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https://arca.live/b/lastorigin/67147558


3화 https://arca.live/b/lastorigin/67357474


4화 https://arca.live/b/lastorigin/67624628


5화 https://arca.live/b/lastorigin/67863595







"배, 백토야..........!!"


뽀끄루는 애처롭게 백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백토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미 그녀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인간들의 악의는 그게 끝이 아니였다. 속옷 한 장만 걸친 불쾌하게 생긴 남성이, 백토의 시체 위에 올라타 격렬하게 떡방아를 찧고 있었으니까.


뽀끄루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참혹한 광경 속에서, 모모는 한 가지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티, 티배깅 당하고 있어 백토야......! 푸, 푸흡........!!"


"웃, 지마........!!"


아 진짜 지랄노.


숙소에 도착한 첫 날, 모모가 받은 느낌은 호화롭다와, 인간적이다. 두 가지였다.


마법소녀들의 숙소에는 침대와 옷장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당연한 노릇이였다. D-엔터 사원들의 대부분은 그녀들을 진심으로 아꼈으나, 그건 모모와 백토를 아낀게 아닌 매지컬 모모와 매지컬 백토라는 이름의 촬영소품들을 아낀 것이였다. 촬영용 소품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한들, 촬영소품의 편의를 위한 물건들을 준비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러나 여긴 달랐다. 침대는 포근했고, 달큰한 섬유유연제의 향기가 났다. 사람 4명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것 같은 원룸에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별도로 자리잡고 있었고, 심플하지만 폭신해보이는 소파와 화질 좋은 TV와 컴퓨터따위 놓여져 있었다.


겉멋보다는 실리가 추구된, 참으로 매니저의 성향에 맞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비품이였던 모모에게는 호화로웠고, 비품을 보관하는 보관함이 아닌 사람이 사는 숙소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뽀끄루는 눈을 빛내며 침대에 다이브했고, 그걸 부럽다는듯 바라보던 백토도 이내 침대에 슬쩍 올라갔다.


그로부터 2주일쯤 지난 시간이, 바로 지금이였고.


"또 저 사람이다. 이번에야말로.....!"


"도망, 푸흣, 치는게 낫지 않을까 백토야.....?!"


".........."


저 둘은 저렇게 백수타락 해버리고 말았다.


뽀끄루는 백토에게 차마 '하나 남은 손으로 PvP는 무리지 않을까...?' 라고 물을 수는 없었고, 백토가 두번쯤 죽은 후로는 그냥 옆에서 웃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득바득 이를 갈고 있는 백토는 좀 웃겼다.


그렇게 뽀끄루는 첫 날부터 풀어졌고, 백토는 3일을 버티지 못했다.


솔직히 모모로써도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였다. 둘 다 진정한 의미로 맞이하는 진정한 휴식기간이였으니까. 다음에는 누구를 죽이게 될까, 다음에도 나는 살 수 있을까.  그런걸 고민하며 허비하는 시간을 우리는 휴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도축되길 기다리는 돼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 처럼.


그리고 놀랍게도, 셋을 데려온 매니저는 지난 일주일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밥만 축내는 셋에게 어떠한 타박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 정도는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 처럼.


꿈과 같은 시간이였다. 더 이상 누굴 죽이지 않아도 된다. 밥은 무려 그 소완이 요리해주는 식사를 받았고,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중앙의 농경지를 거닐고 있으면 산책을 하는 기분을, 심심할때는 자료실에 있는 게임이나 책들을 집어오면 되었다.


그래서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믿을 수 없다. 이런 형편 좋은 일이 내게 생길리 없으니까. 이렇게 모든걸 해주는 인간님이 세상에 존재할리 없으니까.


그래, 어쩌면 그 사람은 우리가 이렇게 나태해질 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어쩌면 그 사람은 이제 슬슬 우리를 팔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어쩌면 그 사람은, 그저 본인의 만족을 위해 우리를 한껏 띄워줬다가 떨어뜨릴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아니, 사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그가 아니라,


"모모 씨는 같이 게임 안해요?"


