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화: https://arca.live/b/lastorigin/69666110


아니, 애교라기 보단 애원에 가까웠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장화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장화는 두 손을 모아 그에게 싹싹 빌었다. 두 눈은 풀려있었고 입은 침을 흘린 채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트라우마라고 보기엔 상태가 심각했다. 어찌할지 몰라하던 다니엘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무릎을 꿇은 채 빌던 장화에게 말했다. 자신은 마리아 리오보로스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녀는 다니엘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아님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는지 발버둥을 쳤다.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리고 다니엘을 경멸하는 이유를, 지금 그녀는 여실히 드러냈다.




"여제님... 잘못했어요... 아아... 살려주세요... 히윽... 헤으..."

"..."

"아악! 나... 난 몰라! 놔... 놓으... 히히... 헤헤..."

"... 장화씨."

"죽고 싶지 않아요... 버리지 말아주세요. 하란 대로 했어요... 제발... 제발..."

"..."

"씨발... 나도, 나도 홍련처럼 행복해지고 싶다고... 나도...아냐... 잘못했어요... 히히... 헤헤..."



미친 사람과 다름 없는 장화의 모습에 다니엘은 고민하다 결국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초점없고 허공을 향하던 그녀의 눈동자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결국 그녀도 평범한 바이오로이드였다. 반쯤 흐트러진 잠옷 안으론 학대의 흔적들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렇게 몇 번이고 정신이 나간 소리를 하던 장화는 지쳤다는 듯 풀썩 그의 어깨에 안겨 기절했다.



"..."



많이 힘들었겠구나. 다니엘은 왼쪽 가슴이 쿡쿡 찔려왔다. 애써 자신을 볼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학대의 기억이, 버려진 기억들이 떠올랐겠구나. 자신도 세뇌 시키며 도구취급 했던 그녀였는데 하물며 취급이 훨씬 낮았던 바이오로이드라면...



"장화씨..."



그때였다. 노크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렸다. 누군가 싶었는데 강아지 수면잠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쯧, 혀를 차면서도 다니엘의 품에 안겨 쥐죽은 듯 기절한 장화를 보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장화가 깜빡하고 약을 먹지 않았는데 이렇게 발작했군요."

"약?"

"닥터한테서 받은 신경 안정제 말입니다. 겉으론 멀쩡하게 보여도 정신의 병은 오래가는 법이니까요."



바르그가 장화를 들쳐 업었다. 다니엘은 머뭇거리다 결국 그녀에게서 장화를 다시 데려와 들쳐 업곤 자신의 이부자리에 뉘였다. 예상치 못한 다니엘의 행동에 바르그가 당황스러워했지만 그는 자켓을 챙겨 입곤 바르그에게 말했다.



"잠깐 장화씨는 여기 놔두고. 바르그씨. 저랑 얘기 좀 해도 될까요?"

"에? 아... 예. 알겠습니다. 도련님."

"... 하하. 괜히 자려던 사람 피곤하게 하는 건 아닌가보네요."

"아닙니다. 잠은 깼습니다."



귀여운 잠옷을 입었으면서도 여전히 풀어짐 없이 군기를 유지하는 바르그의 언벨런스함에 다니엘은 피식 웃음을 내비쳤다. 장화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그들은 방을 나와 어두운 오르카 호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새파란 달빛이 이불처럼 깔린 바다는 고요한 풍경 같았다. 온 세상이 잠든듯 조용한 가운데 그와 그녀의 발소리만 복도를 조용히 울렸다.



"천아씨랑 장화씨는 이렇게 얘기 해봤어도 바르그씨랑 이렇게 대화 해보는 건 처음이네요."

"일찍 찾아뵐 걸 그랬습니다. 도련님."

"아녜요. 불편하셨을 수도 있죠.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이야기 하니까 좀 편하기도 하네요."

"예?"

"바르그씨가 잠옷 입고 제 앞에 나타나니까. 뭐랄까... 동생 같기도 하네요?"



순간, 바르그의 두 검정 귀가 바짝 섰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급히 오느라... 옷이라도 갖춰 입을 걸 그랬."

"괜찮아요. 그런 바르그씨가 훨씬 더 어울려요."

"..."

"사령관한테 들었어요. 바르그씨, 어머니 목소리를 녹음기에 듣고 다닐 정도로 따르셨다고요."



바르그는 침묵했다. 물론 장화나 천아에겐 자신을 도구처럼 부려먹은 마귀할멈이었겠지만 바르그는 마리아의 배신자를 처형했던 바이오로이드였다. 다시 말해 마리아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였다. 다니엘은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자신을 삼안 기업의 바이오로이드 실험체로 보내버렸으면서, 정작 자신이 창조한 바이오로이드는 딸처럼 아꼈다는 사실이.



