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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화1화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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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이 밝아오고 대충 맞춰놓은 휴대폰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어젯밤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와 급히 내 침대를 내어주고 혼자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더니 온몸이 찌뿌둥하고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벌어진 일인 걸.




나는 방으로 가 아직 곤히 자고 있는 금란을 깨우기 시작했다. 어제의 충격적인 경험에 몸이 지쳤는지 내가 들어온 기척을 느끼지도 못하고 잠에 골아떨어져있다. 바이오로이드였을 그녀였다면 내가 아침에 눈을 뜨기 전부터 이미 활동을 시작했겠지.




아무튼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 서둘러 깨워야겠다. 평화로운 토요일에 아침기상이 왠말이냐...




 


: 금란,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금란: ...............




 




말로는 못깨어날거같아 몸을 건드려봤다.







금란: .......




 


: 아침이야. 오늘 할거 많아. 일어나야지.




 


금란: 으음.... 주인님... 조금만 더...




 



이런.... 금란은 꿈에서라도 오르카로 돌아가고 싶어한건가...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는 달콤한 꿈을 방해하지 말까 싶었지만 현실에 온 이상 당장 해결해야 할 것이 산더미임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그녀를 정신차리게 만들었다.




 


: 일어나. 이제 꿈에서 빠져나와야지.




 

금란: .... 주인님... 그리 심한 말씀을.....헉!!!!!




 




금란은 꿈속에서 나의 말을 사령관의 모습으로 들은 건지 갑자기 놀라 급히 눈을 떴다.




 


: 깻어? 너무 곤히 자는거 같아서 깨우기 망설였는데...





금란: ... 자고 일어나면 다시 오르카호에서 깰 줄 알았는데... 역시나...




 

실망하고 씁쓸해하는 표정이 역력한 그녀...




 



: 괜찮아? 컨디션 나쁜거 같으면 집에서 쉬어도 돼.




 


금란: 아닙니다... 몸은 괜찮으니 오늘 해야 할 일을 같이 하시지요.


 


: 알았어 그럼... 오늘은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야 하니 아침은 못먹겠네... 검진 끝나고 점심 맛있는거 사줄게. 그리고 옷도 좀 사야겠다.




금란: 옷 말입니까?




: 그 한복이랑 메이드복이랑 섞인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사람들 시선이 장난 아닐거같은 예상이 들어서 말이야.




금란: 많이... 특이하나요?




: 아마도 코스프레 행사에서나 용인될 옷이라 생각되는데.




금란: 코스프레??





: 있어. 나중에 현실생활에 적응되면 행사장에 입고 가봐. 주인공이 되는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거야.




 

금란: 잘 모르겠지만 인간님의 충고니까 새겨듣겠습니다.




 

: 저기... 자꾸 인간님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어제 이름 알려줬지 않아?




 

금란: 인간님을 이름으로 부르는건 어색해서...





: 너도 인간인데 뭐가 어색해? 어색하다고 계속 인간님이라고 부르면 영영 못고칠걸?




금란: ...괜찮으시겠습니까?




: 괜찮고 말고.




금란: 그럼...알겠습니다... ... .......




: 님 말고 씨.




금란: 세환씨라니 제가 어찌...




: 다른 사람들이 보면 21세기 주종관계인줄 알겠다. 세환씨라고 해줘.




금란: .......그럼... 세환씨라고 부르겠습니다.




: 고마워. 그럼 일단 병원 가기 전에 집앞에 스포즈의류매장이 있으니까 간단히 운동화랑 츄리닝부터 사자. 당장 외출할 옷이 있어야 하니까. 난 준비 되었으니까 금란은 씻고 나와. , 칼이랑 갓이랑 카츄샤는 착용안해도 돼.





금란: 네 세환씨...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씻고 옷을 입은 금란과 함께 우리는 집에서 길 건너에 있는 스포츠의류매장에 들어갔다.




 



매장점원: 어서오세요. 찾으시는게 있....????




점원이 매일 하던 대로 고객응대를 하려다 금란을 보고 잠시 당황한 듯 했다. 하긴, 나도 금란이라는 캐릭을 처음 봤을 때 꽤나 신선했는데 하물며 게임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겐 조금 쇼킹할 모습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나는 금란이 게임속 캐릭터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터.




