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의 시작.


아직 겨울의 차가움이 가시지 않은 1월 1일의 새벽.


차가운 날씨와 어두운 하늘에도 불구하고 스발바르 제도는 평소보다 더욱더 커다란 떠들썩함으로 가득차있었다.


"레프리콘 상병님 어디십니까? 약속장소에 도착한지 꽤 됬는데... 네? 여기가 아니야....? 으아아 길을 잃었지 말입니다!"


"거기! 신님에게 참배하러 가는 길은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니라! 못찾겠으면 첩을 따라오도록!"


"자 여러분 신사에서 소란은 엄금이랍니다. 쫒겨나기 싫으면 신님께 공경하는 마음을 갖추고 얌전히, 질서정연하게 움직여주세요."


"으악 죄송합니다! 워울프 그러니까 술좀 적당히 마시라고 했잖아! 하이에나 너도 그 폭죽좀 내려놔!! 샐러맨더 여기서까지 도박판 열지마!"


"운세뽑기하고 가세요~! 하치코처럼 대길을 뽑으면 새해복 많이 받을 수 있대요!"


"미안하지만 발할라의 대장으로서 그런 미신에 휘둘릴 수는..."


"아 연애운?도 볼 수 있대요!"


"...한장 주겠어? 달링과의 연애운이 들어간걸로."


수많은 바이오로이들이 몰려들어서 따들썩함을 자아내는 곳은 다름아닌 스발바르 제도 한곳에 세워진 작은 신사.


평소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대체로 한산함과 느긋함을 가지고 있던 장소가 이렇듯 교통정리가 필요할정도로 붐비게 된 이유는 역시나 시기 때문이었다.


1월 1일 새해가 시작하는 첫날.


그리고 신사의 배경이 되는 일본에서는 그 새해 첫날에 신사를 찾아가 신님에게 참배를 올리는 관습이 있었다고한다.


정월참배라고 불리던 이 행사는 일본 출신의 바이오로이드들을 통해 알음알음 퍼져나갔고. 

이내 흥미를 느낀 바이오로이드들이 너도나도 참가를 신청하면서 본래 아는 사람만 아는 행사였을 터가 이렇게 규모가 대폭 커지게 된 것이었다.


이는 곧 사령부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이렇게 된거 아예 판을 키우자며 새해 축제라고 작전명까지 명명하면서 정식으로 판을 벌려버렸다.


"초 맛있는 야키소바~ 타코야끼 있다구~ 둠브링어 특제 소스가 들어간 폭탄 야키소바랑 폭탄 타코야끼 어때? 아! 지니야 판매 상품을 먹어버리면 어떡해!!"


"LRL! 저기에 초코바나나라는게 있대! 얼른 가보자!"


"으음 짐은 빙수가 먹고싶었다만은.... 뭐 진조의 하얀야수가 바란다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자~ 참치캔 놓고 참치캔 먹기~ 컵 안에 숨겨진 공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맞춰보라고~"


"잠깐! 샐러맨더 이런데서 도박판 열지 말라고 아까 말했잖아!"


"와쳐 오브 네이쳐에서 직접 기른 애완 금붕어 건지기는 어떠신가요~ 대신 제대로 끝까지 키워주셔야 한답니다!"


과거에 있었던 자료를 토대로 각종 노점상도 함께 열려 더더욱 떠들석함을 늘려나가는 이때


사령관은 어디있었는가 하면


"신님 올해도 좋은 일만 가득하게 해주세요!"


"그, 그래..."


바로 신에게 참배를 올리는 바로 그 제단

즉 신이 위치하는 곳에 앉아있었다


방금도 자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간 바이오로이드를 어색하게 바라보던 사령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쩌다 일이 이렇게 커진건지."


"어머 벌써부터 앓는 소리신가요? 이제 막 시작한 참인데요?"


"시라유리? 일찍 왔네? 경내 질서정리는 끝났어?"


어느샌가 사령관의 뒤에 조용히 나타난 시라유리가 웃으며 말했다


"네, 뒷일은 시티가드 여러분이 도와주시기로 했답니다."


"아하, 시티가드 애들도 고생이네 축제날에 같이 놀지도 못하고."


"교대로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한다고 하니 괜찮을 거랍니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신다면 나중에 따로 포상을 해주시는건 어떠신지?"


"그래야겠네. 아 물론 제일 고생한 무녀팀들에게도 따로 포상을 약속할게."


"그건 기대되네요 후훗. 사령관님께 도움을 청한 바르그양에게 감사라도 해야되려나요?"