외부의 개입에 강제로 생각이 끊어지는 모모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비디오 게임이 연결된 게임은 숙소 입구의 맞은 편에 있었다. 모모는 뽀끄루와 백토의 뒤에서 둘이 염병 떠는걸 지켜보고 있었고, 그럼 바로 등 뒤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자명한 사실이였다. 애초에 여기 남자는 한 명이다. 아니, 한 분이지.


"................"


"음...... 혹시 게임이 취향에 안맞으셨나요?"


"....... 아니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또 다시 회색으로 변한 비디오 화면 속에 백토의 캐릭터가 널브러져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둘 다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대신에 조용히 이쪽을 바라볼 뿐이였다.


모모는 다시 매니저를 힐끗 쳐다봤다. 그는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을 고르고 있는 듯 했다. 지난 일주일 간의 대화는 항상 이런식이였다. 모모가 억지로, 혹은 무덤덤하게 대화를 끊어내면, 그가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간다. 마치 D-엔터에서 진행하던 상담과도 비슷했다.


[───덴세츠 사의 D-엔터테인먼트에서 매지컬 모모, 매지컬 백토, 뽀끄루 대마왕 이하 3 기체가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범인은 스스로를 '매직 젠틀맨'이라고 밝힌 괴인이라고 하며, 시티가드는 오늘 이후로 전면 수색에 들어갈 것이라고───]


"아."


침묵을 깬건 둘 중 그 누구도 아닌 외부에서 틀어지던 뉴스 속 아나운서의 담백한 보고였다. 당황하며 손짓한 매니저가 재빠르게 전원을 꺼버렸지만, 방 안의 분위기는 이미 싸해질대로 싸해진 뒤였다.


뽀끄루는 매니저에게 미안한듯 시선을 보냈다. 백토는 매니저의 시선을 피했고, 모모는 아무런 변화가 있었다.


"음....... 소완이 식사가 다 됐다고 해서..... 밥 먹으러 갈레요?"


결국 매니저가 꺼낸건 으레 상투적인 말들 중 하나였다.


"이제 곧 매니저 님 댁에 시티가드가 쳐들어오겠네요."


백토가 어떻게든 분위기를 무마해보고자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 모모가 한 발 빠르게 화두를 던졌다. 매니저와 모모의 사이에서 나눠진 대화 중 처음으로 모모가 시작한 대화였으나, 그게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란건 자명한 사실이였다.


"이제 목적이 뭐든간에, 슬슬 하실 때가 되지 않았나요?"


"제 목적은 이미 달성하고 있는데요?"


"밥에 독이라도 타셨나요? 저희가 광대처럼 매니저 님의 손 위에서 즐거워하는걸 관음이라도 하셨나요? 아니면, 아니면........."


"여러분들께 충분한 휴식을 드리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고, 몇몇 놀거리들을 제공하고 있죠."


"감사하며 옷 벗고 춤이라도 추란 말씀이신가요?"


"그런 뜻이 아닌거 알잖아요."


처음 세네번쯤은, 모모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말한 적이 꽤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매니저는 언제나 곤란한듯 웃으며 능청스런 대답으로 이야기를 넘길 뿐이였다. 모모는 이를 악물었다. 또다. 또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질척한 감정이 뇌를 뜨겁게 달궜다.


"?! 뭐, 뭐하시는거예요?!"


매니저가 당황하며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모모가 푸른 원피스를 슬쩍 들어올려 안을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안에는 D-엔터에서 보급했던 평범한 속옷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게 목적 아니신가요?"


그러나 매니저의 당황과 곤란, 미약한 흥분은 모모의 다음 한 마디에 씻은 듯 없어졌다. 아 씨발, 당황 곤란 흥분은 수용성 감정들이구나, 알고싶지 않은 지식이 늘었다. 매니저는 생각했다.


"대체 어디까지 저희를 띄워줬다가 떨어뜨리실 생각이신가요?"


