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문학) 애프터 더 라스트 오리진 -4-

께르륵껭껭껭



“아빠가 보고 싶어요.”


8살의 내가 함장실 앞에서 했던 말이다. 


경비를 서고 있던 브라우니 이모들은 모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서 함장실로 들여달라는 내게 이모들은 입을 다문 채 그저 미안하다는 눈빛만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페로씨가 경호실에서 나오셔서 나를 데려갔다. 




페로씨는 나를 등에 업고 날아가듯이 뛰어가며 ‘주인님께선 사정이 있으셔서 당분간은 바인 도련님을 뵐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때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는 게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어미 잃은 자식에게 남은 건 그 아비일 뿐일 텐데, 왜 아빠는 나를 보러 오시지 않는 거지? 


날 보면 그렇게 좋아하셨으면서, 그냥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아빠랑 같이 자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제는 내가 미워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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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님과의 면담을 요청합니다.”




12살의 내가 어설프게나마 큰이모의 말투를 따라 하며 함장실 앞에 섰다. 


사무적으로, 업무적으로 접근한다면 혹시나 다른 이유에서라도 나를 봐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저지른 행동이었다. 


나를 내려다보던 함장실의 경비는 그나마 내게 동정의 눈빛이라도 건네주는 브라우니 이모들이 아니었다. 


흔들림 없이 차갑기만 한 눈빛의 주인은 스파르탄이었다. 


사령관님께서는 바쁘시다면서, 그리고 내가 함장실로 들어가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어 보인다면서 감정 없는 목소리만이 나를 막아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치코씨가 함장실 앞으로 찾아오셨다. 




자신이 미트파이를 만들어 놓았고, 놀이방에 가서 재밌게 놀자면서 내게 하치코씨는 내게 웃는 얼굴로 손을 건넸다. 


그렇지만 그 웃음은 그녀의 웃음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하치코씨는 항상 입을 벌리면서 활짝 웃고 계셨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입은 앙다물어있는 채 눈만이 웃고 있었다. 하치코씨의 웃음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내가 이제 더는 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항상 밝은 그녀에게조차 나는 난감하고 당장 아버지..... 사령관님 곁에서 치워 버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란 단어는 내게는 너무나 멀리 있는 단어란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12살에 체념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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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하필 그런 기억들만 연속해서 꿈에 나오다니. 찝찝한 기분에 계속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눈을 뜨고 불을 켜보니 아침 7시였다. 눈을 비비고 잠시 멍을 때리다가, 이른 샤워를 하러 나섰다. 


웬일인지 이 시간부터 샤워실로 가는 복도의 전등들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 먼저 샤워실로 들어갔나 보다. 조금 곤란하게 되었다. 




남성이라고는 나와 사령관님밖에 없는 오르카호에서 남녀공간의 구분은 유명무실했다. 


그래서 나와 사령관실의 근처 남자 화장실과 샤워실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성용으로 바꾸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공간을 충당시켜도 샤워실은 언제나 북적거렸다. 


그래서 개중에 샤워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 인원이 아침에 몰래 나의 샤워실을 이용한다고 알음알음 들었다. 


실제로 아침에 샤워실에 가보면 물기가 있었다. 가끔은 여러 색색의 털을 보게 되었는데, 


그걸로 나는 먼저 사용했던 주인이 누구인지 추리를 하면서 샤워를 하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뒤처리만은 깔끔히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이모에게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주로 이용하는 시간만큼은 지켜주면 좋겠고 뒤처리는 깨끗이 해주면 더 좋겠다’라는 공고를 부탁했고, 


놀랍게도 그 뒤부터는 아침부터 물기가 하나도 없는 보송보송한 샤워실을 보게 되었다. 


그날은 유독 브라우니 이모들이 훈련할 때 내는 비명이 더 처절하게 들렸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직접 현장을 보게 되다니. 조금 오묘한 기분이었다. 


이 당돌한 이용객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해야지.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그냥 무안하지 않게 숨어 있어야하나? 아니면 복도에서 마주치는 식으로 얼굴을 보아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방금 샤워하고 옷을 입고 나온 사람을 붙잡고 약간의 충고를 해줘야 하나. 


