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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의 눈을 현혹시키는 이런 추잡스러운 매체가 돌아다니는 환경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데이터베이스 째로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세크메트, 좀 냉정해지도록 해요. 애초에 그런 건 불가능하잖아요. 그보다는, 사령관님이 왜 이런 것을 찾아보게 되셨을까를 고민해보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겠어요?"

"주인님... 왜 저희를 놔두시고 이런..."

"주인님,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셨으면 천천히 말씀하셔도 돼요. 다만, 어떤 얘기를 하시더라도 제 '보속'의 이름을 걸고 진실만을 말씀해주세요. 저희의 보살핌이 불만족스러우셨다던가, 저희의 매력이 부족했다던가... 어떤 이야기라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 제발..."


아직도 끝나지 않는 언쟁이 오가는 어슴푸레한 취조실. 모두가 움직일 때마다 어둑한 조명에 가려졌던 침통한 표정이 언뜻언뜻 비쳤다. 항상 심문하는 위치에 앉아 있다가, 처음 심문받는 자리에 앉아보니 생경한 느낌이었다. 항상 모성이 넘치는 부드러운 미소로 날 바라봐주던 아이들이 드물게 굳은 얼굴을 향해오니 박력이 장난 아니었다. 심문실 테이블 위에 놓인 외장 하드를 보며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 세크메트, 눈썹에 힘을 주며 지그시 고민에 빠진 프리가, 항상 두르고 있던 마이페이스도 옅어지고 조금 딱딱한 분위기가 된 세레스티아, 평소와 같은 온화함을 가장하지만 가장 무서운 마리아까지...


크리스마스에 야동 보면서 혼자 딸 잡다가 들킨 것에 대한 처사로는 너무 큰 대가가 아닌가 싶지만, 엄마부대에게 그런 지리멸렬한 변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내가 딸감으로 삼은 야동도 문제였다. 차라리 탈론페더가 공급하는 영상물로 쳤다면 "어머~ 주인님도 참. 저희가 그리우셨다면 말씀만 해 주시면 됐을텐데~"라며 너스레를 떠는 마망들과 그대로 성야를 담뿍 즐기느라 지금까지도 쥐어짜이고 있었을 거다.


그래, 문제의 핵심은 그거였다. 내가 아이들의 질내에 쏟아부어야 할 정액을 티슈에 낭비한 것도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겠지만, 나를 심문실로 끌고 올 만한 안건까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왜, 왜 멸망 전에 제작된 음란물을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신 거죠, 주인님?"

"그것도 하필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인간 여성이 나오는..."


그래, 바로 이거였다. 그리고 나는...


"아니, 그건... 그건 그냥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우연히..."

"말 돌리지 마시지요!"


초라한 변명은 엄격한 질책에 쏙 들어갔다. 그런데, 진짜로 억울했다. 쪽팔려서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원래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이것저것 넘기다 보면 만족할만한 부분에서 피니쉬할 기회를 놓칠 때도 있는 법이었다. 그때는 어쩌다 타이밍 상 운 없이 인간 배우가 나오는 영상에서 빼게 된 것일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요~ 제 입으로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인간 분들의 기호에 맞게 제작된 저희들이 더 사령관님의 취향에 부합하지 않나요? 성적 매력이나 외모라면... 어중간한 오리진 더스트 시술을 받은 성인물 배우 정도로는 저희들과 상대가 안 될것 같은데요..."


은근히 섬뜩하면서도 날카로운 이야기를 하는 세레스티아였다. 항상 여유를 가장하는 듯한 유들유들한 행동거지 때문에 얕보일 수 있지만, 레모네이드들이나 타 철충 세력을 피해서 괌에 정착한 집단을 안전하게 지킨 연륜과 판단력은 얕보일 만한 게 아니었다.


"...주인님께서는... 외향이 어떻든, 저희들로는 충족받지 못하시는 부분이 있으셨을 거예요."


그때까지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프리가는 불안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저희는 바이오로이드죠. 진정한 의미로 주인님과 마주볼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이라는 한 마디가 취조실 전체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


그것이야말로 여기 그 누구도 충족시켜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모두가 그것을 깨닫고 말문이 막혀있었다. 나는 서둘러 이 분위기를 깰 필요를 느꼈다.


"아, 아니... 그건 아니야. 그... 무슨 오해를 하고 있던 간에, 내가 너희들로 만족 못 하는 건 절대 아니니까..."

"폐하, 이 어미 앞에서 거짓은 좋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건전하게 저희의 육체로 욕구를 해소하시지 않고, 저 더럽고 추잡한 영상 매체로 자, 자위 같은 불경한 행위로 홀로 육욕을 채우셨다는 것 자체가... 폐하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있지 않습니까!"


뭔가 듣고만 있어도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논리를 세우는 세크메트지만, 이건 해명할 필요가 있었다. 더 심각한 사태로 번지기 전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내 명예가 실추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오해를 풀어야 했다.


"어어... 그건 아니고... 하아..." 


나는 한숨을 거듭하며 말을 고르려고 애썼다. 적절한 표현을 찾고, 아니다 싶은 말은 쳐내고... 그렇게 깎고 또 깎아내다 보니...


