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챠는 사령관이 떠나고 나서 침묵만이 감도는 회의실에서 각자 생각에 잠긴 듯한 지휘관들을 보고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를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 콘스탄챠를 생각에서 깨어나게 한 건 칸이 그녀를 부른 행동이었다.


"콘스탄챠. 사령관이 왜 저러지? 뭔가 아는 게 있나?"


"그, 그게..."


"가끔 각하께서 다른 자매들과 병사들과 어울리느라 기행을 할 때도 있긴 했지. 하지만 이번 건... 기행의 수준을 넘어선 행동이군. 정교한 연기 수업을 받았던가, 아니면... 기억이 돌아오셨다던가 둘 중 하나겠지."


"...난 연기 같다고는 생각 안해."


"사령관이 네 손등에 키스한 것 때문에 그러나?"


"그것도 있지만... 아니, 그 이유는 절대 아냐."


장난스럽게 묻는 칸의 말에 긍정하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부정한 레오나가 헛기침을 하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게 연기였다면 분명 사령관 성격상 어느 정도 망설임이나 죄책감이 있었을 거야. 사령관은 거짓말을 못하니까. 그런데 이번엔 우리에게 한 행동이 아주 익숙하고 몸에 베어있는 것처럼 행동했어. 마치 인생에서 우러나온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럼 레오나 님은 주인님의 기억이 돌아오셨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것도 아냐. 기억이 돌아왔다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 뇌파도 미묘하게 다르고... 지금으로선 뭐가 뭔지 모르겠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어."


"확실히 그동안 익숙하게 느꼈던 각하의 뇌파와는 달랐지. 그러고보니 각하께서 며칠 동안 부관까지 거부한 채 두문불출하며 업무만 봤다고 했었지? 콘스탄챠 양.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사령관의 부재를 지적한 마리를 보고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생각한 콘스탄챠는 수 일전 사령관이 밖에 있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수 일이 지난 끝에 수복실에서 깨어난 후로 저렇게 되셨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나서 칸이 납득이 간다는 듯 말했다.


"과연, 갑자기 쓰러지고 나서 며칠동안 의식불명이었다가 깨어난 뒤로 저렇게 되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어딘가 바뀔 수도 있지. 가령, 저렇게 과장된 연극 톤으로 말을 한다던가, 자신만의 상상 속 지명과 관직, 인물을 거론한다던가."


"마치 옛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네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선 그대는 계속 각하를 보좌하도록 하게. 한 가지 다행인 건 각하께서 그대의 보좌만큼은 물리지 않고 있으시단 거니까. 돌발 행동을 하시려 하면 어떻게든 말려야 하네."


"네. 다른 자매분들이 이 사실을 알면 분명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거에요. 라비아타 언니도 안 계신 상황이니 이 이상 그런 일이 생기면..."


"그럼 우리는 부대원들 입단속을 해야겠네? 사령관이 적극적인 공세 대신 수비에 치중하며 철충의 공격을 대비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는 말만 전하고 그 외엔 평소와 같았다고 말이야."


"음, 그러는게 좋겠지. 그리고 닥터에게도 조언을 구해봐야겠어. 그녀의 지성은 오르카 호 안에서도 최고이니 분명 해결책을 제시해줄터."



회의실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전혀 모르는 사령관은 계속해서 오르카 호에 있는 다른 부대와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정보, 그리고 최근까지 있었던 몇몇 전투와 사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 080기관은 마치 위치 헌터 교단을 보는 것 같군. 잠입과 정보 조작이 주특기에 전투력도 다른 전투원들에 밀리지 않는다는 서술을 보니 알겠어. 도시 내 테러로부터 시민을 지켰다는 몽구스 팀은 지그마의 사냥꾼 기사단의 분파로 보이고 스카이 나이츠는 브레토니아의 페가수스 기사단에 영향을 받은 자들이 구성한 기사단으로 보이는군.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부대의 정보를 보는 사령관은 알면 알수록 놀라움이 얼굴에 드러났다. 제국 대학에서 황제가 되기 위한 많은 공부를 했고 황제가 되고 나서도 그 공부를 게을리 한 적 없이 엘프와 드워프, 브레토니아 같은 동맹에 대해서, 인류의 주적에 대해서도 공부를 거듭한 그였지만 그런 그조차도 몰랐던 부대의 정보가 눈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들 중 몇몇은 엘프와 드워프, 브레토니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령관을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라우렐 로른 숲 출신의 요정들로 보이는 자들도 있고, 드워프제 대포를 비롯한 중무장 병기를 사용하는 기사단도 있군. 심지어 마리엔부르크 해군에 대항하기 위해 테오도릭이 비밀리에 양성한 것으로 보이는 해군도 있어. 제국이 넓고 그만큼 신비로운 비밀이 많다는 소문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황제인 나조차도 모르는 기사단과 군대가 이렇게나 많았으니 이들이 종말의 때에 활약하지 못했던게 당연해. 그리고... 안타깝구나."


처음 보는 장소에 있어도 자신이 살던 제국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던 사령관은 종말의 때에 활약조차 하지 못한 채 스러져간 제국의 신민들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부대원의 정보를 보다가 문득 콘스탄챠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이곳에도 마스터 엔지니어들이 있다고 했었지? 철의 전사들을 관리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자들이니 누구인지 꼭 좀 만나봐야겠어.'


결심한 것은 바로 행동에 옮기는 자세로 평생을 살아온 사령관은 지체없이 밖으로 나가 함선 내부를 돌아다니며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을 보고 감탄하거나 이따금씩 보이는 바이오로이드를 보고 자료에 있던 누구라고 생각하며 걸은지 얼마나 되었을까, 각종 기계음이 들리는 장소를 찾은 사령관은 안으로 들어갔고 곧 그 안에서 한창 정비에 열중하고 있던 단발머리를 한 풍만한 체형의 여성과 그 옆에서 작은 부품을 기계팔로 수리 중인 소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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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두번째 추측에 언급된 부대가 누구인지 알면 당신도 훌륭한 라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