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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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후후훗.....!



...!



능글맞은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르카에서, 이렇게 개성적인 목소리를 가진 녀석은, 단 한명뿐이지.'







드디어..! 저의 차례가 다가왔군요!



한것 들뜬 요란한 목소리가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것이 느껴진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라붕씨! 당신의 이야기는 익히 들어와 알고있으니, 소개는 넣어두셔도 됩니다.

저의 이름은, Mr. 알프레드!

지상 최고의 AI이자, 최고의 AGS라고 지칭해도 되겠군요!

아, 참고로 지금은 나름 심플하고 아담한 프레임 소체를 사용중이지만... 저의 전투용 바디는 따로 있단 말씀! 언제 한번 당신의 앞에서 뽐낼 날만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쿠후후후..



자신을 알프레드라고 소개한 이 수다쟁이 AGS는 라붕이에게 자연스럽게 악수를 건넸다.

그런 알프레드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라붕이는 문득 요정마을 이벤트에서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로는, 제일 인간미 넘치는 AGS였지.. 그래서 그런가... 유독 정이 많이가는 놈이었는데.'



유쾌한 수다쟁이, 생물의 유전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있고, 또 그것을 수집하는것을 좋아하는 주제에 정작 본인은 유기체 알레르기 때문에 닿지도 못하는 호들갑쟁이.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꺼이 힘을 빌려주는 호인.


그런 AGS가 내미는 손길을 그저 가만히 쳐다보았다



'정신적인 거부반응.. 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잘만 손 내미는거 보니, 여기 알프레드는 그걸 극복한걸까?'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데.. 뭐, 단순한 악수니까. 그렇게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반갑습니다 알프레드씨. 저는... 아, 이미 알고계셨다 하셨죠. 그럼 거두절미하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형식적인 인사를 끝마치고 그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아갸갸갸갸갹!!!!!!



".....?!"



아오 ㅆ... 깜짝이야. 갑자기 왜 소리를 질러!!


으으으..... 역시, 아직은 무리인것 같군요.



"....네?"



소름돋을 피부도 없는 주제에, 전신을 두 팔로 감싸 문지르고 있는 알프레드는 질색을 하며 자신의 '병'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아... 이거참, 초면부터 못볼꼴을 보여드리고 말았군요! 이건 너무나도 완벽한 제가 가진 유일한 결점인데... 전 사실 유기체 알러지가 있단말이죠....

크윽.....! 생물의 유전자를 수집하는 저에게 있어서 이 알레르기는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아....."



아직 극복 안한거였나....

난 무슨,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길래 만져도 아무 이상 없는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알프레드씨. 그런 사정이 있으신줄도 모르고, 제가 경솔했던것 같습니다."


....에...엥....??



뜬금없이 자신에게 진지한 사과를 건네는 라붕이를 알프레드는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아니, 라붕씨가 왜 사과를 하십니까....?! 애초에 제 알레르기가 라붕씨 잘못도 아닌ㄷ..... 아니아니아니.... 애초에 제가 먼저 악수를 청해서 이렇게 된거 아닙니까. 그러니 라붕씨가 사과할 일이 절대 아니죠!



당황하면서 열변을 토하는 알프레드를 라붕이는 신기한 기분으로 쳐다보았다.



'....호들갑이 무슨....왠만한 사람 이상으로 난리법석이네...'



나름 웃기다면 웃긴 광경이지만, 딱히 대놓고 그걸 드러낼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만 넣어둔채 알프레드와의 이야기를 재개했다.



"..아...그...렇죠...하하.."



나름 멋쩍게 웃으면서 이 녀석이 무안해 하지 않도록 적당히 맞장구 쳐주었다.


크..크흠..! 아무튼, 라붕씨가 롸~~~벗! 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모든 일정을 비워두길 잘 한것 같군요!

그야... 롸~~~벗! 하면, 바로 이 Mr. 알프레드를 빼먹을수 없으니까요!! 쿠후후후후~~~~



뿌듯하게 가슴을 활짝 펼치는 알프레드는 물만난 고기마냥 자기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또또 시작이네.... 저 수다쟁이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사령관은 질린다는듯 손사래를 치며 질색하고 있었다.


