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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큰 공사는 아니었으나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오르카호 중앙 무장창이 있던 자리를 트고 만든 광장에 석비를 들이는 일. 오르카에 석공 바이오로이드가 없어 서툰 손으로 돌을 쪼고 다듬느라 더욱 그랬다. 여태껏 필요하지 않았던 역할이었다. 또한 이 순간 창백한 뼛가루의 빛깔을 한 대리석비에 작은 이름과 군번이 새겨진 모습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은 앞으로도 석공이 필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있어 홀연 나타난 명장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극히 제한된 인원으로 안전한 바다를 기반으로 한 유격전을 펼쳐야했기에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전술은 멸망 전 인류의 군 지휘관, 혹은 기존 바이오로이드 저항군 지휘관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고, 또 달라야만 했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내해냈던 그들과는 달리 사령관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용납하지 않았다. 답답할 정도로 느린 공격과 철통같은 방어, 언제나 지상 전력의 후미에서 긴급 후송과 압도적인 화력 지원을 담당하는 기동 전력까지. 부상을 입는 자는 꽤 있었으나 바이오로이드와 AGS 특유의 신체 내구력에 빠른 의료지원이 동반되다보니 동료의 손을 영영 놓는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평소에도 자신들을 인격적으로 -정신적 유대감뿐 아니라 신체적 유대도 동반하여- 대하는 사령관이 전장에서도 전투원의 목숨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사실은 그의 자리를 사이비 교주 비슷한 위치까지 올려놓았다.

 

 그랬기에 모두가 처음 겪는 장례식의 충격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사령관 각하. 물입니다. 좀 마시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야, 난...난 괜찮아 마리. 저기 브라우니 1922한테 먼저 가져다 줘. 벌써 20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통곡하고 있잖아.” 

 

 “아닙니다. 사령관 각하가 먼저입니다.”

 

 “뭐? 나? 먼저? 입 닥쳐. 지금 저 아이들이 왜 죽은지 알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

 

 생각지도 못한 폭언에 마리의 얼굴에 가장 먼저 떠오른 표정은 당황이었다. 당황이 분노로 변하는데는 평소와 다르게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모두가 지쳐있었다. 명석한 지휘관인 마리조차도 생각을 이어가는데 긴 시간이 걸릴 정도로. 다행히 감정이 북받친 마리가 사령관에게 대거리를 하기 전 레오나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지금 마리가 한 말이 사령관이 더 중요하고 병사들은 덜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잖아. 자기 모습을 좀 봐, 사령관. 언제 씻었는지 기억은 나? 사망 보고가 올라온 후 계속 이 상태야. 폐인 같은 몰골로 있는 사령관 당신 모습이 1922보다 배는 위험해보여.”

 

 “나……. 난…….”

 

 “알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일단 물부터 마셔.”

 

 뭐라 입을 열려던 사령관은 결국 제대로 된 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사망자들의 이름이 적힌 석비와 물통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가 달달 떨리는 양손으로 수통을 쥐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뚜껑을 열려고 한참을 애썼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마리와 레오나 역시 그에 대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않았다기보다는 이미 모두들 임계점까지 도달한 감정 때문에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는 편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간신히 뚜껑을 열고 수통을 입가에 가져다대는 사령관은 지독히도 느렸다. 톡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모습에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숨결조차 느렸다. 부르튼 입술 옆으로 물이 반 넘게 새었다. 입가에 흘렀으나 투명한 그 모습이 눈 옆으로 흐르는 눈물과 같았다. 앞섶을 다 적시고 나서야 그가 수통을 허리 아래로 내렸다.

 

 잠깐을 아무런 움직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령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전장에 부하들을 두고 오르카가 긴급잠항한 그 순간부터 장례식이 진행되는 지금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그가 처음 드러낸 비탄이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날 것 그대로의 울음을 풀어내는 그의 모습에 한계까지 자신의 감정을 몰아붙이며 사령관을 보좌했던 지휘관 바이오로이드들 역시 심장의 둑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임계점에서 터져나간 감정은 모두에게 전염되어 그렇게 한참을 장례식이 열리는 광장에 휘돌았다. 울다 지친 사령관이 기절하듯 잠들 때까지.

