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남색으로 물든 밤하늘 아래, 소녀는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한밤중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바위는 소금기로 절여져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녀에겐 아무래도 좋은듯 했다.

소녀는 가녀린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손에 쥔 채,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렇다. 소녀의 손엔 붉게 빛을 발하며 타들어가는 담배가 꽂혀 있었다.

소녀는 담배를 폐부 깊숙히 담배연기를 빨아들여 음미한 후 뱉어냈다.


"후우"


어둠속에서도 선명히,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라졌다.

그런 소녀을 향해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사내 한명이 다가왔다.

짙은 밤이 만들어낸 그림자 탓인지, 아니면 얼굴 반절을 가리는 긴 머리칼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사내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소녀는 사내가 자신을 본다는걸 눈치채고서 하늘에서 사내로 시선을 돌렸다.


"좋은밤이야. 사령관."


소녀의 말에 사내가 소리없이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소녀가 있는 바위로 올라와 앉았다. 

소녀가 말했다.


"옷 더러워져. 오지 마."


그러나 사내는 말없이 소녀 곁에 앉았다. 둘 사이의 거리는 한뼘 남짓.

사내는 소녀의 주홍색 머리에 손을 올리려다 말고, 담배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피지 말라고는 하지 않을게."


소녀, 더치걸은 피식 웃더니 바위에 담배를 짓이겼다. 

붉은 빛 대신 검게 뭉개져 죽어가는 담뱃불이 거친 음색을 내머 명을 다했다.

사내가 그걸보고 빙그레 미소를 짓자, 더치걸이 말했다.


"됐지?"


따지는 어투지만 실제론 쑥스럼이 대부분, 사내도 그걸 아는지 여전히 웃음으로 답할 뿐이다.

그런 사내에게 더치걸은 말을 이었다.


"담배 피는거 보기 싫으면 피지 말라고 명령하면 될걸..."

"하지만 그러면..."

"그러면?"


더치걸이 올려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것을 놀림 반, 애정 반으로 바라보며 사내는 뜸을 들였다.


"네 의사를 짓밟는게 되잖아."


사내의 말이 끝난 직후 더치걸은 작게 키득거렸다. 

사내는 그런 더치걸을 얼마간 바라본 후, 한참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모래사장과 바다가 맞닿는 곳에 놓여진 잠수함, 둘이 사는 오르카호를 말이다.


"담배피려고 멀리 떨어진거지?"

"알면서 왜 물어봐?"


더치걸은 그렇게 말한 후, 담배를 주머니에 조심스레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어린애들 앞에서 담배를 필 순 없으니까."


사내는 그런 더치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더치걸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지만 그것도 잠시, 이윽고 제 머리를 향해 내려앉은 사내의 손을 편안히 받아들였다.

사내는 그대로 더치걸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너도 어린애면서."


사내의 손길을 음미하면서 더치걸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긴 것만 그럴뿐인걸 뭐"


더치걸은 제 손을 보았다. 

자그마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우악스런 군살과 상처가 곳곳에 수놓여 있다.


"땅을 파고, 광물을 캐고, 뜨거운 열기 아래에서 분진을 마시는게 어린애가 하는 일은 아니잖아?"


더치걸을 쓰다듬던 손길이 그녀의 어깨로 내려왔다. 

더치걸은 사내의 손에 머리를 기대며 말을 이었다.


"LRL이나 코코같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지. 자라지 않는, 생긴 것만 어린아이인 존재.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더치걸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본다. 아직 떠오를려면 한참 남은 태양을 찾고 있는 것이다.


"곧 새해가 와서 떡국을 먹고 나이를 먹어도, 결국 바뀌는건 없는 것 아닐까. 나이라는건 결국 인간님들에게나 의미있는 것 아닐까. 자라고 성장하지 않는 바이오로이드에겐 그저...별다를 것 없는 날 아닐까"


잠시간 뜸을 들인후 밝은 어투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라고 말이야. 쓸데없는 생각이지"

"쓸데없지 않아."