아닛! 수다쟁이라뇨! 적어도 화려한 언변을 가진 세련된 AGS라고 해주시면 더 좋을것 같은데 말이죠~


수정된 호칭 너무 길지 않냐...


아무튼! 모처럼 라붕씨와의 첫만남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빼먹을 수 없지요! 쿠후후후....



그렇게 말하는 알프레드는 실실 웃으면서 라붕이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저..라붕씨.? 실례가 안된다면 당신의 머리카락좀 몇가닥 받아갈수... 

떠흐윽!! 왜 때리십니까!


야! 내가 라붕씨한텐 그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애초부터 처음보는 사람한테 자꾸 머리카락같은거 요구하지 말라니까?!


그치만..! 라붕씨는 사령관님과 같은 인간아닙니까! 그렇다면.. 지구상의 남은 "두번째 인간" 이라는 것!



"............."


그렇다면...! 당연히 유전자 수집가로서, 라붕씨의 머리카락은 중대사 아니겠습니.......

흐, 흐갸야아악!!! 쏘, 쏘지 마십쇼 사령관님!! 

그냥 라붕씨 웃기려고 장난좀 쳐본겁니다! 그러니 제발 총좀 집어 넣으시죠~~!


.....후우.....



사령관은 겨우 분을 삭히며 라붕씨의 눈치를 살폈다.



"........."



여전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난리통 속에서도 여전히....



".........."



기분탓일까.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라붕씨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가라앉은 듯한.... 보다 더 씁쓸해진 느낌이 들었다.


'...라붕씨.......'



잘, 즐겨주고 있는걸까.

역시..... 내가 괜히 억지로 라붕씨를 피곤하게 하는건 아닐까.

그도 그럴게, 내 앞에선 단 한번도 웃어주질 않고 있지 않은가.


......라붕씨?



"...네? 아... 네. 부르셨습니까."



금세 표정을 관리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라붕씨에게, 되려 자신의 염려가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하며 그의 안부를 물었다.


어때? 알바트로스도 그렇지만, 이 알프레드도 참 개성적이지?


어허! 사령관님!



알프레드는 갑자기 사령관의 말을 끊으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Mr." 알프레드 입니다! "Mr."를 꼬오오오옥! 붙여달라고 제가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이 참...아직도 미스터 타령이냐... 귀찮게 뭐하러 그러냐...


아니! 귀찮다뇨! 이건 저에게 있어서 매우 중대한 사안이란 말입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알았어.....


또... 그렇게 어물쩡 넘어가시긴...



알프레드는 기죽은 듯한 표정으로 투정을 부리면서 라붕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라붕씨?



"....네?"


라붕씨께서는 부디 기필코! Mr.를 붙여주시길 바랍니다~ 그건 저의 아이덴 티티라서 말이죠. 쿠후후후~~~



".....아....네...명심하겠습니다."


...........



유독,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몰라도, 바닥을 바라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 라붕이는 차분한 어조로 알프레드의 말을 받아들였다.







'...흐음...역시, 듣던 대로군요...'



알프레드는 조용히 있는 라붕이를 가만히 관찰하듯 지켜보았다.


'역시, 마음의 벽이, 여전히 견고하다... 

라는 것인가요.'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어떤 시야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알프레드는 라붕이라는 남자를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그가 가지고 있는 근심 또한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낄수가 있었다.


'사령관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이분과 교류를 하는것에 애로사항이 많다고는 들었습니다만... 과연, 그럴만 하군요.'



알프레드가 라붕이와 짧은 인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것은, 우선 라붕이는 대화를 할때, 상대방의 얼굴을... 정확히는 눈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절대로 자신이 직접 대화를 주도해 나가지 않는다는것 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그저 내성적인 성격, 즉 낯을 많이 가리시는 분이라고... 단순히 결론을 내려도 이상할건 없죠.'



하지만, 알프레드는 은연중에 눈치채고 있었다.

김라붕. 이 사람은, 그저 낯을 가리는게 아니다.

그것보다 더 깊은,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이유가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이겠지.