기대된다는듯 답지않게 들뜨며 말하는 시라유리의 말에 사령관은 바르그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게 일의 시작이었다는걸  떠올렸다



일주일 전


여느때와 같이 밀린 일을 처리하던 사령관에게 바르그가 찾아왔다


"저, 주인님 잠시 괜찮다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바쁘시다면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아 아냐 괜찮아. 무슨 일인데?"


무녀복을 입은채 조심스럽게 공경하며 말하는 바르그의 모습은 처음 봤을때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겠지만 

최근에는 익숙해져왔기에 당황하는 일 없이 담담하게 맞아들였다


"다름이 아니라 시라유리 스승님에게 들은 내용입니다만, 얼마 뒤에 다가오는 내년 1월1일 신사에서 큰 행사가 있다고 합니다."


"아 신년 참배 말이지?"


안그래도 사전에 시라유리와 만나 얘기를 나눴던 사령관은 신년행사가 무엇인지 알고있었다


"알고 계시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다행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그 신년행사 관련으로 주인님께 부탁드리고 싶은것이 있습니다."


"부탁? 뭔데?"


좀처럼 부탁같은건 하지않는 바르그의 말에 궁금해진 사령관


바르그는 긴장한듯 침을 꿀꺽 삼키며 외쳤다


"이 신시대의 신이 되어주십시오!"


"...."


"...역시 안될까요?"


"아니 안되는게 아니라, 대체 무슨 의미인지부터..."


비장하게 외친 바르그였지만 설명도 없이 뜬금없이 신이되어달라는 말에 벙쪄버린 사령관

그 모습에 거절당한줄 알고 시무룩해진 바르그를 달래서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자


"아 그러고보니 긴장해서 설명을 깜빡했습니다. 신사에서 기도를 드릴 신님이 되어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신사의 신님?"


"네 신사는 신을 모시는 장소. 그리고 바로 그 신님에게 기도를 드리는게 신년 참배라는 행사로 알고있습니다."


"그렇지. 꽤 다양한 신들이 있었던거 같은데."


학문의 신이라던가 행운의 신이라던가 여우신이라던가


"네. 과거 일본에는 수백가지가 넘는 신들이 있었고 신사에 그들을 모셨다고 합니다."


"그렇지? 그럼 그중에서 하나 골라서 모시면 되는거 아니야?"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수백이 넘는 신이 있으니 대충 아무나 모시면 되겠다고요."


내 의문에 바르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힘을 주어 답했다


"하지만 그건 인간님들의 신이지요."


"...."


"인간이 아닌 우리 바이오로이드들의 신은 아닙니다."


"그건..."


조금 전과는 다른 이유로 말문이 막힌 사령관의 모습에 작게 웃으며 바르그가 이어 말했다


"아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딱히 부정적인 의미로 얘기한게 아니니까요."


"그러면?"


"그저 저희 생각에 저희 바이오로이드의 신님의 자리에는 더욱 적합한 분이 있다고 여겼을 뿐입니다."


"설마 그게?"


"네. 바로 주인님 당신입니다. 당신께서야말로 저희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시니까요."


"내가 유일하게 남은 인간이라서 그런거야?"


"단순히 유일한 인간이여서가 아닙니다. 저희 바이오로이드들을 동등하게 대해주시고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주인님 당신이시기 때문입니다."


경건하게 그리고 감사를 담아 마치 기도하는 듯한 바르그의 주장에 


"그.... 뭐라 해야할지... 고마워...?"


사령관은 괜히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했고


"그, 그리고 저 또한 다른 신보단 나의 주인님을 신으로 모시고 싶기도 했구요..."


마찬가지로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렇게 덧붙인 바르그는 스승들에게 배운 필살기를 사용했다


"그러니 저의, 우리의 신님이 되어주세요."


사령관의 소매를 살짝 잡은채 촉촉한 눈망울로 올려다보며


"안될까요?"


"까짓거 한번 해보지 뭐!"


결국 바르그의 필살기에 패배한 사령관은 바르그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신사의 제단에 앉게 된 것이었고.

이것이 이번 행사의 규모가 급작스럽게 커지게 된 원인이었다.


사령관이 신 역할로 참여한다는 소식에 참가자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작게 한숨을 내쉰 사령관이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억울해하며 말했다


"그런식으로 부탁하는데 어떻게 거절하냐고."


"후훗 그런 일이 있었군요. 참 배움이 빠른 아이라니까요."


