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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카의 사령관으로 부임한 지 2년이 정도 되었다.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사령관은 다양한 바이오로이드를 접했고 여러 모습을 보았다 생각했지만, 주인을 잃은 바이오로이드를 본 적은 없었다.

 

 “주, 인님……우리 주인님 어디 갔어요. 주인님? 주인님…….”

 

 부사령관이 사라졌단 사실에 리리스는 삐걱이며 찾아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자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듯 연신 주인님을 입에 붙였다.

 

 “진정해, 리리스.”

 

 부사령관의 실종에 사령관 또한 혼란스러웠지만 심상치 않은 리리스의 상태를 가만둘 수 없었다. 그러나 리리스는 사령관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상태만 더 안 좋아졌다.

 

 “내가 지켰어야 했는데, 내가 지켰어야 했는데, 내가 지켰어야 했는데.”

 “명령이야, 리리스. 우선 진정하고…….”

 “지금 주인님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진정할 수 있죠!”

 

 가급적 쓰고 싶지 않은 명령권마저 리리스에게 통하지 않았다. 리리스의 명령권자는 사령관이 아니라 부사령관이었으니 당연했다.

 

 “애초에 사령관 당신은 부인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진정할 수 있어요? 어째서 매번 주인님이 힘드실 때 곁에 있어 주지 않는 거죠?”

 “말조심하게, 리리스 경호대장.”

 “당신한테 주인님은 뭐죠? 그저 많고 많은 여자 중 한 명밖에 되지 않았던 건가요?”

 “리리스!”

 “……괜찮아, 아스널.”

 

 차마 리리스의 말에 사령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매번 부사령관이 힘들 때마다 곁을 지켜주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 오히려 남편이 해줘야 할 일을 매번 리리스가 맡아주었으니 고마울 지경이다.

 

 “리리스가 부사령관에게 해온 헌신을 생각하면 나는 큰소리칠 자격이 없어. 하지만 리리스. 나도 내 아내를 반드시 구할 거야. 내 모든 걸 걸어서라도.”

 “…….”

 

 사령관의 진심이 전해진 걸까. 위태롭게 흔들리던 리리스의 모습이 안정되어갔다.

 

 조금은 분위기가 나아졌단 사실에 사령관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없는 사이 부사령관과 리리스는 마키나의 요원한테 습격을 받았어. 그리고 부사령관이 사라졌다는 건…….”

 “……마키나!”

 “그래, 마키나의 소행일 게 분명해. 그러니…….”

 

 사령관이 고개를 돌려 한곳을 바라보았다. 그를 따라 그녀들도 고개를 돌려 본 곳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의 빌딩이 있었다.

 

 “마키나에게 간다.”

 “전면전인가? 아직 적의 전력도 파악되지 않았는데, 조금 이르다고 보고 있다.”

 “나도 알아. 위험하다는 거.”

 

 처음 다섯에 불과했던 인원이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아스널이 말했듯이 마키나의 전력은 전부 파악되지 않았다. 흐레스벨그의 레이더도 그녀의 거처라 그런지 무용지물이었다. 섣불리 정면으로 갔다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었다.

 

 평소의 사령관이었다면 전면전을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스널, 부사령관이 잡혀있어. 만삭의 아내가 붙잡혀있는데 가만있을 남편이 어디 있어.”

 

 사령관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어. 우리는 마키나한테 간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사령관의 결정은 빨랐고, 더 이상의 이의는 없었다.

 

 사령관의 말에 리리스는 거칠 게 없었다. 그 누구보다 앞서나갔고, 뚫은 끝에 마키나의 앞에 다다랐다.

 

 “마키나──!”

 

 낙원 밖의 일에 신경 쓰느라 정신없던 차에 나타난 리리스의 외침에 마키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

 

 “주인님, 내 주인님은, 어디에 있어!”

 

 리리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늘 단정했던 의상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상처를 입었는지 피가 배어있었다. 안 그래도 로자아줄을 소중한 주인에게 넘겨주었는데, 주인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그녀를 막는 것들은 모조리 쓰러트렸다.

