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새벽 1시가 넘은 새벽에 달리는 차는 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든 시간, 도로에 달리는 차량은 둘 중 하나였다. 밤에 다녀야만 하는 차이거나 밤에만 다닐 수 있는 차. 왕복 2차선밖에 되지 않는 시골의 작은 길을 새벽에 달리는 차는 대부분 후자였다.

어두운 밤에 검은 고급 세단이 오오마치 알펜루트를 달리고 있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보통 새벽에 관광지를 찾아오지 않았다. 새벽에 세단이 관광지를 방문한 것은 업무목적이 아니었다. 세단의 주인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기야~ 바깥 좀 봐. 눈이 엄청 많아.”

조수석의 앉은 여자의 말이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는 창문에 양손을 대며 말했다. 보름달이 뜬 날이었다. 흰 눈은 달의 흰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달빛은 바깥만이 아닌 조수석도 비추고 있었다. 여자의 귀에 걸린 다이아몬드가 하얗게 빛났다.

“뭐 이정도 눈 가지고. 이정도는 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정도잖아.”

운전하고 있는 남자의 말이었다. 간편한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었다. 아마도 여자의 나이는 두배는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지고 있었고 머리는 흰머리가 나고 빠지고 있었다.

“그치만 산에서 보는 눈은 도시에서 보는 눈이랑은 다른 걸. 자기는 여기가 왜 알펜 루트라고 불리는 지 알아?”

“글쎄? 알펜이라는 사람이 지은 도로라 그런 거야?”

남자는 운전하며 곁눈질로 여자의 가슴을 보며 말했다.

“틀려. 여기가 재팬 알프스거든. 알프스로 가는 길이다. 해서 알펜 루트인 거야. 여기 오기 전에 조사를 좀 했지. 그러면 왜 재팬 알프스인지 알아?”

“스위스 은행 일본 지점이라도 있나 보지. 하하하.”

남자는 재밌지도 않은 농담을 하며 웃었다. 여자는 남자의 말에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따.

“정말. 스위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여기는 우리나라에 있는 알프스 같다. 그렇게 말해서 재팬 알프스라 부르게 된 거야. 자기는 왜 이렇게 모르는게 많아.”

“그건 자기가 아는게 많은 거야.”

사실은 조금은 달랐다. 남자는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 더 정확했다. 재팬 알프스는 스위스 사람이 아닌 영국인들에 의해 붙은 명칭이었다. 알프스에서 살던 스위스인이 재팬 알프스에 오게 되면 알프스에 대한 모욕이라 할 것이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현역 여대생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는데. 이번 학기도 교양으로 뭐 배우는 지 알아?”

“미술교양?”

“아냐. 요즘 시기에는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하더라고. 그래서 영어 교양수업을 듣기로 했어. 어제는 말야, 동사란 걸 배웠어.”

“어려운 거 배우나보네.”

“아냐. 교수님한테 잘한다고 칭찬도 들었어.”

남자는 고급차를 몰 수 있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자신의 야망을 이뤄낸 인물이었다. 어디서도 무시당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여자에게 잘 모르는척하며 그녀에게 맞춰주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산 꼭대기?”

“비밀이라고 했잖아. 도착하면 말해줄게.”

남자의 말에 여자는 피~. 라고 말하며 다리를 가슴으로 끌어당겨앉았다. 짧은 옷을 입었던 그녀의 속옷이 보였다. 남자는 흘깃 바라보았다.

“그러면 구글링해서 찾을 거야. 주변 명소 검색하면 바로 뜰 거야.”

여자가 손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자 남자는 여자의 허벅지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서프라이즈라 했잖아. 뭔지 알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

“치. 그래도 너무 알고 싶은걸.”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집을 책임진 가장의 어깨는 넓어 기대기 편했다.

“몇분만 더 가면 돼. 너를 위해 일부러 준비한 이벤트니까 기대해도 좋아.”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차는 긴 터널로 들어섰다.

