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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쓸데없는 폭력 묘사를 줄였습니다.

사실 이번 편은 줄인 게 거의 없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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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닥터는 ‘마지막 승선객을 위한 방’에 상주하고 있었다.

그곳에 잠들어 있는 승선객을 위해서였다.

 

사령관도 종종 그곳을 방문하였다.

그날도 사령관은 닥터와 그녀를 살피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은근한 약물 냄새가 코에 스며들었다.

 

“닥터 ‘치료’는 잘 되고 있어?”

 

“...문제가 생겼어.”

 

닥터는 저번 방문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역시 잘 안된 거야?”

 

사령관은 닥터의 눈을 바라보았다.

천진난만한 닥터도 기술적 문제에 부딪힐 때면 항상 생기없는 눈을 하곤 했다.

 

“...”

 

“...닥터?”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오빠를 설득시켜야할지 모르겠어.”

 

“설득한다니?”

 

“나는 오빠가 말한 ‘낙원’에 찬성해. 가능하면 내가 만들어내고 싶어. 그런데, ‘이브’는 낙원에 가지 못할 것 같아.”

 

“무슨 말이야, 닥터.”

 

사령관의 표정이 굳어진다.

닥터가 사령관을 마주본다.

 

“내가 설계한 ‘낙원’에는 이브의 자리가 없어 오빠.”

 

“설명해줘 닥터.”

 

사령관은 쉽게 흔들리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오빠 일단 우리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볼까?”

 

“처음...?”

 

“응. 작전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작전... 응. 2-NB 구역은 인간 멸망 이후 단 한 번도 수복된 적 없는 적색지대였어. 주요 전선의 물자보급을 위해 탈환할 필요가 있었어. 예상보다 철충의 수가 많아서 둠브링어에게 폭격 요청을 먼저 했지.”

 

“그리고 스틸라인이 그곳에서 잔존 철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길바닥에 쓰러진 저 녀석을 데리고 왔고.”

 

“맞아.”

 

사령관은 처음으로 그녀를 만난 날을 다시 회상했다.

하얀 머리카락과 누더기를 걸친 그녀는 참으로 평온해보였다.

 

“오빠가 다치는 얘기는 건너뛰고, 우리의 예상이 맞다면 저 녀석은 인류 멸망 이후로도 아주 오랜 기간 2-NB구역에서 홀로 철충과 싸워왔어. 그러다가 둠브링어의 폭격에 휘말렸고 말이야.”

 

“그렇지.”

 

“오빠. 뭔가 이상하지 않아?”

 

“...?”

 

“라비아타 통령이 이끄는 저항군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수복하지 못한 지역에서 ‘홀로 철충과 맞서 싸워 살아남은 바이오로이드’ 라는게 말이야.”

 

“솔직히 라비 언니 말이 틀린게 아니야. 이 녀석은 존재 자체가 너무 수상해. 그렇게 오랜 시간 철충과 싸워서 이겨온 전설적인 존재가 있다면 저항군이 모를 리가 없어. 오빠가 깨어나기 전까지 저항군은 전 세계를 이 잡듯이 뒤졌어.”

 

“...확실히.”

 

“내가 라비 언니에게 77년간 활동해왔다고 한 근거는 피부의 노후화 정도를 보고 말한 거였어. 피부의 흉터나 절개한 흔적들이 아주 오래됐었거든. 그 ‘생체 실험’으로부터 적어도 77년은 지났다는 거야. 또 내장에서 발견된 각종 음식물...이라고 할까 벌레들과 작은 식물의 과실을 보고 아주 오랫동안 활동했다고 내가 ‘착각’했었어.”

 

“착각이라니?”

 

“저 녀석은 우리가 예상한 것처럼 어디선가 ‘활동’한게 아니야. 굳이 비유하자면, LRL처럼 활동을 지속해온 개체가 아니라고.”

 

홀로 등대를 지키는 LRL의 모습이 사령관의 뇌리에 스쳤다.

 

“내 결론은 이 녀석은 실험쥐가 아니라 ‘파수견’이라는거야.”

 

“닥터, 난 이해를 못하겠어.”

 

“그러니까 나도 오빠를 어떻게 설득해야할지 아직도 혼란스러워.”

 

“사실 오빠 몰래 한 번 더 녀석을 깨운 적이 있어. 깨워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어. 이번에는 모든 구속 장치를 해제하고 깨웠어. 구속된 상태에서 패닉한다는 건 알고있으니까.”

