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원들의 연말 정산 9번째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스토리 안 봤다면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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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지. 브륀힐드, 너라도 도망쳐.


그녀를 만든 여자가 말한다.


-내가 만든 작품이니까 여기서 의미 없이 죽어서는 안 돼.


작품이라... 바이오로이드를 상대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직접 만든 사람들조차 소모품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바이오로이드다.

어떤 인간은 자기가 만든 바이오로이드에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중에서의 장치로써일 뿐.

그 인간 덕에 브륀힐드도 연극에서 개죽음을 당할 뻔했다.


그러나 눈앞에 이 인간이 그녀를 살려주고 있었다.

자기가 만든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심지어 살아남으라고 도망 보내는 인간은...

브륀힐드가 아는 그 어떤 인간보다 특이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도망쳐봤자 황무지를 떠돌다가 아사할 뿐이야. 차라리 널 지키다가 죽는 게 너의 작품으로써 더 의미 있는 죽음 아니겠어?"


브륀힐드의 말에 연구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 목숨보다는 데이터가 먼저야. 무슨 일이 있어도 데이터를 가지고 빠져나가.


데이터가 담긴 장치를 건네며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너한테 내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 결혼식까지 얼마 안 남았었거든.


"...."


-저기 브륀힐드. 데이터 안전하게 지켜. 그리고.....


연구소장은 마지막 그 말을 삼켰다.


-...아니, 그게 끝이야. 가, 브륀힐드. 어서.


막 도망치기 시작했을 무렵, 브륀힐드는 고뇌했었다.


그때 그녀가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어머~ 공주님 같으시네요."


전신거울 앞에 서 있는 브륀힐드의 옆에서 블라인드 프린세스가 말했다.


"...눈도 안 보이면서 무슨..."

"눈은 안 보여도 제 예상이 적중할 때는 많다고요?"
"보지도 않고 때려 맞춘다는 얘기잖아."

"어머? 때려 맞춰도 맞는다면 그건 정확한 거잖아요?"


미소를 짓는 블라인드 프린세스를 보며 브륀힐드는 피식 웃었다.


"뭐 하러 왔어."

"당연히 브륀힐드 씨가 웨딩 드레스 입은 모습을 구경하려고 왔어요."

"눈도 안 보이면서 헛소리하지 마. 진짜 이유를 말해."

"음, 정말인데~"

"내가 화내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브륀힐드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래봤자 보이지는 않겠지만, 말투에 섞인 노기 덕에 그녀도 태도를 바꿨다.


"궁금해서요."

"궁금하다니?"

"연구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작품은 최고니까,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이죠."

"그래서?"

"최고에 걸맞은 대우는 어떤 것인가요?"

"뭐....?"


대뜸 꺼내는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아 브륀힐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고 싶은 분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제가 그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건 그저 이 두 손으로 묻는 것 뿐. 그래서 궁금해요.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는 건 어떤 걸까, 하고."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줄곧 웃고 있었다.

그녀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제 손으로 묻었다고 했다.

여의치 않은 환경이어서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단순히 묻으며 떠나보낸 것이 후회되는 모양이었다.


".....연구소장도 죽었어. 누가 나한테 그런 대우를 해줄 건데?"

"이제 곧 그런 대우를 받으러 가시잖아요?"

"...."
"결혼. 이건 연구소장님의 꿈이기도 했었죠?"

"너...."


좋게 듣고 흘릴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블라인드 프린세스가 동료를 묻은 것에 감정이 남아 있다면, 그녀도 연구소장에게 미련이 남아 있었으니까.


"저는 용살자라는 존재를 믿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요. 그가 지금까지 모두에게 어떤 것을 해주었고, 무엇을 더 해줄 수 있는지. 왜냐하면 기껏 찾아온 이 보금자리가 전보다 더 못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라면..... 저는 계속 미련을 안고 살 테니까요."