음 역시 마지막 방식은 별로 같다. 샤워실 쓴 게 그렇게 큰 죄는 아니잖아. 사람 무안하게 만들면 안ㄷ...




‘끼이익, 철컥.’




어느새 물소리가 멎고 샤워실의 문소리가 들렸다. 잠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샤워실에서 나온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 보았다. .....?!




“애슐리?”


물기에 젖어있음에도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에 바다보다도 푸른 눈동자. 그리고 여전히 작은 체구. 


틀림없는 애슐리였다. 나랑 동갑인 여자아이, 그럼에도 본인이 한 달 먼저 태어났다며 항상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는 애였다. 


항상 보여주는 까칠한 태도를 생각한다면, 나를 보자마자 오히려 큰 소리를 내면서 화를 낼지도 모른다.




“어..? 어! 너가 왜 여깄어?”




들켰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낸 게 잘못이었다. 애슐리는 급하게 목욕가운을 더 여미었다. 볼 것도 없으면서. 그리고 어차피 아까 보니깐 안에 잠옷용 원피스도 입고 있는 것도 다 보았다. 




“그거야 여기가 내 샤워실이니깐 그렇지. 너는 아침부터 여긴 왜 왔어?”




“뭐머머머? 어머 얘가 누나한테 너가 뭐야? 그건 그렇고 무슨 소리야. 이 누나께선 그냥 여기를 지나가고 있었다고.”




“그러면 그 목욕가운은 패션이야?”




“이건... 음...그래, 네 샤워실 썼다! 됐지? 그래서 뭐 어쩌게?!”




“뭐가 어쩌게는 어쩌게야, 나도 이제 샤워해야지.”




나는 애슐리를 지나쳐 샤워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자...잠깐!”




“왜 그래?”






“....진짜 지금 들어갈 거야?”




“내 샤워실인데 내가 쓰면 안되는 법은 없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진짜로 들어갈 거야?”




애슐리는 당황해하며 계속 내 소매를 붙잡았다. 


나는 조금 울먹이며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샤워실로 향했다. 




도대체 무엇이 안 된다는 걸까? 




‘끼익, 철컥’




약간의 물기를 제외하면 샤워실은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하긴 애슐리 성격에 더러운 걸 어떻게 용납하겠는가. 


샤워실엔 장미 내음이 그윽했다. 애슐리의 샴푸 냄새인가 보다. 




자 그럼 어디 나도 이제 씻어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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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보 기어코 샤워실로 들어갔어.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 거야....’




한창때 소녀의 체취를 공유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그 녀석에게. 그 사실에 애슐리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울먹이면서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엄마 성격이라면 오히려 아빠의 멱살을 붙잡고 같이 샤워실로 다시 들어가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애슐리는 침대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머리카릭을 두 갈래로 붙잡아 트윈테일을 만들고 거울을 보았다. 




엄마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비록 어머니의 그 훌륭한 흉부만은 농담으로라도 닮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애슐리는 잠시 허탈한 한숨을 쉬고는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의 방에 따로 설치된 샤워실이 보였다.




엄마가 따로 아빠의 부탁을 받고 둠브링어 이모들이랑 작전을 떠난 지 벌써 2주나 되었다. 


같이 있으면 자주 투닥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여자의 고민이라면 엄마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멸망 뒤에는 재가 남기 마련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애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소녀는 


아침 일찍부터 혼자 타오르는 연심에 끙끙 앓아대며 하루를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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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입니다, 철남충 셋째딸을 소개하려고 뭔 시츄가 좋을까 하다가 이렇게 썼습니다.


자식 5명 다 소개되면 그때부턴 본격적으로 사건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근데 누구딸인지는 다 퍼멱여줬는데 모르시진 않겠져?



라오문학) 애프터 더 라스트 오리진 -4.5-




말랑말랑하고 한없이 부드러운 감촉.




지금 손에 잡히는 물질은 그러한 감촉을 연신 뽐내고 있다.




썩 나쁘지 않은 감각이긴 했지만 빨리 떼어내야 했다.







“플리아”







“응, 나 여깄어. 헤헤 오빠 손 따듯하다.”







“네 볼에 내 손을 갖다 대는 건 그만해주겠니?”







