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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의 인프라 구축이 어느 정도 끝이 보이 보이는지 오르카에 무적의 용이 합류했다. 그동안의 성과나 자잘한 보고를 마친 뒤 용은 잠깐 시간을 내 오랜만에 부사령관을 만났다.

 

 “소식은 들었소. 축하드리오, 부사령관.”

 “고마워, 용. 그리고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아니오, 소관도 이렇게 부사령관과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으니.”

 

 용은 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르카의 미래를 위해 외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100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말을 걸기 무섭게 업무에 휘말려 좀처럼 시간 보내기 어려웠는데, 10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그녀는 바빴다.

 

 그래서 용이 깨어난 뒤 부사령관은 짧게나마 인사를 한 뒤, 나중에 차라도 같이 마시고 싶다고 부탁했었는데 다행히 용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멸망 전에 처음 만났을 때 구해준 거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용이 무척 바빠 보여서 도저히 말할 엄두도 안 나더라고.”

 “어쩔 수 없었소. 그때는 소관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됐었기에 여유가 없었으니 말이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다행이야.”

 “소관도 그때 구해주었던 인간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서 만난 게 기쁘오.”

 

 용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정박한 항구에서 어느 노인이 자기 손녀를 구해달라면서 애원했었다. 용은 인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을 구하는 것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노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노인이 바이오로이드를 데리고 거처를 잠시 비운 사이 철충이 그의 거처를 습격했고, 거처를 지키던 바이오로이드들이 항쟁하고 있었다. 용은 군사를 이끌어 철충을 무찌르고, 노인은 감사하다면서 연신 허리를 굽히며 물자와 자원을 상당히 넘겨주었다.

 

 아무리 최고위 지휘관이라지만 바이어로이드인 자신에게 부담될 정도로 정중했던 노인이었기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노인의 손녀였던 부사령관도 말이다.

 

 ‘그렇게 작고 연약했던 인간이 지금은 새로운 인류의 어머니가 되었다니. 이런 걸 새옹지마라 하던가.’

 

 조금만 건드려도 부러질 것 같이 위태로웠던 그때의 모습과 제법 배가 나왔지만 눈빛이 살아있는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용이 감상에 빠져들었을 무렵, 부사령관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소식이 늦었나 보네, 용은.”

 “늦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부사령관?”

 “그게, 한 명이 아니라……둘이야.”

 “둘? 쌍둥이라는 것이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용이 놀라서 묻자 부사령관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허허! 오르카에 경사가 왔군요.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라니. 정말 감축드리오, 부사령관.”

 “응, 고마워.”

 

 쌍둥이의 소식에 용은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였지만 정작 그녀보다 기뻐해야 할 부사령관은 그렇게 기뻐하지 않았다. 애써 웃고는 있지만 눈동자에 깃든 불안함을 용은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부사령관은 그리 기뻐 보이지 않는 것 같군. 혹시 아이를 원치 않는 것이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기뻐. 기쁘기는 한데…….”

 “그러면 무언가 다른 걱정거리라도 있는 것이오?”

 

 몇 개월 만에 만난 용한테도 들킬 정도로 자신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나. 부사령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하나도 아니고 두 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야.”

 “부사령관의 걱정이 뭔지 알겠구려. 하지만 괜찮소. 소관도 그렇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바로 그 바이오로이드들이 문제라서 그래.”

 “그것이 무슨……아…….”

 

 그제야 용은 부사령관이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분명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었고,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둘이라면 지금은 몰라도 훗날 오르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용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깨어나기 전의 오르카, 정확하게는 사령관과 부사령관이 결혼하기 전의 상황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르카는 암묵적으로 두 개의 파벌이 있었는데 배틀 메이드 소속 콘스탄챠와 스카이 나이츠 소속 그리폰이 먼저 찾아낸 첫 번째 인간인 사령관을 필두로 한 파벌과 컴패니언의 리리스와 스틸라인의 부대가 이후에 찾아낸 두 번째 인간인 부사령관 파벌로 나누어져 있었다.

 

 원래라면 처음으로 찾아낸 첫 번째 인간인 사령관이 오르카를 지배했어야 했지만 하필이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두 번째 인간인 부사령관이 발견되었고, 거기에 부사령관을 주인으로 모셨던 컴패니언의 리더 리리스와 그녀의 조부와 안면이 있었던 불굴의 마리 때문에 두 파벌 간의 삐걱임이 있었다.

 

 물론 두 인간은 권력에 관심이 없었지만, 서로가 모시는 주인을 저항군의 수장으로 두고 싶었던 두 파벌 때문에 오르카가 분열할 뻔했으나 두 번째 인간이 부사령관을 자처해서 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두 파벌 간의 불협화음은 끊이지 않았는데, 두 인간이 결혼하면서 간신히 풀어졌었다.

