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추천드리지 않아요 주인님.”


 “한 번쯤은 괜찮지 않아?”


 “바닐라 그 아이가 말만 사납게 할 뿐이란 걸 알고 계시잖아요?”


 “그치만 날 매도하기만 하는 걸”


 “그렇다해도 이건 좀 과해요. 몰카라니...”


 “자살이 아니라 그냥 죽음으로 위장하는 것도 많이 봐준 거야.”


 “인간이란 다 이런 걸까요...”


 “에이 장난인데 뭐 어때~”


 콘스탄챠와 사령관은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령관이 굳이 바닐라에게 몰카를 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투덜대는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전보다 나아진 거라고는 해도 그녀의 독설은 심한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가지지 않으면 상대의 단점을 전부 보지는 못하는 법이지만, 사령관으로서는 눈치채지 못하고 바닐라가 자신의 단점만을 본다고 생각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감정은 표현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그중에서는 사랑이 제일 전해지지 않는다. 사랑이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령관은 이러한 몰카를 기획한 것이다. 우선 일일 부관으로 바닐라를 선정한 후에, 자신은 일하다가 쓰러진다. 그러면 사령관의 신변의 위기라고 파악한 경호 바이오로이드들이 방으로 들어와 사령관을 수술실로 데려간다. 거기서 미리 겉껍데기만 준비해둔 자신의 예비용 신체와 바꿔치기한다. 그리고 튼튼한 유리 벽 하나를 세워둔 후에 자신의 가상 시체와 바닐라를 만나게 한다. 그리고 바닐라가 잘못을 깨달은 것 같으면 사령관이 나온다.


 그저 괴롭힘으로 밖에 안 보이는 이 계획에 찬동하는 바이오로이드는 거의 없었지만, 바닐라가 사령관을 향해 독설하는 점만을 안 좋게 보는 몇 바이오로이드는 뒷 준비를 도왔다. 그리고 대망의 실행일이 다가오고, 바닐라는 간만의 부관직에 깔끔하게 몸단장을 다 하며 콘스탄챠에게 물어가며 완벽하게 준비하려 노력했다. 그 모습은 마치 데이트에 나가기 전 소녀와도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본 콘스탄챠는 이 계획을 말해버릴까도 싶었지만, 이 일을 통해 사령관도 바닐라도 뭔가를 배우리라 생각해서 말하지 않았다.

 바닐라는 다른 배틀메이드 기종들에게 인사를 한 후에 사령관 실로 향했고, 콘스탄챠는 그제야 다른 배틀 메이드들에게 오늘의 계획을 말했다. 배틀 메이드는 사령관이 안 보는 곳에서의 바닐라의 노력이나 표현하지 못하는 애정 등을 알고 있기에 당장 말리려 했지만, 앨리스가 그 앞을 막아섰다.


 “바닐라 그 아이는 이번 일로 배울 필요가 있어요.”


 “우리 주인님을 대하는 그 태도...”


 “솔직히 다들 한번쯤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잖아요?”


 “이번이 기회일 뿐이에요.”


 다들 앨리스를 뚫어내지 못했다. 무력의 차이도 있지만, 보이는 곳에서 바닐라가 사령관을 대하는 태도는 충성을 다하는 메이드라기엔 좀 이질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도 반박 못 하고 그저 지켜보기로 했다. 앨리스로서는 바닐라가 고통받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요 며칠 새 바닐라는 업무라지만 간만에 단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에 미소를 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앨리스는 순진무구한 그 미소가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순간, 그 순간을 보거나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잠시 후, 다급한 발 소리가 여렷 들리고, 배틀 메이드들은 결국 일이 났구나 싶어 수술실 앞으로 다 같이 향했다. 그곳에는 바닐라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앨리스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숨긴 채 걱정하는 척을 하며 바닐라에게 다가갔다.


 “어찌 된 일이니? 바닐라?”


 “앨리스 언니...”


 “주인님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계셨어요...”


 “뭘 어떻게 하기도 전에 경호 인원들이 들어와서, 수술실로 들어가셨고요.”


 “...괜찮으실까요?”


 앨리스는 일부러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괜찮으실거야, 바닐라나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 주인님은 이 정도로 돌아가실 분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


 바들바들 떨리는 바닐라의 몸을 가련하다는 듯이 안아준 앨리스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앞에 일어날 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말이다. 곧이어 닥터가 나오고,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사령관의 상태를 얘기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내장의 출혈 및 뇌출혈이라는 갑자기 나타나기엔 뭔가 엉망진창인 상태였지만 상태가 심각했기에 그냥 받아들이리라 생각하고 대충 사령관이 생각해 낸 것이다. 여기에 앨리스는 한 수를 더 뒀다.


 “과도한 스트레스요? 주인님이요?”


 바닐라는 흠칫했다. 설마 싶었기 때문이다. 닥터가 거기에 쐐기를 꼽았다.


 “업무 스트레스가 대부분이긴 하겠지만, 폭언 같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기는 해.”


 바닐라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해 뱉어낸 말들이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주인님을 저렇게 만들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계속해서 추가타를 날리려 했다.


 “언제 일어나실 수 있죠?”


 “솔직히 장담은 못하겠어, 굉장히 위험한 상태야.”


 곧이어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주인님이 어떤 상태라고요?”