 

: ,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제 아내가 어디 행사에 갔다 오다가 급히 다른 일을 봐야 하는데 이런 옷으로 다니기 곤란해서 운동복도 새로 살 겸 겸사겸사 와봤어요.




 

점원: 아아, 그러시군요! 혹시 어떤 운동을 주로 하시나요?




 

: 그냥 런닝이나 오래 걷기 좋은 옷좀 추천해주시겠어요?




점원: 네네~! 이쪽에 쭈욱 걸려있으니까 맘에 드시는거 골라주시면 돼요.




 

그렇게 점원은 우리를 매장 한쪽에 진열되어있는 행거로 안내했다.




 



금란: 아내라뇨... 거짓을 말하시는게 청산유수시네요.




 


금란은 진열대로 가면서 나에게 작게 말하며 나의 연기력에 대해 평가했다.




 

: ... 불쾌했어?




금란: 그건 아니지만... 그냥...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 주변사람들의 의심을 빠르게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부부관계임을 어필하는 거거든. 3자가 어찌 따지기도 힘든 관계니까. 괜히 건드려봤자 좋을게 없다고 생각하는거지.




금란: 그렇군요. 나쁜 방법은 아닌거 같습니다.




: 금란도 곤란할 때는 그냥 부부라고 둘러대. 그쪽이 편하니까.




금란: 네 세환씨.




: 그럼... 맘에 드는거 있어?




 

금란은 찬찬히 진열행거에 걸려있는 옷들을 살펴봤다. 옷 재질을 만져보기도 하고 자기 몸에 대보기도 하다가 이윽고 상하의 한세트를 손에 들었다.




 

금란: 이걸로... 할께요...




: 오케이. 혹시 이거 얼마에요?




점원: 상하의 세트 제품이라 7원입니다 고객님.




 

가격을 들은 금란은 내 귓가에 작게 소근거렸다.




 

금란: 비싼건가요? 물건 살때는 매번 참치로만 계산해서...




: 요즘 스포츠웨어 나오는거에 비하면 저렴한거야. 돈걱정은 안해도 돼. 참치라니. 나중에 마트가서 참치 한바가지 사주면 까무러치겠는걸.




금란: ......감사합니다 세환.....그치만 너무 웃지는 말아주세요. 아직 저는 이 세계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 알았어~ 아 맞다. 신발도 사야하잖아? 저기 혹시 런닝화는 어떤거 있나요?




점원: 런닝화는 이쪽입니다 고객님. 발사이즈가 얼마신가요?




금란: 발사이즈요? 사이즈가...




점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줄자 갖고 오겠습니다.





점원은 곧바로 카운터 서랍에서 줄자를 갖고 와 금란 발사이즈를 제기 시작했다.




 


점원: 240mm네요. 발 볼은 그렇게 넓지 않아서 그냥 이쪽 진열대 제품 중 고르시면 되겠어요.




금란: ..... 감사합니다.




그렇게 금란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맘에 드는 신발 하나를 골랐다.




 


금란: 세환씨... 이거...




: , 그걸로? 블랙에 핑크라. 어울리네. 이걸로 하자. 혹시 이건 얼마에요?




점원: 네 그건 43천원 입니다~




: 아까 그 옷이랑 같이 계산할께요.




점원: .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트레이닝복 세트랑 런닝화 합쳐서 11만 3천원입니다. 할인 포인트 같은건 없으신가요?




: 네 없어요. 그냥 카드결제할께요.




점원: 할부 몇 개월 해드릴까요?




: 2개월 해주세요.




점원: . 결제되었구요. 여기 쇼핑백에 넣어드렸어요.




: ,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점원: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나와 금란은 구입한 옷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일단 금란의 한복인지 모를 옷에서 방금 산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병원에 가야 하니까.




 

금란: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안해주셔도 되는데...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금란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고마워 할 것 까지는.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뭘.




금란: 제가 어디까지 신세를 져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 앞으로도 감 잡지 말고 그냥 신세 편히 지면 돼.




금란: ......거듭... 감사합니다.




: 아무튼 집에 들어가서 얼른 갈아입고 병원가야지. 정말로 온전한 인간이 된건지 확인해봐야 하니...




 

금란: ...