 

 그 결과 리리스는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었지만, 흉흉한 눈빛은 상처 입은 맹수와 같았다.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리리스의 기세에 마키나는 서둘러 마스터키를 조작해 요원을 불러 모았다.

 

 “우리 주인님, 리리스의 주인님 당장 내놔!”

 

 포효를 내지르고 리리스는 달려들었다.

 

 “왜 일이 이렇게 되는 걸까요.”

 

 뭔가 꼬여만 가는 자신의 상황에 마키나는 한탄하면서도 어떻게든 눈앞의 위험을 상대하였다.

 

*

 

 출산을 하기 전, 부사령관은 그녀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서 탈출해줘.”

 

 마키나는 말했었다. 다시 낙원으로 초대하겠다, 고.

 

 할아버지의 다이어리에서 읽은 마키나의 낙원에 대한 집착을 생각하면 갓난아이도 캡슐 안에 집어넣고도 남을 것이다. 아직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두 아이도 낙원으로 들여보낸다 생각하니 부사령관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진짜로, 같이 갈 수 없습니까…….”

 “너희도 알잖아. 이런 몸으론 짐밖에 되지 않는걸.”

 

 팬텀은 부사령관도 같이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니까.

 

 안 그래도 두 아이를 출산하느라 한계에 도달한 몸이었다.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부사령관까지 데리고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괜찮아, 마키나가 날 죽이는 것도 아닌데. 오르카에 도착하면 구하러 와줘.”

 “……알겠습니다.”

 

 부사령관의 설득에 팬텀과 레이스는 눈물을 머금고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했다. 떠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부사령관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울컥했지만, 옆에 남아있는 닥터를 생각해 속으로 삼켰다.

 

 “닥터도 같이 탈출했으면 좋았을 텐데.”

 “됐어. 타이탄도 없는데 괜히 따라갔다가 발목만 잡을 게 뻔한걸. 그리고…….”

 

 닥터는 애써 웃으면서도 눈동자에서 걱정스러움이 담겨있었다.

 

 “안 그래도 언니 지금 상태가 엉망인데, 언니를 두고 어떻게 떠나. 오빠랑 특히 리리스 언니한테 엄청 혼난다고.”

 “하하, 그렇긴 하려나.”

 

 지금 꼬락서니를 사령관이 보았다간 기겁할 게 눈에 선명했다. 리리스도 떠나가라 울고 난리가 나겠지?

 

 생각만 해도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언니는 휴식이 필요해. 마키나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언니는 한숨 푹 자도록 해.”

 

 닥터의 말대로 지금 부사령관은 휴식이 필요했다. 만삭의 몸으로 조심해도 모자란데 낙원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몰린 상태에서 애까지 둘이나 낳고 말았다.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게 아니었다면 진작 쓰러지거나 숨넘어갔을지도 모를 판이었다.

 

 부사령관도 당장 자고 싶을 만큼 피로가 가득했다. 하지만 부사령관은 이대로 잠들고 싶지 않았다.

 

 “……닥터.”

 

 나지막하게 부사령관은 닥터를 불렀다.

 

 “나를 낙원으로 보내줘.”

 “언니 미쳤어?”

 

 닥터는 자기도 모르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아니, 기껏 낙원에서 빠져나왔는데 거기를 왜 다시 가?”

 “어차피 마키나가 다시 집어넣을 텐데, 제정신일 때 직접 가는 게 낫지.”

 “마키나는 내가 어떻게든 한다니까! 언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리리스가 걱정스러운걸.”

 

 로자아줄까지 건네줘 부사령관을 보호한 리리스였는데, 갑자기 부사령관이 사라져버렸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아직 이쪽의 사정을 모른 채 자신을 찾고 있을 리리스를 생각하면 도저히 마음 편히 잠들 수 없었다.

 

 “그리고 사령관이 아직 낙원에 있잖아. 아내가 남편 두고 어딜 가겠어.”

 “후우. 언니가 그러고 싶다면 그래야지.”

 

 더 이상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닥터는 체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내가 하려고 했지만, 언니한테 맡길게.”

 

 언제 챙겨온 건지 닥터는 캡슐 안에 있던 가상현실 접속기기를 꺼냈다. 그녀는 기기를 몇 번 손질하더니 부사령관의 머리에 조심히 씌워주었다.

