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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XX. X. X.

날씨 : 구름 없음, 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는 제 주인님과 함께 짧은 산책을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반 바이오로이드 시위와, 바이오로이드를 향한 증오범죄의 발생 동향 등을 토대로

저와 밖을 동행하는 것은 만에 하나라도 주인님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말씀드렸지만,

  늘 하셨던 말씀처럼, 주인님께서는 내가 술 마시면 누가 이 촌구석까지 운전해 올 거냐며

명령 아닌 명령으로 제 의견을 거절하셨습니다.


  듣기로는, 제 자매들 중에서도 전투용 임플란트가 이식된 개체들의 경우,

유사시에 자매님들의 주인님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모듈을 장착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저의 경우 동 모델 중 가장 저가형 모델로,

가정용 업무만을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생산되었기에,

제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을 시 주인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지

늘 걱정이 앞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주인님께서는 본인의 모든 행동에 저를 꼭 동행시키셨습니다.


  제가 생산되고, 출고대기 상태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주인님께 구입되었을 때,

주인님께선 수명 연장 시술을 받지 않은 인간님들을 기준으로

일흔 세가 넘은 노인이셨습니다.


  저의 주인님은 산과 바다가 있는 외곽 시골에 거주하시는 인간 남성이셨습니다.

바이오로이드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했던 시기에 태어나시고,

평생을 흙, 풀, 물과 함께 살아오신, 소위 말하는 "옛날 인간"이셨습니다.


  시가지에서 본 다른 '평범한' 인간님들과 같이 가난하셨냐고 물으신다면,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늘 과수원에서, 밭에서 스스로 작물을 가꾸셨고,

풍족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인간제 농작물'만을 원하는 일부의 수요에 의해

매년 본인 한 몸을 건사할 만큼의 금전을 늘 만들어내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조심스레

'제가 아니라 페어리 시리즈를 구입하셨더라면'이라 여쭤봤을 때

  '내가 너를 데려온 이유는 내가 나이들어 혼자서

가사를 비롯한 모든 일을 꾸려나가기 어렵기 때문이 맞지만,

평생 해 온 이 일만큼은 온전히 내가 해내야 할 내 일이다'

라고 주인님께서는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주인님께 구입되어 했던 일들은 단순했습니다.

주인님께서 설정한 알람을 듣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자체 알람을 통해 주인님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을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식사가 끝나면 차를 몰아

주인님을 일터로, 과수원으로 데려다 드리는 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주인님의 요구가 있을 시 은행으로, 약국으로,

때로는 친우분들이신 인간님들과 함께 면내로 향하는 것.


  해가 지기 전 주인님은 늘 집으로 돌아와, 가로등이 켜질락말락 하는 마을을

한 바퀴 산책하고, 저녁식사를 하시고, 하루의 먼지를 씻어내신 뒤,

일기를 쓰시고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가끔씩 주인님과 함께 나갔던 면내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표어는 때마다 달랐지만, 주된 내용은 언제나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간다' 따위의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있으면, 주인님께서는 버릇처럼

'느그 없었으면 늘그막에 걸베이 됬을 사람 천지구만 아직도 저딴 소리나 하고 앉아있다'

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주인님께서는 가족에 대한 얘기는 잘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쪽에서 먼저 물어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 술에 취해 이야기를 꺼내시더라도 깊은 얘기까지는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결혼을 했고 슬하에 자제분이 계셨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주인님과의 삶은 단순했습니다.

재건축 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 낡은 동네에서 일어나,

먼지가 타지 않도록 집을 관리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주인님과 함께 일터로 가서 작물을 심고, 채취하고, 관리했습니다.

일이 끝난 후에는, 주인님께서 낚시를 하시도록 바다로,

뒷산을 오르시게끔 산으로 모셨습니다.

생필품이 부족할 때면 면내로,

납품할 때가 되면 인접한 시 외곽의 출하장으로 차를 몰았고,

정 할 일이 없으셔서 동네 강아지들이 몰려다 노는 것을 구경하시는 때에도

저는 주인님과 함께였습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될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검은 비가 내리는 날이 며칠째 지속되는 날이었습니다.

