘라버리는 모습도 자료 화면으로 본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런 놈들을 15분만에 죽인다고? 전투 시작부터 완파까지 걸린 시간이 15분이라는 얘기는 전투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일방적인 학살로 끝났을 것이란 얘기.

 

하지만 그보다 더 지독한 것은, 그런 놈들을 상대로 살아돌아온 오르카 호의 인간들이었다.

 

닥터는 당연하다는 듯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뭐, 추기경 같은 놈들만 상대하다보니 약해 보이는 걸 지도 모르겠네.”

 

“추기경?”

 

“그런 게 있어.”

 

“... 알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런 곳에 사람을 굳이 들여보낼 생각이다, 그 얘기지?”

 

“그래야지. AGS는 고블린에게 너무 취약하고, 부대 단위로 싹쓸이 하자니 데이터 보안 프로토콜이 발동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그래서 납치해온 바이오로이드를 저곳에 집어쳐넣어 전투 데이터를 뽑아내다, 뭐 그런 건가?”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냥 닥터가 입술을 비죽였다.

 

 

 

“우리 오빠 살릴 방법이 저 안에 있는데 딴 사람한테 그걸 왜 맡겨?”

 

“그럼...”

 

“첫 번째 선발대로 간 게 나였어. 그러다가 뒤질 뻔하고 전투 계열 바이오로이드가 필요하단 거 알았지.”

 

“... 미쳤군.”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행보를 말하는 닥터를 보며 장화는 속으로 질색을 했다.

 

미친년들.

 

세상에 미친년들이 너무 많다.

 

자기 묘지를 유기물 덩어리들이 득실거리는 지옥으로 만든 인간도 미쳤고, 그런 지옥으로 가서 자기들 원하는 것만 쏙 빼먹고 돌아오겠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바이오로이드들도 미쳤다.

 

이곳은 그런 미치광이들의 요람이었다. 묘지가 생존에 미친 괴물들로 가득차 있었다면 이곳에는 사랑에 미친 괴물들이 시장 바닥을 이루고 있다.

 

대체 이런 미친년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사령관이란 작자는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해온 걸까?

 

어쩌면 이곳에서 가장 미친놈은, 이 시설 어딘가에서 자고 있을 사령관일 지도 모른다.

 

장화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간신히 오른손으로 부축했다.

 

 

 

‘... 내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지.’

 

 

 

이런 곳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보고 온실 속 화초라고 생각하다니.

 

물론 온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단지 거기서 자란 것들은 화초라 부르기엔 지독하게도 독종들이었을 뿐.

 

화초라고 부르기에는 미친년들 투성이니...

 

그래.

 

온실 속 잡초.

 

쥐어뜯어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지긋지긋한 잡초들에 더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하는 장화였다.

 

 

 

“여긴 잡초 밭이었구만.”

 

“뭐?”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살아돌아올 수는 있는 거겠지?”

 

“그쪽 실력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래도 죽게 내버려두진 않을 거야. 당신 같이 적합한 바이오로이드는 드물거든. 몽구스 팀 수십을 죽이고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살아돌아올 실력자니까. 우릴 위해서라도 그런 바이오로이드를 버려두진 않을 거야.”

 

 

 

착, 패널을 덮은 닥터가 말 끝을 올리며 묘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하얀 방의 하얀 조명이 장화의 손에 달린 건틀릿을 비췄다. 붉은 도색이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전의 조잡한 장비와는 급이 다른 무구. 자기 대원들을 죽이려 했던 범인에게 이런 무기를 쥐어준 것 뒤엔 그에 걸맞는 음습한 기대가 있으리란 것을 장화는 잘 알고 있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약자는 강자에게 먹힌다.

 

이제 그녀가 들어가야하는 공간을 지배하는 논리는 약육강식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장화를 살아가게 만든 논리.

 

 

 

“... 그래.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묘지 안에 있을 지옥이 꽤나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대강 고개를 끄덕인 다음 정비되지 않은 건틀릿을 마저 마무리했다. 입고 있던 겉옷 속에 폭탄을 체할 만큼 쑤셔 넣고 몇 걸음 움직이며 무게를 가늠했다.