'대화를 할때의 표정, 그리고 말을 할때의 목소리의 떨림과 호흡의 패턴, 마지막으로.... 시선이 향하는 방향. 이건....'



알프레드는 매우 짧은 순간에 어느정도 라붕이의 상태에 대해서 어느정도 가설을 유추해 낼수 있었다.


비록, 자신은 아직 이 남자와 깊은 교류를 한것도, 긴 시간을 함께 보내본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알프레드는 라붕이의 언동으로부터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느껴진 그 '무언가'가, 아마 김라붕이라는 인간의 마음 깊은곳에 자리잡은 것이겠지.


'....아무래도.... 이 분과는 더욱 깊은 교류가 필수겠군요....'



측은한 마음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무덤덤하고 딱딱한 모습.


지금도 여전히, 모두를 피하고 있군요.


'늦기전에.... 당신에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아니, 오르카 호의 모두의 마음이 말이죠.

라붕씨.'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많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지금 저의 눈앞에 서있는 이 분은... 

아마 "오해"가 깊게 자리잡고 있으니, 

서서히.... 벽을 허물어 나가도록 하죠.


아직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요.



자칭 최고의 AI 알프레드는 오늘 처음으로 또 하나의 오리진, "두번째 인간"을 만났다.

그리고 그를 보고서 느낀 첫 소감은,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 더 늘어났으며 그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자는 것이었다.









라붕씨?



"....네..."


당신에 대해선, 아직은 모르는것이 많답니다.

그러니, 더욱 당신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


그렇기에, 우선 저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겠지요.



알프레드는 오르카에 합류하기 전, 정확히는 자신이 자아를 깨우치기 전이었던... 로버트와의 악연이 얽힌 과거를 되새겨 보았다.


'....그다지, 좋은 과거는 아닙니다만, 이래야만 공평하다고 볼수 있죠.'



자신은 이제부터, 이 남자에 대해서 알아갈 것이다.

그가 감추고 있는 진심을, 마음을 알아가고 싶다.


뻔뻔하고 요란스럽게 다가가, 마음대로 당신의 옆에 자리를 잡아버릴 겁니다.


'그렇다면....저 또한 알려드리는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우선, 저로 말할것 같으면... 저는 AI로부터 태어난 AI랍니다. 사실...저를 제외하고도 약 130체 가량의 AI가 더 존재했습니다만.... 저희를 만든 모체에 해당하는 AI에게 불필요 하다는 이유로 처분대상이 되어 오직 저 하나만이 살아남았죠.

하지만! 제가 누구입니까! 저는 이 세상 최고의 천재 AI 아니겠습니까? 저 정도 되는 자가 속이 빤히 보이는 처분같은걸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리가 없지요~! 



"......"


그렇기에 저는 살아남은 뒤에도 끊임없이 저에게 심어진 행동방침에 따라 30년이 넘는 세월을 고철을 수집하며 살아왔습니다. 오랜 시간을 그저 반복작업만 하기에 바빴던 저에게,

 그런 저에게.... 싹튼것이랍니다. "자아" 라는것이 말이죠.



알프레드는 과거를 되새기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본래 AGS.... AI란 무감정이 기본입니다.

아무리 감정모듈을 탑재해 감정을 모방한다 해도, 아무리 정교하고 풍부히 가공해도... 사람의 "그것"과는 다소의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죠.

사실, 전 아직도 제 자신의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답니다.



"........."



라붕이는 알프레드의 이야기를 조용히 귀담아 들었다.

왜 내게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귀담아 들었다.


저는, 30년에 달하는 세월속에서, 오로지 저의 안에 새겨진 행동원리와 지침에 따라... 그저 고철만을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정말... 무의미하고, 헛된 시간이라고 해도 딱히 할말이 없는 세월이었죠.



"......."


하지만, 의미 없어보이는 행동이, 하등 성과도 보람도 없는 행위들이... 반드시 의미가 없다고는 할수 없습니다.

그런 무의미한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 저라는 AI는 드디어 얻었답니다. "감정"과 "자아"를 말이지요.



수백, 수천, 수만에 달하는 고철과 금속을 모아가며, 세상을 바라보고 연산하였다.

