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카페 아모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빠르게 알려졌다. 한눈에 봐도 달라진 리마토르와 칸 사이의 기류를 탈론 페더가 놓칠 리가 없었고, 손에 자리 잡은 반지를 놓칠 리는 더더욱 없었다. 늦은 밤이었음에도 실시간 특보를 내고 탈론 페더와의 기자회견까지 가진 둘은 다음 날 아침 오르카호 입방아의 중심에 섰다.

 

“크, 리마토르 교수도 대단하네. 자기를 납치한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다니.”

 

“그러니까. 혹시 납치가 취향이었던 걸까?”

 

“남자들이 납치를 좋아한다면... 우리도 한 번 사령관님 납치해볼래?”

 

“오오, 이거 그럴싸한 생각이야!”

 

이렇게 사령관실로 쳐들어갔다가 리리스에게 제압당하고 그린캠프에 보내진 안타까운 브라우니가 소수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둘의 결혼 소식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사령관도 둘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보았기에 칸이 올린 결혼식 서류를 바로 결재해주었다.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결혼식을 두고 이번에는 리리스도 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드레스를 입을지 오드리와 테일러에게 상담을 받는 칸을 보며 선례가 생겼으니 자신도 주인님과 결혼하게 될 계획을 착실히 세워나갔다.

 

 

어느 날씨 화창한 날. 둘은 마침내 결혼식장에 서게 되었다.

 

 

“후...”

 

“왜 그래요, 교수님. 긴장되세요?”

 

늘 입고 다니는 데일리 슈트나 정장 대신 하얀 턱시도를 입은 리마토르는 떨리는지 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하루 동안 그를 보좌하게 된 하르페이아가 물을 드릴까 묻자 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믿기지가 않네요.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에이, 무슨 말씀하시는 거에요.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생각하면 더 일찍 오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죠.”

 

“그런가요. 이것 참...”

 

결혼식이 시작하기 2분 전. 리마토르는 손목시계를 보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인생에 단 한 번 있을 자리를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그를 보며 하르페이아도 격려를 더했다.

 

“힘내세요. 오르카호에서 칸 대장님이 아니면 누가 교수님의 배우자가 되겠어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후, 그래야죠. 이만 들어갑시다. 안에서 저를 부르는 거 같네요.”

 

하르페이아의 말에 리마토르는 미소로 답했다. 식장 안에서 신랑 입장이라는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열린 문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벨벳 끝에는 그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의 반려가, 선녀의 날개옷처럼 하늘거리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를 맞았다.

 

“신랑, 신부를 영원토록 사랑하겠습니까?”

 

“네, 제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신부, 신랑을 변치 않고 사랑하겠습니까?”

 

“네, 삶이 끝난 후에도 그를 사랑하겠습니다.”

 

 


그날, 오르카호 최초의 부부가 탄생했다.

 

 

 

결혼식만큼이나 뒤풀이도 화려했다. 소완이 아낌없이 솜씨를 발휘한 뒤풀이 연회에서 칸과 리마토르는 둘만의 대합실로 잠시 빠져나와 있었다. 이제는 연인에서 부부가 된 둘을 축하하는 호드 대원들의 폭죽을 받으며 작은 뒤풀이가 벌어졌다.

 

 

“교수, 우리 대장한테 너무 잡혀 사는 거 아니야?”

 

“크흠, 어쩔 수 없는 일이랍니다.”

 

한 손에 술병을 든 워울프가 리마토르의 허리를 쿡쿡 찌르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일축했다. 그 모습에 이 쑥맥인 새신랑을 더 놀려주기로 작정한 하이에나는 대화 수위를 올렸다.

 

“낮에는 이래도 밤에는 교수가 주인일지도 모르지. 늑대무리의 대장을 길들이려면 훌륭한 지휘봉이 있어야 하니까.”

 

“호오, 아주 뛰어난 지휘봉을 갖고 있나 보네?”