 

 그런 사실을 용도 알고 있기에 혹시라도 앞으로 태어날 두 아이들 사이로 파벌이 형성되어 분란에 휩싸이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확실히 심각한 문제로군.”

 “그렇지. 심각한 문제야.”

 “파벌이 나뉘어서 오르카가 분열할지도 모르니 말이오.”

 “바이오로이드 감수성 때문에 애들한테 무슨 영향이 갈지 걱정이야.”

 “……응?”

 “……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깜빡깜빡 떴다 감더니.

 

 “푸하하! 뭐야, 용은 그런 거 걱정하고 있었어?”

 “아니, 저 소관은…….”

 

 부사령관은 박장대소했고, 용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그래그래, 용이 하는 걱정도 일리가 있지만 나랑 사령관이 그런 것도 대비 안 했을까봐?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

 “……그건 다행이구려.”

 

 이미 그 파벌 문제로 마음고생이 많았던 부사령관은 닥터한테 쌍둥이를 진단받았을 때부터 염려해두고 있었다. 사령관도 같은 마음이었기에 이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하기로 했고 말이다.

 

 부사령관의 말에 용은 무안해서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바이오로이드 감수성이란 건 무슨 말이오?”

 “아하하……그 뭐랄까. 애들이 좀 스타일이 파격적이고 과감하다고 해야 하나.”

 

 오드리가 만들어준 그때의 웨딩드레스라는 이름의 끈을 생각하자 부사령관은 얼굴을 붉혔다.

 

 “크흠, 아무튼 좀 파렴치, 아니 지나치게 노출이 심한 애들이 많아서 아이들이 그거 보고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는 거지.”

 “그, 그렇군. 확실히 조금 그 감수성이 지나친 이들이 없는 게 아닌, 아니지! 부사령관, 그건 바이오로이드 감수성이 아니라 그냥 그녀들이 자유분방한 거지, 바이오로이드 전부가 파렴치하지 않소!”

 “……용이 그렇다고 말하면 그렇다고 생각할게.”

 “그 눈빛은 뭡니까! 소관은 한사코 그런 생각을 한 적 없소!”

 “알았어, 용. 장난이야, 장난.”

 

 당황하는 용의 모습이 재미있었지만, 부사령관은 적당히 멈추었다.

 

 겨우 진정한 용은 이미 식을 대로 식은 차를 마시고 한숨을 뱉었다.

 

 “후우, 부사령관 그대는 장난이 짓궂으시구려. 소관이 살면서 이렇게 휘둘려본 적은 처음이오.”

 “칭찬 고마워, 용.”

 “굳이 칭찬은 아니오만……아무튼, 부사령관의 걱정은 그게 전부입니까.”

 “물론 아니지. 잠수함 안에만 지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한테 들어가는 자원이랑 인력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조금 전까지 웃음에 차 있었던 부사령관의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배를 쓰다듬었다.

 

 “내가 이 아이들한테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

 

 용은 입을 닫았다.

 

 얼마 전까지 한 집단의 2인자에서 준비도 없이 어머니가 되는 바람에 불안한 부사령관에게 용은 뭐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이를 키워보기는커녕 남자와 관계를 가져본 적도 없으니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용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애초에 사령관과 결혼할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었는데, 아이를 낳아서 잘 돌봐줄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신 없는 거야.”

 

 부사령관의 눈동자와 목소리가 불안함에 떨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멸망 전 인간이잖아? 혹시라도 내가 잘못해서 아이들이 멸망 전 인간처럼 너희를 함부로 대하면 어떡해.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그건 아니오.”

 

 용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부사령관은 멸망 전의 인간이 맞지만, 부사령관은 그들처럼 우리 바이오로이드들을 대하였소?”

 “아니,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소관이 봐도 부사령관은 결코 그런 인간이 아니었소.”

 

 멸망 전 인간이 바이오로이드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 그리고 어떤 취급을 해왔는지 용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철충으로부터 그들을 지켰을 때도 종종 그런 취급을 받았었는데, 그 이전에는 어땠겠는가.

 

 하지만 부사령관은 그들과 달랐었다. 처음 부사령관을 만났을 때도 용에게 보인 감정은 호의였고, 존경이었다. 평생 살아오면서 받아본 적 없었던 감정에 마음 한편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용은 생판 처음 본 바이오로이드에게도 그런 따뜻함을 보여준 부사령관을 멸망 전 인류와 같이 볼 수 없었다.