 

2.

 

 신경을 긁어내리는 듯한 경보음이 온 복도에 울렸다. 눈을 뜨자마자 사령관은 이것이 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긴급잠항 이후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몇 번이나 멍하니 백일몽으로 찾아왔던 기억이었다. 그들을 두고 오르카가 비겁하게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 그의 가슴에서 강제로 누군가를 찢어내게 한 악몽 같은 현실. 지금은 현실감 넘치는 악몽으로 진득하게 천착해오는 이 기억에 사령관은 꿈속에서 다시 기절할 것 같은 아찔함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만 긴급호출을 받고 제대로 전투복조차 입지 않은 채 함교로 달려가는 자신의 뒤를 좇을 뿐이었다.

 

 “세이렌은 아직 도착 안했나?”

 

 “호라이즌 부대를 이끌고 함상으로 올라갔어. 네레이드와 세이렌이 포탄 요격을 맡았고 운디네는 임시로 메이의 지휘 아래 들어갔어.”

 

 “메이는?”

 

 “직접 둠 브링어를 이끌고 긴급출격했어. 포격중인 철충들을 직접 타격할거야.”

 

 또박또박 대답하는 레오나 역시 헝클어진 머리칼이 급하게 함교로 들어온 것을 증명하는 듯 했다. 서둘러 뛰어들어오는 마리와 칸. 함교 중앙에 화상 홀로그램을 띄우는 알바트로스와 거꾸로 함교에서 장비를 챙기러 뛰어나가는 트리아이나까지, 평소와는 다르게 수라장이 벌어진 좁은 공간에 사이렌만 비웃듯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근무자 상황 보고해. 96C 도서관 탐색분대 복귀 중 아니었어? 갑자기 무슨 적 포탄 낙하야?”

 

 “통제관 레드후드입니다. 맞습니다. 해 분대 복귀를 위해 56분 전 상륙정을 발함했습니다. 그러나 상륙정이 병력을 태우고 육지에서 출항한 후 5분 후에 매복해있던 철충들이 포격을 개시했습니다.”

 

 “위치는? 대응 포격은 가능한거야?”

 

 “사령관, 그 부분은 알바트로스 내가 AGS 부대 배치와 같이 보고하겠네. 이미 포격당하는 상태에서 포병 전력들을 육상에 상륙시킬 수는 없다네. 다만 셀주크가 대포병 탐지를 맡고 있으며, 로크 역시 본관에게 보고는 없었지만 스카이 나이츠의 폭격전력 호위임무에 참여했다고 들었네. 에이다에게는 관측 및 방공관제를 요청했고 말이야. 위치를 화면에 전송하겠네.” 

 

 “슬레이프니르야. 다이카는 현재 관제 임무로도 벅차기 때문에 내가 대신 보고할게. 적 종심 쪽에서도 다수의 비행체가 식별됐어. 속도로 봐서 철충보다는 장거리 미사일일 가능성이 높아. 해안가의 포병 철충들을 상태로 항공차단 작전이 진행중이지만, 이렇게 표적 위치고 위협 정보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기습이라면 둠 브링어가 제 힘을 내기 힘들 것 같아.”

 

 완벽한 매복이었다. 두 달이 넘도록 꾸준히 이용했던 보급로였기에 철충의 위협에 대해서 모두가 방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잠수함으로 숨어 다니는 주제에 같은 시간에 같은 곳으로 탐색 분대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탐지당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으나 그 사실을 지적해줄 만한 해상 유격전 전문가가 오르카엔 없었다. 지휘실 스크린에 시현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온 해안가가 붉은 점으로 가득했다. 파란 점은 단 하나였다. 당장이라도 오르카를 집어삼킬 수 있는 전력의 차이에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사령관, 세이렌이야. 네레이드와 함께 요격 모드로 최대한 포탄을 막아내고는 있지만 모두 요격하지는 못할 것 같아. 수백 발도 넘는 포탄을 요격하는 건 우리...”