"그런 말씀하시는 것 치고 모모 씨는 띄워진 적이 없는거 같은데요."


"떨어질걸 알고 있으니까요."


매니저는 목구멍이 꽉 막힌 듯 언어를 내뱉지 못했다. 다만 입을 몇번 뻐끔거리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치마를 내려줄 뿐이였다. 모모는 매니저의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었고, 매니저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로 모모의 눈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속옷이 아니라.


살포시 모모의 은밀한 곳을 가려준 매니저는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었다. 울 것같은 눈을 억지로 웃으며, 차마 올리지 못한 입꼬리를 파르르 떠는 표정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아니면 뭐겠나.


천천히 말을 고르던 매니저는, 이윽고 자리를 뜨기로 했다. 어떤 말을 하든, 지금은 소용이 없을테니까.


"음, 그럼, 먼저 가볼게요. 출출해지시면.... 오세요."


살포시 현관문을 닫은 매니저가 멀어졌다. 둘 사이에 가로막혀진 단단한 문 때문에, 모모는 바이오로이드의 초인적인 청각에 들리는 발소리로 그가 멀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모모는 그 사실에 안심했다. 


잠깐. 안심해? 내가? 왜? 나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잖아, 모모........"


이번에 상념을 부순건 뽀끄루였다. 점멸하고 있는 그녀의 뿔과 같은 색의 눈동자가 모모를 마주보고 있었다.


"뭐가?"


".........매니저 님은, 우리에게 먹을 걸 줘. 놀거리를 주고, 안전하게 잘 곳을 주고, 자유를 줘."


"자유라고 했어, 뽀끄루? 너는 부잣집 지하벙커에서 사육당하는걸 자유라고 하나봐. 우리는 그냥 주거공간이 바뀐거야. D-엔터 비품실에서 부잣집 장난감통으로 사는 곳이 바뀐 것 뿐이라고."


모모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모모의 가벼운 목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였으나, 모모의 말 속에 담긴 깊은 한은 모모의 말을 위협적인 무언가로 뒤바꿨다.


"매니저 님은, 우리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셔."


"너의 은인이겠지, 뽀끄루."


"뭐............?"


"나는 그 날 죽는 역할이 아니였어. 백토도 마찬가지고. 너만 그 날 죽을──"


매마른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순간 시야가 돌아간 모모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뽀끄루가 모모의 뺨을 때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그럼, 너는 여기가 별로야.......?"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목소리로, 뽀끄루는 물었다.


"아니야, 나도 여기가 거기보다 훨씬 좋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모모가 대답했다.


"그러면, 그러면......... 모모 너는 내가 그 날 너한테 죽었어야한다고 생각해......?"


"아니야!!!!"


물어보던 뽀끄루가 놀랄 정도의 목소리로, 모모가 대답했다. 핏빛 눈을 한계까지 크게 뜬 모모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요 근래 들어 가장 격렬하게 표출된 모모의 감정이였다.


"어떻게 그런 소릴해, 네가 어떻게. 내가 내 친구들을 죽이는 모습을 넌 전부 봤으면서!"


"네 친구들은 내 친구들이기도 했어!! 너만 슬픈게 아니야!!"


"하지만 나만큼 아프진 않았겠지!!"


모모는 한숨을 토해냈다.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렸다.


"네가 뭘 아는데!! 언제나 도도한 척 굴면서 내가 친구를 죽이는걸 지켜만보던 네가 뭘 아는데!! 너는 네 함정에 죽던 친구들의 모습을 봤어?! 사람이 바로 앞에서 터져나가면 어떤 색이 보이는지 알아?!"


"내가 한게 아니야!! 내가 죽인게 아닌거 알잖아!! 왜 그런 소릴해......?! 내가 죽였다는 것 처럼..........?!"


내가 죽였다는 것 처럼, 그 말에 모모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진짜로? 아, 모모야, 모모야. 정말로, 이 이기적인 년아? 너는 정말로, 친구들의 목숨을 앗아갈때마다 네 탓이 아니라 뽀끄루의 탓이라고, 무의식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던 거니?


