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이 있는 오르카호의 주된 공작 중 하나는 오르카호의 모습을 그대로 송출하는 것이다. 보안을 위한 편집을 제외하면 거의 무편집본이나 마찬가지인 그 영상은 펙스나 무소속인 바이오로이드들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은 레모네이드 감마에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하핫!! 재밌네…”

연말을 맞은 부대원들을,감마는 몇시간 째 반복 재생하여서 보고 있었다.

“여기서 포티아가 나오겠지 하나 , 둘 , 셋.”

이제는 등장 타이밍까지 외워버린 감마는 손을 턱에 괴고서 영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적의 용도 나오고.. 잠시 뒤에 사령관도 나오겠지.”

눈이, 내린다.

이런 날이 되면 감마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흰색 수염과 머리칼을 가졌지만 동시에 나이에비해 다부진 몸을 가진 남성. 그가 죽던 날도 이처럼 떠들썩하고 눈이 오던 날이었다. 포세이돈 인더스트리의 회장은 별난 사람이었다. 선인은 확실히 아니었으나 항상 악인이라 할 수는 없는 그런 인간 , 감마의 주인에 걸맞는 호탕하고 자신의 신념과 흥미만을 위해 살아가는 기업인보다는 무법자에 가까웠던 인간이다.  

 “우습지 않아 회장?”

감마는 회장의 얼굴이 삐뚤빼뚤하게 그려진 종이 조각이 담긴 액자를 쓰다듬었다.

 “남은 인간이 저놈 뿐이고 나머지는 다 죽어버렸다는게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더 웃긴 건, 지금이 저놈들에게는 더 행복해보인다는 거야.”

 

자신의 주인이던 회장은 휩노스 병에 걸리고 몇달간은 사람이 포악하게 변해갔다. 마땅한 치료병이 없다는 보고를 했을 때는 처음으로 감마가 회장에게 맞은 날이었다.

짝!!! 병석에 누운 회장은 그 상처가 많고 거친 손으로 감마의 뺨을 후려쳤다.

“당장.. 당장 나가.. 그래서 너는 네 주인이 죽는 걸 보고만 있겠다 이거냐? 네가 그러고도 레모네이드냐는 말이다!! 철충을 잡아다가 뜯어 연구를 하던 뭐든지 하란 말이다!!!”

“..회장.”

“뭐라도 말을 해봐 이 무능한 것아!!!”

“….때릴거면 주먹으로 때리라고!! 화가 났다고해서 좀스럽게 뺨이나 때리는 게 언제부터 우리 스타일이였지?”

회장은 다시 때리려고 들어올리던 손을 다시 자신의 무릎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웃었다.

“하하하하!!! 그래,그래 그 말이 맞지!!! 언제부터 내가 이리도 유약하게 변했는지 모르겠구나”

“확실하게  하라고. 철충이 필요해? 그럼 당장 그 머리를 가져오지. 회장이 할 일은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는 거야. 다른 게 필요하면 전쟁을 해서라도 가져와주지.”

“그래, 그런 화끈한 게 우리 스타일이지. 감마 네 말이 맞구나. 오늘은 이만 들어가봐라.”

그날을 이후로 회장의 폭력적인 성향은 거의 없어졌다. 대신 늘어난 잠과 함께 무기력하게 창문 너머를 응시하는 일은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는 감마에게 다른 일을 시키기도 했다.

“사람이 한가지 일만 잘하는 것은 의미없다. 요리와 청소를 배워라 감마.”

“..난 전투용이잖아? 가정부일은 배틀메이드한태나 시키라고.”

“날 위한게 아니야. 널 위한 거다.”

몇번을 거부하던 감마도 조리법이라도 읽어보라며 권하던 회장에 의해 한두번 뿐 이였지만 식칼을 써보기도 했다.

눈이 내리는 어느 날, 남자는 집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밖으로 옮겼다. 바이오로이드도 , AGS도 쓰지 않고 말이다. 나이들은 몸으로 휘청거리면서도 생전 소중히 여기던 각종 소유권 증서 같은 서류더미들과 가구들을 한곳에 모았다. 잡동사니 더미위에 남자가 별모양 보석을 올려두자 마치 트리처럼 보였다. 입에서 하얀 숨을 내뱉고 , 남자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미친듯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낮은 온도로 인해 맺힌 입 근처의 물방울을 닦으며 남자는 말했다.

“안나 보르비예프, 당신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이건 업보일지도 모르겠군. 아니 분명히 업보일태지. 젊음을 갈망하던 노구들이 자신의 비서만을 남겨두고 떠나게 된다니. 이건 피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일. 허나…”

회장은 물건이 쌓인 곳에 통속 든 액체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휘발유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감마의 날카로운 오감에도 느껴졌고, 감마가 왔을 때는 한 남자의 일생이 담긴 불기둥이 타오르고 있었다.

“뭐야!! 불장난?! 무슨 안하던 짓을..”

남자는 지치는지 땅에 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침 잘왔다 감마. 명령할 것이 있다.”

“이 불은 뭐야, 네가 지른거야? 그나저나 명령이라니 누굴 죽이면 되는거지? 누가 상대냐!”  

“나다.”

“뭐..?”

“이대로 이번에 잠들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겠지. 영혼이 먹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죽음과 다름이 없어.”

“그래서, 죽여달라고?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정말 갈 때가 됐네.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다시가서 누워.”

“이건 예정된 거다. 천벌이고 업보다. 명령이다 감마. 나를 죽이고 나와 관련된 남은 기록도 전부 불태워라. 사진이건 영상이건 전부 다.”

“진짜 미쳤군. 나약한 놈 , 거부한다!!”

“감마 제발. 날 죽여다오. 이 세상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지금 악덕으로 세상을 점칠한 벌을 받는거야. 노예로 부릴 인간이 없어지자 노예로 태어날 인간을 만드는 세상!! 한 여자의 인생을 재미로 위해 파멸시키는 세상!!

남자는 말을 너무 길게해서 인지 가슴을 부여잡고서 기침을 계속하였다.

“이제 세상은 인간의 것이 아니야.”

감마는 남자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그래서, 철충에게 내주라는 거냐? 이 세상의 주인이 철충이 됐으니까 죽어서 도망치겠다고?”

“세상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너희의 것이야.. 명령이다..감마. 날 죽이고…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라..”

 눈이 내리는 날, 추한 인생을 살아온 남자의 일생은 끝났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여자,돈,세계를 주무르던 남자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일생을 후회하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지금은 , 우리의 세상일까?”

감마는 추억에 잠겨있다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회장이 그려진 종이조각과 오르카호의 대원들의 영상이 나오는 패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죽은 당신들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놈들이 있더라. 웃기지 않아? 누구는 도망치듯 죽었는데 누구는 살아나려고 발악을 하는 거 말이야.”

패널속의 대원들은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시켜서,명령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즐겁다는 듯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실행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바이오로이드의 세상.

“딱히 너가 죽지 않았어도 우리의 세상은 왔을탠데.”

사진조차 남기지 못하게 했기에, 남자의 흔적이 남은 것은 감마가 기억으로 그린 어설픈 초상화 뿐이었다. 감마는 그런 초상화 위에 별모양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회장.”

패널에 나오는 영상을 정지시키고, 사령관의 머리 위에도 그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너희들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