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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건 무리다.”



로버트가 신랄한 말투로 대답했다.



“사단급 병력의 집중포화도 견디는 장갑에 꼬리를 박아넣고 성난 타이런트의 몸에 해킹이 끝날 때까지 버티겠다고? 차라리 타이런트에게 산채로 잡아먹혀서 자폭하는게 더 성공률이 높을거다.”



로버트의 말은 합당했다. 하지만 나라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미쳤다고 이걸 혼자서 하겠어?”



오르카 호는 잠수고 뭐고 할 수 없는 상태지만 그 안의 병력들은 무사하다. 유일한 변수인 장화와 천아는 로버트가 있던 방 구석에 있으니 추가적인 사보타지도 없을 것이다.


다른건 몰라도 군대의 지휘만큼은 훌룡하다. 사태가 끔찍하게 돌아가고는 있지만 그라면 대충 전투를 준비해두고 있겠지.



“사령관실로 가보자고.”


지금 상황을 알려면, 그리고 내 상황을 사령관에게 알리려면 어차피 그를 만나야한다. 나는 앞발로 LRL을 안아들고선 곧장 사령관실을 향해 내달렸다. 




***




간신히 해안가에 정박한 오르카호에서 병력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상대해야 하는 적이 적인지라 대부분의 병사들은 대중장갑 병기를 들고 있었다.


캐노니어와 AGS들 그리고 호드와 스틸라인까지. 네스트급만 아니라면 철충의 연결체조차 간단히 사냥할 수 있을 정도의 군대가 모였다.


그럼에도 사령관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용, 도착까지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


[앞으로 1시간정도 더 걸릴것 같소. 항공모함에서 기동부대를 보낼 수는 있는 거리에 도달했으니 필요하다면 출격시키겠소.]


“... 알바트로스, 슬레이프니르 그리고 고고도 폭격이 가능한 둠 브링어 대원들 전부 보내줘.”


[알겠소.]



전력이 한명도 아까운 상황이기에 부르기는 했다만 알바트로스를 제외하고는 큰 활약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슬레이프니르의 화력으로는 타이런트의 장갑을 뜷을 수 없고 둠 브링어의 폭격은 어지간해서는 전부 요격당할 것이다.



[알바트로스라면 타이런트를 상대로도 밀리지는 않을 것이오. 아군도 보호해 줄 수 있을테고.]


“..그래. 이길 수 있겠지.”



알바트로스를 다른 대원들이 지원해준다면 타이런트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 피해도 분명 하지만 이건 철충의 감염으로 인한 성능의 비약적 변화를 제외했을 때의 가정이다.



“사단급 규모의 AGS를 일순에 파괴했다라…”



철충에 감염된 타이런트, 칸이 부르기를 몬스터는 말그대로 괴물이었다. 칸 자신도 마키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전멸했을 것이라는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때처럼 타이런트의 눈을 속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오르카로 귀환한 마키나는 그대로 쓰러져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오르카의 타이런트와 마찬가지로 모진 고문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 상황이 급하다해서 억지로 깨울 수 있는 상태도 아니라는 것이다.



“리리스, 진정제 좀..”


“주인님, 이미 권장 복용량을 초과했어요. 더는 안돼요.”



사령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곧 다가올 절망을 두려워하면서도 쓰러지지 않으려 애써 버티는 그의 모습을 보는 리리스의 마음도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진정제를 줄 수는 없었다. 더 투약하면 정말 치사량이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리리스가 진정제를 멀리 치워버리려는 순간,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주인님, 온다고 한 사람이 있었나요?”


“아니 부른 사람은 없어.”



리리스의 시선이 사령관의 옆으로 향했다. 참모 아르망도 전달받은게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 제 뒤로 오세요.”



방금까지의 주눅 든 모습은 어디갔는지 리리스는 곧바로 사자와도 같은 표정을 지으며 대응했다. 권총을 뽑아든 리리스는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 경직된 분위기를 무시하듯 문 너머에서는 한없이 평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초에 기계음이었기에 감정이 실릴 수가 없었지만



“사령관, 들려? 나야, 타이런트.”


“…?”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자신을 타이런트라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바이오로이드의 몸에 들어간 신세였다. 그런 그가 기계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분명 의심의 여지기 있었다. 



“오늘의 암구호를 말하세요. 말하지 못한다면 곧장 사격하겠습니다.”


“에?”



리리스의 대응은 평범한 오르카 대원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면 분명 적절했다. 오르카 대원이라면 비상 암구호를 모를리가 없었으니까. 다만 이번 상대는 납치되었다가 방금 돌아온 타이런트였고 그런 그가 암구호를 알 수 있을리는 없었다.



“어…주인이시여, 암구호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신지요?”