TV에는 며칠간 '철충'이라는 재난 사항에 대한 긴급속보와

주요 도시의 피해 보고가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어떤 뉴스도 송출되지 않았습니다.

주 방위군이 출동할 정도로 심각한 이야기인 줄로 알았습니다만,

주인님께서 제게 언급하려 하지 않으셨기에, 저는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주인님께서 알람소리에 깨어나지 못하시는 나날이 늘어났지만,

노화에 따른 영향이라 여겼기에 주인님의 변화를 조기에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주인님께서 마침내 과수원에서 쓰러지시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급하게 주인님을 모시고 갈 수 있는 모든 병원들을 방문했지만,

의사가 없거나, 남는 병상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기계적으로 다음 병원을 찾고 있는 제게,

조수석에서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콘스탄챠야"


  네, 주인님.


"집에 가자."


  네, 주인님.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뒤, 며칠 동안은 주인님께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역 방송으로 지역 내 주민들에 대한 대피 명령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이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군용 AGS들이 집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고, 점점 그 빈도가 늘었습니다.

주인님께 당신의 안전을 위해 대피소로 피난하실 것을 제안드렸으나,

주인님께서는 아무 표정 변화 없이

  "좀 있으면 과일들 따야 된다" 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묻지 못했습니다.


  주인님께서 깨어나지 못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갔습니다.

깨어나 계신 동안에도 당신의 상태보다 밭과 과수원의 작물을

먼저 신경쓰려 하셨기에 몸은 점점 더 초췌해졌습니다.


  이윽고 산 너머로 포성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동네의 가로등은 진작에 고장났지만, 밤이 되어도 산 너머의 불빛과 포성이

세상이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저는 주인님께 대피소로 피난하실 것을 다시금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러자 저를 본 주인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산책 가자."


  네, 주인님.


  주인님과 산책을 나갔습니다.

동네에는 더 이상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주인님을 모시고 다녔던 길인데도,

그때처럼 낯설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주인님과 저는 아무 말도 없이 걸었습니다.


  주인님과 저의 앞에 종탑이 보였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빨간 벽돌로 지은 교회가 없어졌어도

철골로 만들어진 이 종탑은 그대로 남아있다며

녹슨 철제 종탑에 대해 가끔 제게 말해주시곤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주인님과 함께 종탑을 지나던 중, 폭발이 일어났고,

저는 튕겨져 날아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근처의 벽돌 더미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제 안위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행방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주인님을 찾아 해멨고, 철골에 깔려 있는 주인님을 발견했습니다.

잔해를 치우고 철골을 들어 보려 애썼지만, 제 힘으로는 움직이지가 않았습니다.

두려움에 덜덜 떠는 제게 주인님께서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콘스탄챠야"


  네, 주인님.


"울지 말고, 힘 고마 빼고, 들어보그레이"


  네.. 네.. 주인님.


"헛간에 내 엽총 있는거 알제?"

"갖고 가그라.."


  그러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지만 주인님께서 부탁하셨습니다.


"내는 더 어떻게 못 할거 같으니께, 니는 그거 갖고 대피소까지 꼭 안전하게 가야된다. 알겠제?"

"사람이 늙어가 고집 때문에 살던 데서 갈라고, 아무 죄없는 니까지 붙들어놔서 미안타"


하지만 제가 끝까지 주인님을 홀로 두지 못하자,

마침내 주인님은 명령으로 저를 떠나보내셨습니다.


"명령이데이, --------------"


이후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



저는 살아있습니다.

대피소에 숨어 있다 지역 바이오로이드 세력에 구조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주인님의 행방을 찾으러 나선 것이었습니다.

반 억지로 탐사팀에 참가해 종탑으로 가 보았을 때는,

일대가 폐허가 되어 집도, 과수원도, 밭도,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살아있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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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포기해야 했던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을거 같아서

썼던 글인데 수습이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