너 정말,


"얘들아, 그만해."


사이에 낀건 백토였다. 백토도 울고 있었다. 뽀끄루도 울고 있었다. 모모만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았다.


"뽀끄루 너, 모모가 그런 의도로 말한게 아닌거 알잖아."


정말, 정말 아닐까? 모모의 심장에서 왈칵왈칵 진득한 무언가가 뿜어져나왔다. 익숙한 그것의 이름은 자기혐오다.


"모모 너도....... 뽀끄루한테 말이 너무 심했어. 그리고...... 매니저 님한테도. 나중에 사과드려."


뽀끄루를 달래던 백토와 눈이 마주쳤다.  똑같이 붉은 눈이였으나, 모모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맑은 보석같은 백토의 눈과 다르게, 백토의 것에 비친 제 눈은 탁한 혈액의 색 같았다.


"............싫어."


"........... 그래, 네...... 맘대로 해."


백토는 뽀끄루를 부축하며 숙소를 나갔다. 내게 정이 떨어진걸까, 아니면 그저 지금은 뽀끄루와 나를 붙여놓으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모모는 생각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답이였다. 왜냐하면 이미 백토랑은 너무 멀어져 버렸으니까.


어쩌면 모모가 백토의 목이 매달리는걸 방관하던 그날. 어쩌면 그보다 더, 모모가 아무것에도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


모를 일이였다.


그래, 모를 일이다.


모모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그저 바닥에 앉아 무릎을 감싸안았다. 조용히 눈을 감자, 고요함만이 방에 낮게 깔렸다.


귀가 따가운 정적이였다.


그 이후로, 매니저가 말을 걸어오는 일은 없었다.





하늘이 맑았다. 내 마음은 좆창이 났는데. 세상은 늘상 그렇듯, 내가 좆창이 나던 씹창이 나던 멀쩡했다. 좆같게.


말간 햇살을 케케묵은 담배연기가 빨아들였다. 결국 오늘도 우중충충한건 니코틴에 씹창나가는 내 폐 뿐이였다.


──이게 목적 아니신가요?


모모는 그렇게 말했더랬다.


남자에게 있어 이성의 치마 안은 보물상자와도 같다. 마치 원피스와 같다. 루피는 원피스가 배 안에 둘 씩이나 있는데도 못찾는 병신이고.


너무나도 매혹적인 장소를 드러내며, 모모는 너무나도 무감정한 표정으로 내게 그렇게 말했더랬다.


[잠깐, 듣고있어, 시민 님?]


"그러엄, 잘 듣고있지."


[내가 무슨말 했는지 기억나, 그럼?]


"어...... 보급형 흰색 팬티?"


그래도 기억에 남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 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미호의 목소리가 한층 거세졌다.


[어떤 바이오로이드가 보급형 팬티 받고 좋아해?! .......그리고 검은색 레이스 좋아하는거 아니였어?]


"검은색이 무조건 옳아."


그렇긴해. 팬티 받고 좋아하는건, 음. 리리스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미호와 무려 전화번호를 교환한 사이다. 그래, 무려 대기업의 고급인재가 공권력과의 유착관계를 맺은 샘이다. 음, 사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왠지 모르게 자주 미호를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냥 인연이구나 싶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미호랑 만날때마다 리리스가 미호가 들고있는 총의 스코프를 뚫어져라 쳐다보던데, 이유는  모르겠다.


[그, 그치?]


뭐가 그치야. 너도 검정파냐? 남정네 팬티에 색깔이 중요해?


[아무튼간에! 지금 바이오로이드랑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보고 있는거 아니였어?]


"맞아."


[........ 근데 혹시 그 바이오로이드.......]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그건 아닐껄."


[응, 그래. 안심이야.]


미호로써도 내가 바이오로이드 꼬셔서 따먹는 불한당인걸 원치는 않을거다.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걱정하는거랑은 다를껄, 그거.]


