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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 제가 죽으면 더는 저를 복원하지 말아주십시오."


수많은 철충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므네모시네가 말했다.


전쟁에서는 승리가 있으면 패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사령관이 있던 구역에 철충이 대거로 침투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철충들이 머리를 써서 길을 우회해 사령부의 뒤통수를 노린 것이었다.

그 대군이 몰려오는 것을 보며, 므네모시네는 자신을 희생하려고 했다.


"뭐....?"

"관리자님. 저는 방주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개체입니다."

"...."

"그러나 방주는 이미 관리자님의 손에 의해 완전한 안전을 확보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있어 구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옅은 미소를 짓는 므네모시네.

충격적인 발언에 놀란 사령관과는 달리 그녀는 여유로웠다.

마치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므네모시네. 대체 무슨-"

"관리자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사령관의 말을 막았다.


"저에게 감정을 알려주시려는 그 섬세함.

저에게 사랑을 알려주시려는 그 다정함.

제가 고독했음을 알고 더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시던 그 따스함.

그리고 저를 품안에 안으셨을 때 제가 느낀 행복과 처녀 상실의 아픔.

저는 그러한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므네모시네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사령관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째서 저런 말을 하며 작별을 고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 므네모시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관리자님과 함께 하면서, 제 내면에는 심각한 오류가 생겼습니다."

"오류...?"

"저는 더 이상 므네모시네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방주의 파수꾼. 그러나 당신을 만나면서 저는 파수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따스함이 저를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변화가 중요한 거야, 므네모시네.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돼! 이제야 겨우 감정을 찾았잖아."

"네... 그래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문제라니?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저는 더 이상 방주를 위해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뭐...?"


갑작스러운 고백에 사령관이 놀랐다.


"저는....."


므네모시네는 슬프면서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사령관을 본다.


"저는 당신을 지키고 싶습니다. 관리자님."

"....!"

"당신과 함께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저는 당신을 위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걸로 된 거잖아 어째서 이런 극단적인...."

"존재의 목적을 잃은 물건은 쓸모가 없어지는 법입니다."

"....?"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사령관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거 설마....'


사령관은 생각한다.

므네모시네는 그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수많은 철충을 상대로 혼자 싸울 테니 도망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설마, 혼란스러워하고 있나? 방주를 저버린 자신이 미워진 걸까?'


그 생각에 대한 대답을, 지금 그녀가 한다.


"방주를 저버렸을 때, 저는 제 마음의 일부가 죽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게 대체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고.. 또 아주 가슴 시린.... 상실의 감정에 가깝다는 것만..."

"므네모시네..."

"제 마음 어딘가가 고장이 난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며 감정을 가지게 됐지만, 그로 인해 소중한 것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어졌습니다."

"...."


슬슬, 사령관은 화가 나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 뼈를 묻겠습니다. 관리자님은 도망쳐 주십시오.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저를 복원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두 번 다시는 이런 상실감을 느끼기 싫습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한 추억을 전부 잊어주세요. 저는 그야말로 한 송이 들꽃과 같은 존재가 되겠습니다. 아무도 이름조차 모르는, 그런 들꽃이."

"므네모시네..."


사령관은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므네모시네는 피하지 않고 그 손을 꼭 잡으며 손등에 키스를 했다.


"여기서 이만 작별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아..."


사령관은 눈앞에 있는 바보를 상대로 한숨을 뱉었다.

정말 한심한 일이었다.


"므네모시네..."

"네."

"저 정도 철충은 이제 거뜬해."

"네....?"


후우우우우우웅-


그때 거대한 빙룡, 글라시아스가 두 사람 위를 날아갔다.

빙룡의 등에는 레아와 마키나, 그리고 엘라가 타 있었고 알바트로스가 그 뒤를 따랐다.


"어....?"


므네모시네가 당황했다.


"자, 잠깐... 관리자님 이게 무슨...?"

"지켜봐."


사령관은 그녀를 한 팔로 꼭 안아주며 빙룡 네가 날아간 곳을 본다.

레아가 두 팔을 하늘로 벌리자 하늘이 뒤흔들리며 전기 폭풍이 몰아친다.

엘라가 소환한 하얀 숨결이 섞이며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고,

마키나가 환영으로 철충들의 공격을 교란시켰다.

알바트로스도 영역을 전개하여 모두에게 방어막을 형성했다.


키이이이이잉-


그 모든 준비가 끝난 다음, 글라시아스가 힘을 모은다.

이윽고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그녀가 철충 무리 위를 날아갔을 때.

대지는 만년설로 뒤덮이며 얼음의 꽃이 환하게 피었다.


콰르르르릉-


단단히 얼어붙은 철충들의 위에 무수한 낙뢰가 떨어진다.

그것으로 싸움은 끝이었다.

5분이나 걸렸을까?

완승이었다.


"이, 이럴 수가...."

"상실감에 대해 말했었지."

"네....."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사랑하는 애완동물이 죽거나, 정든 직장을 떠나야만 했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할 거야."

"네....?"

"시원섭섭하다고 했었잖아. 그렇지?"

"네...."

"네 평생을 지켜왔던 곳이니, 이제 그곳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을 때는 당연히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거야."


문제는 므네모시네가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병이 들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 하지만 방주를 지키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그것을 저버렸다는 건 저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알아. 우직한 므네모시네는 착각할 수밖에 없었겠지."

"착각....?"

"원래 가지고 있던 목적을 놔두고 새로운 목표를 찾는 일은 언제나 슬픔을 동반하기 마련이야. 나쁜 기억만 가졌다면 아니겠지만. 므네모시네는 그걸 너의 사명으로 받아들였었잖아?"
"그렇습니다..."

"사랑을 알게 되며 지키고 싶은 대상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야."


사령관은 어떤지 이 상황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것을 설명하면서, 그 당연한 걸 모르고 있던 므네모시네의 삶이 대에 얼마나 삭막했을지.

그 삭막함 속에서 가지고 있던 유일한 사명이 그녀에게 얼마나 커다란 의미였는지 새삼 깨달은 것이다.


"나를 지키고 싶다고 했지."

"네....."

"그게 너의 새로운 바람이 됐다면, 그렇게 하면 돼. 므네모시네."

"아...."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아련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질 거야. 내가 보장할게."


그 말에 므네모시네가 살짝 울먹였다.


"정말...인가요?"

"응."

"정말.. 이 아픔이 언젠가 잊어지나요...?"

"반드시."

"...관리자님은 가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건네시지만, 진지하실 때 하신 말씀은 전부 100퍼센트 적중했습니다."


정말 므네모시네 다운 말이라고 생각됐다.


"이번에도 관리자님을 믿겠습니다."

"응, 고마워. 하지만 므네모시네.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줬으면 해."

"어떤...?"

"너를 잊어달라니. 이름도 모르는 들꽃처럼 여기다니. 절대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마. 넌 이미 내 가족이고, 내 여자잖아."

"아아....."


그녀가 두 눈을 감는다.


"그렇군요. 저는 제가 도망치려고 했던 그 감정을.... 관리자님께 안겨드리려고 했던 거군요...."

"다시는 그러지 말아줘, 알겠지?"

"....네. 관리자님."


므네모시네가 두 팔을 벌리며 그를 와락 껴안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먼저 움직인 적이 있던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랑해요."


두 사람은 서로를 꼭 껴안으며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크고 작은 기복이 있었지만.

여차하면 큰 절망으로 빠질 위기가 있었지만.

므네모시네는 사령관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그녀는 인간의 경계에서 한 발 더 깊이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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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났는데 노잼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