그렇게 집에 들어가고 몇 분 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금란의 변화를 알아낼 본격적인 일정에 착수하게 되었다.


















나: 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금란이 검진실에 들어간지 겨우 10분이 지난 것 뿐인데 벌써부터 나는 시간에게 더 빨리 흐를 것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병원 접수가 수월했다는데 놀랐다. 보통은 의료보험없이 접수한다고 하면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마련인데 고급검진 여러개를 한꺼번에 한다고 하니 태도가 달라진 것일까?





[조금 전]





접수직원: 네, 무엇을 도와드릴 까요?


나: 아, 제 아내될 사람인데 종합검진좀 받으려고 하는데요.


접수직원: 아내되시는 분 성함이랑 생년월일 말씀해주시겠어요?


금란: .........




금란은 급히 내 눈치를 살폈다. 생각해보니 아직 주민등록이 되지 않았기에 이름과 생년월일 전부 없잖아.


이름이야 내가 지어준 걸로 대충 둘러대면 되는데 생년월일은? 생년월일은? 생년월일은? ........아 이런... 낭패네.... 잠깐... 그렇지!

나는 뭔가 번뜩이는 기억이 떠올라 곧바로 직원에게 말했다.



나: 최금란이구요, 1997년 12월 20일 생입니다.



나는 기억했다. 프로필에 나와있던 금란S7 모델의 대략적인 신체나이는 22세 정도.


그리고 금란이라는 캐릭터가 라스트오리진에 최초로 정식릴리스 되자마자 내가 그녀를 제조로 뽑은 시기가 바로 패치날짜인 2019년 12월 20일.


패치날의 연도에서 금란의 신체나이를 역산하여 나온 년도를 자연스레 생년월일로 삼으면 될 터.


그렇게 나의 게임지식에 감탄하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접수직원에게 금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했다.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으니...





직원: 아내되시는 분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아뿔싸. 이놈의 대한민국은 신분증 만능주의 국가란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젠장 일났네...


차라리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법률구조공단에 일하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주민등록부터 할 걸 그랬다.


금란이 온전한 인간이 된건지에 정신이 팔려 일의 순서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크나큰 실수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엎어진 물이다....... 에휴.......

나는 하는 수 없이 약간의 알리바이를 지어내 직원에게 거짓해명을 해야 했다.





나: 아... 사실 제 아내가 모종의 이유로 주민등록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 있잖아요. 부모로부터......


접수직원: 네? 아, 아......


나: 그래서 그... 아무튼... 검진은 종합검진으로 할께요. 제가 미리 계산하고 추가비용 들면 끝나고 더 지불하는 걸로 하는게 어떨까요?



접수직원: 아....네....검진은 어떤거 하실려는 건가요?



나: 기본건강검진, 엑스레이, CT촬영, 혈액검사, DNA검사 이 정도 할려구요.



접수직원: 그거는 검진받으시는 분의 의료보험이 없으면 비용이 많이 비싼거 아시죠? 보호자 분 의료보험으로 대신 할 순 없어요.


나: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진행해주세요.



접수직원: 알겠습니다. ......... 여기 접수번호구요. 저 앞에서 기다리시다가 번호 알림 뜨면 아내분께서는 종합검진실로 들어가시면 되세요.


나: 아, 네 알겠습니다.


접수직원: 아내분을 위하는 모습이 멋지세요. 힘내세요.


나: 아... 하하. 네. 감사합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출생신고도 안되어 살아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간으로 살다 나를 만나 삶을 구원받는, 진실과 거짓이 잡탕된 스토리가 의외로 먹혔다.


누가 봐도 무속인으로 분장한 방송인 두명 앞에서 눈물 뚝뚝 흐를만한 사연을 알려주는 모 프로의 출연자라 해도 될 정도.


그렇게 나와 금란은 접수표를 받고 대기석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금란: 제 생년월일이 그 날이었나요?


나: 게임상에서는 2100년대 언저리겠지만 실제로 금란이라는 캐릭터는 2019년에 나왔거든. 거기에 금란의 프로필 상 신체나이를 뺀거고.


금란: 그렇군요... 결국 이러나 저러나 저는 태어난게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바이오로이드... 캐릭터... 둘 다 태어났다고 하기에는 어패가 있죠...