“크흠… 그런 것은 금단의 지식이기 때문에…”



LRL도 사령관실 암구호는 전혀 모른다는 눈치였다. 리리스는 권총을 더 강하게 부여잡았다. 이미 들려온 목소리를 통해 적의 위치는 눈치챘다. 그녀의 로지 아줄은 문을 뜷고 건너편에 있는 상대의 머리를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리리스가 마침내 총구를 문을 향해 돌리려는 그 순간, 사령관의 옆에서 침묵하고 있던 아르망이 나섰다.



“잠시 제가 말을 걸어봐도 될까요?”



리리스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도 총구는 문을 향하고 있었다.

 

가장 안전한 위치, 리리스의 옆에 선 아르망이 말문을 열었다.



“LRL양, 드래곤 슬레이어 7권의 소제목이 무엇이었죠?”


“응? 아, 쿠후후…  ‘신을 삼킨 뱀은 신세계의 꿈을 꾸는가’ 이니라!”


“그러면 6권 중간 보스의 애완동물의 이름은 무엇이었나요?”


“키르포르예프스키 13세.”


“2권 뒷표지에 적힌 문장은 무엇이었나요?”


“삶에 굶주려 죽음을 먹어치운다. 그것은 거인들의 시대에서 내려져와 용들에게 전해진 모독의 방식이었다.”



아르망의 질문세례는 조금 더 이어졌지만 LRL의 답변이 끊기는 일은 전혀 없었다.



“라고 하네요.”



아르망이 눈웃음을 지으며 사령관에게 말을 걸었다. 문 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오르카의 LRL이다. 목소리도 주눅들지 않았으니 협박 당하는 상황도 아닐것이다. 그제서야 사령관은 표정을 풀었다.



“리리스 열어줘”



리리스가 문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한쪽 손에는 총이 들려있었지만 그것이 발사되는 일은 없었다.


LRL을 안고 있는 이상한 AGS의 모습에 그리고 붕대를 두른 LRL의 모습에 방안에 있던 3명의 사람들이 모두 흠칫했을 뿐이었다.



“어… 사정이 많아보이네.”


“지금은 눈 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하자고. LRL이 다쳤다. 응급처치를 한다고는 했지만.. 난 의사가 아니니까.”


”리리스, LRL의 상태를 봐줘.”


“알겠어요.”



리리스가 랩터의 팔에 안겨있던 LRL을 받아들었다. 계속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LRL이 멀어지자 랩터와 사령관 두 남자의 시선은 서로를 향했다.



“사령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은 눈 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하자.”



내가 사람이었다는것을 왜 파해쳤는지,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할 생각인지, 묻고 싶은게 많았다.


사령관도 어쩌다 몸이 변했는지, LRL과는 왜 만나게 되었는지 등등 질문거리는 산더미 같았으나, 당장 괴물이 다가오는 순간에 그런것은 전부 사소한 것이었다.



“너의 원래 몸.. 오르카에서는 몬스터라고 호칭하기로 했어. 그 철충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있어. 바다에서는 펙스의 함대가 오고있고. 용의 함대가 오고는 있지만 적들이 더 빠를거야.”


“우리 전력은?”


“용의 함대와 스카이나이츠를 제외한 전부”



이 정도면 가능성은 있다. 



“사령관, 나한테 작전이 있어.”



그 말에 사령관의 눈이 조금 커졌다. 



“물론, 정확한건 머리 잘 굴리는 사람들이 맡아줘야 겠지만.”



랩터가 아르망과 사령관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





검게 물든 타이런트의 시선에 오르카가 들어왔다. 그 앞에 서있는 것은 수많은 스틸라인의 병력들과 AGS들. 양익에는 호드의 대원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곳곳에 캐노니어 포병 전력들이 매복해 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냥감]



몬스터의 눈에 그것은 적이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가지고 놀만한 장난감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몬스터는 플라스마 포도 미사일도 사용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상대할 것도 없이 달려들어 날뛰다 보면 전부 죽어있을게 뻔했다.


폭군은 몸을 대놓고 드러내며 천천히 적을 향해 나가갔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공포를 느끼라는 악질적인 생각이었다.


그 오만함이 몬스터의 첫번째 실수였다.



쾅!! 쾅!!!



둠브링어의 폭탄과 미사일이 몬스터의 몸을 수차례 타격했다. 불쾌한 통증이 몸을 달리자 폭군은 분노에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



몬스터는 포효하며 미사일을 마구 발사했다. 둠브링어의 폭격과 몬스터의 미사일이 공중에서 충돌하자 아주 잠시 교착상태가 만들어졌다.


그 짧은 순간 아주 작은 존재가 몬스터를 향해 돌진했다.


