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자신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내가 회의에 참여해야하는거지?"


기계음으로 이루어진 목소리 속에 섞여 있는 것은 위협이다.

그러나 주인, 이세상에 하나 남은 인간은 기계를 온화한 표정으로 볼 뿐이다.


"너도 일단은 장성이잖아?"


공룡을 닮은 기계는 붉은 눈을 빛낸 후 답했다.


"계급 따위 나에겐 무의미하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인 군단이니까?"


기계가 낮게 울었다.


"주인. 내 이름이 뜻하는 바를 모르지 않을텐데."

"폭군"


기계는 재차 운 후 말을 이었다.


"그래. 나는 폭군. 그렇게 만들어졌다. 눈앞에 있는걸 부숴라.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 내가..."


기계 아니 타이런트가 전례없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살덩이들과 발을 맞추라고 하는것인가? 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말을 하고 싶은가?"


타이런트는 주인의 호위를 보았다. 

뼈대만 금속일 뿐인 나약한 살덩이, 지방질로 이루어진 계집년들.

타이런트가 보기에 그것들의 용도는 제 주인의 육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들은 주인과 대화하는 타이런트를 긴장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

아니, 어쩌면 불쾌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론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만.


"주인. 나는 당신을 인정한다. 당신의 명령은 효율적이다. 당신만이 내 목에 줄을 메달 수 있다. 그러나 목줄을 멨다 하여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연히 그런 의미는 아니죠."


타이런트는 난입한, 유쾌하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계음으로 이루어진 목소리에 불쾌감을 토로하듯 전자음으로 된 숨을 내뱉었다.

타이런트는 어느새 제 주인 옆에 자리 잡은 흑색과 금색으로 이루어진 인간형 기계를 보았다.

몸체와 어울리지 않는 동그란 코어, 그리고 중절모를 쓴 그것에게 타이런트는 말했다.


"실패작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평소라면 우와와와라고 떨며 도망쳤을 실패작은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실패작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겁니다. 해..."


타이런트는 눈을 붉혔다. 그 어느때보다 분노어린 포효를 내뱉으며 실패작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그 이상 말하면 씹어먹겠다!"


실패작은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넘어지더니 자신보다 작은, 유일한 인간의 등 뒤에 숨었다.

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타이런트의 주인을 보았지만, 주인은 실패작을 한심한 눈으로 볼 뿐이다.

실패작, 아니 알프레드는 표정을 가다듬곤 있을 리 없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조심스레 한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커흠...어쨌든 같은 로버트의 자식인 셈이니 말할 수 있습니다. 타이런트씨. 로버트의 방식은 잘못됐습니다."

"...무슨 의민지 설명해라."


타이런트의 질문에 알프레드는 요정마을에서 보았던 것을 설명했다.

주인없이 떠돌아다니던 고철, 원시 공룡 그 자체가 되어버린 그의 동족들을.

말을 마친 후 알프레드는 덧붙였다.


"파괴하라. 생존하라 .최강의 괴물이되어라. 로버트가 만들 당시에는 옳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답일까요? 그저 폭력만 믿고 날뛰면 당신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 그렇게 보는 겁니다."


타이런트는 주인을 바라보았다.

주인은 아무말 하지 않지만 타이런트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흥!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


타이런트가 발을 구르자 땅이 울고 격납고가 흔들렸다. 그러나 주인은 똑바로 타이런트를 바라볼 뿐이다.

타이런트는 그런 주인과 눈을 마주친다. 한참을 그렇게 기계와 인간은 서로를 주시하고.


"좋다."


폭군의 대답에 주인이 미소지었다.


"그럼 함내에서 지낼 수 있는 소체를 만들 수 있도록 이야기 해둘게."

"통신으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레모네이드들이나 철충에게 재밍 당할 위협도 있으니까. 가능하면 통신은 지양하고 싶어. 괜찮지?"

"...흥 마음대로 해라."


타이런트는 그러고 며칠 뒤 자신의 대답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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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된거냐!"


붉은 머리의 소녀가 소리쳤다.