 

 “기왕 하는 거, 최대한 내가 서포트할 테니 언니는 마음껏 날뛰도록 해. 가상현실을 다루는 건 마키나만이 아니라고.”

 “고마워, 닥터.”

 “고마우면 나 대신 마키나한테 한 방 먹여줘. 당하고만 있는 건 못 참는다고.”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하는 닥터에게 부사령관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카 최고 기술자가 저렇게 의욕을 불태우며 도와준다니 부사령관은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럼, 갔다 올게.”

 “잘 갔다 와 언니~”

 

 그렇게 부사령관은 스르륵 두 눈을 감았다. 그녀가 낙원으로 무사히 접속한 걸 확인한 닥터 또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작동했다.

 

 부사령관이 그녀만의 전장으로 간 것처럼 닥터 또한 자신의 전장으로 향했다.

 

 “좋아, 한 번 살펴볼까?”

 

*

 

 요원들의 거센 공격에도 리리스의 앞을 막을 수 없었다. 피할 수 있는 건 피하고, 피하지 못하면 급소를 피해 일부러 맞는 등 그녀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수많은 요원의 공격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리리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으읏…….”

 

 주인을 잃은 바이어로이드, 그것도 블랙 리리스의 분노와 살의를 직접 받으니 오랜 세월을 보낸 마키나조차 살짝 움츠렸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인간님에게 구원자가 되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는데, 데리고 온 인간은 만삭의 임산부였고, 바이오로이드들은 세뇌에서 풀리고, 세뇌에서 풀린 그녀들은 울고 분노하고 살의를 내비친다.

 

 게다가 아직 인간에게 구원자의 ㄱ자도 꺼내 보지도 못했는데 그냥 모든 게 엉망이 되어갔다. 그야말로 세상이 마키나를 억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아요. 시작부터 엉망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되니까요.’

 

 굳이 낙원 밖으로 보낸 인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바이오로이드의 지도자인 인간도 있지만,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인간도 둘이나 있다.

 

 앞의 두 사람이 구원자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두 인간이라면, 이상적인 구원자가 될 수 있게 자란다면 마키나가 바란 진정한 낙원이 펼쳐질 수 있을 테니까.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각오를 다진 마키나는 마스터키를 다시 조작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다, 마키나 쇼군!”

 “마키나 쇼군, 악당. 이제, 끝이다.”

 “뭣!”

 

 그러나 마키나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너무나 허무하게도 무너지고 말았다.

 

 갑작스레 마키나의 뒤로 나타난 쿠노이치 제로와 카엔은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제압하였다.

 

 “수고했어, 제로. 카엔.”

 “아닙니다, 주공.”

 “주공, 위해서라면.”

 

 마키나가 제압당해서 그런 걸까. 어느새 요원들의 동작이 멈추었다.

 

 사방이 고요해진 가운데, 쿠노이치 자매는 사령관의 곁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하였다. 다른 바이오로이드와 다르게 세뇌에서 풀리진 않고 여전히 컨셉을 유지하는 자매의 모습에 사령관은 피식 웃고는 마키나를 내려다보았다.

 

 모두를 구원하려 했던 바이오로이드는 뜻을 밝히기도 전에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크윽, 이게 어떻게 된 일…….”

 “그 입 다물어.”

 

 갑작스러운 사태를 파악하려는 것조차 마키나에겐 사치였다.

 

 리리스는 싸늘한 목소리와 반대로 과열된 블랙 맘바를 마키나의 머리에 겨눴다.

 

 “네가 할 수 있는 말은 주인님을 어디에 숨겼는지 대답하는 것 말고는 없어.”

 “인간님, 말인가요.”

 “두 번 말하지 않아. 그 머리에 총알 박아버리고 싶어지니까.”

 “아,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총구가 마키나의 머리에 닿자 메리가 황급히 튀어나와 리리스의 앞을 막았다.

 

 느닷없는 메리의 행동에 리리스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낄 곳 안 낄 곳도 구분 못 해? 좋게 말할 때 당장 비켜.”

 “죽어도 못해요!”

 “아 그래.”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 리리스는 반대쪽에 있는 맘바로 메리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꺄악!”

