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공식 스토리와 연관이 없음을 알립니다.


1.


닥터는 꽤 편리하다. 그녀는 동시에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각각의 일을 웬만한 AGS에게 맡긴 것보다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 또한, 업무 처리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 나날이 효율이 올라갔다. 이외에는 단순한 흥미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를 만드는 것도 즐겼는데, 그녀가 만든 프로그램과 달리 즉각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그녀의 발명품은 늘 오르카호에 크고 작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닥터의 호기심의 결과물은 제작자와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들은 천진난만한 그녀의 외모처럼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계를 떠올리게 하는 단순한 디자인에 원색 계열의 색을 사용해 아주 무해한 물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하나같이 그 기능과 기계가 가져온 결과는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은 닥터가 요리대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만들었던, 그녀의 영광스러운 첫 번째 작품이 가져온 재앙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어휴, 겨우 다 끝났네. 이걸로 오빠가 나한테 하나 빚진 거야. 알지?”



“으응, 물론이지. 수고 많았어, 닥터.”


닥터가 재생되기 이전의 오르카호는, 특히 사령관에게는 노동하기에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사령관의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인해 자원과 참치캔은 날이 갈수록 줄어, 늘어난 것이라고는 메이드의 이마 주름과 대원들의 옷장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 닥터가 우연히 만들어졌다.


닥터는 사령관과 비슷한 업무 처리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인간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육체를 가져 피로의 한계도 높았고, 사치도 부리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옷이 나왔다면 닥터도 자신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누군가의 반론이 제기되었지만, 이는 하얗고 검은 것들에 의해 금세 입이 막혔다.



“젠장”


아무튼 요점을 말하자면 닥터는 실로 효율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사령관의 뒤를 모두 닦아주고 주방장이 손수 내린 홍차를 그와 사치스럽게 나누며 물었다.



“일도 끝났고.. 빚진 것부터 받아볼까?”



“이렇게 빨리? 뭐, 상관은 없지만.. 원하는 거라도 있어?”



“최근에 오빠가 겪은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걸 얘기해줘,”



“응.. 잠깐만, 뭐?”


사령관은 닥터의 말에 놀라 입에 머금던 홍차를 급하게 삼키며 되물었다. 싸다고 하면 싼, 아니 절대적으로 싼 대가였다. 사령관은 ‘새로운 기계를 만들 자재나 공간을 달라고 하려나?’ 라는 생각을 하며 자원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머릿속으로 세던 중이었다. 


설령 자원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게 자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령관은 싸게 먹혔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을 조금 얹어, 수염을 붙인 아버지가 아이에게 줄 선물이 담긴 보따리를 뒤지듯 최근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재밌는 일.. 재밌는 일이라. 막상 떠올리려고 하니까 생각나는 게 딱히.. 아, 요리대회.”



“요리대회? 오빠, 그런 것도 열었어?”



“응, 열려고 했다기보다는 어쩌다 나온 헛소리에 살이 붙은 거였지만 말이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사령관은 알파벳이 쓰인 정육면체 블록을 아이에게 순서대로 보여주듯, 자신이 초래한 일의 전말과 결말을 남김없이 털어냈다. 소완의 등장, 약물 오남용의 위험성,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뱉은 자신의 개소리, 하치코의 요리 실력, 그리고 얼렁뚱땅 넘어간 소완의 범죄행적까지. 


사령관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드러나는 것 같다고 느꼈으며, 실제로도 그랬기에 사령관의 얼굴은 닥터가 애용하는 거인 친구의 색만큼이나 벌게졌다. 마지막에 가서는 조금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줄이고자 결말을 적당히 스킵하여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쥐여준 후 나온 각본처럼 되어버렸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도 그것과 다를 바가 없어 뛰어난 지성을 자랑하는 닥터조차 그 차이를 알 턱이 없었다.



“그것 참 엉성하네. 막 태어난 거미가 친 거미집 같아.”



“큭, 신랄한 평가 고마워.”



“그나저나 쉬지 않고 음식을 먹었던 건 좀 괴로웠겠네.”



“뭐.. 그랬지. 특이한 음식?들이 대부분이라 신경 안 썼는데, 양이 양이라서 그런지 결국 그날 저녁도 못 먹을 정도였어.”



“맛을 봐주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거기다 평가까지 해줬으면 더 나았겠네.”