오르카호에 붉은 머리는 많지만 누구도 본적 없는 모습을 한 소녀였다.

소녀는 금방이라도 손에 잡힌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고 부술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귀엽다는건 부정할 수 없지만.

해체자 아자즈는 소녀를 흘겨 본 후, 제 프라모델 킷을 만지작 거리며 답했다.


"어떻게 된거냐니요?"

"보고도 모르겠나!"


소녀는 제 빈약한 가슴을 두드렸다. 


"왜 내가 너희 같은 몰골이 되어 있는거지?"

"소체가 필요하다 했잖아요?"

"그래! 하지만..."

"이왕이면 귀여운게 좋잖아요?"


소녀, 아니 타이런트는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순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좋을 리가 있겠나!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거냐!"

"해피죠."


타이런트는 그 어느때보다 동공이 요동쳤다.


"이 망할 살덩..."


그리고 아자즈에게 달려들었지만 아자즈보다 한..아니 두체급 작은 상황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오히려 어린애가 투정을 부리는 모양새로 보일 뿐이다.

그것도 잠시.


"케헥..헥"


타이런트는 곧 숨이 차 바닥에 나앉았다.


"뭐야...이거?"

"재밌죠? 당신 몸에는 없는 기능을 넣어봤어요. 처음 지쳐본 기분은 어때요? 안익숙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지쳤네요?"


타이런트는 아자즈를 쏘아봤지만 그게 끝이다. 

혀를 길게 내민 채 거친 숨을 내뱉었다.


"망할...계집년...죽...죽여버리겠..."


문이 열린건 그 직후였다.


"소체 완성됐다고 해서 왔..."


유일한 인간은 아자즈 그리고 처음보는 소녀를  번갈아본 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곧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지만.


"....타이런트야?"


대답한 건 타이런트가 아닌 아자즈였다.


"귀엽죠?"


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주인을 보는 타이런트의 눈에서 작게 눈물이 맺혔다. 

굴욕, 치기 그외 갖가지...어쩌면 어린애 같은 소체로 바뀐 탓일지도 모른다.


"...저 타이런트?"


타이런트는 바닥을 바라보며 팔을 떤다.

주인은 소녀가 된 기계와 눈높이를 맞춘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렇기에 날아든 박치기를 피하지 못했다.

뼈와 쇳덩이가 부딪히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타이런트와 주인 둘 모두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거의 동시에 이마를 부여잡는 둘.

그러나 먼저 몸을 일으킨건 주인이었다.

그는 타이런트가 얼굴을 붉힌채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는 동안 타이런트는 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다 주인 탓이다! 괜한 소리를 해서 내가 이런 몰골을 해야 됐지 않나!"


주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타이런트를 일으켜 세워줬다.

그 직후 타이런트는 주인을 차고 때리고 물었다. 

그러나 끽해야 어린애의 투정일 뿐이다.


"바보가! 물어 죽여버리겠다! 으깨버리겠어!"


본래 몸이라면 살벌하기 그지 없을 말들도 마찬가지.

주인은 그런 타이런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계집애가 아니다!"


위협하는 목소리와 달리 타이런트는 쓰다듬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주인! 빨리 제대로 된 소체를 내놔라! 그리고...!"


타이런트는 주인의 품에 얼굴을 박은 채 말을 이었다.


"...그동안엔 나를 받들어 모셔라."


처음에는 걱정어린 표정이었다.

이제는 안도와 다정함만이 남은 표정을 한 채 주인은 작아진 폭군을 안아들었다.


"알겠어. 그럼 같이 갈까? 회의 곧 시작할거야."


타이런트가 어린아이의 소체로 회의에 나타나고 며칠 후 불굴의 마리가 어린 소체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아자즈를 찾았다는 풍문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풍문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타이런트 스킨은 좋아하지 않음.

이쁘긴 한데 하필 ㅅㅂ.... 로봇박이라 솔직히 감내하기 힘듬


그거랑 별개로 저런식의 서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짜봄


모자란 글 재밌게 봐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