"그냥, 가끔은 혼자... 혼자 해 보고 싶었어."


내가 뱉어 놓고도 참 못 믿을 소리였다. 이게 바로 장고 끝의 악수인가?


"주인님, '진실'만을 말해달라고 했죠?"


마리아의 힐난이 내 가슴을 꿰뚫었다. 마치 엄마에게 혼나는 아이처럼, 나는 목덜미의 털이 쭈뼛 서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섹스는 분명 기분 좋긴 하지만,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다. 반면에 자위는 상당히 편리하게 그... 욕구를 풀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이 아이들 앞에서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수 있을 리가...


"아니... 제발 이해해 줘. 너희가 남자를 잘 몰라서 그래. 너희와의 잠자리가 얼마나 기분 좋건 간에 상관없이 남자는 가끔씩 자위를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라고."

"거짓말!"

"세크메트."


분개해서 내 말을 끊으려는 세크메트를 세레스티아는 부드럽지만 힘있게 제지했다. 그리고 그 푸르고 깊은 눈을 내게 향했다.


"사령관님, 저희를 상처주고 싶지 않으셔서 필사적으로 다른 이유를 찾아내시는 게, 오히려 저희를 더 깊게 상처입히실 수도 있답니다? 저희가 채워드릴 수 없었던 부분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저희를 배려하느라 깊이 숨겨두셨을 충동도... 다들 견딜 각오는 되어 있으니까요."

"주인님... 저희는 주인님 생각보다 튼튼해요. 전투에서뿐만 아니라..."

"아, 아니, 난 그런 취향 아닌데... 그냥 평범하게..."


또 이상한 쪽으로 오해가 번질 뻔했다. 심지어 아직 그 오해는 걷히지 않은 듯했다.


"아이씨, 진짜라니까... 그냥 자위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아, 이걸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냐... 그것도 여자들한테..."


필사적인 해명도 불발로 끝나고, 불신의 눈초리는 더 짙어졌다.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내는 내 시냅스에, 순간 불꽃이 튀었다.


"맞다, 페, 페레그리누스! 알프레드! 걔, 걔네 좀 연결해 줄래?"

"...증인 요청인가요? 어려울 것은 없죠."


마리아가 패널을 몇 번 조작하자, 화면 위에 든든하고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이 떴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울기 전에, 내 누명을 먼저 풀어야 했다. 분명 이 녀석들이라면 내 곤란함을 이해하고 잘 커버 쳐 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내 사정을 반쯤 빌듯이 설명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듣고 난 페레그리누스와 알프레드는...


"너, 바보냐?"

"사령관님, 이번엔 저도 어떻게 해 드릴 도리가 없군요."

"엥?"

"내가 그런 걸 알 리 없잖아. 그리고, 나도 이렇게 너 없으면 죽고 못 사는 암컷들 앞에서 교미 안 하고 혼자 해결한다는 발상 자체가 진짜 이해 안 되는데..."


아차.


얘네... 꼬X 없었지.


"점심부터 안 보인다 했더니... 이거 때문에 여기 붙잡혀 있었냐? 난 도움 못 주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럼 끊는다?"

"우욱, 저도 썰만 들었는데 단백질 알러지가 다시 도질 것 같군요... 도움이 안 돼서 죄송합니다! 그럼 저도 이만!"


뿅! 하고 사라진 둘 앞에서,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너무 편한 친구처럼 여기느라 얘네들이 수컷이긴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정말로 털어놓지 않을 생각이신가요?"

"난... 난 아까부터 진심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점점 노기가 서리는 마리아의 말에 내 억울함은 더 가중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 근데 얘네가 엄마들이지...


"계속 숨기시려 한다면, 저희 쪽에서도 생각이 있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뒀거든요."

"하... 또 누구야?"


여기서 더 늘어난다고? 나는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취조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인영이 걸어들어왔다.


"사령관님이 제 작품 말고 다른 걸로 딸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살짝 분노한 그 어투.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이거, 분명 상황이 악화되는 각이구나. 나는 화난 표정의 탈론페더를 마주하며 직감했다.


"이 외장 하드, 제가 찍은 건 하~나도 없고, 다 멸망 전 작품이라면서요? 배신자! 바람둥이!"


공교롭게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로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이미 어망에 들어온 물고기로는 성이 안 찬다, 이건가요? 남자들은 다 똑같아! 내가 안아봤던 모델로는 서지 않는다, 이건가요?"

"그... 아깐 말할 틈이 없긴 했지만, 내가 들킨 부분이 하필 사람 배우가 나오던 장면일 뿐이었지, 그 하드에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찍힌 게 훨씬 많거든... 세레스티아나 세크메트 같은 애들은 최고급 기종이라 없지만... 브라우니나 레프리콘 같은 애들은 꽤 있어."


내 자신이 구제불능의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변명이지만, 어쨌든 했다. 이걸로 내가 사람한테만 진심으로 꼴린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풀 수만 있다면...


"어, 정, 정말인가요, 마리아 씨?"

"으, 음... 지금 보니 저랑 동종인 모델도 몇 개 있네요... 어머, 어머..."

