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령관 모음)


*****


 써니를 따라 무더운 정글 속을 걸은 지 몇 시간째, 무더위에 지친 사령관, 티아멧, 아자즈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령관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티아멧은 더운 환경이 익숙지 않은 것 같았다.

"저기... 혹시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어, 그거 좋은 질문이야! 분명... 이 근처 일거야. 음, 여기 표시를... 어... 잠시만... "

 써니는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를 보고 있던 사령관의 인내심이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에서 흐르는 땀은 더위 때문일 거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길을 잃으신 모양이군요."

 정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어디서 왔는지 모를 기계부품들을 줍고 있던 아자즈가 말했다.

"아-아니! 절대로 아니야! 분명 이쪽을 통해서 쭉 나가면..."

 아자즈는 금색 슈트에서 노란색 태블릿을 꺼냈다.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태블릿의 화면이 점멸하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여기 기계 신호를 추적하는 추적기를 만들어놨어요. 만약 환영장치가 작동되고 있다면, 이 기계를 통해 그 위치를 알 수 있을 거에요."

"...그거 언제부터 가지고 계셨어요?"

"아마... 사령관님을 만나기 한참 전부터 일걸요?"

"그럼 왜 인제야 그걸..."

"써니 양께서 한사코 필요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아자즈의 해명을 들은 티아멧이 써니를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붙이자, 써니가 당황한 표정을 한 채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아-아니 그건 말이야... 어!!"

 그 순간, 그녀의 뒤에 있던 나무가 일렁였다. 그녀는 곧바로 
뛸듯이 기뻐하며 그 나무 속으로 쑥 들어갔다. 마치 모 영화에서 보았던 9와 3/4 정거장이 떠올랐다.


"우리도 저기로 들어가자."


*****


 나무를 통과하니 일행은 사령관의 집무실만 한 방으로 들어와 있었다. 여기저기 설계도와 기계장치들이 널브러져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방의 벽면에도 지도와 설계도가 빼곡해 써니보단 아자즈에게 더 어울리는 방 같았다.

"로봇의 설계도네요."

"흥미롭네요. 이 정도 수준의 기계는 인류 멸망 전에만 볼 수 있었는데 말이죠."

 티아멧과 아자즈가 설계도를 본 감상을 늘어놓는 사이, 써니가 새하얀 날개가 달린 바이오로이드를 데려왔다.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써니와 달리, 그녀는 사령관 일행을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기는 스노우 페더라고 해. 페더라고 불러."

"써니, 마음대로 다른 분들을 여기 들이면 어떻게 해요? 저분들이 혹시..."

"해코지하려고 온 의도는 전혀 없어. 우린 그저 너희를 도와주고 싶어."

 행여나 쓸데없는 의심을 살까 봐 사령관이 빠르게 대답했다. 그러나 페더의 경계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도움은 사양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나가주세요."

"엥? 하지만 우리 인원이 부족하지 않아? 저기 세뇌되었을지도 모르는 다른 분들보단-아야얏!!!"

페더는 단단히 화가 난 표정으로 써니의 팔뚝을 꼬집은 뒤, 그녀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써니. 이건 저희 일이에요. 저희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요."

"하지만..."

"저분들을 데려간다면 더 위험해질 거에요. 지난 100년 동안 완전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인간님이 갑자기 여기 찾아와서 저희를 도와주시겠다고요?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에요. 분명 그 바이오로이드가 심어놓은 걸 수도 있어요."

"페더..."

"저희 계획은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해요. 제 부주의 때문에 모두가 위험해졌어요. 같은 실수를 한 번 더 할 수는 없어요."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어리둥절해하는 손님들에게 돌아갔다.

"초면에 무례하게 군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도움, 마음만 받겠습니다."


*****


"저... 저기 정말 기억나지 않나요...?"

"미안...하다. 기억이..."

레오나가 앉아 있는 침대 옆 두 바이오로이드가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나요? 저희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주문하고, 사령관님이랑...아. 이-이건 조금 부끄러운데..."

 팬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열심히 레이스와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그녀가 단 하나라도 기억해주길 바랬지만, 레이스는 표정하나 변함없이 팬텀을 쳐다보았다. 분명 그녀의 기억 모듈 속 팬텀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냉혹한 암살자인데, 지금 자기 앞의 바이오로이드는 소심하고 정이 많은 듯 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이 사령관이라는 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생각했다. 본인이 이 방에서 만난 바이오로이드들 모두 (물론 5명에 불과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를 언급했다. 