"역시 시라유리 니가 가르쳐준거지? 덕분에 이렇게 잡혀왔다고~"


신님전용이라며 입혀진 화려한 복장의 소매를 흔들어보이며 항의하던 사령관이었지만


"농담도 참. 어차피 제가 아니었어도 사령관님은 바르그양의 부탁을 들어주셨을걸요? 사령관님은 저희들의 부탁에는 약하시니까요. 뭐, 그게 좋은점이지만요."


"끄응..."


시라유리의 대답에는 반박하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바이오로이드들의 부탁에 약한면이 있긴했으니까


불리함을 인지한 사령관은 빠르게 주제를 돌렸다


"그런데 코헤이교에서는 아무말 없었어?"


사령관은 코헤이교의 구원자이자 코헤이교가 모시는 빛의 대리인이기도 한 입장.

그런 사령관을 대뜸 다른 종교의 신으로 모시겠다고 하면 항의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이미 다 협의를 끝마쳐놓았답니다. 오히려 코헤이교에서도 좋아하던데요?"


"응? 정말로?"


"물론이죠. 다른것도 아니고 신으로 모시는 거니까요. 그쪽에서도 사령관님을 신의 대리자같은걸로 보니까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하네요."


"그런건가....?"


일종의 코헤이교 지부같은 느낌으로 생각하는걸까?

아무튼 잘 해결됐다면 문제는 없겠지.


"그럼 저도 이만 가볼게요. 슬슬 다들 이쪽으로 오기 시작하는거 같거든요."


"그래 고생해줘."


시라유리가 물러나고 축제를 즐기던 바이오로이드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하는것이라고 제단에 앉아서 기도하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대답해주는것 뿐이긴하지만 그것도 수천, 수만명이 되다보면 꽤나 힘든일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보람차기도 했고 재미있는 상황도 가끔 나왔다


"신님 부탁이니 제발 훈련좀 줄여주시면 안됨까? 4주째 지옥훈련은 너무 힘듬다!"


"으음 그건 마리의 관할이라 내가 참견하기 좀."


"부탁드림다! 이대로는 레드후드 지옥교관님께 살해당하고 말검다! 여기 참치캔도 바칠테니까 어떻게든!"


"앗 브라우니 뒤뒤!"


"엣?"


"호오~ 나를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지...거기다가 내가 보는 앞에서 부정청탁이라니 대단한 용기로군 그래."


"히익 레드후드 대령님?!"


브라우니가 훈련을 빼달라고 청탁하려다가 마침 뒤에 서있던 간부들한테 걸려서 끌려간다거나


""안드바리가 창고를 훔쳐도 화내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알비스랑 LRL이 창고좀 그만 훔치게 해주세요...."


알비스와 LRL과 안드바리가 서로 상반된 소원을 빈다던가


"올해엔 마법소녀 동료들이 더 늘어나길 바랍니다."


"제발 백토가 저를 죽이지 않게 해주세요오오!"


"아하하... 둘의 소원이 모두 이뤄지면 좋겠네요..."


마법소녀들의 살떨리는 기도들도 있었다


그 외엔 코헤이교에서 단체로 찾아와서 구원자인 사령관을 잘 모시고 있다는 거에 만족하고 가기도 했고


장화와 천아가 무녀복을 입고있는 바르그를 놀리려고 왔다가 바르그의 교묘한 입담에 속아 부적을 잔뜩 샀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참배가 끝나갈때쯤 사령관 앞에 새로운 무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물리고 화려한 장식들을 설치하는 따로 들은 적 없는 상황에 지나가던 히루메를 붙잡고 물어보는 사령관


"히루메 지금 저게 뭐하는 거야?"


"음? 아 그러고보니 그대는 아직 모르겠구나. 저건 봉납의 춤을 위한 무대다."


"봉납의 춤? 그런건 보고된 행사계획서에는 없었는데?"


"후후 그야 그대 몰래 준비한것이니까. 바르그가 말이지."


"바르그가?"


"그래 후후. 존경하는 주인님을 위해 반드시 보여드리고 싶다면서...."


"히루메양! 어디 계시나요?! 아직 여기 장식이 준비가 안됬잖아요!"


"히, 히익 지금 가겠노라! 아, 아무튼 바르그가 열심히 준비했으니 놓치지 말고 꼭 보거라 알겠지?!"