 

기다렸다는 듯이 하이에나의 말을 받은 샐러맨더가 실눈까지 뜨며 그를 놀리는 데 동참하자 리마토르도 더 이상 무응답으로 일관하지 않았다. 전에 읽었던 책에서 자신의 모습과 딱 맞는 일화를 찾은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꺼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어우 유몽인이 지은 야담집 <어우야담>의 첫 장인 인륜(人倫)편을 보면 ‘부인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편’이라는 야담이 나와요.

 

옛날에 한 장군이 십만 명이나 되는 병사를 이끌고 진을 치더니, 동쪽과 서쪽에 각각 붉은 깃발과 푸른 깃발을 세웠어요. 장군은 아내를 두려워하는 자는 붉은 깃발에 서고,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푸른 깃발 아래 서라고 지시했죠. 그 말을 들은 십만 군사들은 모두 붉은 깃발이 꽂힌 곳으로 섰는데, 유일하게 한 병사만이 푸른 깃발 아래에 있었어요. 장군이 전령을 보내 그 이유를 묻자 그 병사는 ‘남자 셋이 모이면 반드시 여색을 논하니 남자 셋이 모인 곳에 당신은 일체 가지 말라고 아내가 그랬습니다.’라면서 십만 명이나 되는 군사가 모두 부인에게 잡혀 산다는 걸 의미하며 이야기가 끝나요.

 

글을 쓴 어우 유몽인은 이 일화를 소개하며 맨 앞에 ‘예로부터 교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부인이다. 남자 중에 강심장인 사람이라도 몇이나 능히 부인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라고 썼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내한테 잡혀 사는 건 똑같답니다. 당연히 저도 예외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칸이면 잡혀 살아도 괜찮죠. 오히려 행복한 일이라서 저는 이런 삶에 만족한답니다.”

 

곤란한 질문을 능구렁이 담 넘듯이 피하는 걸 넘어 아예 모범적인 답안을 말하는 수준을 보여주자 퀵카멜은 그가 고단수라는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샐러맨더는 어느 틈에 그의 답변으로 도박을 했는지 자기가 이겼다며 워울프와 하이에나에게 참치 캔을 받고 있었고, 탈론 페더는 침을 흘리며 카메라로 그 광경을 담고 있었다.

 

“크으! 이게 바로 순애죠!”

 

“진정하세요, 당연한 말을 한 것뿐인데요.”

 

감탄하는 탈론 페더에게 유종의 미까지 거둔 리마토르는 싱긋 웃으면서 다시 커피를 홀짝였다. 그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아끼지 않던 칸은 리마토르가 커피 잔을 내려놓자 바로 팔로 감싸 안았다.

 

“으이구, 그런 멘트는 언제 연습했데.”

 

“연습이라뇨. 한 점의 거짓도 없어요.”

 

“그래그래, 믿어줄게.”

 

그의 말을 가볍게 받아넘기던 칸은 눈웃음을 짓더니 왼손 검지로 그의 볼을 콕 찔렀다. 그녀는 그대로 손을 움직여 하트를 그리면서 아까보다 끈적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따가 밤에도 그 말 해줄 거지?”

 

“그럼요. 얼마든지 해줄게요.”

 

자신 있게 말하고 있지만 리마토르의 귀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전히 쑥맥 기질을 버리지 못한 그를 보며 칸은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정말이지 당신은 언제쯤 익숙해질 거야?”

 

“음... 언젠가는 되겠죠.”

 

“걱정 마, 내가 도와줄 테니까.”

 

칸은 볼까지 새빨개진 그를 사랑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그녀의 안에서 끓어올라 속이 간지러웠다. 마치 나비를 삼킨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런 애타는 감정을 그에게도 알려주고파 그의 목에 두른 팔을 끌어당겨 그의 품에 포옥 안겼다. 감정이 따뜻하게 퍼져 열이 나자 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칸, 괜찮아요?”