"바르그씨는 우리 어머니를... 정말 어머니처럼 따랐다고 들었어요."

"... 바이오로이드 주제에 주제 넘은 소리일 수도 있지만. 여제님은 저를 딸처럼 아끼셨습니다."

"알아요. 그리고 저도 봤는 걸요. 어머니의 수족이나 다름 없으셨잖아요. 바르그씨는."



다니엘은 걸음을 멈춘 뒤 바르그를 지긋이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그럼 바르그씨랑 저는... 남매나 다름 없겠네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바르그의 귀가 다시금 쫑긋 거렸다. 바르그는 눈이 커지더니 이내 평소의 진지한 목소리와 다르게 영락 없는 여자 아이와 다름 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답했다.




"아... 아니에요 도... 도련님! 저는 바이오로이드일 뿐인데. 어째서 제가 도련님과 같은 위치겠습니까?"

"어? 바르그씨 방금 목소리가 훨씬 좋은데요?"

"에... 예?"

"전 바르그씨가 원래 엄하고 진지한 사람인줄 알았어요.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부담스러웠는데."

"추... 추태를 부려 죄송합니다. 도련님..."



황급히 바르그가 고개를 숙였지만 다니엘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대신 그는 몸을 살짝 낮춰 바르그의 두 어깨를 잡았다. 다니엘도 작은 체구였지만 얼추 그녀가 고개를 들어 쳐다볼만한 키였다. 하지만 그렇게 눈높이를 맞췄다는 것은 그녀를 동등하게 보겠다는 것.



"우리 어쩌면 더 빠르게 친해질 수 있겠는데요?"

"... 도련님."

"아. 그럼 제가 말을 놔야 하나요?"

"차, 찬물도 위 아래가 이... 있는 법입니다. 도련님께서 말을 놓으신다 한들 제가 어찌 도련님께 말을 놓겠습니까!"



바르그가 두 손가락 끝을 서로 찌르며 말을 더듬었다. 애늙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천아처럼 평범한 여자였구나. 달빛 아래, 얼굴이 빨개진 채로 귀를 연신 쫑긋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다니엘이 감쌌다.



"바르그."

"예... 예? 에?"



물론 남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목소리는 확연히 달랐지만. 바르그의 두 귀에 울린 따스한 음성은 옛날 자신을 어여삐 여기던 여제를 떠올리게 했다. 단지 그가 마지막 남은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유산이라 생각해 느껴진 것일 수도 있었지만... 쉽사리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반면 다니엘도 조금 긴장이 되었다. 혹시나 바르그가 싫어할까 봐. 하지만 싫어하긴 커녕 부끄러워하는 모습으로 수면잠옷의 옷깃을 꼭 잡을 뿐이었다. 두 노란색 눈동자가 달빛에 촉촉이 젖어들었다. 어느새 그녀는 '처형자'라는 무시하무시한 별명이 무색한, 소녀의 아우라를 뽐내고 있었다.



"여기 닥터도 저한테 오빠라고 그러던데... 나한테도 오빠라 한 번 해볼래?"

"다...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여제님을 개와 말의 수고로움을 다해 모셨던 몸입니다! 다, 당연히 도련님 또한 제 몸을 바쳐 모실 분... 모실... 흐으..."

"그래? 그럼 바르그는 나를 어머니랑 똑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는 거야?"



다니엘의 질문에 바르그는 두 손을 들어 연신 흔들며 거부했다. 물론 자신에게 있어 마리아는 어머니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다니엘을 어머니와 비교할 순 없었다. 다니엘은 장화처럼 학대하진 않았지만 방치하듯 키웠고 죽어서도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개로 키우고자 했다. 물론 복수의 대상인 앙헬도 사라지고 이제는 장화도, 다니엘도 목적을 잃어버린 유기견 신세가 되었다.


마치 목놓아 무덤에서 울던 자신처럼. 그리고 마리아가 남긴 건 여전히 신경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발작하던 장화와 입이 거칠어진 천아 뿐이었다. 정규 부대로 출격하기엔 상당히 나사가 빠진 부대. 지금 사령관도 장화의 정신 상태를 고려하여 정규 임무를 배정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서 기인했다.




"...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도련님?"



겨우 마음을 다스린 바르그가 다시 진중한 어조로 질문했다.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르그는 털어놓듯 말했다.