 

 “부사령관은 멸망 전의 인간이시지만 그들과 다르오. 한낱 도구에 불과한 우리를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해주었고, 호의를 주었소. 그런 특이하면서 다정한 부사령관이라면 필시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것이오. 아이들을 좋은 길로 이끌 것이오.”

 “용의 말대로야, 부사령관.”

 

 용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령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벌써 끝내신 것이오, 사령관?”

 “아직 할 일 남아있지 않아?”

 

 자비로운 리앤에 관련된 정보를 찾기 위해 시티가드 건물 뒤에 설치된 서버실에서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했어야 할 사령관이 난데없이 나타나니 의외였다.

 

 벌써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온 걸까 싶었는데 그게 아닌 듯 사령관은 실없이 웃으면서 부사령관의 옆에 앉았다.

 

 “서버실 주변에 방어진을 구축 때문에 잠깐 여유가 있어서 들렀어. 겸사겸사 부사령관 얼굴 좀 보고 싶고.”

 “아침에 본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가? 하지만 또 보고 싶은걸.”

 

 징그럽게 달라붙는 사령관에게 부사령관은 질색했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은 듯 얼굴을 붉히기만 할 뿐이었다.

 

 “……저번보다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구려. 역시 아이가 생겨서 그런 것이오?”

 “그런 것도 있지만, 저번 일로 내가 아내에게 소홀했구나 느껴져서 더 잘해주고 싶어서 그래.”

 

 새벽 중에 벌어진 리리스의 단독행동으로 오르카가 비상이 걸렸었던 그날 이후 사령관은 스스로를 반성하였다. 아무리 부사령관이 권유했고, 오르카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임신한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안는 건 고된 일이었다.

 

 관계를 가질 때마다 부사령관이 생각났고, 반강제로 의무적으로 해봤자 상대도 만족하지 못해 좋게 끝나지 못했다. 그래도 부사령관을 위해서, 오르카를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버텼지만 리리스가 벌인 소동으로 임산부의 입덧에 대한 걸 알게 되었고, 부사령관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깨달은 사령관은 그 이후로 그녀의 수발을 들었다.

 

 사령관은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마다 부사령관부터 챙겼다. 그녀가 무언가를 먹고 싶으면 직접 음식을 가져왔고, 힘들어하면 마사지를 해주고, 씻을 때도 정성을 다해 닦아주는 등 메이드가 할 일들 전부 그가 도맡았다.

 

 밤에도 무조건 부사령관과 보냈고, 다른 여자는 일체 건들지 않았다. 오히려 부사령관이 부담된다고 밀어내도 사령관은 고집부려 그녀의 곁을 지켰다.

 

 “원래부터 잘해줘야 했는데 내가 부족해서 부사령관을 힘들게 했어. 정상적인 부부라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야, 용도 보고 있는데 징그럽게 뭐하는 거야. 그만해.”

 “아, 이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둘이서 아주 염장질을 보여주니 용의 눈이 짜게 식어갔다.

 

 공적을 세우면 그에 맞는 보상을 준다는 마리의 말을 듣고 용도 여자였기에 사령관에게 보상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눈앞의 뜨끈뜨끈한 장면을 보니 당분간 기대도 못 할 판이다.

 

 그게 올바른 부부의 관계겠지만 한편으로 아쉬워 용은 쓴웃음을 지었다.

 

 “부사령관이 걱정하는 것처럼 나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걱정되긴 해. 너도 처음이다시피 나도 아빠가 되는 건 처음이니까.”

 

 사령관은 소중한 것을 대하듯이 부사령관의 배를 어루만졌다.

 

 “나도 부족한 게 많고, 서툴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 약속했잖아? 함께 배워가자고.”

 

 어느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배워나가면서 익숙해져 간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한다면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한테는 우리를 도와줄 사람도 많으니까 같이 힘내자, 부사령관.”

 “씨, 너는 왜 매번 그런 낯간지러운 말만 하는 건데…….”

 “왜기는, 그야 부부잖아?”

 

 펑, 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사령관은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을 사령관의 품에 파묻었고, 그는 자상하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정말로 끈적하고, 뜨끈한 두 인간의 모습에 용은 입가가 실룩이면서도 옆구리가 시렸다.

 

 ‘부사령관이 출산한 뒤에 소관도 사령관에게 부탁해야겠구려.’


무용 앞에서 꽁냥꽁냥 염장질 지르는 환장할 부부 같으니, 어우 떡밥만 주구장창 풀어대다 회수하려니 힘들다!


사령관은 리리스를 보고 반성해서 다른 여자와 동거 거부하고, 오로지 부사령관 수발만 듣는중.


현재 리앤 스토리 초반이고, 알파 합류하는 스토리 끝내서 얼른 낙원 스토리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