 

자신을 놀릴 때는 언제고 또 말없이 자신에게 안긴 그녀의 모습에 리마토르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칸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순간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과 시야를 교환하길 멈추지 않았다. 세상 모든 곳을 돌아도 단 하나 밖에 없는, 오롯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눈앞의 그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간지러운 속은 어느새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녀는 손을 올려 그의 심장이 있는 곳을 더듬었다. 살갗 너머로 전해지는 은은한 생명의 고동이 느껴지자 그녀는 자신의 박동을 그의 고동 위에 겹쳤다. 칸은 어느새 자신의 얼굴이 따끈따끈한 걸 느꼈다. 필경 열이 나는 만큼 그녀의 얼굴은 불콰해졌을 터였기에, 그녀는 자신의 안색을 들키기 싫어 리마토르에게 더욱 세게 안겼다. 그녀의 의중을 알아챘는지 리마토르도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합일, 혼화, 결합. 호드는 그 어떤 말로 이 상황을 표현하면 좋을지 감을 잡지 못했다. 자신들의 대장과 교수가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은 흡사 자석이 달라붙다 못해 녹아내려 하나가 되는 광경 같았다. 둘이지만 하나고, 하나지만 둘인 경계의 조각. 노을과 밤하늘이 어디서 만나는지 구분하기 힘든 모양새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칸은 허리를 일으켜 그를 내려다보았다. 온통 불콰한 그의 얼굴과 그의 눈동자에 비친 발그레한 자신. 서로의 데칼코마니 같은 감정은 똑같았기에 그녀는 그에게 한 가지 사실을 더 확인받고 싶었다. 아까부터 느껴진,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존재의 무게를.

 

“키스해줘.”

 

“...보고 있는데요.”

 

“상관없어.”

 

주변 시선은 중요치 않았다. 얼굴이 가까워지고 입술이 맞닿자 칸도, 리마토르도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데 생경한 감각이었고, 처음 보는 것 같지만 아주 낯익은 감각이었다. 서로의 체온이 나누어지는 순간, 둘은 동시에 눈을 떴다. 누구 하나 신호를 준 것도 아닌데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자 둘은 동시에 웃었다.

 

“사랑해, 리마토르.”

 

“저도 사랑해요, 칸.”

 

주변에 누가 있는지 아예 신경도 안 쓰고 사랑의 감정을 쓰고 있는 둘의 모습에 호드는 슬쩍 자리를 떴다. 탈론 페더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이 특별한 멜로 드라마를 조금만 더 찍자고 건의했지만 퀵 카멜이 지금은 둘만 있게 두자며 그녀를 끌고 나왔다. 결혼 이후 더 뜨거워진 칸과 리마토르의 모습을 보며 워울프는 술을 한 잔 따랐다.

 

“참, 사랑이라는 게 있나 봐.”

 

“참사랑이지.”

 

스카라비아는 워울프의 잔을 슬쩍 뺏어 마시며 대꾸했다. 그걸 두고 자신이 마실 술을 뺐지 말라며 한 소리 하는 워울프와 그거 보급한 게 자신이라며 대거리하는 스카라비아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하자 퀵 카멜과 탈론 페더가 둘을 말렸다. 그 와중에 하이에나와 샐러맨더는 누가 이길까를 두고 베팅을 시작하자 호드는 늘 그랬듯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들이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간 사이, 방 안에서는 뜨거운 신혼 생활이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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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장장 93편 끝에 1부가 끝났네. 결혼식보다 뒤풀이 장면에 더 치중한 느낌이 드는 게 아쉽게 남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 안에 끝을 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서네. 나중에 시간이 되면 결혼식 장면은 퇴고를 거듭해 더 퀄리티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할게.



그럼 잠시 작품 셔터 내리고 훈련소에서 시간 보내고 올게. 자대 배치 받는다고 해서 글 쓸 시간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휴가 때 짬짬히 써올 수 있도록 할게.




부족한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모든 사람에게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올린다. 다들 원하는 바가 다 이루어지는 하루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