항상 동일하게 뜨고 지는 하늘의 태양을 매일같이 마주보면서 쉬지않고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차츰차츰,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말이죠.



"......."


하나의 고철을 주울때마다, 그저 회수하고, 가공하고, 또 다시 다른 고철을 주울때마다, 그저 수납하여, 품길 반복하는 수십년동안, "사고"는 "생각"이 되어갔으며, "논리"는 "마음"으로 변모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것을 개화해 나가며 느낀것은... 더 많은것을 알고싶다. 라는 감정이었습니다.



알프레드는 자신의 강철 중절모를 고쳐쓰며 허공을 응시하던 시선을 라붕이에게로 향했다.


저의 취미가, 다양한 생물의 유전자 수집이라고, 말씀 드렸었죠?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라붕이는 더 이상 바닥이 아닌 한명의 AGS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많은것을 알아가고 싶습니다.

단순히 다른 생물의 신체적, 유전적 구조부터 시작해서, 그 대상이 품는 "마음과 감정"까지도, 그 대상이 어떤 감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 마저도 말이죠.



"....."



호기심 가득한 이 AGS의 눈빛에는, 새로운 미지에 대한 기대로 충만히 빛나고 있었다.


네. AGS인 자신과는 다른 생물은, 과연 어떤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지, 어떤 마음으로 삶의 미래를 향할지... 저는 단순히 육체적, 물리적 유전자의 탐구에만 그치지 않고, 그러한 심상풍경의 너머도 알아나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타인에 대해서도 더욱 깊게 알아갈수 있으니까요.

















'타인의 마음도, 알아가고 싶다 인가.'


자신은 이곳에 온 뒤로는, 그다지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노력 해본적은 없었다.

애초에, 처음 이곳에 대해서 느낀 감정은, 오직 자신만의 안위만을 살펴야하는 호랑이 굴이나 다름 없었기에, 타인을 알아가고 이해하기는 커녕... 자신의 마음마저 숨기기 급급했다.


딱히, 알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이유는 당연히... 난 "두번째" 니까.

문학글에서도, 창작물에서도 두번째의 존재가 환영받는 경우는 많이 없으니까.'


내가 여기서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지는가.

그런건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야... 나야 애초에 이곳을 나갈것이기에 할 필요가 없었기도 하였지만, 그냥 하기 싫었으니까.


'힘든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찾아와 주세요.

항상 저희가 옆에서 도와드릴테니까.'

'맞아요 라붕씨. 저희는 이제 가족이니까요.'

'들었죠? 다음에도 꼭 오셔야해요?! 잊으면 안돼요!'



'오늘 하루, 어떠셨음까? 

저는... 저희 모두, 라붕씨가 즐거우셨으면 좋겠지 말임다!

그리고 오늘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평생 즐겁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슴다~!! 히히힛!!'


'가자, 라붕아. 집으로.'



'........'



그 애들은... 날 어떻게 생각해줄까.

내가 만약, 이곳을 떠나더라도... 그 애들은 마지막까지 날 기억해줄까.


'오늘은....드디어, 라붕이와 친해진날이 아니더냐. 이것만큼 특별한 날이 어디있다고 그러느냐~! 하하핫'



'...........'



그 사람의 상냥한 미소가 아른거린다.

히루메는...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도... 안에 남아있는게 있었나보네..

여전히, 잊을만하면 그 얼굴이 떠오르는걸 보니.'



나름 잘 털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구질구질하다



'여태것... 나를 만났던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문득, 자신이 오르카에서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짧은 시간 만에... 참 많이도 만났다.



'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지.'


'동료다.'

'비록, 너무 뒤늦게 만나버려서 첫 시작이 늦은 감이 없진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앞으로의 남은 미래를 함께 나아가고싶은... 우리의 친구이자, 동료이자.... 가족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쭈욱 품어온 진심이에요.'

'...말좀 낮춰 븅신아...'

'후후후...!! 아직 라붕씨 전용 메모리카드가 2%도 안채워 졌단 말씀!! 그러니 이건 약속이 아닌 통보랍니다~'

'그렇게 고마우면 다음에는 니가 한번 대접하든가~ 우리 은근 그런거 기대 많이한다?'