 

 굉음과 함께 잠수함 전체가 흔들렸다. 낮고 불길하던 사이렌도 찢어질 것 같은 빠른 패턴으로 바뀌어 기함했다. 보고 중이던 세이렌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화면 뒤편 네레이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트리아이나야. C구역 피탄. 수밀격벽 폐쇄할게. 선체 보수 관련해서 협조되었던 스틸라인 인원들 지금 바로 A6구역으로 호출해줘.”

 

 바로 호출명령을 내리던 마리가 흠칫 말을 끊고 사령관을 바라봤다. 상황이 아무리 급하다지만 사령관의 말도 없이 먼저 명령을 내리는 것은 실수였다. 그러나 마리와 마주치지 않고 바닥을 향해 떨리는 사령관의 동공은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닥친 치명적인 위기에 제정신을 차리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사령관 각하! 정신을 차리셔야합니다!”

 

 “사령관, 명령을 내리게. 어서 세이렌과 네레이드를 복귀시키고 잠항해야 하네. 이 정도의 전력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즉시 도주하지 않으면 오르카와 함께 박살나고 말거야. 적 공중 전력은 크게 식별되지 않으니 둠 브링어와 스카이 나이츠는 해상에서 복귀 지점을 정해 착함시키도록 하고.”

 

 사령관은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채 바닥을 바라보는 모습 그대로인 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마리는 스스로 저런 모습을 많이 봐왔다고 확신했다. 처음 전장에 섰을 때 충격에 빠진 바이오로이드들이 종종 보이는 모습이었다.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들마저도 피해갈 수 없는 비극이었으나, 지금 사령관에게 허락할 수는 없는 모습이었다. 사령관을 강하게 다그치기 위해 다가간 마리의 귀에 그제야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고 더듬거리는 목소리였기에 그녀마저도 고개를 사령관의 움츠러든 등 위로 내밀어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리 상륙정은? 신호 잡혀? 교신은 되는거야?”

 

 그녀가 틀렸다. 그는 전투의 충격이 아닌 당면한 부하의 죽음에 압도당해 있었다. 마리는 그녀조차도 상륙정에 대한 사실을 전혀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다. 탐색 임무를 마치고 오르카로 돌아오고 있었을 그들.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 넷과 AGS 스파르탄 셋으로 이뤄진 분대였으나 처음 겪는 잠수함 피탐 및 피격 상황에 모두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가장 공포감을 느끼고 있을 전투원도 그들이었다. 반격조차 할 수 없는, 조그마한 쪽배에서 포탄이 일으키는 물보라와 귀청을 찢는 낙하음에 패닉에 빠져있을 인원들.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든 그녀에게 알바트로스의 홀로그램이 눈을 마주쳐왔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기계의, 사람이라면 눈이 있을 부분에서 마리는 무엇인가를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단? 희생에 대한 경의? 기계인 당신의 생각은...

 

 “오르카는...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령관 각하.”

 

 “신호 잡혀?”

 

 “사령관! 어서 잠항해야 하네! 네레이드조차 전투불능인 상황에서 포탄이 날아온다면 세이렌 혼자 요격해내는 건 무리야!”

 

 “신호 잡혀?”

 

 “사령관!”

 

 “신호 잡혀?”

 

 잠깐의 망설임. 함교 안 공기가 쇳가루같은 침묵으로 변해 사람들의 어깨를 짓뭉개며 숨을 틀어막았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는 사령관의 어깨 위로 지휘관들의 시선이 오고갔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시선 공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은 전면전에 익숙한 이들이었다. 누군가의 피로 누군가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모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함교에 들어온 후 사령관의 뒤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서있던 지휘관들이 각자의 자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령관, 칸입니다. 저희를 용서해주십시오. 함장실로 모시겠습니다.”