"저는 여제님이 제가 모신 인간의 전부였습니다. 불쾌하실 지도 모르지만... 제 기억에선 여제님... 마리아님이 크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

"... 여제님이 착한 사람은 아니었단 건 인정하고 있습니다. 천아가 빈정거려도 아무런 말 안 하는 이유도... 장화가 욕을 해도 꾹 참는 이유는..."



바르그는 다니엘을 올려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악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정말 어머니셨던 다니엘 도련님께도... 여제님은 어머니 역할을 해주시지 않으셨잖습니까."



다니엘은 말없이 픽 웃었다.



"... 재밌는 게 뭔지 알아?"

"무엇입니까?"

"난 내 진짜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이터니티 얼굴이 생각 나."

"..."

"웃기지 않아? 인간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바이오로이드랑. 바이오로이드를 어머니로 생각하는 인간."

"..."

"하지만 그래서, 나는 더 너희들한테 정감이 가나 봐. 이해하려 노력하려 하기도 하고."

"도련님..."

"... 물론 내가 어머니처럼 냉철한 지휘관이 될 순 없어도. 너희들에게 부족했던 걸 내가 줄 수 있는 지휘관이 되고 싶어."



지금 침대에서 잠든 장화를 다니엘은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천아한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지휘관이. 장화한텐 편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지휘관이. 그리고..."

"..."

"바르그한테는 좋은 오빠가 될 수 있는 지휘관이 되고 싶어."

"... 도련님."

"아... 하하... 그럼 이터니티한텐 무슨 지휘관이 되야 할까? 자랑스러운 아들이려나..."



어딘가 사령관을 닮은 사람이었다. 바르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없이 냉정하고 잔인해야 할 암살 부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신을 도구 취급 했다던 장화의 항변에도 자신만만하게 바르그는 대답할 수 있었다. 원래 인간의 도구로 태어난 바이오로이드인데 뭐가 불만이냐고.


하지만.



"힘든 목표를 가지셨군요. 도련님."

"응?"

"제가 도련님의 이터니티하곤 지내본 적도 없고... 이곳에 있던 이터니티하고도 많이 말을 섞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아는... 다루기 힘든 칼이고. 장화는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는 칼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쁜 칼로 하자."



다니엘의 뜬금없는 말에 바르그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찬찬히 보던 다니엘은 그녀의 정수리에 손을 대었다. 늘 칭찬 받을 때마다 쓱쓱 그녀를 쓰담았던 마리아의 모습이 스치다 사라졌다. 하지만 모습과 형상이 아니었다. 따스한


다니엘의 온기였다.



"며칠 전에 천아도 계속 칼 이야기 하더라... 근데 난 요리사도 아니고 칼 쓴 적은 한 번도 없는데."

"..."

"칼 말고 내가 말한 거로 하자. 친구랑 가족 말이야."

"... 장화가 들으면 대차게 욕할 말이겠군요."

"욕 좀 먹지 뭐. 욕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고 보니 중국 장수 중에 도련님처럼 가족놀이 하던 놈 하나가 생각나는군요. 유비라고... 같이 태어난 놈도 아닌 장비와 관우를 아껴서 한 방에서 잘 정도로 좋아했던..."

"아 난 중국 역사는 잘 몰라서... 좋은 장수였어?"



바르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려 했다. 자신의 아우를 죽였다는 이유로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할 손권과 무리하게 전쟁을 해 자신 나라의 국력을 소모시킨 멍청한 장수. 하지만 그녀는 부정하는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좋은 장수였습니다."



바르그는 미소로 화답했다. 처음과 다르게 다니엘을 보는 바르그의 눈은 풀어져 있었다. 나란히 서 있는 바르그와 다니엘의 어깨에  달빛이 내려앉았다. 그 모습은 남매같기도 했으며, 동시에 퍽 어울리는 연인의 뒷모습 같기도 했다.


여담이긴 하지만 아침에 일어난 장화는 자신이 잠든 자리가 다니엘의 침대였다는 것을 알곤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고 했다. 기절하지만 않았더라면 다니엘을 덮치(?)는 그림이었다는 것을 바르그는 알고 있었지만 따로 답하진 않았다.