금란의 눈에 힘이 빠진게 보였다. 게임 세계관에서도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이 태어난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에 대해 나름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금란은 거기에 더해 자신이 애초에 그런 고뇌 따위는 아무 의미 없는 그저 게임 캐릭터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그것의 여파를 지금까지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살아왔던 게임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크고 작은 괴리를 보면서 말이다.




나: 그래도 조만간 출생신고랑 주민등록을 하면 너도 비로소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어.


금란: 그렇게 서류상으로만 태어났다고 한들 달라지는게 있을까요...


나: 이 세상에 실존하면 그게 태어난거라고 생각해. 엄마 뱃속에서 생긴 아기도 냉혹하게 따지면 존재하지도 않던 세포 두개가 어떠한 원인으로 생겨나 결합해서 생긴거잖아. 금란도 마찬가지야.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어떠한 원인으로 이 세상에 생겨난거지. 생겨난 원인의 차이만 있을 뿐.



난 스스로도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 말로 금란을 위로해줬다. 솔직히 인정한다. 금란을 어떻게든 안심시키기 위해 되지도 않는 말 꺼낸거.




금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어요. 고마워요 세환씨.



나의 말이 조금이나마 듣기에 좋았는지 금란은 작은 미소를 보이며 나에게 말했다.




[띵~동~]



안내전광판에 새로운 번호가 뜨는 것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우리 번호였다.




나: 우리차례네. 들어가서 잘 할 수 있지?



금란: 저 바보 아니에요.



나: 그래. 편하게 검사받고 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께.



금란: 알겠어요. 좀이따 뵈요.







그렇게 금란은 검진실로 들어갔고 그렇게 10분이 지난 것이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금란의 신체가 정상적인 인간의 신체이고 병이나 장애 같은 별 다른 이상소견이 없으면 곧바로 주민등록을 하는게 1순위이다. 



그 후엔 금란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여러 물품을 구비해야겠지. 옷이며 화장품이며 기타 생활용품 같은거... 

금란의 칼 소지관련도 적절하게 처리해야 하고...

학력문제 때문에 검정고시 준비도 해야 하나?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지?

그리고 쉬는 날에는 어디 같이 놀러갈 곳을.... 어? 놀러갈 곳?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거여?



아무리 내가 금란이라는 캐릭터에 호감을 품고 서약직전까지 갔다고 하지만 금란이 현실의 인간이 된 이상 그렇게 함부로 호감을 품으면 안되는데 말이다.

금란도 이제 엄연히 인간이자 대한민국 국민이 될 사람인데 그녀의 의사가 가장 우선 아니겠나. 난 여성 상대로 막무가내 들이대다가 뉴스 사건사고 소식에 나오기 싫단 말이다.
그래도... 현실에서도 예쁘고 성격도 그대로라 좋긴 한데... 아니 지금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나는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당연히 라스트오리진을 하기 위해서다. 어젯저녁부터 금란이 현실에 넘어온 이후 통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지금은 약간의 여유가 생겼으니 한번 게임을 확인해 볼까해서 꺼낸것이다.




나: 음?? 진짜 금란이 없네?



게임을 확인해보니 진짜로 내가 키우던 금란이 사라져있었다. 다른 캐릭은 몰라도 금란만큼은 내가 관심있게 키워서 레벨과 능력치까지 기억하는 정도였는데 그 금란이 사라진 것이었다. 마치 애초에 내가 금란을 제조하지 않았던 것마냥. 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금란은 지금 병원 검진실에 들어가 있는거지만.




나: 흠...




나는 남은 저항군 구성원들의 스탯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 흠...




제조를 돌릴까 말다 고민하다 이내 맘을 접었다.




나: 흠...




거지런을 돌릴까 하다 이내 맘을 접었다.





나: .........에잇......할 의욕이 안나네....




나는 이내 게임을 종료하고 인터넷을 켰다. 검색창에 뭐라 적을까 고민하다 이윽고 내 손가락이 내 의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자판을 터치했다.




나: '.....이세계 전이.... 현실세계 전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한 것이지만 나오는 검색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이고깽 장르가 대다수였다. 혹시나 싶어 라스트오리진 관련 세계 전이를 검색해봐도 누군가 써놓은 소환물 장르만 있을 뿐이었다. 현실의 라붕이가 라오세계관으로 넘어가 온갖 고생을 하는 이야기라나 뭐라나.