"....."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브륀힐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걸 두고 믿는다고 하지는 않지. 하는 말만 들어보면 너도 사령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

"음,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브륀힐드 씨. 다른 분들이 하는 말을 듣고 맹신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오르카호에 정착한 이후, 블라인드 프린세스와 친해지려고 접근하는 대원들이 많았다.


"신중하네."

"....겁이 많은 거예요. 저는 겁쟁이거든요. 작은 저가 들으면 노발대발하겠지만요."

"확실히 뿌리가 같은 존재지만 여러모로 다르군, 그 꼬맹이랑은."

"네. 출발선은 같더라도 나아간 방향이 다르니까요. 키부터도 그렇잖아요?"

"...."

"꼬맹이라고 하신 건 브륀힐드 씨면서."


태연한 태도에 브륀힐드는 헛웃음을 뱉었다.


"최고의 대우라...."


브륀힐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아름다웠다.

수려한 드레스와 하늘거리는 프릴과 여러 장식들.

등에 달린 리본은 마치 가름을 본뜬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가 만든 옷인지는 몰라도 어마어마한 정성과 공이 들여 있었다.

그러나 천박했다.


여기저기 찢어져 있던 브륀힐드의 복장보다 더 노출이 많았다.

유두가 보일락 말락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유륜은 그냥 보였다.

아랫배도 훤히 드러나 복근이 드러났고 더 아래에는 보지의 둔덕이 슬쩍 보였다.

브륀힐드를 위한 아름다움을 제외한 나머지는 남성의 자지에 피가 쏠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옷.

아주 천박한 웨딩 드레스였다.


'내가 이런 옷을 입게 될 줄은 몰랐지만.'


또, 누군가와 결혼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그녀의 마음은 오랫동안 닫혀 있었다.

그녀를 생각해준 유일한 인간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의 슬픔을 알게 되었고, 다시는 누군가를 잃기 싫어서 모두를 밀어냈다.


"...너에게는 빚이 있지."

"연구소장님을 도와 브륀힐드 씨를 살린 거요?"
"그건 이미 갚았고."


브륀힐드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블라인드 프린세스를 구출해냈다.

그러니 목숨을 건진 대가는 갚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 뭐가 남아 있나요?"

"....넌 알 필요 없어."


브륀힐드는 말을 아꼈다.

사실 말하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멀쩡히 살아 있던 블라인드 프린세스를 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했다.

그런 사실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었으니까.


'적어도 내 은인 중 하나는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연구소장이라는 인간이 실존했었다는 반증이었다.

수십 년을 떠돌면서 가끔 옛 일이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고 착각할 때가 있었다.

브륀힐드는 더 이상 상실을 겪기 싫어 그 기억을 소중히 잡고 놓지 않았는데,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존재로 인해 자신을 위해준 사람이 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고 있어. 최고의 대우가 뭔지 보여줄 테니까."

"....네. 기대할게요."


-신부 입장~~~ 해주세요~~!!!


식장에서 스프리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갈까."

"네."


브륀힐드는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손을 잡고 문을 연다.

문 너머에 펼쳐진 것은 레드카펫과 수많은 인파.

그리고 그 끝에서 기다리는 사령관이었다.


"어서 와, 브륀힐드."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신부의 손을 잡고 그녀를 신랑의 앞까지 데려갔다.

그리고 결혼식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된다.


"신랑은 신부를..."

"잠깐."


브륀힐드가 주례자의 말을 끊었다.

그녀가 마이크를 달라고 했고, 주례자는 잠깐 사령관을 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례자가 마이크를 건넸다.


"모두들 내 결혼식에 참석해줘서 고마워."


브륀힐드가 모두를 향해 말했다.


"와아아아!"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그녀의 결혼을 축복해주고 있었다.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결혼식이었기에 모두들 평소보다 조금 더 들떠 있었다.

한 해의 처음, 그리고 마지막 결혼식은 그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었으니까.


"사실 이런 환대는 기대하지 않았어. 나는 너희들에 비하면 한참 신참이고, 별로 교류도 없이 지내왔으니까. 내 얼굴만 알고 이름은 모르는 사람도 수두룩하겠지. 그럼에도 축하해줘서 고마워."