"아니, 맞는데?"


[이 씨이이이, 짜증나!]


"이잉 화내지마러잉."


[웩, 왜 귀여운 척이래?!]


잠깐의 투닥거림 이후, 뻘쭘한듯 헛기침을 한 미호가 다시 대화를 계속했다. 경찰이 분위기에 잘 넘어가네. 굳이 따지자면 대 테러부대긴 한데. 엥, 그럼 더 문제인거 아닌가? 아무튼.


[보통 그런 고민은 안해. 그래서 나도 몰라.]


"왜?"


[그럴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으니까.]


이번 대답에는 질문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미호도 조금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본적으로 바이오로이드는 인간 님들한테 호감을 가지도록 만들어져 있고, 아니여도 호감을 살 필요가 없잖아. 시민 님은 총 쏘고 싶을때 총 비위 맞춰주면서 쏴?]


총을 쏘고 싶을땐, 그냥 쏘면 된다. 당연하다. 총을 쏜 뒤에는, 바로 다음 탄창으로 갈아야한다. 그 과정에서 탄창이 얼마나 아파할지, 탄창에 쓸리는 총이 얼마나 쓰라릴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애초에 고려하는게 미친놈인 것이다.


이 세계에서 바이오로이드가 그러했다.


[그래서 몰라, 도움이 안되서 미안해.]


"아니야, 바쁠텐데 전화 받아줘서 고마워, 나중에 밥 한번 먹을까?"


[지, 진짜......? 좋아.....!]


이후 약간의 잡담을 더 나누다가 통화를 끊었다. 쟤는 밥 먹는걸 그렇게 좋아할까. 어쩌면 다음에 만났을땐 미호가 아니라 뚱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 돚대네, 시발거."


나는 대충 정원의 재떨이에 담배를 던져 넣었다. 마법소녀 부서는 지금 일시적 쵸비상사태가 발생했고, 그에 따라 일시적 휴무 상태에 진입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비품이 없는데 촬영진만 있어서 뭣 하나? 그러니까 개꿀 휴가란 소리다. 직원 분들 모두 제게 감사하십시오.


재떨이에 꽂힌 담배는 이윽고 잿더미 위에서 픽 쓰러졌다.


음, 뭐라고 해야하지.


그래, 방금의 통화는 예상했다시피 모모와 친해지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였다. 큰 효과는 없었지만.


나는, 그 셋을 대하는게 무척이나 어려웠다.


내가 그녀들을 아끼건 말건, 어쨋든 나는 D-엔터 마법소녀부의 부감독이였고, 그 셋은 비품이였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녀들의 고통을 비료로 돈나무를 수확한 인간들 중 하나였다.


마법소녀와 대마왕 구출 작전. 그건, 뭐랄까. 내게 있어서 그냥, 양심이 있으면 해야하는 일이였다.


세상에 갓 태어난 존재들을 강에 쑤셔박고서, 한참이 지나 모두가 익사하고 셋이 남았을 즈음에야 그 셋을 건져올리는 행위였다.


그 셋 중 둘은 내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이상한 일이였다. 오히려 모모가 정상이였다.


그건 무릇 그 둘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였다.


우리 집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 뭐, 리리스, 소완, 그렘린, 레아, 등등.


그 아이들은 나를 사랑한다. like가 아닌 love의 의미로.


나는 병신이 아니다. 고자도 아니고. 나의 주니어는 위그드라실에 버금가는 녀석이란 말이다.


나도 눈깔이 달려 있다.


리리스가 잠을 자는 내 곁에 있을 때마다 나를 사랑스러운 것 보듯 보는 것도 알고 있다. 


매일 아침 수줍게 우유를 갖다주는 엘븐과 다크엘븐. 그 우유의 출처가 어디인지, 그걸 내게 먼저 건네는게 어떤 뜻인지도 안다.


다프네는 내가 보이면 가끔 일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그건 보통 고용주에게 보이는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그들을 안은 적이 없다.