 

 “세이렌, 레오나야. 지금 즉시 함교로 와줘. 잠수함 조타 권한을 너에게 넘길게. 호라이즌 인원들에 대한 후송과 지원은 모두 내 자매들이 맡을거야.”

 

 “마리 대장이다. 함내 모든 인원은 즉시 긴급잠항에 대비하라. 함내 모든 인원은 즉시 긴급잠항에 대비하라...”

 

 사령관은 거칠게 반항하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거나 반론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칸을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 칸은 그의 눈에서 포격으로 하반신이 통째로 날간 병사의 눈을 떠올렸다. 겪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고통에 순간 멍하게 세상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된 눈. 그는 명석한 사람이다. 분명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일인가? 넷과 셋을 배신하고 수백을 살리는 일이? 최소한 사령관 스스로의 입으로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명령인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정한 결심을 내렸기에 사령관보다도 먼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를 가만 바라보던 그가 지친 듯 머리를 기대왔다. 지독하게도 아픈 그의 날숨이 그녀의 어깨를 파내었다. 쉬지 않고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들 사이로 걸어 들어온 카멜과 페더가 손을 잡고 일으켜 줄때까지 그녀는 홀로 하염없고 소리없이 눈물흘렸다.

 

3.

 

 그는 꿈의 끝에서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세상이다. 결국 그는 자신을 배제하고 독단적으로 도망친 지휘관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인간에 대한 반역으로 처형하고 싶었지만 처형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기름때처럼 번져나와 이미 후회와 자기 합리화로 질척한 감정의 웅덩이에 번들거렸다. 물과 기름처럼 극명하게 두쪽나버린 스스로의 마음에 힘이 들었다. 지친 그는 이제 장례식마저 끝난 오르카에서 전사해버린 인원들 없이 다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일어나셨습니까.”

 

 “로크? 오늘이 며칠이지?”

 

 “XX일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부관 자격으로서 인사드리는 겁니다, 사령관님. 덩치 때문에 사령관님 침실로 직접 찾아가지 못하고 A격실에서 업무 및 사령관님 보좌를 해야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거야 AGS들이 부관 순번일 때 매일 있던 일이고. 나 기절한 동안 별 일은 없었어?”

 

 “다프네 양이 고역을 겪고 있습니다. 약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정신에 충격을 받은 인원이 많지만 함내에 저장된 정신과 약물이 거의 없습니다. 현재 5개 편대 정도가 지상 의료시설 위주로 탐색 임무에 투입되어 있습니다.”

 

 사령관의 머리맡에는 맑은 물 한 잔과 제각각의 알약 일곱 정이 놓여 있었다. 항상 모든 약에는 내성이 있다는 핑계로 약물 처방을 최소화하는 다프네의 습관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 다시 두 개의 감정이 그를 얽어맸다. 자신의 정신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자괴감, 사령관 자신의 목숨을 위해 말단 병사들의 목숨을 가벼이 버렸는데도 또 다시 자신을 위해 그들에게 가야 할 부족한 약물을 집중 투입하는 것에 대한 분노. 이러다 스스로가 둘로 쪼개질 것만 같았다. 차라리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한 명의 자신이 이 고통과 후회를 모두 짊어질 수만 있다면. 

 

 “약은 필요없어. 다프네에게 모두 반납해줘. 난 괜찮아.”

 

 “다프네 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함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고요.”

 

 “아니야. 이 일곱 알로 나 한 명 대신 일곱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게 ‘옳은’ 일이야. 즉시 반납해.”

 

 “사령관이 하루빨리 기운을 차리셔서 모두가 안심해야 다른 환자들도 치료가 될 것 같습니다만.”

 

 “제발...제발 조용히 해. 그렇지 않다고 해 줘. 어서 알약들을 가져가.”

 

 “그럴 수 없습니다.”

 

 “가져가...달란 말이야...”