설명을 하던 히루메가 시라유리의 부름에 허둥지둥 달려가버리자 괜히 궁금증만 더 커진 채로 기다리던 사령관.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의 준비가 완성되었고 주위로 밝게 횃불들이 피어올랐다


이쯤되니 무슨 일인가하고 모두의 시선이 모여드는 찰나


하치코와 히루메가 각각 종이 지팡이와 방울 지팡이를 흔들며 무대 위로 나타났다


"모두 주목해주세요~"


"지금부터 봉납의 춤을 시작하겠노라!"


"봉납의 춤은 으음, 그러니까... 신님을 위한 춤이에여! 대단해여! 하치코도 봤는데 엄청 멋졌어여!"


"....하치코여 그냥 본녀가 말하겠노라."


"에엣 하치코 뭔가 잘못 말한건가요?"


"아니 꼭 그런건 아니다만..."


갑자기 만담을 하는 둘의 모습에 주위 바이오로이드들이 웃음을 터트린것도 잠시


헛기침을 하며 정리한 히루메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크흠! 봉납의 춤은 신년의 복을 기원하며 신님께 바치는 춤이노라. 일반적인 춤이 아닌 신님께 기도하는 또다른 형태지."


"모두를 대신해서 올리는 것인만큼 엄숙하고 진지하게 지켜봐주길 바란다. 그리고 끝나면 춤을 춘 무녀에게 아낌없는 박수또한 부탁한다."


설명을 마친 히루메가 하치코를 데리고 무대에서 내려가자 이어서 한명이 무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히루메에게 사전에 들었던 대로 그건 무녀복을 입은 바르그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옆에 청홍으로 물들이 검 두쌍을 함께 들고 올라왔다는 것


사전에 필요한 설명은 히루메가 모두 끝냈다는 듯 나를 향해 가볍게 인사를 올린 바르그는 곧바로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그 모습에 과거 바르그가 첩자였다는 사실을 겹쳐보았는지 움찔하는 바이오로이드들도 있었지만 

그 걱정이 불필요한 걱정이었다는건 금방 알게되었다


"저건 검무?"


바르그는 뽑아든 쌍검을 무기가 아닌 소도구로 활용하며 검무를 추기 시작한 것이다


능숙하게 이리저리 화려하게 휘둘러지는 검은 분명하게 실전용이 아니었고

춤과 함께 능숙하게 어우러지는 그 미려함에 경계하던 바이오로이드들도 무심코 빠져들어 바라보기 시작했다


"히루메가 그렇게 놓치지말라고 강조한 이유가 있었네."


이런 특별한 춤을 놓쳤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했을게 분명하다


그것이 나를 위해 열심히 연습해서 준비한거라면 더욱더


얼마나 지났을까

한창 몰입해서 보던 검무가 끝나고 정중하게 인사를 마친 바르그가 심호흡을 하면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은 순간


"와아아아~! 최고다!"


"휘익~ 멋진대!"


"정말 훌륭해요!"


사방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조금 전까지 바르그의 과거 때문에 경계하던 바이오로이드들도 하나되어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는 광경에 

드디어 바르그가 제대로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이 들어 살짝 가슴이 복받쳐 올랐다


바르그 또한 그런 감정들이 전해졌는지 얼굴을 붉히고는 하나하나 감사인사를 전하며 무대를 내려왔다


바르그가 내려온 무대 위로는 시라유리가 올라와 마지막 일정을 알렸다


"자 여러분 이제 이번 축제의 마지막 일정인 해돋이 감상만이 남아있습니다."


"마지막까지 규칙과 질서를 지켜 문제없이 축제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릴게요."


"만약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있다면.... 아시죠?"


시라유리가 경고를 날린탓인지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간식거리나 촬영준비를 하면서 해돋이를 기다리는 그때


사령관은 조용히 제단에서 내려와 바르그와 함께 걷고 있었다


"주인님 이런 중요한 시간에 저랑 같이 있으셔도 괜찮으신가요?"


"이런 중요한 시간이니 같이 있는거지. 그러는 바르그는 괜찮아? 이후에 무슨 할일같은 건 없어?"


"아, 네 괜찮습니다. 스승님들도 제가 가장 고생했다면서 봉납의 춤이 끝나면 쉬어도 된다고..."


"그럼 문제 없네. 가자."


"어디로 말씀입니까?"


"마리아 리오보로스."


사령관의 대답에 바르그가 멈칫한다


"네 어머니의 묘로 가자."


조용해진 바르그와 사령관은 잠시동안 말없이 걸어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묘에 도착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그렇지만 정중하게 관리가 잘되어있는 묘 앞에 준비해온 술과 꽃을 놓은 사령관이 바르그에게 말했다


"바르그 과거에 신년을 맞이하는 행사가 나라별로 달랐다는건 알고있어?"