다들 나를 사랑해준다.


그러나 사랑에 빠질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가랑비 젖듯 사랑에 빠졌다고 하기엔, 나는 가랑비조차 되지 못했다.


소완은 최고의 요리를 해준다. 나를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봐준다.


리리스는 내 안전을 지켜준다. 나를 애정 넘치는 눈으로 바라봐주고.


다른 아이들도 같다.


내가 한건 그저 사람새끼면 누구나 하는 것 뿐이다.


밥을 해준 사람에게 잘 먹었다고 하고. 지켜주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한다.


내게 애정을 주니, 당연히 나도 애정을 준다.


그건 당연한 행위다. 그 행위에는 숭고함은 커녕 고귀함조차 없다. 그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니까.


그 당연한 행위를, 그녀들은 숭배하며 나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건 병이다.


세상이 쓰레기로 가득해서, 병균으로 가득 찬 나머지, 그 아이들은 착란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내 모든 행동 원리는 그것이였다.


사람답게 살고싶어서, 사람이면 응당해야하는 일을 해왔다.


세 아이들의 건에는 조금 특별한 이유도 껴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눈이 가려진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건 사람새끼로써 할 짓이 아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아이들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끼며 사랑하되 대답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 아이들이 바이오로이드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사랑해서, 내가 그 바이오로이드적 사랑에 답한답시고 그녀들을 안으면, 저기 널브러진 쓰레기들과 다를게 뭘까.


뭐, 그런 이야기.


그래서, 쓸데없는 소린 이쯤하고, 모모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사실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매니저 님.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밤, 백토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찾아오기 전까진.


모모와 뽀끄루가 싸웠더랬다. 둘의 다툼을 나는 백토에게 전부 전해들었다.


모모는 그런 말을 할 아이가 아니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모는 가시를 세우는 듯 했다. 세상 전부에게.


너무나도 많이 아파해서, 이제 다가가는 것 조차 싫어서, 그저 세상 전부에게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는 듯 했다.


그래서,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일한 판단이였다.


모모는 이제 소중한 친구들에게까지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가시를 세워 왔기 때문에, 가시를 넣는 법을 잊어버린 모모는 그렇게 친구들을 찌르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친구들과 그렇게 멀어지는건, 모모에게도, 뽀끄루에게도, 백토에게도 너무나 가혹한 일 아닌가.


그래서 이제 시간에 맡기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내가 못하는건 높은 확률로 미래의 나도 못한다. 내가 병신인데 걔는 병신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내가 해결해야 했다.


"간만이다, 자식아. 휴가는 잘 보내고 있었냐?"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익숙한 검은색 세단이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이번 생에서 익숙한 얼굴과, 지난 생에서 익숙했던 얼굴이 차례차레 차에서 나왔다.


"그럼요, 감독님. 사실 전 휴가 진짜 개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새끼가?"


길게 자란 머리를 꽁지머리로 묶은 남자다. 전생 홍대 아무데서나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쯤 있는 머리 스타일이다. 나는 내 상사, 마법소녀부서 감독에게 고개를 까딱여 인사했다. 예의 바짝 차려 인사하기엔 좀 친한 사이여서.


"이쪽은요?"


"아, 그게 말이다........"


감독은 말하기 좀 머쓱한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힐끗 감독의 눈치를 살핀 그녀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하네스로 강조된 맘마통이 출렁이며, 바닷바람에 땋은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안녕하세요, 시민 님! 시티가드 소속 바이오로이드, 자비로운 리앤이라고 합니다! 조사 차원에서 나왔는데, 잠시 협조 가능할까요?"


초천재 미소녀 형사, 자비로운 리앤이였다.


사건 해결을 위한 첫 스타트를 위해, 나는 셜록 앞의 모리어티가 되어야 했다.


시작부터 난이도가 썩창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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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가 이제 4주년이라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접었다폈다 철새짓좀 자주 했다지만 나름 개좆같은 전투원 강화모듈 있을때부터 했던 유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