"저, 저는, 저는 있나요?"

"아뇨... 프리가 씨도 꽤나 고급 모델이니까..."


다행히도, 내 명예를 대가로 한 고백에 살짝 분위기가 누그러진 엄마 조였다.


하지만, 탈론페더는 그 대답을 듣고 더 화냈다.


"뭔가요 그게! 그게 더 열받거든요! 같은 모델이라면, 왜 굳이 우리 말고 다른 애들 보고 빼는데요?!"

"..."


탈론페더의 지적에 잠시나마 화색이 돌던 마망들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잘 풀리려던 차였는데 완전히 찬물이 끼얹어졌네... 잘못하면 이대로 원점이겠는데...


"왜 저희 모델들은 성인물을 안 찍어놓은 걸까요..."

"세크메트, 지금 그걸 아쉬워 할 부분이 아닌 것 같은데요..."

"드,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제, 제가 나온 것도 탈론페더 씨 거에 몇 개 있을텐데 왜 그걸 안 보시고 굳이..."

"멸망 전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주인님을 빼앗기는 듯한 이 감각...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면서도, 뭔가, 뭔가 아래가 떨려오는 기분이..."

"사령관님, 뭐라도 해명해봐요. 제 역작들을 두고 감히 다른 작품들이랑 놀아난 것에 대해!"


역시 악화됐군. 이쯤 되니 슬슬 나도 열받기 시작했다.


"...어쩌라고."

"...네?"

"네가 찍은 것들, 하나도 안 꼴리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뭐라구요?"


충격 받은 탈론페더의 표정이 취조실 안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쯤 되면 거리낄 게 없었다. 나는 내친 김에 이성의 기어를 한 바퀴 낮추고 할 말을 다 하기로 했다.


"누구 껄 찍어 놔도 대부분 화면에 나오는 건 나 혼자 헉헉거리는 거면서... 이딴 걸로 어떻게 치라고! 내 꼬추 보면서 딸칠 수 있겠냐고! 넌 네 보지 보면서 자위할 수 있어?"

"에? 하, 하지만... 여, 여자가 느끼는 장면을 보고 좋아할 대원들이 있을 리가..."

"나도 마찬가지라고! 애초에 게이도 아닌 남자가, 누군가한테 박히는 구도로 찍힌 야동을 보면서 뽑을 수 있겠어?! 심지어 박는 사람이 난데!"

"..."

"그래서 굳이 옛날 꺼 찾아 봤다! 왜, 나쁘냐? 거기에는 적어도 여자 몸은 제대로 나오고, 내가 가슴이 달려서 박히고 있는 것 같은 좆같은 기분은 안 느껴도 되거든! 나는 뭐, 딸딸이도 마음대로 못 쳐? 딸감도 내 맘대로 못 골라? 내가 자위 좀 해도, 그것 때문에 너네들한테 아쉽게 하지는 않잖아!"


그래도 한바탕 털어놓으니 후련했다.


"..."


하지만, 그 대가로 납처럼 무거운 정적이 취조실 안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저 분에 못 이겨 씩씩대는 내 숨소리만이 덩그러니 울리고 있었다. 뒤 생각 안 하고 내뱉고 나니 갑자기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건... 생각 못했네요..."


고개를 푹 숙인 탈론페더에게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앞으론... 사령관님 용으로도 한 편씩 더 찍어놓을 테니까..."


근데... 결론이 뭔가 이상한데?


"으, 음. 이건 생각보다... 중대한 문제겠어요. 사령관님이 혼자 해소하시는 걸 근본적으로 못 막는다면... 하다못해 저희의 영상으로라도..."

"그, 근데... 저도 남성향 AV는 찍어본 적이 없어서요... 역시, 멸망 전 자료들을 복습해봐야 할까요...?"

"수요자인 주인님께서 여기 있는데, 굳이 멀리 갈 필요 있을까요? 다양한 구도로 찍어보면서 주인님 맘에 드시는지 물어보면 되죠."


...뭔가 일단락 된 것처럼 서로 속닥이고 있기는 한데... 불온한 기운이 뻗쳐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요... 말 나온 김에 여기서 한 번 시험해보도록 하죠. 탈론페더 양, 촬영기기는 가져오셨나요?"

"제 몸처럼 항상 간수하고 있죠!"

"에? 그, 취, 취조실에서 영, 영상을 찍는다니 어찌 이런 불경한..."

"세크메트, 사령관님의 건전한 성의식을 위해서인걸요. 보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하다못해 저희가 직접 찍은 것을 통해 올바른 길로 유도하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화,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마지막 관문인 세크메트조차도 그렇게 무너지고, 저항할 수 없는 오라를 뿜는 그림자들이 내 곁에 모였다. 취조실의 어슴푸레한 조명을 등진 무지막지한 어머니들의 눈동자들. 저항조차도 무의미할 게 분명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여기, 지금 보니 조명도 야릇한 게, 잘 찍으면 아주 기똥찬 물건이 나오겠어. 하하, 하하하...


나는 그렇게 현실도피를 하며 내 위로 모이는 자애롭고 포근한 맘스터치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