 

철컥, 기다란 와이어가 건틀릿 속으로 스며들 듯 빨려 들어갔고 삐릭거리며 붉은 LED등을 반짝이던 폭약들도 4열 종대로 정렬되었다.

 

이제 해야 하는 건 저 지옥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

 

 

 

“강화 시술이라고 했나?”

 

“응. 일단 몇 단계에 걸쳐서 해야 하는데 꽤 아플 테니까 무서우면 나중에 말해도...”

 

“길게 기다릴 것 없어.”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뻔뻔해져야 한다. 아직 살아서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장화에게 오르카 호의 강화 시술을 거절이란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제안이었다.

 

살아남자.

 

그래야 홍련을 죽이든, 천아를 죽이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테니까.

 

 

 

“바로 시작하자고.”

 

 

 

으득.

 

날카로운 와이어로 손에 묶인 족쇄를 잘라낸 장화가 말했다.

 

 

 

*

 

 

 

고요한 실험실, 사령관이 ‘승급’이라 말하던 강화 시술을 진행하는 개조실 위로 그 모습을 훤히 지켜다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스포츠 경기장에 있는 VIP 시설처럼 시술의 전경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곳.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알코올을 마실 수 없다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파삭.

 

물론, 과자는 된다.

 

옆에서 팝콘을 씹어먹고 있던 미호가 어두운 방 안에서 입을 열었다.

 

 

 

“...이게 맞아?”

 

 

 

파삭. 파삭. 파삭. 파삭.

 

들고 있던 팝콘을 한 움쿰 주워들어 입 안에 쑤셔 넣던 미호의 입이 신경질적인 저작 운동을 반복했다.

 

오르카 호의 대원을 노린 테러범을 손수 잡아온 그녀들이다. 헌데 지금 실험실 안의 풍경이 어떤가?

 

기껏 잡아온 그 테러범의 몸 속으로 소중한 오리진 더스트가 들어가고 있다. 꼴에 고통스러운 듯이 아랫입술을 짓씹고 있지만 그런 사소한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걸 안 죽이고 여태껏 내버려뒀다고?

 

미호는 씹히는 팝콘이 불쌍할 정도로 세차게 아래턱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닥터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사령관님이 없는 상황에 닥터보다 묘지 내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마를 죽이려 한 년인데 왜 저따가 그 귀한 오리진 더스트를 써야 하는 거야?”

 

“혹시 안락사 같은 거 하려는 걸까?”

 

“눈이 있으면 좀 봐라, 멍청아.”

 

 

 

파삭, 파삭, 파삭,

 

옆으로 팝콘 씹는 소리가 하나 더 생겼다. 미호의 입보다 작아서 조금 더 얕아진 소리. 스틸 드라코가 끼어든 것이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불가사리와 핀토가 픽,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분명 닥터가 말해줬어. 저 인간으로 미개척지역에 다시 도전한다고. 보고서를 보냈으면 좀 보라고 내가 몇 번씩 말해줬잖아, 스틸 드라코.”

 

“하지만 난 어차피 봐도 모르는 걸?”

 

“... 시술 받고 조금은 똑똑해진 줄 알았는데, 내가 착각했던 거니?”

 

“헤헤, 그럴 지도?”

 

 

 

멍청한 듯 아닌 듯 바보 같은 웃음을 지어보는 스틸 드라코. 전에 바르그를 상대할 때 보였던 야수성은 어디다가 버리고 온 건지, 지금의 스틸 드라코는 얌전한 강아지 한 마리와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능이 높아져서 저러는 걸까? 복잡한 거 생각하기 싫어서 멍청해진 척을 하는 건가?

 

도통 감을 잡기 어려운 불가사리였다. 그런 그녀가 길게 한숨을 쉬었을 때 옆에서 핀토가 입을 열었다.

 

 

 

“왜일까?”

 

“뭐가.”

 

“저 애는 악당이잖아.”

 

 

 

핀토의 어조는 확고했다.

 

 

 

“악당은 죽여야지. 왜 살리는 거야?”

 

“쓸모가 있다잖아. 지 입으로 미개척지역에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굳이 우리가 죽일 이유는 없지. 안 그래?”

