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기 그지없군. 뉠른 대학의 그 어떤 엔지니어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의 기술력이 이 작은 배 안의 연구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니...'


정비를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받고 있는 AGS들과 그 복잡한 기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수리하고 정비 중인 두 여인을 보고 사령관이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이, 단발 머리의 풍만한 체형의 여성이 먼저 사령관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 사령관? 누나 보러 온 거야? 누나 완전 기쁘거든?"


'누나라고...?'


"오빠~ 어쩐 일이야?"


'이번엔 오빠라고...?'


어딜 봐도 처음 보는 여성들이 자신에게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는 것에 사령관이 잠시 혼란스러워 했으나 이내 그것을 티낼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별 거 아니라는듯 웃으며 말했다.


"흠흠, 이곳에 있는 철의 전사들을 관리하는 마스터 엔지니어들이 누구인지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 찾아왔지. 하지만 이런 소녀와 여성이 제국의 그 어느 기술대학과 황금 학파 마법사들을 가볍게 넘어서는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네. 내가 이 배 안에서 눈을 뜨고 난 후 놀라움의 연속이군."


"어머... 칭찬은 고마운데 사령관, 뭔가 다른 거 같거든?"


"다르다고? 어디가 말인가?"


"...자자, 포츈 언니! 일단 하던 거 마저 해야지. 그리고 오빠, 잠깐 이리와 봐. 오빠한테 한가지 부탁할 게 있어."


사령관의 말투에 어딘가 위화감을 느낀 포츈이 뭔가 말하려 하자 닥터가 재빨리 포츈에게 정비를 마저 하자고 떠밀고나서 사령관을 부르자 사령관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곧 그녀는 사령관의 머리에 딱 맞는 기계 장치 하나를 들고 사령관에게 내밀며 말했다.


"오빠, 이걸 쓰고 생각을 해보는거야."


"생각이라니?"


"오빠가 지금 멋진 모자를 써야한다면 어떤 걸 쓰고 싶어? 뭐 그런 거 있잖아! 얼른 해봐~ 응?"


"영문을 모르겠군... 하지만 자네 같은 마스터 엔지니어가 하라는데엔 이유가 있겠지. 알겠다."


무작정 자신에게 이상한 기계 장치를 쓰라는 소녀의 행동에 불쾌해 할 법도 했지만, 사령관은 그녀 정도의 뛰어난 기술자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일단 기계 장치를 썼다. 살짝 따끔하는 감촉이 느껴지고 나서 사령관은 자신이 항상 전장에 나설 때 입었던 무구들을 떠올렸다.


'드워프제 강철로 만든 갑옷과 투구, 선제후들의 상징인 룬팽과 천주 지그마로부터 대대로 전해져온 갈 마라즈... 아, 그때의 나에겐 갈 마라즈가 없었지. 지그마의 현신, 팔텐에게 갈 마라즈를 하사하고 나서 나는 알트도르프의 대공이 써왔던 룬팽, 용이빨을 들고 전장에 나섰었다. 그리고...'


"끝~ 오빠 이제 벗어도 돼!"


"...벌써?"


"오빠도 참~ 어디까지나 잠깐만 사용할 생각으로 한 거니까 당연하지. 며칠 전 오드리 언니가 새 옷을 만드느라 힘들어 보이길래 만들어본 작품인데 이걸 쓴 지성 생명체가 생각한 물건을 이거랑 한 세트로 만들어진 기계를 통해 설계도로 출력할 수 있어! 오르카 호 안에 재료는 충분하니까 생각만 하면 뭐든 뚝딱! 어때, 대단하지?"


"만약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장치는 참으로 대단한 작품이군. 지식과 법률의 여신 베레나조차 이런 걸작이 제국 내에 존재하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그대는 어린 나이에 참으로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군!"


"히히,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 의욕이 팍팍 솟는데? 우선 멋진 모자를 만들어서 오빠한테 줄께!"


처음 보는 소녀가 제국의 어떤 과학자와 연금술사를 넘어서는 작품을 보여주고 심지어 그것을 통해 자신에게 선물까지 해준다는 말에 사령관은 제국의 황제로서 자신이 감히 이런 것을 받아도 되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그 작품에 대해 설명하던 소녀의 즐거워 보이는 모습과 그걸 옆에서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여인의 모습, 그리고 그만큼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이기도 하기에 사령관은 이내 그 선물을 받기로 결정했다.


"참으로 고맙군. 이런 걸작을 통한 선물까지 받는다니 나도 마땅히 보상을 해야겠지. 원하는 것을 말해보게. 알트도르프의 대공이자 제국의 황제, 카를 프란츠의 이름으로 그대가 원하는 게 있다면 내 마땅히 들어주겠네."


"히히~ 그러면... 에이 아니야. 오빠랑은 나중에 더 '히힛'한 일을 할 거고 그건 누구의 도움이 아닌 내 힘만으로 할 거니까. 그냥 고맙게 받고 오래오래 아껴서 잘 써주기만 하면 돼!"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알겠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네가 선물을 가져온다면 소중히 쓰겠다 약속하지. 그럼 앞으로도 이 철의 전사들을 부탁하네."


"누나만 믿어, 사령관~ 누나는 이 아이들을 아주 사랑하거든?"


사령관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고 사령관이 나가고 나서 포츈은 미소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꾸고 닥터에게 물었다.


"닥터. 우리 사령관 역시..."


"응. 뇌파가 확실히 바뀌었어. 그리고 내가 아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 중에 뇌파가 바뀌는 특징은 없었고. 오빠가 바쁘다고 못본 지 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바뀌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아."


"게다가 이상한 말까지 하고 있거든?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연극을 하는 거라기엔 너무 진지하고 또 그런 거였다면 진작에 우리한테 말했을텐데..."


"다른 언니들이 알았다간 난리가 날 거야. 일단 이 설계도에 나온 것 중에서 시간을 끌 수 있는 걸 먼저 만들어서 갖다줘야겠어. 갑옷이나 무기는 나중에 해도 충분하니... 그래! 여기다가..."



[으으...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복잡한 걸 단시간에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빠의 뇌파가 예전과 명백하게 차이가 있어서 콘스탄챠 언니가 찾아왔을 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봤는데... 글쎄 오빠가 밖에서 쓰러졌다가 며칠 동안 혼수상태였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에 날 찾았어야지!

...어쨌든 다행히 오빠는 아무 이상 없이 깨어났다고 했지만 그 후로 이렇게 뇌파가 바뀌었다거나 이상한 말투를 쓰는 모습이 되었다는 건 명백하다. 콘스탄챠 언니에 의하면 이미 메이 언니를 제외한 지휘관 언니들은 사령관과 만났다고 했는데 다행히 지휘관 언니들도 오빠의 변화를 함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럼 내가 할 일은 이걸 최대한 빨리 만들어서 오빠한테 선물하는 거겠지...] - 닥터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