그리고 앵거 오브 호드의 한 몰카범은 혹시나 싶어 카메라를 설치한 다니엘의 숙소에서 벌어진 일에 상당히 아쉬(?)워 했다는 여담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터니티는 다니엘의 침실에 설치된 누군가의 카메라를 제거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



며칠 뒤 지휘관 회의. 사령관을 가운데 자리로 쟁쟁한 바이오로이드 지휘관들이 자리해 앉았다. 스틸라인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우는 지휘관 '불굴의 마리', 전략의 대가라 불리우는 설원의 암사자 '철혈의 레오나'. 무패의 전설이라 불리우는 노련한 참모총장 '무적의 용', 홀로 전장에서 무쌍을 찍은 일당 백의 지휘관 '신속의 칸', 그리고 전략 핵병기를 다루는 지휘관 '멸망의 메이'와 몽구스팀의 지휘관 '홍련'과 자신이 만났던 호방한 성격의 지휘관 '로열 아스널'까지.


사령관과 함께 신화를 써 놓은 쟁쟁한 바이오로이드들이 자리잡았기에 다니엘은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그저 인간이란 이유로 앉아있는 깍두기 신세 뿐이었다. 명목 상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지휘관' 자격으로 참석을 했지만 어쩐지 안 어울리는 자리 같았다.



"달링. 두 번째 인간은 왜 지휘관 회의에?"

"당연히 다니엘씨도 한 부대의 지휘관이니까 내가 참석하라 했지."

"... 뭐 그렇긴 하지만."

"레오나. 너무 무능한 사람 취급하지 말게. 다니엘씨도 제법 사령관다운 기품이 있더군. 이 아스널이 보증하지."

"밤마다 사령관실 침입 하다 쫓겨난 지휘관의 보증이라니... 좀 못미더운데?"



지휘관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선에 말 그대로 몸이 발가 벗겨진 것 같았다. 특히나 자신을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마리까지.



"음... 다니엘씨는... 흐음... 조금 나이가 어렸다면..."

"... 마리. 딱 자네가 좋아할 남자 아닌가?"

"무, 무슨 소리인가! 허, 헛소리하지 마라!"

"새 인간? 뭔가 엄청 맹해보이는데?"



그렇게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의 품평이 들렸다. 사령관은 괜스레 들리는 소리에 헛기침을 하곤 입을 열었다.



"자 조용하고. 내가 다니엘씨를 부른 건, 다름 아니라 아무래도 벌써부터 펙스 사보타주 작전에 투입하기엔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위험하다 싶어서. 일단은 조금 쉬운 임무를 다니엘씨에게 맡길까 해서 불렀어."

"하긴. 오메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대비를 하고 있겠지."

"여길 봐볼래? 며칠 전에 오르카 호로 온 구조 신호야. 수신한 지역은 런던이고."

"런던?"



사령관은 패널을 클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엔 영국 지도의 홀로그램이 떴다. 사령관은 런던을 확대하곤 설명을 더했다. 한 바이오로이드가 구조를 요청했다. 펙스의 농간은 아니었고 당장 구조대를 편성하여 그 무리를 구조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소규모로 침투를 해야 한다는 점이야. 프랑스랑 영국을 잇는 해상터널은 이미 델타의 손에 있는데 대규모 부대를 투입하기엔 부담이 좀 있어."

"그러면 제로와 카엔을 투입하는 건 어때?"

"문제는... 영국에 있는 철충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파악이 안 된다는 거야. 은밀하게 기동이 가능하면서도 대규모 전투도 가능한 인원이 필요해."

"그래서 다니엘님을 부르신 겁니까? 하지만 그래도 인간 분이신데... 조금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각하?"



레오나와 마리의 질문에 사령관은 고민에 빠졌다. 철충이나 펙스의 소굴에 보내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위험 부담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온실 속의 화초처럼 다니엘을 놔둘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경험을 쌓아야 했고 동시에 오르카의 지휘관들에게 믿음직한 이미지를 씌워야 했다.



"투입할 부대가 혹시... 엠프레시스 하운드인 것이오?"

"맞아 용. 딱 맞는 역할이지 않아? 은밀하게 작전을 수행하면서도 철충과 어느 정도 교전이 가능한 부대."

"좋은 선택이긴 하지만... 본관이 듣기론 아직 다니엘님은 장화님을 통제하기도 힘들다 들었는데..."

"물론 그게 걱정이지만... 어쩔 순 없지. 최대한... 장화를 설득해서 협조를 구해 볼 생각이야."



하지만 용은 불안한 눈치로 다니엘을 지켜보았다. 사령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뒤죽박죽 시한폭탄 같은 부대를 보내다니.



"걱정 마. 마리 밑에서 배웠던 레프리콘도 같이 갈 거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대로 후발대도 같이 보낼 생각이야."

"사령관의 뜻이 그러하다면... 알겠소. 혹시 모르니 전단을 영불해협 근처로 이동시키기로 하지."

"그래 고마워. 용. 그리고... 다니엘씨?"