침묵하던 바르그는 마리아의 묘를 바라보며 답했다


"네 알고있습니다. 여제님도 조국이신 영국에서 신년맞이 불꽃놀이나 퍼레이드를 즐기시곤 하셨으니까요."


"그런것처럼 한국에도 전통적으로 하는 성묘라는 행사가 있었대."


정확히는 음력으로 따져서 조금 나중이긴 하지만 이라며 작게 웃은 사령관은 바르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바로 이렇게 새해들어 가장 먼저 부모님이나 조상의 묘를 찾아뵙는 거야."


"부모...."


"응, 부모님을 찾아뵙고 작년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면서 저는 잘 살고있어요 라고 보고하는거지."


"그래서 저를 이곳에?"


놀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묻는 바르그에게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바이오로이드 애들에게는 관련없는 행사일수도 있겠지만 바르그 너는 마리아 리오보로스를 어머니처럼 여기니까. 한번 같이 와서 말해주고 싶었어."


과거의 기록에서 배운대로 묘를 향해 절을 두번 올린 사령관은 바르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바르그는 이제 여기서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말고 편히 쉬라고 말이지."


"주인님..."


바르그는 감동한듯 목이 매어 한동안 말을 잇지못하다가 잠시후 눈물을 닦고 자신의 어머니의 묘를 향해 그동안의 얘기를 시작했다


새로운 주인님을 만났다


여제님께는 죄송하지만 새 주인님 덕분에 여제님을 모실 수 있게되었으니 부디 용서해주길 바란다


장화와 천아도 만났다. 잘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


앙헬이 최후로 만들었다는 로봇덩이도 물리쳤다


사실 얼마 전까진 새로운 동료들과 어색했지만 오늘 마침내 인정받은거 같다 등등


중요한 변화부터 시시콜콜한 잡담까지 모두 끝날동안 사령관은 옆에서 묵묵히 함께 들으며 기다려주었고


바르그가 사령관을 따라해서 절을 두번 올리고 일어서는 것으로 둘만의 비밀 행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후, 기다리게하셔서 죄송합니다 주인님. 오랜만에 감정이 격해져 오래동안 떠들고 말았습니다."


"괜찮아. 나도 옆에서 바르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같이 들으면서 재밌었어."


해돋이 행사는 진즉에 끝났고 슬슬 뒷정리에 들어갈 시간.

괜히 돌아가봤자 혼잡하기만 할테고 쉬어도 된다고 허락도 받았기에 조용히 사령관의 방으로 온 두사람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며 사령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런 깜짝 행사를 준비했을줄은 몰랐어."


"봉납의 춤 말씀이신가요? 마음에 드셨나요?"


"물론이지! 혹시라도 놓쳤다면 후회할뻔 했다고."


"후후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주인님께 알려드리려고 햇읍니다만. 스승님들께서 비밀로 하는 쪽이 더 먹힌?다면서 비밀로 하자고하더군요."


더 먹힌다는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라고 순수하게 웃는 바르그


"그런데 설마 주인님께서도 저에게 비밀로 그런 행사, 성묘라고 했던가요? 성묘를 준비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그 주인에 그 무녀네. 바르그도 마음에 들었어?"


"이를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지요."


웃으며 서로의 깜짝선물을 칭찬하며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지기를 한창.


다 마신 찻잔의 가장자리를 쓰다듬으며 바르그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런데 주인님? 만약 준비한 비밀 선물이 하나 더 있다면 어떠실까요?"


"또 있다고? 뭔데? 나야 당연히 기쁘지."


기뻐하며 반기는 사령관에게 바르그는 부끄러워하며 답했다


"그, 시라유리 스승님께 배운것입니다만. 일본에는 히메하지메라는 신년맞이 문화가 있다는 걸 아십니까?"


"히메하지메? 잘 모르겠는데 뭔지 알려줄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히메하지메라는건 바로..."


화악!


말을하던 도중 사령관에게 달려드는 바르그

사령관에 품에 안긴 바르그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어말했다


"신년 처음으로 하는 성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선물은 바로 저입니다."


"주인님께서는 바쁘시고 주인님을 원하는 바이오로이들도 많지만."


"부디 그 영광을 제게 주실 수 없을까요?"


열망에 가득찬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며 간절히 바라는 무녀의 모습에


"무녀의 바람에 응답하는건 신의 의무이자 권리지."


사령관은 조용히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날 충실한 무녀의 바람은 이루어졌고 사령관실의 문은 다음날까지 열리지 않았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