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사령관이 다시 업무를 막 보던 중, 문득 자신이 봤던 오르카 호의 부대원 목록을 떠올리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자료로만 이 기사단들의 정보를 봤을 뿐 실제로 대면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 몇몇 기사단의 선제후들만 만난 것만으론 이들이 어떤 전술을 쓰고 어떤 성향인지를 알 수 없다. 자신의 군대에 대해서도 모르는 황제가 자신의 제국을 지킬 수 있을리 없지. 그렇다면... 이들을 만나봐야겠어.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의 사기를 드높이는 것도 지휘관으로서 해야할 기본 소양. 우선 이들이 좋겠군.'


곧 마음을 굳힌 사령관은 콘스탄챠가 오기 전에 일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밖으로 나가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해뒀던 부대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곧 사령관의 귀에 예전 기록을 통해 보았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령관은 예상보다 빨리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대장. 사령관이 불렀는데 또 안 갔다면서요? 그러니까 자꾸 사령관이랑 진도가 안나가는 겁니다."


"시끄러! 누가 누구보고 오라마라야! 알아서 찾아오질 못할 망정 날 다른 지휘관들이랑 똑같이 취급하다니 건방져!"


"그 쓸데없는 요철마냥 자존감만 드높은 것도 하루이틀이지 언제까지 그렇게 틱틱 댈겁니까?"


"거기 자네들! 분명 둠 브링어 기사단의 선제후 메이와 그녀의 챔피언 나이트 앤젤이 아닌가! 마침 잘됐군. 잠깐 얘기를 좀 할 수 있겠나?"


메이와 나이트 앤젤을 발견한 사령관이 반갑게 그들을 부르자 평소와는 다른 사령관의 행동에 둘이 잠시 멍하니 사령관을 바라봤고 사령관은 성큼성큼 걸어와 메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대가 둠 브링어 기사단을 이끄는 선제후로군. 멸망의 메이... 제국의 적에게 멸망을 가져다 준다는 뜻인가? 좋은 이름이군. 그리고... 작구만."


"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그대를 놀리려는 뜻은 아니었네. 단지 이렇게나 작은 체구의 여성이 기사단을 이끌고 있다는 것에 감명받았을 뿐. 음? 잠깐만..."


얼굴이 빨개진 메이가 소리지르자 그녀를 달래다가 사령관은 문득 뭔가 떠올렸는지 메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고 얼굴이 더 새빨개져 눈을 돌리는 메이와 한심하게 바라보는 나이트 앤젤을 뒤로한 채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 거기에 풍만한... 크흠. 혹시 자넨 드워프 여성인가? 만약 그렇다면 제국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도 남을 사건이 될 게야. 제국의 기사단을 드워프가 지휘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풉."


"드, 드워프...?! 지금 나 보고 키 작다고 놀리는 거지?! 사령관 너...!!"


사령관의 말에 나이트 앤젤이 웃음을 참지 못하자 이를 악문 메이가 씩씩거리며 어디론가로 향했고 그걸 본 사령관이 머리를 긁적이며 여전히 서있던 나이트 앤젤에게 물었다.


"내가 뭐 실수라도 한 건가?"


"아니요. 잘하셨어요. 사령관님이 그렇게 자극을 주셔야 우리 꼬맹이 대장도 자극을 받아서 더 적극적으로 들이댈테죠. 이러고도 못하면 그냥 꽁꽁 묶어서 사령관 방에 들이밀던가 해야죠 뭐."


"부관이면서 가차없군 자네는. 그보다 그 기계 행글라이더를 장비한 걸 보니... 자넨 남부 왕국의 용병단 카트라자의 새인간 출신인가?"


"카트라자? 새인간? 무슨 소린가요?"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행글라이더를 장비해 공중전을 벌이는 용병단이라 하네. 지금 자네 모습이 행글라이더가 훨씬 기계스럽게 된 것만 빼면 그들과 상당히 비슷해서 말이야. 그 용병단을 나와 선제후를 섬기기로 한 거라면 자네의 결정이 틀린 게 아니라고 생각하네. 듣자하니 그들은 종말의 때에 궤멸당했다고 하더군."


사령관의 말을 듣던 나이트 앤젤은 뭔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종말의 때에 궤멸당했다는 말에 멸망 전쟁 당시 전멸한 다른 부대를 말하나보다 싶어서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멸망 전쟁 때 전멸한 부대는 여럿 있었지만 그런 부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네요. 그리고 전 처음부터 둠 브링어에 소속되어 있었구요."


"그런가? 그렇다면 됐네. 아무튼 자네 선제후를 부탁하지. 난 다른 기사단도 만나봐야 해서 가봐야겠네."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하세요. 그러다보면 우리 꼬맹이 대장도 기회가 올지 누가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자기 대장을 찾으러 가는 나이트 앤젤을 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사령관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닥터의 목소리에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르카 호의 마스터 엔지니어가 아닌가. 어쩐 일이지?"


"헤헤. 오빠한테 줄 선물 가져왔지! 쨔잔~"


씩 웃으며 닥터가 내민 선물을 본 사령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멋진 모자를 주겠다고 했는데 모자의 수준을 넘어선 자신이 전쟁에 나갈 때 항상 썼던 투구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즉시 투구를 써본 사령관은 오랜만에 느끼는 철의 감촉과 안정감에 더욱 감탄하며 닥터에게 말했다.


"참으로 놀랍군! 이 감촉과 안정감... 내가 전장에 나섰을 때 썼던 것과 똑같구나. 그때 보여줬던 그 신기한 기계의 힘은 참으로 굉장하군!"


"그럼~ 누가 만든 건데? 나중에 다른 선물도 줄테니까 일단 오빠가 그거라도 쓰고 있어줬으면 해. 해줄 수 있지?"


"물론! 언제든 전장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내가 이런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감사하네. 내 그대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야."


만족스러워하며 다른 부대를 찾아가는 사령관의 뒷모습을 보고 닥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중얼거렸다.


"휴우~ 일단 이걸로 뇌파 문제는 당분간 해결이려나? 그럼 다음엔..."



[오늘 사령관께서 재밌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덕분에 우리 꼬맹이 대장은 잔뜩 삐져서 우유만 벌컥벌컥 마시고 있네요. 자기보고 키 작은 꼬맹이라 불린 게 어지간히 열받았나봅니다. 그걸 알면 다음부턴 좀 적극적으로 그 쓸데없이 큰 요철로 들이대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또 한가지, 닥터 양이 찾아와서 사령관의 상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갔습니다. 어쩐지 뇌파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는데 거짓이 아니었네요. 그래도 당분간 뇌파 문제는 없을 거라 단언하고 갔으니 그 부분에 대해선 길게 쓸 게 없습니다. 나이트 앤젤, 기록 끝.] - 나이트 앤젤의 알려지지 않은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