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훗, 물론이지! 아서는 이 초 천재 미소녀 멀린님이 설계한 데이트 코스를 기대하라고?”

 

멀린은 장난스런 미소와 함께 발을 움직였다. 그 발은 흥겨움과 기대감에 춤추듯이 가벼이 하늘거렸다.

 

멀린은 오르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특유의 활발함과 적응력 덕분인지 빠르게 오르카에 스며들었다.

 

물론 지금까지 재활에 집중하다 보니 아직 오르카의 시설이나 요소에 익숙지 않은 부분이 있기에 오늘 사령관인 내가 직접 멀린과 함께 돌아다니며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멀린은 그걸 듣고 데이트라고 신이 나던데, 아예 데이트 코스까지 만들었다. 뭐, 어차피 돌아다니는 건 변하지 않으니 멀린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생각하자.

 

“그럼, 첫 번째로 어디 갈 거야?”


 


“처음은 식당! 거기서 밥부터 실컷 먹어야겠어! 그걸 위해 밥도 안 먹고 왔지!”

 

멀린은 어깨에 걸친 제복을 펄럭이며 웃었다. 이럴 줄 알고 나도 밥을 안 먹고 왔는데 다행이네.

 

*

 

식당에 간 우리는 음식을 시켰다. 재활 중에도 식당은 가봤던 멀린은 어렵지 않게 음식을 주문했고 그녀는 호쾌하게 음식을 씹어 삼켰다.


 


“으음~! 맛있어! 재활하는 동안엔 새 육체에 적응해야 한다고 먹는 양도 조절해야 했단 말이지? 이젠 그런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고!”

 

“그래, 다행이네.”

 

스테이크를 거침없이 해치우는 멀린을 보며 나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나는 멀린에게 데이트 계획을 물었다.

 

“이 다음엔 영화! 프리드웬에선 기계들만 태운다고 영화 한 편 없었다니까? 그리고 게임센터! 저녁 먹은 다음엔….”

 

멀린은 신나게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그녀는 살짝 붉어진 머리를 흔들었다.


 


“아냐, 이 다음은 그때 가서! 다 알면 재미없잖아?”

 

“그래, 그러자.”

 

나는 별말 없이 끄덕였다. 멀린이 즐겨주기만 한다면 어디든지 따라갈 용의가 있다.

 

*

 

식사를 마친 후 우린 영화관으로 향했다. 의외라면 멀린이 이미 영화예매를 끝마쳤다는 점이다.


 


“후후, 이 멀린이 아무 준비 없이 계획을 세웠겠어?”

 

벌써 오르카의 인트라넷을 이용할 줄 알게 된 멀린은 데이트 코스에 필요한 것을 예약했다고 한다. 그렇게 멀린과 나는 영화관에 들어갔다.

 

영화관이라고 하지만 멸망 전의 영화관을 기대해선 안 된다. 아무리 거대한 잠수함인 오르카라고 해도 그만한 공간을 할애하기가 어렵다.

 

1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방에 벽걸이 TV가 걸려있는 방이 여러 개 있는 그런 구조다. 영화도 데이터 칩을 이용해 보는 형태이다.

 

그래도 유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 다들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나와 멀린도 그러했다.


 


“와아~, 좋았다. 오랜만에 영화보니 새롭네.”

 

멀린은 기지개를 피며 만족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아직 데이트는 끝나지 않았다.

 

“그럼 바로 게임센터로 직행! 재활 중에 TRPG를 했지만 다른 게임들은 못 해봤지! 모처럼 아서랑 있으니 격투 게임으로 하자!”

 

“게임에 자신 있나 봐? 나는 쉽지 않을 텐데?”

 

“핫하하! 초 천재 미소녀인 내가 질 것 같아? 내기라도 할까?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우리는 서로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게임을 치렀다. 그 결과.

 

“큭….”


 


“자아~? 아서? 뭐라고 했었지이~? 나는 쉽지 않다고~? 아하하하핫! 아슬아슬했지만 결국 내 실력엔 미치지 못했구나!”

 

나는 결국 멀린에게 졌다. 젠장, 하단만 막았다면 이겼을 텐데! 하지만 그 말은 꺼내지 않는다. 그래 봤자 멀린이 더 깐족거릴 것이 뻔하고 내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으니까. 결국, 나는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소원이 뭔데.”

 

“음….”

 

멀린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비밀. 나중에 말할 거야.”

 

“...그래라.”

 

“이제 배도 출출해지니 밥 먹으러 가자!”

 

멀린은 내 손을 잡았다. 그래, 저렇게 웃으니 됐지.

 

*

 

저녁까지 먹은 우리는 오르카 호의 갑판 위를 걷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불고 저물어가기 직전의 해가 마지막 불빛을 지평선 너머에서 보내주고 있다.

 

이곳은 내가 정한 곳이다. 다른 애들과도 데이트하면서 알게 된 한적한 곳이다. 데이트를 마무리하기에 딱 좋기도 하고.