브륀힐드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건 얼마 안 된 얘기였다.

새로운 작전을 시작할 무렵에 얼굴을 비췄는데, 그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으니까.

그 동안 조용히 혼자만 지냈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결혼한다는 소식에 놀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잠깐 내 얘기를 할까. 나를 만든 여자는 나를 아끼는 편이었어. 그 여자한테서 여러 가지를 받았지. 가름도, 내가 애용하는 지팡이도, 그리고 내 생명까지도 모두 그 여자한테 받은 거야."


갑작스러운 고백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해준 적은 없어. 안타깝게도 그 여자가 죽을 때까지 나는 받기만 했지. 나는 그 여자를 지키다가 죽을 각오를 했지만, 그 여자는 갖은 핑계를 대가며 나를 보내줬어. 그때 그녀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


브륀힐드가 잠깐 멈췄다가 말을 잇는다.


"넌 내가 만든 작품이니까 여기서 의미 없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그녀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의아함을 느꼈다.

결혼식 같이 좋은 날 왜 저런 얘기를 해서 분위기를 처지게 하는 걸까?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브륀힐드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그 말이 무슨 뜻일지 계속 생각했어. 몇몇은 알겠지만 그 이후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거든. 여러 일들로 인해."


인류가 멸망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나는 혼자서 세상을 떠돌며 내가 가진 의미에 대해 고민했어. 나한테 의미가 있던 유일한 건 바로 그 여자였거든. 하지만 죽어버렸지. 그래서 나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였어. 그렇게 수십년을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이 계속 방황했었어."


돌연, 브륀힐드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이곳에 왔지."


그녀가 사령관을 힐끔 보았다.

사령관은 잔잔한 미소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물론 처음부터 잘 적응했던 건 아니야. 난 또다시 소중한 걸 잃게 될까 두려워서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으려고 했으니까. 단지 오랜 방황에 지쳐서 이곳에서 몸을 쉬려고 했을 뿐."

"...."

"...."


모두가 조용히 그녀의 얘기를 듣는다.

기침 소리 하나 없이 정적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남으로써, 그런 내 삶이 달라졌어."

"호오...."


어디에선가 작은 감탄이 들려왔다.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결혼식은 브륀힐드의 일대기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변해 있었다.


"아쉽게도 그 누구는 사령관이 아니야."

"아, 내가 아니야? 당연히 난 줄."


사령관이 깜짝 놀라 되묻자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들렸다.


"당신이 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건 인정해. 하지만 그렇게 여기게 해준 건 다른 사람 덕이었어."

"누구?"

"바로 저기 있는 눈 먼 성녀지."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된다.

그 수많은 시선을 느낀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움찔했다.


"저요?"

"너는 먼 옛날 연구소장을 도와 나를 살려줬지."

"아... 네, 그랬었죠?"

"그런 네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연구소장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어."

"아....."


뭔가, 뭔가...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느낌. 이 감각.

이건...


'내... 소망...?'


그런 감정이 떠오르는 것은 브륀힐드의 말 떄문이었다.

그 말이 신기할 정도로 와 닿아서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말주변이 없는 편이라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무드가 없는 편이거든.

"....."

"하지만 성녀. 나는 널 보며 내 안의 소중한 이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어. 그렇게 내가 살아갈 의미를 찾았지."

"어떤.... 어떤 것이었나요?"

"그 여자는 나한테 웨딩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어. 즉, 자신의 행복을 뽐내고 싶어했지."


뽐내고 싶어했다는 건 조금 핀트가 엇나간 말 같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중요한 건 그 말에 담긴 마음이었다.


"그녀가 날 떠나보내기 전에 어떤 말을 하려다가 말았어."

"그랬나요?"

"그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이제 알 것 같아. 나도 같은 마음을 느끼고 있거든."

"....어떤...?"


브륀힐드가 눈을 감는다.