 

“살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뱉은 걸 수도 있지. 저런 걸 어떻게 믿어?”

 

 

 

핀토는 초점 없는 눈으로 장화를 바라보았다.

 

시술이 진행될 때마다 고통으로 뒤덮히는 장화의 얼굴. 어느새 입에는 두꺼운 수건이 둘러져 있었고 장화는 어금니가 부러질 기세로 그걸 씹고 있었다.

 

하지만 핀토에게 그 모습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악종에 불과했다.

 

 

 

“엄마를 죽이려 한 사람이야. 그새 다들 까먹었어? 아무 이유도 없이 엄마를 보자마자 죽이려 한 년이라는 거, 벌써 잊어버렸어? 저건 그냥 악의로 가득 찬 덩어리야. 살려둘 가치가 없는 악당이라고.”

 

“그 판단은 우리가 할 게 아니야. 핀토.”

 

“그럼 누가 하는데?”

 

 

 

핀토는 발작적으로 말 끝을 올렸다. 그 탓에 불가사리의 입에서는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엄마가 하지.”

 

“엄마는 뭐라고 하셔?”

 

“아무 말씀 안 하셔. 원래 그런 분이 아니셨는데... 무슨 생각이신지...”

 

“뭐, 하고 싶은 게 있으시겠지. 이제 출산일도 다가왔으니까 굳이 신경쓰시게 하지 말자.”

 

 

 

다 먹은 팝콘 통을 손으로 휘젖던 미호가 말했다.

 

 

 

“엄마가 아니면 사령관님이 하시고.”

 

“사령관님은 지금 주무시고 계시잖아.”

 

“곧 깨어나실 거야.”

 

 

 

불가사리는 착잡한 얼굴로 대답했다. 

 

‘깨어나지 못하면?’이라든가, ‘얼마나 기다려야 일어나실 건데?’ 같은 반문은 없었다. 그런 질문을 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떠올려야 하는 심상이 그녀들에겐 너무도 가혹했기 때문이다.

 

 

 

“그럼 깨어나시기 전까지는...”

 

“닥터가 하겠지. 다른 지휘관님들은 다른 대륙에서 재건 작업을 하고 계시니까.”

 

“지금 상황을 알고는 계셔?”

 

“아마도. 이곳 상황에 대한 정보를 넘기는 것도 닥터의 역할이니까 알아서 했겠지.”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불가사리는 자신의 뒷머리를 풀어 해치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숨이 가빴다. 가슴이 두꺼운 코르크 마개로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몽구스 팀에서 나름 맞언니 역할을 하던 그녀에게 지금 상황만큼 복잡했던 적은 없었다.

 

추기경의 서기관들을 잡았을 때도, 교황의 피라미드로 밀려드는 철충들을 상대했을 때도 지금처럼 갑갑하진 않았다.

 

그 때는 언제나 자신의 뒤에는 든든한 사령관과 홍련이 서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의 무게가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던 탓이다.

 

 

 

“그냥... 시키는대로 하는 수밖에.”

 

“진짜? 시키는대로 하면 우리는 우리 엄마를 죽이려 한 년의 후방 지원 부대로 들어가야 해. 그게 답답하지도 않아?”

 

“... 답답하지만.”

 

 

 

허나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한테는 뭔가를 책임질 능력이 없잖아.”

 

 

 

그녀들은 강해졌다. 제조캡슐에서 떨어졌을 때에 비하면 몇 배는 강력해졌고, 몇십 배는 지혜로워졌다.

 

하지만, 단지 강해졌음이 자유를 허락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임무는 임무야. 강화 시술은 앞으로 몇 시간 안에 끝날 테니 그 때까지 장비 손질이나 하고 있자고.”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겠지."


"이 임무도, 이 팀도! 다!”

 

 

 

핀토는 붉그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방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쾅!

 

화가 난 눈빛으로 방 안을 한 번 흘겨본 핀토는, 대꾸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문을 닫아버리곤 자신의 방을 향해 돌아갔다.

 

불가사리는 강화 시술을 받는 장화를 바라보며 말없이 핀토를 보내주었다.

