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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는 아군의 등을 보며 전진한다.


총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투 속에서, 아군의 넓은 등을 보고 용기를 얻는다.

동시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는 것도 안다.

병사들은 혼자 달리지 않는다.

그녀들의 앞에는 아군이 있고.

그녀들의 뒤에도 아군이 있다.

서로가 서로의 등을 보며 말없이 용기를 나누고 분노를 나눈다.

그것을 두고 전우라고 말한다.


그러나 적의 얼굴만을 보며 진격하는 자가 있다.


"진격, 앞으로!!"


단순히 묵직하고 거대한기만 한 총검을 들고 기동장치의 불을 밝히며 앞으로 나아간다.

총에 달린 검으로 적을 찔러 죽이고.

총을 쏘기도 하며.

앞도적인 기동력으로 공격을 회피하며 홀로 적진을 누빈다.


전쟁의 영웅.

불사의 영웅.

무패의 영웅.


그녀에게는 단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




"칸 대장은."


어느 날, 워울프가 말했다.


"저걸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워울프가 가리킨 TV에는 칸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와 똑같은 외모와 옷, 똑같은 무기를 든 여전사였다.


"무슨 생각이 드냐니?"

"저 칸이 바로 백전노장, 최초의 갈색 늑대잖아."

"그렇다."

"나랑 대장은 저 호드 부대의 카피본이고."

"......"


워울프는 남의 아픈 곳을 찔렀다는 자각이 없었다.

단지 궁금해했다.


"그런 거 항상 궁금했거든. 진짜 영웅의 스페어는 진짜 영웅을 보며 뭐라고 생각할까?"

"반대로 묻지. 너는 저 부대의 워울프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지?"


그녀가 말한 것은 쌍권총을 다루는 워울프였다.

그 워울프는 특이했다.

아니, '칸'의 부대원들은 다 하나같이 남달랐다.


"음, 멋있어! 나도 하고 싶어!!"

"나도 그렇다."

"오....? 그건 의외인데."


워울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라니?"

"대장은 칸이잖아. 백전노장의 데이터를 고스란히 받은. 나랑은 다르지. 난 그저 워울프니까. 저 워울프랑은 달라. 영화를 보고 쌍권총을 들었다는데, 나는 그런 영화를 본 기억이 없어."

"....."


칸은 TV를 보는 워울프를 본다.

그녀의 눈동자는 동경으로 빛나고 있었다.






칸은 캡슐에 눕고 전선이 잔뜩 연결된 헬멧을 썼다.


[금일의 데이터는 약 44기가바이트입니다. 다운로드 하시겠습니까?]


칸은 YES를 눌렀다.

그러자 기억이 전송된다.

TV에서 본 그 전쟁의 장면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그녀의 기억이 되었다.


'칸......'


최초의 칸이 있었다.

그 칸은 동료를 아꼈으며.

다른 부대의 동료 역시 자신의 동료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녀는 최초의 기억을 나누었다.

그것이 지금의 호드였다.


'나는 칸인가?'


기억이 전송되면 칸과 칸은 하나가 된다.

그러나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지식과 기억을 받는다고 정말로 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똑같이 구성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정말로 같은 육체일까?


그렇다면 왜.

수많은 호드 부대가 전장에서 죽어나갈까.


칸은 무적이 아니었다.

무적의 칭호를 가진 것은 단 하나.


단 하나의 이름뿐이었다.


-나는 그런 영화를 본 기억이 없어.


'왜 바이오로이드는 각 개체마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칸은 의문을 품었다.





"자, 최대한 빠르게 간다. 발목을 잡지 말도록!"


칸이 기동장치의 불을 켜며 전진했다.

그녀의 하루는 언제나와 같았다.

눈을 뜨면 싸운다.

잠을 자다가 싸운다.

최초의 칸과 똑같은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상 느꼈다.


탕!


"큭.....!"


굵은 라이플 구경이 허벅지를 관통했다.

실수였다.

하지만 실수가 아니었다.


'나는 완벽했다.'


칸은 왜 총알에 맞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분명 기억대로 행동했다.

그녀의 기억이 아닌, 최초의 칸의 기억대로.

무패의 신화가 걸은 길을 그대로 걸었다면 그녀 역시 무패여야 할 터.

그런데 왜....?


"대장!"


쓰러진 칸의 앞에 워울프가 나타났다.


"오면 안 돼!! 저격이다!"


칸이 처절하게 외쳤다.

기억은 동료애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기억을 피로 물들이는 일 따위는 있어서는 안 됐다.


탕-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총소리.

워울프가 소총을 비스듬히 들자, 총알이 개머리판에 맞으며 불꽃을 뿜었다.


퍽.


워울프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개머리판에 튕긴 총알이 머리를 관통. 즉사였다.


"아....."


허망함이 차오른다.

왜 나는 칸이 될 수 없을까.

동료를 지키기는커녕 동료에게 도움을 받아다 죽게 하는... 그런....


"뭐하고 있어!"


워울프가 두 발로 섰다.

하극상이나 다름없는 말투로 화를 내는 워울프의 한쪽 눈이 텅 비었다.


"당장 일어나!!"

"아...."


칸은 일어섰다.

절뚝거리면서 워울프의 부축을 받고 후퇴한다.


"빨리, 빨리! 다시 저격하기 전에 도망쳐야해!"


숨을 곳은 없다. 허허벌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


"빨리 와! 어서!"


카멜이 몸으로 거대한 차를 밀어붙이며 다가왔다.

두 사람은 카멜이 가져온 방탄 차량 뒤에 몸을 숨겼는데, 그때까지 저격이 없었다.


"이상한데. 왜 조용하지?"


쾅!!