“히히”







작은 꼬마 숙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오른손에 뺨을 부비었다.




아무리 오전이라 이용자가 적다지만 도서관에서 큰소리로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멀리서 이쪽을 힐금힐끔 쳐다보시는 팬텀씨에게도 민폐가 될 것이다.








구태여 오르카 최고의 실력을 가진 암살자의 눈초리를 받는 것보다는 독서시간을 서둘러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느긋하게 읽던 소설이나 마저 읽나 했더니만 작은 방해꾼 덕분에 다음으로 미뤄야 하겠다.







그런데 뭐가 좋다고 그렇게 내 손을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요즘 들어 플로렌스가 평소보다 더 나에게 다가온다.




안아주고 뽀뽀해달라는 빈도수도 평소보다 잦아지기도 했다.




불 꺼진 밤, 내방에 몰래 찾아와, 몰래 내 침대에 들어와서 내 팔을 베개 삼아 잤던 날에는 오르카 생활관이 살짝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날 잘 따라주는 것, 그 자체는 좋은 일이긴 했지만,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일은 솔직히 그만해줬으면 한다.




플로렌스를 방에 데려다줄 때마다 나날이 초췌해져 가는 바닐라씨의 안색을 보는 것도 미안하기도 했다.







책을 덮고 플로렌스에게 가 있던 오른손을 빼냈다. 빼낸 오른손으로 머리를 조금 쓰다듬어 주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피었다. 찌뿌둥한 기분을 떨쳐내고 눈을 떠보니 마침 기둥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었다. 오늘은 꼼짝없이 플리아와 점심을 같이 먹어야겠구나.




어디 보자 오늘 점심은 어디로 가야 하지.




병영식당은 플리아를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투박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다고 소완 주방장님에게 직접 데려가는 것은 내게 정신적으로 부담된다.








그렇다면 포티아씨의 빵집에 가볼까? 그래 플리아도 좋아하겠다.







읽다만 책을 제자리에 꽂았다. 도서관에 나오고 자세를 숙여 플로렌스를 안아 들었다.




이렇게 들어 안아 줄 때면 이 작은 여자아이가 점점 커 가는 게 느껴지곤 한다.








이제 슬슬 주려오는 배를 채우기 위해 발을 움직여야 할 때다.




도서관은 중앙복도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으니깐 지나가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 전엔 빨리 도착해야 했다.




오늘 점심을 먹을 곳은 알음알음 유명한 곳이니깐 말이다.







“저기...”




“아, 팬텀씨.”







ID카드를 찍고 도서관을 나서려고 할 때 팬텀씨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역시 도서관에서 너무 시끄럽게 했나 보다.







“혹시 독서 중에 시끄러웠다면 죄송해요. 플리아 너도 사과드려.”




“죄송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그...”






팬텀씨는 계속해서 뭔가 더 할말이라도 있으신지 계속 서 계셨다.








“아, 그, 이... 이거...를”




팬텀씨의 손에 들린 것은 끝이 조금 불에 그슬린 흰색 노트였다.







“이게 뭐예요?”








“내 친구...그러니깐 너의 엄....!!”







“바인님!!!”






바닐라씨의 목소리였다.








아, 맞다, 플로렌스. 또 말도 안 하고 사라진 거였구나.




“플로렌스는 제가 잘 데리고 있어요. 점심도 제가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뭐 중요한 약속이라도..”




“그게 아니라, 지금... 지금 달래 아가씨 좀 막아 주세요! 주인님은 지금 지휘중이시고, 헬레네 아가씨도 지금 연락이 닿질 않아서...”







“달래 누나가 왜요?”




“아무튼, 어서 가야 해요!”




매사 진중하고 침착하셨던 바닐라씨가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거지. 그리고 팬텀씨는 대체 어디로 가신 거지?







“어서요!”




“플리아는 어떡하죠?”




“아가씨도 되도록 같이 와주시면 좋아요!”




이 꼬마까지 필요한 정도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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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맨날 짤만 올리다 오랜만에 글 올리는 파렴치한 라붕이입니다


더군다나 분량 조절까지 실패해버려서 5화 쓴걸 4.5 5화 두개로 나눠 올려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로 5화 가시면 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