 

 붉은 색은 인간의 본능적인 공격성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로크는 접객용과는 많이 떨어진 용도로 제작되었기에 안광에 붉은 색을 사용했고, 때문에 움츠러든 사령관을 바라보는 그의 홀로그램은 음험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바이오로이드와 다르게 로크의 눈은 읽을 수 없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도 없고, 불안하게 자리를 찾지 못하는 다리도 없으며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도 없다. 오직 어두운 금속만이 있을 뿐이다. 로크의 침묵은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짧으면서도 깊고 어두웠다. 침묵을 깨는 목소리조차 벼려낸 흑요석처럼 날카로웠다.

 

 “앙헬 공은 무자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00명의 부하를 죽여서 101명의 시민이나 동료를 지킬 수 있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러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연합 전쟁동안 그는 정말 많은 인간을 죽이라 지시했고, 더욱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죽을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 덕분에 그는 전쟁을 회사 측에서 예상했던 것보다도 빠르게 종결했습니다. 잔혹한 소탕 및 계획된 학살, 그리고 희생되었던 이들 덕분에 그는 역설적으로 긴 전쟁동안 죽어갔을 무수한 인명을 빠른 종전으로 살려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앙헬 공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피와 비명의 연쇄 속에 살면서도 그는 무너지지 않고 언제나 효율적이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아주 잠깐의 지체가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다른 사람이 있었더라도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잠깐.

 

 “제 생각은,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령관 세 분이 있더라도 앙헬 공 한 분의 군사적 역량에 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뛰어난 사람은 멸망 전에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한심하긴. 로봇한테 이런 걸 물어본 내 잘못이지.”

 

 예의 어두운 침묵. 여린 것 같으나 때로는 소름 돋게 날카로운 사람. 유달리 길게 이어지는 침묵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 눈을 떼지 않았다. 

 

 “옛날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사령관은 눈을 떼지 않은 채 짧게 턱 끝을 끄덕였다. 필요할 때는 한없이 권위적이고 예리하다. 이전에 지휘관들의 실수로 당하지 않았어도 될 부상을 입은 채 병력들이 복귀했을 때도 보였던 모습이다. 슬픔에 기절했다가 바로 5분 전에 깨어난 것도 사령관이었지만, 이 역시 사령관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일입니다. 앙헬 공은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고전적인 협박 편지가 날아오기도 했고, 실제로 암살 시도도 몇 번 있었습니다. 실패한 암살자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사살 당했지요. 그러나 앙헬 공을 암살하려 하고도 바로 사살당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하던 그는 문 앞에서 두 명의 인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남루한 거지꼴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장년의 여성과 다섯 살이나 되나 싶은 꼬마아이. 공의 출근길에는 항상 램파트 모델 두 기가 함께했습니다. 앙헬 공의 앞을 가로막은 램파트들 사이로 여성이 띄엄띄엄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녀는 원래 멸망 전 특권층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모든 일을 바이오로이드와 로봇이 했기 때문에, 대다수의 시민은 아무런 일이 없이 정부의 급여로 연명했습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 예술가들이나 로봇 핵심 기술자들처럼 바이오로이드가 대체할 수 없는 부분에서 종사하는 인간들은 특권층으로 대우받으며 상상할 수 없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어쨌든 말을 들어보니, 그녀의 남편이 블랙 리버에서 일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해 기준으로 작년에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 그 때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이 기가 막힙니다. 블랙 리버측에서는 어마어마한 보상을 위로금으로 지급했으나, 그녀는 그 위로금을 다른 사람도 아닌 친어머니에게 떼어먹혔다고 합니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병원에서 치료받던 그녀를 두고 친어머니가 혼자 도주한 것입니다. 원래 몸이 약하던 친아버지마저 그 일로 죽고 나자 그녀의 정신병은 더욱 심해졌다고 합니다.”