 

“닥터, 너무 무모했어.”

 

“오빠, 난 확신이 있었어. 그리고 녀석은 내 예상대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어. 포츈 언니가 처음 봤을 때처럼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했지. 하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어. 서 있는 채로 죽어있었어.”

 

“...뭐?”

 

“의식은 분명 각성 상태이지만 전두엽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상태.”

 

“하지만 포츈이 분명 말을 했다고 그랬어.”

 

“맞아. 그래서 나도 말을 걸었어. 그랬더니 전두엽이 활성화 되고...”

 

닥터가 뜸을 들인다.

이제껏 사령관을 가르치듯 경쾌하게 설명하던 닥터답지 않았다.

 

“말하더라고. ‘누구야?’라고.”

 

사령관은 기억을 다시 더듬는다.

포츈의 물음에도 그렇게 답했었다.

 

“그래서 대답해줬지. 최대한 오빠가 말할 것 같은 대답으로 말이야. 여긴 오르카호고, 묶어놔서 미안했고, 또 이제 안전하고...”

 

닥터가 또 뜸을 들인다.

 

“닥터, 계속 말해줘”

 

“그런데, 몇 번을 대답해도 말이야. 움직이지 않아. 대답은 하지 않아. 대답 대신 질문을 해. 질문도 바뀌지 않았어.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하고. 마치 고장난 인형처럼.”

 

“...!”

 

“지금이라도 보여 줄 수 있어. ‘누구야?’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녀석을.”

 

사령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아버린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사령관은 진실에 눈을 돌리고 싶지도 않았다.

 

“...조금 정리할게 오빠. 내 기준에서 저 녀석은 자아가 없는 생체 인형이야. 구식 전자칩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 묶으면 비명을 지르고, 배가 고프면 땅을 파서 벌레를 먹어. 자극을 주면 ‘누구야?’라고 대답하고, 철충이 느껴지면 공격해.”

 

“...”

 

“파수견. 그저 하루종일 서 있다가 철충이 오면 공격하고, 배가 고프면 땅을 파고. 잠을 자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움직이지 않는 모든 시간이 잠든 것과 다름없으니까. 저런 단순무식한 알고리즘을 가지고도 오랜 시간 살아있었고, 저항군의 정찰에도, 둠브링어의 폭격 과정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은 ‘폭격 이전까지 지상에 없었다’는 뜻이야. 라비아타 통령의 의견이 반은 맞았어. 폭격에 휘말려 숨겨져 있던 곳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게 내 결론이야 오빠.”

 

“...”

 

사령관은 두통을 느낀다.

사실 사령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라비아타를 설득시킨 논리에는 허점도 비약도 많았다.

자신이 공격당했다는 사실에 흥분한 라비아타를 진정시키는 것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을.

 

“‘저건’ 낙원에 도착해도 똑같이 행동할거야. 하루종일 백치의 상태로 서 있다가 배가 고프면 땅을 팔거야. 누군가 말을 걸면 똑같은 질문을 할 거야. 오빠. 그런 곳은 내가 생각하는 낙원이 아니야.”

 

사령관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충격을 받아 흐릿해진 정신을 이끌고 사령관은 방을 나선다.

 

사령관의 등 너머로 닥터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사령관은 알아 듣지 못 했다.


+

 

부상 2주가 되는 날, 사령관은 팔의 깁스를 풀어냈다.

목 보호대가 아직 남아있었지만 사령관은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손가락을 움직이는 감각이 상쾌하였다.

 

‘이젠, 혼자 씻을 수 있다! 하반신만 벗겨진 채로 씻겨지는 일 따위, 이젠 사절이야!’

사령관은 헛된 희망을 품었다.

팔을 움직일 수 있다 한들 사령관이 저항하는 시간이 조금 늘어날 뿐, 바이오로이드의 완력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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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읽어도 되는 작가의 말

쓴 글들을 정리하다 보니 문학의 모티브가 생각났습니다.

바이오로이드의 사전지식이 전자칩에서 기인한다는 걸 보고 ghost in machine 심신이원론에 대한 생각과

반려견 개물림 사고에 대한 생각이 합작 되어 나온 문학입니다.

중2병 걸려있던 시절에 쓴 문학이라 결말을 수정할까 심히 고민 중입니다. 


중간 중간 개그를 조금씩 삽입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이후의 전개가 조금 시궁창이니

순애파 사령관님들은 3편이 완결이라고 생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