 

“오늘 재밌었어?”


 


“물론이지! 정말 몇백 년 만에 제대로 즐긴 것 같아!”

 

다행히 멀린도 만족한 모양이다. 잠시 바닷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고마워, 아서.”

 

“응?”

 

“나를 그곳에서 구해줘서. 블프랑 애들을 내쫓고 난 죽을 생각이었는데….”

 

멀린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살 생각은 그냥 포기했거든. 근데 아서가 와서 멋진 모습 보여주고…. 그래서 기뻤어. 이곳에 와서도 아서가 말만 좋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그래서 더 좋아졌고….”

 

하지만 그녀는 빨개진 귀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목소리도 지금까지와 다른 우물거림이 느껴진다.

 

나는 웃으며 멀린의 귀를 살짝 만졌다. 붉은 귀는 살짝 움찔거렸다.

 

“응….”

 

“먼일이래? 초 미소녀 대악당이 그런 말을 하고.”


 

“...치이.”

 

나는 멀린의 귀를 계속 만졌다. 멀린도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탁, 그녀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그럼 대악당답게 심술 좀 부려볼까?”

 

멀린은 그대로 내 손과 깍지를 끼우더니 성큼성큼 걸어갔다.

 

“으응? 어디가?”

 

“데이트 마지막 코스. 저녁 이후엔 뭘 할지 말 안 했지?”

 

멀린의 손에 가볍게 끌려가던 나는 멀린의 얼굴을 보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 그리고 쑥스럽게 보이는 미소.

 

음. 저렇게 웃는 것도 귀엽네.

 

*

 


“사이가 좋아진 것 같네요. 두 분.”

 


“흐흥~. 그렇지?”

 

며칠 뒤, 멀린과 블라인드 프린세스와 함께 면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온 지 얼마 안 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불편한 점이 없는지 물어보는 자리다.

 

다만 블라인드 프린세스가 내 반대편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멀린은 내 바로 옆에 달라붙어 있다.

 


“좀 질투 나는 걸요? 사령관님, 나중에 저와도 데이트해요.”

 

“그래, 나중에 시간이 나면.”


 

“우와~, 아서가 다른 여자랑 바람을 피우려 하네? 며칠 전에 나랑 그렇게 뜨거웠으면서. 흑흑!”

 

멀린이 내 옆에서 눈물을 닦는 흉내를 낸다. 내 팔에 끼운 팔짱은 풀지도 않은 채.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차를 마시며 웃었다.


 

“데이트 때 말하는 건가요? 확실히 뜨거운 걸 넘어 과격해 보이긴 하더라고요. 사령관님의 물건을 엑스칼리버라 말하면서 자기를 아서 전용 검집으로 만들어달라고 한다던가.”

 


“.........아?”

 

멀린이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말에 딱 굳었다. 하지만 프린세스는 미소가 걸린 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좋긴 하셨나 봐요? 마지막엔 사랑해달라고 애원을….”

 


“잠까아아아아아아마아아안!”

 

콰당! 멀린이 의자를 박차며 일어났다. 그 얼굴은 완전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 정도로 당황하는 건 처음 같다.

 


“그, 그, 그, 그건 언제 안 거야? 아니, 어떻게 안 거야?! 말한 적 없는데?! 설마 아서가 말했어? 서, 설마 여자의 소중한 첫경험을 트로피마냥 자랑하며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었어?!”

 

“아니야. 사람 쓰레기로 만들지 마.”

 

아무래도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탈론허브’의 존재를 아는 모양이다. 공공연한 비밀인 사이트지만 어린 애들의 정서를 위해 나름 숨겨진 곳인데.

 


“그런 곳이 있었다니…. 여기도 다르지 않구먼.”

 

멀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연해 보이려는 그 얼굴은 방금 프린세스의 공격에 조금 상기된 상태였다.

 

그러다 멀린은 프린세스를 쳐다보더니 슬그머니 웃었다.

 


“그럼….”

 

“?”

 


“나중에 블프도 올라오겠네? 아서랑 그런 짓 하는 영상이?”

 


“...”

 

“아서, 나중에 블프랑 하게 되면 무조건 나보다 거칠게 해. 알겠지? 막 며칠은 못 일어나게. 응?”


 

“저는 그렇게 하셔도 괜찮은데요?”



“괜찮기는 무슨! 아서, 꼭 엉엉 울게 만들어. 알겠지?”

 

이거야 원.

 

나는 멀린의 허리를 감싸며 내 품에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럼 그때 너도 같이 있어. 똑같이 해줄게.”

 


“...”

 

멀린은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곤 내 가슴팍을 톡 쳤다.

 

“아서는 완전 음란하네. 우리 둘을 한 번에 먹고 싶어?”

 

“그래서 대답은?”

 


“하는 거 보고. 헤헷!”

 

멀린은 밝게 웃었다. 흠. 귀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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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성격 좋고 귀여운 듯


오랜만에 취향에 꽂히는 여캐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