“말 나온 김에 한번 만들어볼까?”



“뭐를?”



“잠깐만 기다려봐..”



“?”


닥터의 ‘잠깐만’이라는 표현은 심히 적절했다. 소완이 따라준 첫 번째 차가 식어 단숨에 들이키고, 두 번째로 따른 차가 알맞은 온도가 되었을 즈음에 개발실로 들어간 닥터가 알록달록한 상자를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게 뭐야?”



“후후. 거기 있는 버튼을 누르면 알게 돼.”


사령관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상자의 상단부 구석에 있는 작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고전 게임에 나올법한 효과음이 울리며 상단부가 좌우로 펼쳐짐과 동시에 혀를 내민 회색 인형이 스프링 같은 탄성으로 튀어 올라 사령관을 놀라게 했다.



“우왁!”



“대신 맛을 평가해주는 기계야. 이름은.. 생각나는 게 없네. 특별히 오빠가 짓게 해줄게!”


사령관은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찌그러진 인형을 보며 이 기계가 어떻게 쓰일지를 떠올렸다. 원래 기능에 따르면, 이 인형은 앞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소완의 만찬부터 바닐라가 가져온 케이크맛 방부제까지 말이다. 사실 그녀들은 이런 인형 따위가 아니라 사령관이 직접 먹어주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일단은 사람. 어느 정도 먹다 배가 차면 이걸 꺼내고 도망치듯 책임을 회피할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을 마치고 사령관은 입을 열었다.



“‘대타출동’으로 간다.”


적절했다.



2.


닥터의 실력은 확실하지만, 그녀에게도 아직 개발실에 있는 실험용 샘플이 다였기에 실제 사용에 들어가기 전에 어느 정도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사령관은 첫 번째 제물이 되어줄 사람을 한 명 호출했다.



“부르셨나요, 주인님?”



“응, 왔어?”


첫 번째는 고유 탄챠, 콘스탄챠였다. 사령관은 오랜만에 그녀가 만든 가정식이 먹고 싶다 말하여 소완을 내버려 두고 자신에게 요리를 부탁한다는 의심에서 쉽게 벗어났다. 기뻐하며 식재료를 챙기러 가는 그녀의 모습에 사령관은 ‘양심이 찔린다’라는 감정을 거의 정확하게 체감했다. 


업무 처리는 잘하지만, 섬유의 집합체에 불과한 물건에 재화를 때려 부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탄생 25분 만에 느끼게 했으니, 기계의 위력은 매우 뛰어났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로부터 15분 뒤, 식사를 가져온 콘스탄챠에게 감사를 전하고 그녀를 나가게 한 뒤 사령관은 책상 밑에 숨긴 닥터의 기계를 꺼내 인형의 혀에 반찬과 국을 하나하나 찍어보았다.


[도출 결과: 김치찌개, 스팸구이, 김, 계란말이]


[간 : 전체적으로 많은 양의 나트륨이 검출되었습니다. 다량의 밥과 함께 섭취하거나 반찬을 줄이는 걸 추천드립니다.]


[종합 평가: 맛잘알]



“..정확한데? 이거 아주 물건이야. 엄청난 걸 만들었잖아.”


첫 번째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사령관은 콘스탄챠가 차려준 식사를 모두 먹어치웠다. 어디까지나 버려지는 게 아까워 먹은 것이었다. 절대로 이성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어 보여 아귀가 밥그릇을 핥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후 정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어서 두 번째 제물을 호출했다. 이쯤 되니 사령관은 조금 더 즐거워졌다.



“하치코를 부르셨나요?”



“빨리 왔구나.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사령관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치코에게 민트미트파이를 주문했다. 그 누구도 먼저 부탁한 적 없었던 민트뭐시기의 주문을 받은 하치코는 뛸 듯이 기뻐하며 자기 키보다 큰 방패를 등에 멘 뒤 주방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밝게 웃는 하치코의 얼굴과 격하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자 이번에도 사령관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두 번째라 그런지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역시 처음이 어려운 법이지.’라는 양아치 같은 생각을 하는 남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 됐어요, 주인님!”