 

 “정신병증이 더 악화된 상태에서 꼬마아이를 데리고 평민층으로 쫓겨난 그녀가 겪은 고생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마지막으로 앙헬 공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무릎을 꿇고 어눌한 목소리로 비는 그녀가 앙헬 공에게 다가오자 램파트들 역시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그러나 공은 차가운 표정으로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램파트에게 ‘이 여자를 치우라’고 지시 했습니다. 그 때 여자가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들더니 공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다 너때문, 이라는 류의 말을 하면서 달려든 것을 보니 편집증으로 인해서 앙헬 공을 모든 일의 원흉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달려들던 그녀를 즉각 사살한 램파트들이 고개를 돌려 공을 바라보자 더 기가막힌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한 손에 작은 상처가 난 공이 칼을 들고 악쓰고 있는 꼬마아이를 바닥에 내리누르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아이마저도 암살을 시도하다가 공에게 제압당한 것입니다.”

 

 “공의 지시가 걸작이었습니다. 아이를 심문실로 데려가라.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자가 독단적으로 암살 시도를 한 게 아니라 유명한 테러조직의 사주가 있었다는 게 밝혀졌고, 공은 명분과 정보를 동시에 얻었기에 즉시 테러조직을 소탕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시 테러조직에게 고통 받았을 수많은 시민을 구해낸 것이죠. 길디 긴 그의 업적에 또 한 줄이 추가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문실에서 나온 아이의 유해는 램파트들이 잘 ‘조립’해서 화장했다고 합니다.” 

 

 로크는 잠시 말을 끊었다. 사령관과 로크 사이 끊어질 것처럼 팽팽한 공기가 감돌았다. 평소에도 어느 정도 시니컬한 그였으나 지금은 상급자인 사령관에게 완연한 비아냥조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멸망 전 사회는 어떻게 봐도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사령관은 그 시절을 겪지 못해 잘 모르시겠지만, 제식 경찰 로봇이 기관단총과 방패를 소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멀쩡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경찰이 총을 상비하고 다니는 건 어지간한 파시즘 국가에서도 없던 일입니다. 이는 인간 지배층이 극히 폭압적이며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대다수의 시민을 파리처럼 여겼다는 것을 대변합니다.”

 

 “그런 사회였습니다. 다만, 이후 블랙리버 경호실에서 자살 소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램파트 1기가 자신의 머리를 기관단총으로 쏘았습니다. 사후 조사 결과 자살 1시간 전 해당 램파트가 램파트 모델의 기술도서를 검색해봤다고 합니다. 한 자리에서 59분 42초를 서성이며 끊임없이 이상행동을 보이던 그는 감정모듈이 위치한 자리에 정확히 총을 쐈습니다. 연발로. 조사관의 말에 의하면 기능이 정지하고 나서도 몇 초간 더 총탄이 발사되며 감정모듈을 완전히 박살내었을거라고 하더군요. 여자를 사살하고 아이의 심문에 참여한 램파트였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도 인간 앙헬 공은 무너지지 않고 버텼지만, 그렇게 무너져버린 로봇 램파트도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글쎄요……. 저도 드리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너무 생각나는 순서대로만 말씀드려서 영민하신 사령관님조차도 잘 이해하시지 못하셨군요. 세상에는 저처럼 멍청한 로봇도 있고, 그 램파트처럼 감수성 예민한 로봇도 있는 것 같습니다.”

 

 로크의 쓴웃음이 이어졌다. 그에게는 표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다. 안광이 켜지고 꺼지는 것을 제외하면 얼굴에서 미동이라도 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고 오로지 검게 번들거리는 쇳덩이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씁쓸한 웃음소리를 들은 사령관은 로크의 눈꼬리 부분이 -그렇게 부를 수만 있다면- 아래로 쳐지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늘 속을 알 수 없는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였으나, 어쩐지 지금은 진심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령관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질문을 꺼냈다.

 

 “내가 지금처럼 수 명의 인명에도 일희일비하는 답답한 사령관이였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습니다, 사령관님.”

 

 “내가 앙헬처럼 어떤 더러운 짓과 무거운 핏자국도 감수하고 철충과 싸웠으면 좋겠어?”

 

 로크의 눈이 더욱 아래로 쳐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튀어나간 질문과 다르게 대답은 약간의 지연이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경애하는 사령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