워울프가 입을 떼는 순간. 총성이 울려 퍼졌던 방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우왓! 뭐, 뭐야!? 폭발?"


콰쾅!!


연달아 울려 퍼지는 폭발과 총성.


"대장, 다 됐어. 깔끔하게 관통돼서 오히려 다행이었어."


샐러맨더가 압박붕대로 허벅지를 꽉 묶었다.

그러는 사이 탈론페더는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어머."


탈론이 눈을 크게 떴다.


"대장님. 지원은 벌써 왔다는데요?"

"뭐?"

"상황 종료래요."

"....?"


다소 허무한 결말.

그들은 일어서서 상황을 살핀다.

폭발과 총성은 어느새 가라앉았다.


"혹시 모르니까 대기해라."


잠시 후, 폭발이 일어난 건물 쪽에서 누군가 보였다.


"다가옵니다. 개체수 다섯."

"누군지 식별이 가능한가?"

"음~"


탈론이 망원경으로 멀리를 보다가 신음을 흘렸다.


"하읏..?"

"...??"

"대장이 둘.. 슈퍼 보빔각인가?! 하으으응!!"


탈론이 쓰러졌다. 순식간에 전투불능이었다.

얼굴을 보인 것만으로 탈론을 무기력하게 만들 사람은 오직 한 명.


"근처를 지나가다가 총성을 들었다. 그랬더니-"


최초의 칸이었다.


"내가 있었군."

"칸..... 너를 안다."

"그런가?"

"기억을.... 받았었다."

"그렇군. 너도 나군."


최초의 칸이 손을 내밀었다. 묘하게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만나서 반갑다, 칸."

"......"


칸은 최초의 칸의 손을 맞잡았다.

그손은 그녀의 손보다 억세고, 더 큰 슬픔에 젖어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너라고?'


칸은 칸을 보며 생각한다.


'아니. 우리는 다른 존재다.'







"워울프. 새 총을 지급받아야지."


부상을 치료받은 다음 칸은 바로 워울프부터 챙겼다.

그녀는 한쪽 눈을 영영 잃었다.

사실 눈은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지만, 그녀가 거부했다.


"이해할 수가 없군. 전쟁에서 외눈은 치명적이다."

"괜찮아, 괜찮아."


워울프는 정말로 개의치 않아 했다.


"하아.. 그래, 마음대로 해라. 원하는 소총이 있다면 말해라. 참, 지난번에 권총이 탐난다고 했지. '그 워울프'와 같은 것이면 되겠나?"

"아니, 그것도 됐어."

"뭐? 어째서지?"

"이 긁힌 자국 봐봐."


워울프가 총알을 받아냈던 개머리판을 가리켰다.

굵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비스듬히 튕겨냈다지만, 사실 한 번에 박살나야 정상이었어."

"....그렇다."


50구경에도 부러지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총, 분명 다른 총보다 튼튼하게 나온 거야."

"무슨 소리지? 다 똑같은 규격이다."

"아니, 똑같이 만들었더라도 불량품이 있고, 더 튼튼한 게 있잖아. 난 천운을 타고난 거라고. 이 튼튼한 개머리판을 봐!"


그녀가 개머리판을 퍽퍽 때린다. 멀쩡했다.


"순전히 우연이었겠지만, 이 소총은 다른 총보다 더 튼튼해!"

"......!"


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눈은 대장을 지켰다는 훈장이야. 그리고 이 총은 내가 뽑기운이 어마어마하다는 반증이지."


워울프가 심취해서 말한다.


"이제부터 뉴스에 나올 때 다른 녀석들이 내 외눈을 보고 생각하겠지. '와 쥰내 멋있어!!!'라고!! 아하하하하!! 낭만있잖아. 외눈박이 여전사. 이건 다른 워울프들은 엄두도 못 낼 나만의 개성이라고!!"


개성.


그 단어가 귀에 박혔다.


"그런가."

"그래!"

"그렇군."


칸은 옅게 웃었다.






"허벅지는 괜찮나?"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왔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음, 이제 멀쩡하다."

"음?"


최초의 칸이 그녀를 보고 놀랐다.


"옷이 변했군. 아니, 머리색도."

"염색했다."

"염색...?"


칸은 검은 옷과 검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보기 흉한가?"

"그럴 리가. 멋지다."

"고맙군."

"옆에 앉아도 되겠나?"


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의 칸 옆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묻는다.


"오늘 찾아온 건 질문이 하나 있어서다."

"무엇이지?"

"너는 내 기억을 전송받았지. 며칠 전의 전투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다. 그때 전투는 승리했지만 부상자가 있었다. 그때 내가 무엇을 실수했는지-"

"아, 미안하군. 그날 이후로 기억을 전송 받지 않았다."


칸이 정중하게 사과했다.


"어째서지?"

"내가 나인 이유는, 내 모든 것이 오롯이 나이기 때문이니까."

"...?"

"나는 네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나의 길을 걷기로 했다."

"....."


최초의 칸은 놀란 눈치였으나, 이내 수긍했다.


"알겠다. 그럼 다른 자에게 자문을 얻어야겠군."

"메일을 알려줄테니 자료를 보내라. 그러면 '다른 시각'으로 분석해주겠다."

"....다른 시각."

"그렇다."


최초의 칸이 훗, 하고 웃었다.


"알겠다."

"언젠가, 저 TV에 검은 머리의 칸이 나올 거다."


떠나려는 최초의 칸에게, 검은 칸이 말했다.


"너와 같은 존재가 아닌, 어깨를 나란히할 라이벌로써."

"...기대되는군."


두 여자는 미소를 교환하며 등을 돌려 떠났다.




나는 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칸이 될 수 없었던 나는.


단 한 글자가 아닌.

세 글자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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