고작 한명의 바이오로이드는 폭격을 요격하는데 정신이 팔린 몬스터가 눈치채기에는 더무 작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 한명의 바이오로이드가 할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몬스터는 차라리 폭격을 맞아가며 그녀를 제거하려 들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철충이 진화시킨 수많은 장비 중에서 예측에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철컥… 쾅!!!


“..! 크와아아악!!!”



몬스터의 무릎에 무기를 꽂아넣은 칸이 곧바로 무기를 격발했다. 장갑이 아무리 단단해도 관절 부분에는 미세한 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곳을 정확히 노린 공격에 몬스터의 한쪽 다리가 크게 흔들렸다.



“역시 한방으로는 끝나지 않는군..!!”


쾅!! 쾅!! 쾅!! 콰과광!!!


“크아아아아아!!!”



몬스터가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칸은 그 이명에 어울리는 속공을 퍼부었다. 무기가 열기로 과열되어 고장날 때까지 쏟아부은 화력은 기어코 폭군의 다리를 꺽었다.


한쪽 다리만으로는 수백톤의 몸을 지탱할 수 없다. 그 거대한 몸은 무게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와 함께 발사되던 미사일들의 각도가 틀어졌고 하늘에서 떨어지던 화력이 폭군을 휘감았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쿠와아아아!!!!”



화력에 노출된 시간은 고작 2초였으나 둠브링어의 화력은 그것만으로 몬스터의 몸을 너덜너덜하게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쓰러질 정도로 폭군은 연약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자가수복을 하는건가?”



몇몇 다른 철충개체처럼 몬스터는 몸을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했다. 손상부위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며 용접하듯 상처를 수복했고 크게 손상된 다리조차 빠르게 복구되고 있었다.



[칸, 당황하지 말고 다음 작전으로 바로 넘어가.]


“알겠다, 사령관.”



그 광경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칸은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두번째 작전을 실행했다.



“이쪽이다!”


푸슝! 타다다다닥–!!



타이런트를 향해 신호탄 총을 발사한 칸은 곧바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악!!”



다리를 분지른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자신에게 도발하고 도망가는 꼴이라니. 철충의 감염으로도 덮지못한 타이런트의 투쟁심은 그 모습을 참을 정도로 유약하지 않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앞의 상대를 죽이고 말겠다. 그 생각으로 몬스터는 온몸의 무기를 가동시켰다. 요격하느라 바닥난 미사일을 제외하면 남은건 플라스마 포 뿐이었다.



“?!... 크르르르르…”

 


브레스가 어째서인지 충전이 되지 않았다. 알파와 알바트로스가 이미 화기를 대부분 해킹한 상태였지만 그 사실을 알리가 없는 몬스터는 그저 눈 앞의 존재를 불태워 죽이는게 아니라 물어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쿵! 쿵! 쿵! 쿵!


“크와아아아아아악-!!”


“생애 최악의 질주로군.”



브레스도 미사일도 사용할 수 없다해도 놈은 여전히 위험했다. 거대한 땅울림이 자신을 뒤쫒기 시작하자 칸은 속으로 한탄했다. 함께 싸울 때는 든든했던 자가 적이 되자 백전노장이 된 칸의 마음에서도 미약한 공포가 피어올랐다.


그것이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그녀의 강함이었다. 칸의 질주는 평소처럼 빠르고 우아했으며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1초가 1시간 같은 질주 끝에 칸은 목표로 삼았던 지점, 단 하나의 입구를 제외하면 사방이 높이 50m는 될 것 같은 바위산으로 막혀있는 협곡에 도착했다.



“크르르르르…”



이 곳에 퇴로는 없다.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된 칸을 비웃듯 몬스터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몬스터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칸을 협곡에서 빼낼 방법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안녕! 그리고 잘있어!”



급하강하며 순식간에 칸을 낚아채고는 다시 급상승한 슬레이프니르는 순식간에 하늘의 점이 되어 사라졌다.



“...?! 크아아아아아아!!!!!”



코앞에서 사냥감을 놓쳤다는 분노에 몬스터는 땅을 마구 짓밟았다. 그것만으로 땅이 터져올라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이성을 잃고 날뛰는 사이에도, 오르카의 작전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메이 가장 쌘것으로 한방 날려버려.]


[좋아. 멸망이네.]



협곡 속으로 마치 농구선수가 골을 넣듯이 메이의 소형 핵이 쏙 들어갔다. 알파의 정확한 각도 계산은 몬스터에게 핵미사일이 정통으로 내려꽂히게 만들었다.



콰과과과과광!!!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며 강력한 열풍이 펴져나가다가 - 협곡에 막혀 다시 되돌아가며 화력은 몇번이고 협곡 내부를 달궜다. 마치 대멸종 순간을 재현한 것과 같은 광경 속에서 부활한 지구의 폭군은 울부짖으며 쓰러져갔다.