 블랙 리리스였다. 계획을 모르는 경호 바이오로이드중 하나가 실제 상황인 줄 알고 부른 것이리라. 닥터로부터 다시 한번 설명을 듣고 난 후에, 그녀는 주저앉아 울고 있던 바닐라를 한쪽 팔로 일으키고는 나머지 한쪽 팔로 강하게, 아주 강하게 뺨을 때렸다. 바닐라는 그대로 날아가 수술실 앞 의자에 처박혔다. 인간이었으면 즉사했을 것이다. 배틀 메이드들의 표정이 굳었다. 리리스는 그에 굴하지 않고 적을 대하듯 살기를 내세우며 바닐라에게 다가갔고, 그 앞을 마찬가지로 화가 난 듯한 앨리스가 막아섰다.


 “이게... 뭐하는 짓이죠?”


 “사령관께 해를 가한 위험 분자를 제거하는 일인데요? 비키세요.”


 “그녀의 처분은 적어도 배틀 메이드 내에서 결정 합니다. 부외자는 빠지시죠.”


 “언니, 동생하며 가족 놀이나 하시더니 뇌가 빠지셨나 본데, 주인님이 저딴 저가형 바이오로이드 하나 때문에 위험에 빠지셨어요.”


 “가족놀이? 누가 누구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비키세요, 경호 실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해요.”


 “못 비켜요, 저희 구성원한테는 손 못 대게 할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팽팽하게 대치가 계속되고, 그 끝은 리리스가 총을 들어보이는 것이었다. 바닐라를 조준하고, 발사하려는 순간, 라비아타가 총구를 으스러뜨리며 얘기했다.


 “지금 이게 뭐하는 거죠?”


 “위험 분자를 제거하려 했어요.”


 “사령관 님이 편찮으신데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멋대로 벌하려 하다니. 경호 실장이 해야할 일이 맞나요?”


 “하, 이게 사사로운 감정이라고요? 당장 지나가던 브라우니를 잡아서 설명해도 저년을 죽이려 댈걸요?”


 “잠시 따라오세요.”


 라비아타는 힘으로 리리스를 끌고 나갔다. 라비아타는 상황을 잘 알고 있으므로 설명을 잘할 터였다. 한차례 폭풍이 일고 난 후에, 수술실에서 긴급한 경고음이 울렸고, 닥터또한 수술실 안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엔 적막함 만이 맴돌았고, 바닐라는 가까스로 일어났다. 얼굴 반쪽이 퉁퉁 부어 말 못 할 꼴이었다. 이 모습엔 그 앨리스도 동정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앨리스가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고, 그 누구도 이런 모습을 바라지 않았다.


 곧이어 닥터가 이상하리만치 빨리 나오고, 모두들 불안함을 감지했다.


 “들어가 봐도 돼...”


 바닐라는 누구보다 빠르게 들어갔고, 나머지 배틀 메이드도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유리 벽 너머에 잠자듯 평온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사령관이 있었다. 그리고 구석진 어둠 속에 사령관이 숨어있었다. 사령관의 시점에서는 바닐라의 부어오른 얼굴 쪽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실실 쪼개며 ‘이 정도면 잘못한 걸 알고 버릇을 고치겠지?’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바닐라는 울지도 않고, 소리지르지도 않으며,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헤실헤실 웃고 있던 주인님은 이제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곧바로 뛰쳐나갔다. 그 자리의 누구도 잡지 못했다. 곧이어 발소리가 멀어지고, 사령관이 기어 나왔다.


 “어때? 몰카 성공인가?”


 상황파악도 못 하고 천진난만한 소리나 해대는 사령관에게 경멸하는 듯한 시선만이 꽂혔다.


 “...왜 그래?”


 곧이어 사령관은 자초지종을 듣고, 표정이 점점 굳더니 전부를 데리고 바닐라의 뒤를 쫓았다. 그 잠깐 사이에 바닐라는 사령관 실로 향했고, 그걸 모르는 이들은 숙소로 향했다. 바닐라는 바닥에 버려진 초코케잌과 포크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포크를 집고, 사정없이 자신의 목을 찔렀다. 몇 번이나 찔렀는지 목은 걸레짝처럼 찢어지고, 피는 바닥에 흥건했다. 그리고 바닐라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자 그 곳은 수복실 이었고, 자신의 옆에는 울고 있는 사령관이 있었다. 지독하지만, 행복한 꿈에, 바닐라는 웃으며 얘기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바람 새는 듯한 소리만 나왔다.


 곧이어 닥터가 들어오고, 상황을 설명했다.


 “목 부분, 특히 성대의 손상이 심각했어. 아마 다시는 말을 못 할 거야.”


 “미안해, 바닐라. 이런 일을 바란게 아닌데...”


 바닐라는 사건의 전황을 들었다. 그러고는 전해준 노트로 필담을 하기 시작했다.

 “전부 몰카였습니까?”


 “응 그래, 전부 거짓말이었어 미안해.”


 “다행입니다. 살아계셔서.”


 “나 때문에 미안해. 이런 꼴이 되기를 바란게 아닌데...”


 “괜찮습니다.”


 “주인님을 상처입힌 목소리 따위는 없어도 됩니다.”


 “주인님이 계시니까요.”


 사령관은 울기만 할 뿐 아무 말도 못했다. 바닐라는 사령관의 눈물을 닦아주며 써놨던 글을 보여줬다.

 “말로 전하진 못했지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주인님.”


 사령관은 ‘미안해’라고만 되뇌며 바닐라를 껴안았다. 바닐라는 웃으며 사령관을 받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