더치걸은 자기보다 머리 둘이상은 큰 사내를 올려보았다. 

사내의 시선은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필시 온화하기 그지 없는 시선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시선만큼이나 온화한 목소리로 사내는 말했다.


"네가 성장했다는 증거니까."


더치걸은 옅게 웃으며 답했다.


"안자란다고 했잖아."


사내는 대답하기에 앞서 제 이마를 두번, 가볍게 두드렸다.


"몸이 안자란거지."


오르카호가 있는 방향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곳곳에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고 형형색색의 빛들이 일었다.


"나는 너희들이 좋아. 콘스탄차도, 그리폰도, 라비아타도, 요안나도, 마리도, 레오나도, 칸과.....음"


사내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다 말하려면 밤새겠지?"

"그냥 오르카호의 모두라고 하면 안돼?"


더치걸의 대답에 사내는 작게 두어번 웃은 후 그녀를 칭찬했다.


"응 그렇네. 더치걸은 똑똑하구나."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투지만 더치걸은 싫지 않은 듯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사내는 말을 이었다.


"...나는 모두가 좋아. 내가 사람이고 너희가 바이오로이드인, 주종관계라서가 아니야. 너희는 너희들 나름의 생각이 있고 개성이 있으니까. 네 말대로 그것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말이야."


차가운 바람이 둘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둘은 어느새 바싹, 몸을 붙여 앉았다.


"...하치코는 원래 미트파이밖에 만들지 못했던 것 기억해?"


더치걸은 질문에 의아해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요즘엔 소완 덕에 적게나마 다른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됐어. 메이드이지만 경호용이라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몇개밖에 없던 아이가, 스스로 요리를 깨우치는게 얼마나 기특하던지. 리리스도 나랑 같은 마음인지 하치코가 실패한 요리를 먹을때도 기쁜 표정이더라고"


사내는 더치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프로젝트 오르카때도 그렇고, 나는 그런 너희들의 모습이 좋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뛰어넘고 스스로 생각하며 하고자하는 너희의 모습이."


더치걸은 처음으로 사내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둠 탓에 본래 색이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사내의 눈동자는 그 어떠한 보석보다 아름답다고, 더치걸은 생각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단순히 광산을 팔 뿐이라면 네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테니까."


사내가 천천히, 더치걸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더치걸은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눈을 감고 저도 모르게 가빠진 숨을 가다듬었다.

더치걸의 이마에 촉촉하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살과 살이 닿는 음색이 일순 이는가 싶더니, 사내의 단단한 팔이 더치걸을 부드럽게 안아들었다.


"그러니까. 더치걸"


더치걸이 눈을 떴을 때, 사내는 더치걸을 양팔로 안아들고 있었다.

더치걸은 한밤중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새해에 대해,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면,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어?"


제 얼굴이 붉어진걸  숨길 수 있었으니까.

사내는 더치걸을 안아든 채, 모래사장을 걷는다.

저 멀리서, 사내를 찾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더치걸은 안긴 채, 여전히 붉은 얼굴로 그러나 안도감 어린 표정으로 눈을 감으며 작게 답했다.


"응. 그럴게."


둘은 모래사장에서 이윽고 몸을 감췄다.

밤이 저물고, 태양이 떠오른 후에야 둘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즐거운 새해 되세요. 주인님!"


이라고 말하는 메이드나


"즐거운 새해 되시길 주군!"


이라고 말하는 배우, 군인, 그외 갖은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 뒤섞여 있었으니까.

그 속에서 둘이 시선을 마주친건 언제였는지 확실하진 않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좋은 새해되길 바래 사령관."


이라고 더치걸이 말하며, 철사로 된 꽃을 사내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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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글 써봄

존나 오그라들고 아무말 대잔치네. 시발 ㅋㅋㅋ

여튼 곧 새핸데 라붕이들 2022년 어땠는지 모르겠다.

좋았던 놈도 있을거고 안좋았던 놈도 있을거임.

라오는 뭐...2022년 개판이었는데 내년엔 좀 잘됐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