“여기 둘이서만 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뭐야, 터널 보려 온 거야?”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다. 남자의 기다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 터널만 끝나면 진짜 장관이 나타날 거야.”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 이 근처에 폭포가 있나보네!”

여자의 말대로 이 소리는 물소리였다. 그것도 수많은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얼마나 많은 물인지 터널의 중간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글쎄? 그럴까나?”

남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남자의 말은 여자로 하여금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아! 정말. 궁금해서 못참겠어!”

여자는 작게 발버둥쳤다. 그러고는 창문을 열고 밖을 보려 했다.

“우왁! 냄새.”

터널에는 공기가 고인 냄새가 났고 창문을 열려 했던 여자는 바로 창문을 닫았다. 그 악취에서는 물 때 냄새도 났다.

“아, 이제 끝이 보이네. 기대해.”

남자는 밝은 터널 끝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유명한 소설의 첫 문장이었다. 그 소설 그대로였다. 나가노현을 지나 토야마현으로 들어서자 보인 것은 눈으로 덮인 높은 산과 그 앞에 있는 웅장한 구조물이었다.

“원래 이곳은 차를 타고 올 수 없는 곳인데, 여기 관리소장이랑 친해서 말야. 살짝 부탁했어. 너를 위해서 말야.”

차를 멈춰 세운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야, 멋져. 저건 다리야?”

남자는 대답대신 차 정면에 있는 검은 대리석으로 된 팻말을 가리켰다.

“쿠로베 댐? 여기에 댐이 있어?”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였다. 이런 고지대에 댐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여자였다. 한편 차속에서도 귀를 울리는 물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차를 몰아 댐 위를 나아갔다.

“자기야, 너무 멋지다.”

여자는 주위 풍경에 감탄하며 말했다. 높이 솟은 눈과 넓은 호수의 물은 달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전 보았던 길가의 눈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낭만적인 곳이었다.

“여기가 정말 나만을 위한 곳이야?”

여자는 감격한 얼굴을 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려 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나 아니면 이런데 못와.”

남자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오랜시간을 참은 가치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굳이 요구를 하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를 잘 알고 있었다.

“자기야, 여기는 아무도 안오는 거 맞지?”

남자는 끄덕이며 양 팔을 의자 어깨에 올렸다. 여자는 머리를 정돈하고는 고개를 숙여 남자의 가랑이로 향했다.

설산에는 댐의 물이 쏟아지는 폭음만이 들렸다. 차에 탄 두사람의 소리는 그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쾌락의 소리만이 들렸다.

“자기야, 어때?”

여자는 무언가를 삼키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겨울이었지만 여자와 남자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있었다.

“언제나 최고지.”

남자는 웃옷을 벗으며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여자도 옷을 허리춤까지 내렸다. 여자가 남자 위로 올라타려는 순간이었다.

“Excuse me.”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꺄악!”

여자는 당황하며 팔로 자신의 가슴과 가랑이를 가렸다. 차 밖에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야, 뭐야? 여기 들어와도 된다며. 뭐 잘못된 거야?”

여자는 당황하며 말했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차문을 잠갔다.

“Hey, here’s not place for fuck.”

바깥의 사람은 거칠게 차문을 당겼지만 차문은 열리지 않았다.

“너희들 뭐야! 어디서 온 놈들이야!”

남자는 차문을 붙잡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서 여자에게 추한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바깥의 사람은 그런 남자를 보고 비웃었다.

“While we talk, Get out.”

바깥의 사람이 권총으로 창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소리부터 묵직한 권총은 장난감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기야, 어떡해. 나 어떡해.”

여자는 발을 동동 굴렸다. 남자는 여자와 바깥의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바깥의 사람은 남자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총구가 차 유리창에 닿았다

“시발, 대체 누구인 거야.”

남자는 손을 떨며 차의 잠금을 해제했다. 덜컹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차의 양쪽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차문을 연 괴한에게 끌려나갔다.

“자기야!”

여자는 비명을 질렀지만 댐의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어둠과 물소리에 모든 것은 묻혀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