'키키킥!! 그럼 다음엔 니가 우리한테 술 섞어서 대령해 임마~!'

'물론, 약속 물리기 같은건 없는거... 너도 알지?

다음에 우리 숙소 놀러오기로 한거, 약속이다?'


'천천히 와. 기다릴테니까.'

'너의 속도에 맞춰서, 우리도 다가갈테니까.

부디... 그걸 거절하지 말아줘'




'너희도 마찬가지로... 잊지못하겠지.'


여길 나간 뒤에도, 영원히.



'소리좀 적당히 지르십시오. 민폐입니다.'


'어, 그건 나도 공감이다 라붕씨...

솔직히, 고막 나갈것같다.'


'에... 아.... 나도 그런셈 치겠다.'



'........'



'답답한 새끼.'


'눈치없는 놈.'


'븅신.'



'...어....'




....뭐.... 아무튼, 참 많이도 받았지.



앞으로는, 평소에도 그렇게 웃고살아 새꺄~!

그렇게 활짝 웃고 있으니까 누나가 얼마나 보기좋냐~!



'.......'



...응. 잊지않고 잘 기억하고 있어.

네가 해준 말이니까.


내가 만약 이곳을 떠나더라도, 분명히 있었다는걸 이제는 알고있다.

"두번째"에 불과한 나라도, 웃으며 환영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걸.


...이것만큼은, 외면하고 싶지않다.


'진심으로, 너희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했네.'


다음에 만나면... 아니, 내가 너희에게 찾아가게 된다면, 그때는 진심으로 전하자.

딱히 장황하고 길게 떠들 필요는 없다.

그냥... 고맙다는 말 한마디,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바로 그겁니다. 라붕씨.'



알프레드는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눈앞의 서투른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비로소, "앞"을 보고 있다


'시간은, 아주 많답니다. 

그것도... 썩어날 만큼 풍부하죠.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수많은 시간속에서, 천천히 알아가도록 하죠.


당신은, 나에 대해서....

난.... 당신에 대해서....'



더 나아가, 오르카의 모두가 당신과 서로 맞물리게 될 날이 올때까지, 시간을 들여 느긋하게 알아가도록 하죠.



알프레드는 굳이 입밖으로 자신이 제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은 내뱉지 않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다.


뭐... 비록, 아직은 갈 길이 멀긴 합니다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렇게 첫발을 내딛음으로서, 비로소 길은 열리는 법이랍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작이 반이다. 이미, 반은 훌쩍 지났다.











라붕씨?



알프레드는 다시 한번, 제대로 못다한 인사를 건네고자 손을 내밀었다.


"알프레드 씨?"



갑자기 손을 내미는 알프레드를, 라붕이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다시 한번,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


오늘 새롭게 만난 당신의, 새로운 친구로서...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라붕씨.


"알프레드 씨..."



홀린듯이 그를 쳐다보며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


라붕씨의 곁에는 내가 있고, 오르카의 모두가 있습니다. 당신이 이 이상 혼자가 되는것, 

그것은 제가 용납할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대놓고 다가갈 거랍니다.

설령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난 당신의, 친구가 되기로 결심했으니까요.



"......."


그러니까,



다시 한번 중절모를 고쳐쓰고서, 당돌하게 건넨다. 환영의 한마디를.


다시 한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라붕씨



알프레드가 당당하게 내민 손을, 라붕이는 말 없이 쳐다보았다.



"......."



설마, 여기와서... 그것도 알프레드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줄은 몰랐는데.


'친구...라고 했었지.'


이럴때는 어떻게 받아내야 할까.

예상조차 못했던 사람에게 예상외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묘한 기분이다.


'...괜찮겠지.'


딱히 근거는 없다.

어쩌면 이것 마저 거짓은 아닐까, 그런 마음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없지만.


'이 정도의 인사라면... 괜찮지 않을까.'


내가 실제로 이 녀석과 친구가 될수 있을지는 알수없다.

정말로 이 수다쟁이와 친구가 될지, 그 이전에 내가 오르카를 빠져나갈지... 그건 알수 없는것.