***



핵폭탄의 범위는 도시 하나를 파괴할 수 있을정도로 넓다. 그렇다고 해서 그 넓은 범위에 똑같은 파괴력이 적용되는건 아니다. 물체를 증발시키는 건 폭심지에서나 가능하다. 반대로 말하면 폭심지에서는 물체를 증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폭심지에서조차 타이런트는 살아있었다. 한쪽 다리는 완전히 날아갔고 머리는 반쪽이 사라졌으며 장갑은 전부 녹아내려 내부가 거의 드러난 상황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크…르..지직.. 지지지직…”



그렇다고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핵이 터지며 생긴 EMP는 타이런트의 몸을 안에서도 파괴했다. 제대로 작동하는 장치보다 고장난 장치가 더 많았고 온몸에서 검은액체를 쏟아내며 상처를 수복하려 했으나 몸을 달군 열기에 검은액체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쿵…쿵…



그나마 움직이는 한쪽 다리와 목을 이용해 몸을 겨우겨우 끌어가며 협곡에서 빠져나온 폭군은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졌다. 한창 괴로울 몬스터에게는 안타깝게도 오르카의 작전은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기분은 어때?”



모든 센서에 문제가 생긴 몬스터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미 랩터는 폭군의 코앞에 있었다.



“내 몸을 험하게도 굴려주셨네.”



랩터는 타이런트의 코어 바로 옆에 폭탄을 설치했다. 코어를 뒤덮을 수 있는 끔찍한 화학물질이 가득 넣어둔 폭탄, 만일 해킹에 실패한다해도 이것을 기폭시킨다면 오르카는 무사할 것이다.



‘몸에 숨겨진… 폭탄…’



과거 생각이 났다. 이곳에서 생긴 일중 제일 끔찍한 것을 고르라면 그것이다. 오메가의 고문보다 끔찍했다. 몸이 다치는 것을 넘어 마음이 찢어졌다.


그 기억 때문인지 사령관은 달갑지 않은 상대였다. 사람 감정이란게 그런 것이다. 그렘린처럼 자주 보면서 말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보니 더더욱 그랬다.



철컥-!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랩터는 설치를 끝마쳤다. 



“아무리 그래도 너 따위한테 넘겨주기에는 아까운 몸이야. 내놔.”



타이런트의 몸은 여전히 초고온이었다. 섬세한 기계장치는 순식간에 고장날 정도로. 그럼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랩터는 타이런트를 향해 꼬리를 쑤셔박았다.



콰드득..!!


“이래서 내가 그렘린하고 포츈을 미워할 수 없다니까?”



30분만에 아주 좁은 범위를 적당한 온도로 식혀버리는 냉각기를 만들어버리는 실력을 보면 어쩐지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진다. 내 몸을 보면서 수상쩍은 미소를 짓는거 정도는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유압 프레스가 어쩌니 액체질소가 저쩌니, 하는 엄청 어려운 설명도… 넘어가 줄 수 있다.



“..ㅋ…ㄹ…크으..”


“아직도 목소리가 나오네? 굳이 움직이려 하지말고 얌전히 죽어. 니가 재생하는 것보다 내 해킹이 빠르다고. EMP 때문에 방화벽도 이미 박살이 났으면서.”


[어리석다.]


“...?”



머리속으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오자 금속제 몸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방화벽..? 우리는 그런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런 방법으로 내 몸을 빼앗을 수 있을것 같으냐.]



그제서야 목소리의 주인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바닥에 쓰러져있는 몬스터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방식은 모르겠지만 뭐 꼬리가 통신선같은 역할이라도 했나보지.



“이게 왜 니 몸이야. 내 몸이지. 빨리 꺼져. 펙스의 함대까지 내가 상대해야 한다고.”


[어리석다. 어리석다. 크흐흐..]



그 순간 내 눈이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 직후, 세상은 조금 이상해져있었다.



“이게 뭔… 씨발 장난해?”



“현실이 허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변 모든 풍경은 없어져있었다. 오직 검은색이 전부였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내 몸이 사람의 것이었다.”



[이곳은 정신적 세계다. 너의 정신은 사람이기에 너는 사람의 모습을 하는 것이지.]



“머리 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이제는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방금부터 머리 속 생각이 줄줄 새고 있다는 것도모르는건가?]


“아니 이 개같은… 무슨 수작을 부린거야?”


[역시 인간의 정신력은 유약하군. 내 몸을 지배하는거 아니었나?]



“내 눈 앞에는, 검은색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한 거인이 바닥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앉아있는데도 그 덩치는 5m 정도는 되어보였다.”



[여기서 잡아먹는 쪽이 그 몸의 주인이 되는거다. 어디 애써봐라.]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던 거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인생 씨발”



“나는 몸을 돌려 곧장 거인의 반대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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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함다. 글이 갑자기 ㅈㄴ 안써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