 “리리스!”

 

 리리스의 돌발행동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마키나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메리를 쓰러트려 그녀가 총알에 직격당하는 일은 없었다. 총상은 피했지만, 리리스가 정말로 자신을 쐈다는 사실에 메리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리리스, 다른 건 몰라도 동료를 공격하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주인님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판에 저딴 버러지를 감싸도는 쓰레기를 전 동료로 볼 수 없군요.”

 “이거 참, 경호대장의 눈이 아주 돌아버렸군.”

 

 사령관은 리리스를 최대한 배려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부사령관과의 관계도 그렇고 남편으로서 채워줘야 할 역할마저도 맡아주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의 행동은 선을 넘고 말았다.

 

 “다 필요 없어! 주인님과 내 동생들 외에는 아무것도!”

 

 분위기는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점점 도를 넘어서는 리리스의 행동에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녀에게 적의를 내세우며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스널은 저격총을 겨누고 있었다.

 

 사령관은 그녀들에게 그만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당장 언제 달려들지 모를 리리스의 기세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마키나는 놓치지 않았다.

 

 “구원을! 이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이 몸이 재가되는 한이 있더라도……!”

 “마키나, 너!”

 “아, 안돼! 제발 그만둬, 마키나!”

 “쓸데없는 짓을!”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일어선 마키나는 리리스가 블랙 맘바를 쏘기 직전 마스터키를 조작했다. 직후 총알이 날아왔지만, 요원이 이를 방어하였고 그 순간 마스터키가 붉게 빛났다. 삽시간에 모두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인간님을……찾으신다……했죠?”

 

 순간, 리리스의 곁에 부사령관이 나타났다.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컴패니언 자매들과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낙원이 그녀의 소원에 공간을 구축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아주 작은 틈이었지만, 제겐 그거면 충분해요…….”

 “그만둬, 마키나!”

 

 사령관은 마키나가 무슨 짓을 벌일지를 깨달았지만 이미 손을 쓰기에는 늦은 뒤였다.

 

 “그쪽의 인간님과는 초면이었죠?”

 “이런……!”

 “다시 한번 욕망의 세계에서 부디 좋은 꿈을 꾸시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대로 다시 환상에 빠져버리고 마는 건가. 부하도, 아내도 구하지 못한 채?

 

 ‘젠, 장…….’

 

 몰려오는 절망감과 함께 점점 사령관의 의식은 어둠 속에 묻혔다.

.

.

.

.

 “………….”

 

 눈을 떠보니 익숙한 천장이다.

 

 사령관은 자신이 언제 잠든 건지 얼떨떨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조금은 몽롱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무심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봤다.

 

 “……뭔가 익숙한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지만, 모니터가 꺼져있는 걸 보자 사령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머리를 긁적이며 내뱉은 말에 퉁명스러운 대답이 들려오자 사령관은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곳에는 반가운 얼굴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일어났어?”

 “응, 그보다 여긴 어디야 여보?”

 “하아, 얘가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내 부사령관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까지 환상에 빠져있으면 어쩌자는 거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여보?”

 “그러니까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우려면, 으으…….”

 

 아까부터 계속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부사령관의 모습에 사령관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부부라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니까 제발 한 번에 가자, 사령관.”

 

 뭐를? 라고 묻기도 전에 부사령관은 사령관의 두 볼을 붙잡고는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에 황홀감을 느끼며 사령관은 자연스럽게 혀를 집어넣었다.

 

 “야!”

 “하하, 하!”

 

 그리고 떨어진 부사령관의 등짝 스매싱에 사령관은 모든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환각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키나는 비틀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당신이 이곳에…….”

 “야, 마키나.”

 

 조금 전의 일로 아직도 얼굴을 붉힌 부사령관은 씩씩거리며 마키나에게 화풀이했다.

 

 “일단 좀 맞자.”



사령관은 역시 사령관이었다.


부사령관의 낙원 재난입! 남편을 구하는 건 역시 아내의 몫이지.


그러고보니 마키나는 사령관이나 부사령관한테 낙원의 구원자가 되어달라고 한마디도 못했네.


아무튼, 다음 편으로 낙원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