마치 추억을 음미하는 것처럼 잠깐 동안 말을 멈춘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눈을 뜰 때,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한 방울 흐르고 있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 곁에 없더라도 분명 마음이 이어져 있을 테니까."

"....!"


그 말이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저 말은 브륀힐드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아마도 연구소장이 했을 말을 조금 각색했을 터.

저 말은 블라인드 프린세스에게 하는 말이었다.

묻힌 동료들에게 가진 미련을.

더 성대하게 보내주지 못하고 그저 묻기만 해야 했던, 가진 것 없는 성녀의 미련을 달래는 말이었다.


"아...."


눈을 가린 안대의 아래로 금빛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그러는 와중, 브륀힐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흘러들어온다.


"아마도 연구소장이 바랐던 나의 연극은 이런 것이었겠지."


본래 블라인드 프린세스와 브륀힐드는 적으로 만날 사이였다.

그러나 연구소장은 브륀힐드가 의미 없이 죽는 것은 원치 않아 했다.

그녀가 원하던 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갖은 고생 끝에 결국 우리 둘의 마음이 연결되는. 이런 결말을. 나는 그 여자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니까. 나에게도 최고가 될 결말을 원했을 거야."

"....네. 아마도 그럴 거예요. 만약 그 끝이 브륀힐드 씨의 죽음이라도, 이런 이어짐이 있었다면 반대하지 않으셨겠죠. 결혼 축하 드려요, 브륀힐드 씨."

"....고마워."


브륀힐드가 마이크를 주례자에게 다시 넘길 때, 우레와도 같은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그 박수 소리 때문에 주례자의 목소리가 묻혀 도저히 진행이 안 될 정도였다.

결국, 귀찮은 부분은 생략하고 브륀힐드와 사령관이 마주보며 손을 잡았다.


"당신은 처음부터 날 소중히 대해줬지."

"음, 그랬었지."

"그런 마음을 이제야 눈치 채서 미안해."


둘이 진한 키스를 나눈다.

완전히 트라우마를 극복한 브륀힐드의 모습에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벅찬 감정을 느꼈다.


"아아...."


'이런 저라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는 거군요.'


그녀는 부족함이 많은 성녀였다.

과거의 그녀는 그녀에게 말했다.


-박치기!? 박치기라니. 네 검은 어디에다가 쓰는 것이냐? 좀 더 우아하게 해결하란 말이다, 성녀답게!


박치기로 포탄을 막았다는 말을 듣고 과거의 그녀가 화를 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날아오는 포탄을 처리할 만큼 검 실력이 좋지 못했다.

다급한 마음에 검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믿을 건 어느 누구보다 튼튼한 몸뚱이 하나였으니까.


-그것도 성녀라고 자칭할 수 있느냐..? 품위와 고상함은 어디에 가져가 버리고?


과거의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성녀라고 할 수 있죠, 어쨌거나 아군을 지켰잖아요. 그리고 저는 괜찮아요,  튼튼하니까요.


그러나 그때 마음에 맺힌 말이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지킬 수 있었다고.

그녀는 부족함이 많은 성녀이니까.

그래서 묻어주는 것밖에 해주지 못한 동료들에게도 미련이 남았던 것이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항상 후회됐다.

성녀답게 좀 더 제대로 넋을 기려줄 수 있었다면.

단순히 연기가 아니라 정말 성스러운 빛을 하사하고, 죽은 자를 인도할 수 있는 성녀의 힘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녀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에 묵묵히 움직였다.

진심을 말할 수 없기에, 무능함을 숨기기 위해 조금 억지를 부려가면서 대꾸했었다.


그러나 오늘, 브륀힐드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저는 잘못된 길을 걷지 않았군요.'


브륀힐드의 키스가 이어지는 결혼식장에서,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두 분의 사랑이 평생 이어지기를."


함께 오르카호에 오지 못한 이들이 조금 더 편안한 안식을 맞이하기를.


또, 새해에는 조금 더 강한 성녀가 될 수 있기를.

비록 성스러운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그런 성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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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맞이대회] 부대원들의 연말 정산 단편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