한참이나 토론을 하다 갑작스레 부른 사령관의 말에 다니엘은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사령관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금 부담스러울 거란 건 알아요... 위험 부담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혹시 어려우시다면..."

"아닙니다. 사령관님. 해보겠습니다."



다니엘은 긴장했다. 하지만 애써 자신있는 태도로 대답했다. 어쨌든 자신 또한 근 1달 정도 레프리콘에게서 전술 교육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쨌든 자신이 실전 경험을 쌓아야 오르카 호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자신을 인정해줄 것이고 무엇보다, 그간 사분오열된 엠프레시스 하운드 대원들을 단합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틀 후, 칼레 항구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처음으로 받는 임무에 다니엘의 심장은 긴장감으로 쿵쿵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안 가."

"이미 출격명령 떨어진 마당에 왜 꼬장이야?"

"저 멍청한 병신의 명령이나 들으라고 오르카 호에 온 거 아니라고!"



그리고 엠프레시스 하운드 숙소에선 당연히 장화의 노기 여린 소리가 들렸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역시나 쉽게 풀리진 않았다. 



"비융신~ 도련님 침대에서 쳐 잤으서 어리광은 다 부렸던 주제에 싫은 척 하기는?"

"... 이... 이! 씨발 안 닥쳐!"

"야. 탈론허브 신작 표지에 너 뜬 거 모르냐? 예고편만 편집해서 떴는데도 조회수 대단하던데?"

"씨... 씨발 닥쳐!"

"제목도 말해줄까? 탈론페더가 기가막히게 또."

"아가리 꿰매버리기 전에 입 닥쳐라?"



레프리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작 말려야 할 바르그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고 장화는 늘 그랬듯 방방 뛰었다. 천아는 늘 그랬듯 그런 장화를 놀리고 있었고 이터니티는...



"나... 나도 못 자본 주인님 침대인데..."



요 며칠 전부터 충격을 먹고 저기압 상태였다. 그야말로 개판 오분전 부대. 앵거 오브 호드도 여기보단 좀 정돈된 분위기가 아닐까 레프리콘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다니엘은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장화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장화씨. 이번만 저 좀 도와주세요."

"꺼져. 가려면 저 똥개랑 뱀년만 데리고 가. 아, 너랑 쳐 묻히고 싶은 저 음침한 년도 같이 데리고 가고. 그렇게 너랑 관 안에서 쳐 자고 싶다는데 가서 사이 좋게 뒤져버려."

"주인님의 과분한 호의를 받은 주제에 입이 험하시군요 장화양."



다니엘의 침대에 잔 이후로 이터니티가 장화를 보는 눈빛에 묘한 살기가 느껴진 듯했다. 장화는 비릿하게 웃으며 와이어를 그녀에게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터니티도 차가운 무표정으로 관을 번쩍 들었다.



"아~ 둘이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



짜증이 났는지 천아가 짜증을 내뱉었던 그 순간, 조용히 팔짱을 끼던 바르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장화. 도련님께서 어리광을 받아주시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자꾸 그렇게 깽판을 친다면 나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이 똥개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냐?"

"도련님께서 그날 밤 널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너도 한 번쯤 도련님의 부탁을 들어주는."

"시끄러워 씨발! 내가 언제 안겼다고...!"

"뭣하면 그 동영상 사이트를 클릭해라. 네 행각이 고스란히..."



바르그가 헛기침을 하자 장화는 눈을 부라렸다. 다니엘은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자꾸만 '동영상'과 '탈론허브'라는 것이 귀에 들어왔다. 뭔가 싶어 레프리콘에게 물었다.



"그... 레프리콘씨? 동영상? 탈론... 허브? 그게 뭐예요?"



분명 세부작전 계획을 브리핑하러 온 자리인데 어째써 탈론페더가 멋대로 만든 야동 사이트 이야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인가. 사고만 치던 브라우니와 짱박힌 말년 브라우니를 찾아다니던 그때가 레프리콘은 문득 그리워졌다.


5화 쓰고 뜬금없이 그러는 것 같지만 솔직히 이 글이 재밌는지 난 잘 모르겟음. 그냥 챈문학 읽어보다 평소 관심 있던 엠프레시스 하운드 뽕 차서 써봤음.


엠프레시스 하운드 + 이터니티 정도라 다른 섹돌은 좀 등장하기 힘들어. 힙스터 취향인데 읽어준 독자들 고마워. 다음 화부턴 안개나라 이벤트로 넘어 갈 생각이야.



비주류지만 우리 엠하 많이 애호해줘...


다음 화: https://arca.live/b/lastorigin/7005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