나: 하하...참나...뭐 이런.....




나는 이내 다 집어 치우고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후 건너편에 있는 매점에 가 음료수를 산 후 홀짝홀짝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옆에는 금란이 검진 후 마실 또 한개를 놓고.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병원에서 안내방송이 들렸다.




[97년생 최금란님 보호자분께서는 진찰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금란의 검진이 끝났나보다. 나는 옆에 두었던 음료수를 집어들고 진찰실로 들어갔다.
진찰실 안에는 의사선생님과 함께 금란이 앉아있었다. 의사선생님은 한쪽벽에 여러 차트를 띄워놓고 내가 앉기를 기다렸다.



의사: 아, 보호자분. 이쪽에 앉아주세요.


나: 아, 예. 금란은 검진 잘 받았어?


금란: 네. 잘 받았어요.


나: 그래. 음... 선생님. 제 아내는 좀 어떤가요?



나의 질문에 의사선생님은 컴퓨터 화면과 차트를 이리저리 보고는 편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의사: 에... 별 다른 이상소견은 보이지 않습니다. 영양상태도 정상이고 엑스레이, CT촬영도 특이한 게 없구요. DNA결함도 없구요.


나: 혹시 몸에 보철이라던가 기타 인공적인 물체를 이식한 흔적도 없는거죠?




이건 당연이 금란이 바이오로이드로서 가졌던 요소. 그러니까 금속골격과 뇌에 삽입된 모듈의 존재여부를 묻는 것이다. 금란도 내 질문의 의미를 알고 이것만큼은 집중해서 의사의 말을 경청했다.




의사: 아, 혹시 과거에 교통사고같은걸 당해서 뼈에 철심을 박거나 그런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다행이 아내분 몸에 그런 흔적은 없군요. 뼈도 그런거 없는 순수한 칼슘뼈구요. 몸 전체를 살펴봐도 금속이나 플라스틱 같은 인공물질은 없습니다.




내가 내심 기대하던 답변이 나왔다. 금란은 정말로 인간이 되었다. 어젯밤 내가 추론했던 가정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게임상의 설정은 그저 허구적인 설정일 뿐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


그리고 나는 재빨리 금란의 표정을 보았다. 역시 그녀의 얼굴은 놀라운 소식을 듣고 표정관리가 안되고 있었다. 그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이어서 내게 말했다.




의사: 결론을 말씀드리면 아내분의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합니다. 정신건강도 양호하구요. 검진 전에 이 분의 사연을 들었는데 그렇게 가족도 없고 생활기반도 없이 힘들게 사셨던 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군요.



완벽했다. 완벽하게 첫번째 산을 넘었다. 혹여나 금란의 몸에 바이오로이드로서의 뭔가가 발견되었다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될 것이다. 앞으로는 법률적으로 잘 처리해서 자연스럽게 한국사회에 녹아들어가면 될 일이다.



나: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알려준 의사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의사: 아뇨 저는 그냥 결과를 말씀드린거니까. 앞으로 건강관리를 잘 하시면 될 겁니다. 혹시 다른 질문하실 것은 없나요?


나: 아... 아뇨. 없습니다. 금란은 있어?


금란: ....아....저도 딱히....


의사: 그럼 이제 돌아가시면 되겠네요. 검진받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금란: 감사합니다.



나와 금란은 진찰실 문을 나서고 서로 아무 말 없이 병원 밖으로 나왔다. 나는 조용히 아까 샀던 음료수를 그녀에게 건냈다.



나: 자. 검진받느라 아무것도 못마셨을테니까 마셔.


금란: ..................



나: 금란, 왜그래?


금란: ..............인간.......


나: 응???


금란: 정말로 인간이군요. 저는...


나: 응. 너는 인간이야.


금란: 내가.... 인간....





금란은 아직도 실감이 안나는 눈치였다.





나: 얼마 안가 익숙해질꺼야. 그리고 축하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거.


금란: 태어난건가요....




나: 당연히 태어난거지.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금란: ........노력...해볼께요....



나: 그럼, 인간 된 기념으로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나는 그렇게 약속한대로 그녀를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평소의 혼자사는 나였다면 갈 일 없었을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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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제도권 내에서 금란이 정식 주민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며 쓴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