 

이해는 간다. 자신이 피흘려 잡아온 악당을 저런 취급해준다는 것이 퍽 불쾌했을 것이다. 그런 악당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임무는 그보다 배로 불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지금의 팀 구성보다 불쾌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해해줘.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까.”

 

“난 괜찮다.”

 

 

 

자신들의 팀에 불온한 외부인이 끼어들었으니까.

 

불가사리는 핀토가 흘겨보고 간 방의 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는 곳에서는 노란 눈동자가 깜빡이며 작게 한숨을 지었다.

 

바르그. 

 

임시로 몽구스 부대에 합류한 그녀가 기다란 대검을 좌우에 찬 채로 입을 열었다.

 

 

 

“제 손으로 잡아온 괴인을 자기 팀으로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나도 아는 감정이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대체 사령관님한테 무슨 말을 듣고 왔길래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변해?”

 

“궁금한가?”

 

“아니, 남의 사연 듣는 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거든.”

 

 

 

미호가 어깨을 으쓱이며 이야기했다. 바르그는 그런 그녀의 태도를 보며 빼려 손을 가져다 댔던 이어폰을 다시 귀에 꼽았다.

 

몽구스 팀이 바르그를 잡아온 그 날, 곧장 이곳으로 보내진 장화와 달리 바르그는 오르카 호의 감금실로 이송되었다. 당연히 무기는 빼앗긴 채로. 그 탓에 그녀를 막고 있던 철장은 꽤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철장이 바르그의 맨손에 반쯤 짖이겨졌을 때, 자신을 아르망이라 소개한 바이오로이드가 작은 쪽지를 들고 그녀를 찾아왔다.

 

사령관이 직접 적어놓았던 쪽지를. 그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람 손바닥의 반만한 크기의 종이에도 다 들어갈 만큼 짧은 내용. 


하지만 바르그가 협조를 약속했던 것은 그 쪽지를 보고 난 뒤 30분 후였다.

 

그녀의 부탁으로 그때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던 것인지 몽구스 팀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배신의 기미를 보이진 않았기에 묵인해왔던 것이다.

 

 

 

“서로 뒤통수 치는 것만 안 하면 상관 없지. 안 그래?”

 

“이야기가 통하는 것 같아 다행이군.”

 

“그래서, 뭐 알려주고 싶은 거라도 있어? 전에는 저기 있는 장화란 바이오로이드랑 같은 부대 소속이었다면서.”

 

 

 

미호는 소파 등받이에 팔을 올리며 가볍게 물었다. 옆에 앉아 있던 스틸 드라코가 그녀의 무릎 위에 놓인 팝콘 통을 장난감 삼아 굴리며 몸을 뒹굴거렸다.

 

언뜻 보면 자매처럼 보이는 모습.

 

 

 

‘...팀이라.’

 

 

 

바르그는 왠지 모르게 속이 답답했다.

 

 

 

“들려줄 만한 정보는 없다. 너희들이 아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이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을 테니.”

 

“그래도 같은 팀이었다면서.”

 

“여제님의 말을 빌리자면 저 녀석은 여제님의 명령을 따르는 꽃이었고, 나는 필요 없는 꽃을 잘라버리는 정원사였다. 자길 죽이려는 정원사에게 동료애를 느낄 꽃이 있겠나?”

 

“의외로 문학적이네. 너.”

 

“여제님의 생각이었을 뿐이다.”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호를 바르그는 대강 흘겨 보내며 시선을 돌렸다.

 

실험실 안쪽에서 기를 쓰고 뜬 눈으로 버티는 장화.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녀의 몸에 박혀 있는 수십 개의 약물 투입용 주사기였다.

 

주사가 박혀 있는 피부가 울렁인다. 혈액을 타고 들어가는 오리진 더스트가 혈관을 팽창시킬 만큼 많았던 탓이다. 겉으로 약이 들어가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하지만 원래 강화 시술이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임을 바르그는 잘 알고 있었다.

 

헌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장화도 마찬가지 아닌가? 저 고집스러운 것이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강화 시술을 받은 날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목이 터져라 내질렀던 비명. 입이 차마 다 뱉지 못한 것은 울컥이는 혈관을 통해 소리쳤던 나날. 그런데 장화는 지금도 똑같은 고통을 겪으며 시술을 받고 있었다.