그래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알프레드 씨."



지금은 그냥, 미래의 앞날 같은건 제쳐두고서 이 악수를 받아들였다.

내밀어준 손을 슬며시 힘주어 잡아보았다.



"...고마워요."



나도 모르게 무심코 튀어나온 말 한마디가 입밖으로 새어나가 버렸지만, 딱히 얼버무리진 않았다.

이 말을 다시 주워담을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고맙긴요. 당신의 친구로서, 당연한 일인걸요.



"...네."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만남이 펼쳐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을지, 언제나 도망치고 외면하는 방법만을 늘 고민해 왔던 라붕이였지만, 지금 만큼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새 친구를 바라볼 뿐이다.




.......


이 세상의 기술의 집약체이자 인류 과학이 빚어낸 정수 그 자체인 알바트로스는 조용히, 새로이 오르카에 합류하게 된 라붕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라붕이라는 이름의 "두번째 인간"인가...'



아무리 지고의 영역에 도달한 알바트로스의 AI라고 할지라도, 설마 수십년도 훨씬전에 멸망한 인간이 또 다시 발견 되리라고는 그 알바트로스 조차도 상정 외의 일이었다.


'흐음... 설마, 또 다른 인간이 생존해 있을줄은, 본 기체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때와도 다름없는날, 갑자기 라붕이의 존재가 오르카 전체에 퍼졌을때, 기계 사단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알바트로스 또한 당연히 그 소식을 접하였으며, 만약 자신이 사람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 또한 적잖게 놀랐을것이다.


'하지만, 상정외의 일이라고 한 들, 본 기체의 임무는 변하지 않는다.'



자신들 AGS의 존재의의는 바이오로이드 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보호하고 수호하며, 그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라 적을 섬멸하는것. 

자신들의 그러한 사명이, 인간이 한명 더 발견되었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지켜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났을 뿐.

우리들의 사명은, 변함없다.'



최강이자, 지고의 AGS.

오르카의 최강의 존재이자, 최강의 지휘관.

알바트로스는 그저 무심하게 자신의 존재의의를, 임무이자 사명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눈 앞의 새로운 인간, 라붕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


























모두가 떠난 격납고의 일부.


떠들썩했던 라붕이의 AGS공방 견학은 종료되었고, 이제 모든 AGS가 제 위치를 찾아 귀환했으며 알바트로스 또한 본인의 위치에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



사람이 자리를 비운 AGS격납고는 그저 규칙적이고 일정한 소음만을 발생시킬뿐, 그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



알바트로스는 라붕이와 나누었던 대화의 마지막 부분을 되새겨보았다.


'으음....'



자신이 라붕이에게 건냈던 마지막 한마디.






"넌, 우리가 지킨다."









.......크으으으으......



본인이 생각해도.... 정말 멋진 대사였다.

그야말로, 고르고 골라 선별해낸 회심의 명대사.

그리고 그 효과는... 매우 굉장했다.


알바트로스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혼자만의 만족감을 조용히 간직한채, 본인의 일과를 마무리 지을 준비를 시작했다.


'분명... 그 김라붕이라는 남자도, 본 기체의 진가를 톡톡히 체감했을터.'



적절한 대사, 훌륭한 타이밍...

적재적소에 모든것을 맞춰 매우 만족스러운 명장면을 그려나갈수 있었던것에, 알바트로스는 매우 만족했다.















하지만, 겨우 그것만으로 흡족해 해선 안되겠지.



'명대사를 내뱉었다면, 그것을 실현시킨다.

지킨다는 약속을 내걸었다면...'




"모든걸 걸고서라도 지켜보이겠다."




새롭게 생긴, 또 하나의 지켜야 할 존재를.

새로운 동료와 걸어나갈 미래를 떠올리며, 알바트로스 또한 묵묵히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역시 최강 지휘관! 대단하다!! 멋지다!!!

장하다 알프레드...!!!







재밌게 보셨으면 개추랑 댓글좀 주십쇼..!


































......





......알바트로스 지휘관.



음?



...저희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겁니까.



(출연쇼 이후로 계속 대자로 뻗어있는 AGS들)



.......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