오랜만에 보는 저 영롱한 시안색. 다시는 보고싶지 않았다. 그날 먹은 그 시원짭짤한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외견은 변함없이 훌륭했다. 어느 한 부분도 덜 익거나 탄 부분이 없어 휴양지의 에메랄드빛 바다가 떠올랐다. 이 재능을 다른 곳에 썼다면 좋았으련만. 하치코에게 민트라는 향신료를 처음 알려준 더러운 범죄자를 하루빨리 색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하치코가 파이같은 것을 그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자, 주인님! 식기 전에 드세요!”


‘차라리 식은 후가 맛있지 않을까. 에메랄드빛 바닷물을 데워서 먹어도 이것보단..’이라는 감상이 들 정도의 향이 사령관의 후각을 덮쳤다. 일단 하치코를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사령관은 말을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하치코, 리리스가 널 찾았던 거 같은데. 혹시 아직 못 만났니?”



“네? 으응.. 하지만 아직..”



“괜찮아. 이미 만들어 준 거로도 고마운걸? 어서 가봐.”


하치코는 문과 사령관을 번갈아 보며 문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얼굴에는 걱정이 남아 있어 그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그녀를 배웅했고, 그제야 안심한 듯 하치코는 손을 앞으로 포개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뒤 문밖으로 나갔다.



"푸하! 숨 참느라 죽는 줄 알았네."


그 좋은 신체능력을 이런 데 쓰는 걸 알면 그게 누구든 핀잔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 자명했다. 사령관은 하치코가 돌아오기 전에 얼른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는 파이의 윗부분을 조금 덜어 인형의 혀 위에 떨어뜨렸다.


[도출 결과: 민트와 돼지고기가 포함된 유기물]


[간 :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식재료는 소중히 사용하세요.]


[종합 평가: ...]



" '...'? "


사령관은 가장 기대하던 종합 평가가 누락된 것을 보고는 음식이 아닌 걸 넣어서 기계가 망가졌는지를 의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여지도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 오... wow."


상소문. 사령관은 언젠가 자신이 발견된 지역에서 건국되었던 한 나라에 관한 자료를 발견했을 때 보았던 상소문이 떠올랐다. 140줄에 달하는 종합 평가를 주욱 내리며 자신이 인형에게 정말 몹쓸 짓을 했다는 걸 깨달은 사령관은 인형을 힘껏 끌어안으며 조용히 사죄의 말을 전했다. 자신도 모르게 흘린 눈물을 인형의 머리를 적셨을 즈음이었다. '대타출동'과 연결된 개발실의 모니터에 나온 상소문을 읽은 닥터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전송되었다.



"나한테 '그거' 보낼 생각 추호도 하지마."



"쯧"


아깝다. 이래서 감이 좋은 애는 정말 최고라니까. 닥터에게도 이 감동을 전해주겠다는 마음이 꺾인 사령관은 가슴 속에 뭉친 좌절감을 조금 느꼈다. 하지만 언젠가 닥터의 방으로 갈 보급용 닥터페퍼에 갈아넣은 민트뭐시기를 주사해 배달하리라. 그런 쓰레기같은 고민에 빠져 멍을 때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사령관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된 것이었사옵니까. 어쩐지.."


본디 하치코는 주방 출입이 엄중히 금지되어 있고, 본인도 그걸 주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치코가 웃으며 주방으로 뛰어 들어오니 소완은 우선 그녀를 막고 자초지종을 물어봤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후, 소완은 정상적인 미각을 가진 자신의 주인이라면, 식용을 목적으로 민트뭐시기를 주문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에 도달해 하치코를 미행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소완은? 한번 해보지 않을래?"



"개인적으로 소첩은 하고 싶지 않사옵니다."



"엇"


사령관이 알고 있던 소완은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약까지 타는 마녀다. 결코 남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일 없이 자신의 길을 올곧게 나아가는 이 구역 미친년의 표본이었을 터였다. 그런 소완이 평가를 앞두고 꺼림칙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자 사령관은 무척이나 그녀의 상태가 의아했다.



"어째서냐.."



"예?"



"다크 시그너였을 때의 너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소완! 말해라! 누가 너에게 약을 탔지?!"



"..주인께선 사려가 깊으신 건지 본성부터 썩어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갈 때가 많으신 것 같사옵니다."



"아무튼 순전히 제 사견이옵니다."



"그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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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니까 글자수로만 1만 자 조금 안 되게 나와서 허리 잘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