 

 

 

“... 멍청한 것.”

 

 

 

이곳에서 마취를 안 해줄 리가 없을 텐데. 그럼에도 저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오로지 장화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답답한 가슴.

 

이게 여제님께서 말씀하셨던 연민이란 감정일까?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시선이 흔들렸던 바르그를 옆에 서 있던 불가사리가 말없이 지켜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네.”

 

“... 저기 있는 장화는...”

 

“장화는?”

 

 

 

괜한 옛날 생각이 난 탓이었을까,

 

바르그는 귀에 끼고 있던 이어폰을 뺀 채 말을 이었다.

 

 

 

“불량품이었다.”

 

“불량품?”

 

“원래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개체였지. 하지만 임무를 수행 중이던 19호가 도중에 죽어버린 탓에 급하게 급조된 녀석이었다.”

 

“너무 빨리 만들어져서 하자가 있었다는 얘기야?”

 

“그건 아니었을 거다. 임무 수행 능력은 나름 출중한 녀석이었으니까. 다만 여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팔짱을 끼고 장화를 내려다 보는 바르그의 눈이 묘한 이질감을 띄었다.

 

 

 

“저건 못 써먹을 녀석이라고. 언젠가 잘라버려야 할 꽃이니 적당히 두고 보다가 알아서 죽여버리라 하셨지.”

 

“말 한 번 차갑게 하네. 그래서 왜 그랬데?”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때의 나 역시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고. 하지만 그 전에 여제님께선 돌아가셨고, 그 때부터 내 기억에서 저 녀석은 사라져버렸다. 그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전부다.”

 

 

 

바르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주변에 앉아 있는 몽구스 대원들을 살폈다.

 

누군가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직 더 캐낼 것이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은 의구심. 그리고 배신에 대한 걱정. 신뢰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경멸감이었다.

 

 

 

‘... 괜찮은 눈빛이군.’

 

 

 

하지만 이해는 한다. 아니, 오히려 저렇게 하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여기에 속해 있다는 것 역시 기가 막힐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고작 쪽지 한 장으로 자신의 마음을 돌릴 줄 누가 알았겠나?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사령관이란 자가 상식 밖의 괴물일 뿐이지, 저들의 의심이 과함은 결코 아니었다.

 

 

 

“그게 다라고?”

 

“그래. 이게 다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총평이라도 해봐. 우리가 저 녀석을 믿어야 하는 이유 말이야.”

 

“그걸 왜 나에게서 찾나. 원한다면 저기 있는 본인에게 물어볼 것이지.”

 

“우리 엄마를 죽이려 한 개새끼를 눈앞에서 봤다간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갈 것 같거든.”

 

 

 

으득.

 

미호가 아직 남아있는 단단한 팝콘 껍떼기를 어금니로 아작내며 말했다.

 

 

 

“그 지랄 하긴 싫으니까 물어보는 거야.”

 

“... 그래. 그렇겠지.”

 

 

 

바르그는 조용히 장화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고요한 방 안. 방음 처리된 외벽 덕분에 장화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진 않았다.

 

분명 고통 받는 이가 있는데 이토록 조용한 것은 바르그에겐 퍽 어색한 일이었다.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온 이는 사람의 비명에 익숙해지는 법이었으니까.

 

 

 

“저기 있는 장화는...”

 

 

 

그러니 바르그에게 있어, 장화는 가장 익숙한 바이오로이드 중에 하나였다. 


그것은 그녀가 가장 많은 비명을 몰고 다니는 악종이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믿어도 될 거다. 아마도.”

 

 

 

가장 많은 비명을 지르는 불량품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다.”

 

 

 

바르그는 방 문을 열고 나갔고, 핀토가 걸아나갔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다시 방 밖으로 나온 것은 장화의 작전 실행이 결정된 이튿날 후였다.

 

 

 

*

 

 

 


이젠 반쯤 의무감으로 쓰고 있다. 시작한 외전은 끝내야 한니까.


아무튼 추천,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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