 그녀는 이때까지 경직된 수직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에릭에게선 오직 질책과 명령 밖에 들어보지 못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담기조차 싫었다. 그를 떠올리면 그가 낸 상처들이 더욱 더 욱씬거리는 것 같았다. 

 "흐흠. 팬텀, 레이스랑은 조금있다가 이야기 하도록 하고. 네가 해야할 일이 있어."

 물끄러미 노트를 바라보던 레오나가 팬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레오나에게서 녹음기와 작은 검은색 정육면체를 받았다.

 "이게 뭔지는 너도 알겠지. 지금부터 로얄 아스널이 어디있는지, 그녀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와주면 돼. 혹시 특이사항이 있으면 바로 보고해 주고."

 "네. 알겠습니다."

 방금까지의 부끄러워하던 소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냉혹한 암살자로 돌아온 팬텀이 방을 나갔다. 레이스는 팬텀이 지나간 문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적응이 안되는가봐?"

"팬텀 선배의 저런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내 모듈 속 그녀는 항상 침묵을 지키는 암살자였다."

"그녀가 처음 왔을땐 나도 그렇게 봤어. 하지만 잠수함 안에서 같이 지내다보니 그녀의 이런 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

"당신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소속이 아닌가?"

"딱히 접점이 없어도 여기서 같이 살다보면 서로 말할 기회가 있어. 요즘은 그렇지 않나보네." 

"바이오로이드에게 주어지는 개인시간은 하루 1시간도 되지 않는다. 임무, 보고, 개인정비, 취침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하다."

 실제로 팬텀과 칸(그리고 얼마 전 까지는 리엔이)이 주기적으로 제출한 음성보고에 따르면, 요즘 카페테리아 같은 여가시설 사용인원이 급감했다고 했었다. 나아가 몇몇 시설들은 사용률 저조로 이미 문을 닫았었다. 대부분의 대원들은 잦은 출격 덕분인건지, 시간이 남으면 일단 불 꺼진 숙소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땐 그렇지 않았나 보군."

 "전혀. 다들 연말 파티나 모임도 자주 열었어."

 파티? 모임? 레이스에겐 모두 생소했다. 예전의 오르카호.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정말 리앤의 말대로 사령관이 바뀌면서 이 곳이 변한 걸까. 

 "전 사령관...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당신이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같다."

 레이스는 침대 옆에 있던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레오나의 왼손 약지의 새하얀 반지가 햇빛에 비쳐 반짝였다. 

 "그는..." 이라고 운을 때니 그와 지냈던 소중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묵하고 소심하지만,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 하지만, 레오나는 쉽사리 입을 땔 수 없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 깊히 박혀 있는 생각이 그녀의 목을 조였다. 

 내가 그를 잘 알고 있었다면, 그가 지금처럼 이 곳을 떠났을까. 

 "나도... 잘 몰라."

  레오나는 고개를 푹 숙여 살짝 나온 아랫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를 본 레이스의 눈이 커졌다.

 "얼마 전까지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어. 하지만, 이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디까지가 나의 착각이었는지 모르겠어."

 "...이 비디오들은 뭔가?"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내가 놓쳤던 달링의 흔적들."

 "이걸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나?" 

 "...내가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어."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무래도 이 바이오로이드는 레이스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전 사령관에게 애착을 가진듯 했다. 

 그녀의 학습 모듈 속 인간은 그저 복종해야 할 존재. 부여되는 계급은 다르지만 같은 군용 바이오로이드인 레오나의 초기 설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이유인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그 인간을 사랑하며 그의 아이까지 품고 있었다. 

 과연 본인은 인간을 그 정도로 사랑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본 인간은 그녀에게 상처만 줬다. 상식적으로 감정 모듈이 고장나지 않은 이상 그런 인간의 아이를 자신의 의지로 가지는 건 불가능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그는 어떤 사람이길래 리앤의 메시아이자, 레오나의 반려가 된 것일까.

 그녀의 손이 침대 위에 있는 비디오 테이프로 향했다.

 "그... 그렇게 슬퍼하고 있으면 아이한테 좋지 않다고 들었다. 이걸 보면서 눈물부터 그치는게... 어떤가?" 

 그녀는 비디오 테이프를 넣고 리모컨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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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령관 모음)

"우린 너희를 도와주고 싶어. 무슨 계획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매우 위험한 임무에요."

"여긴 섬이야. 네 계획에 동참하든 말든 도망갈 곳도 없어. 너를 도와 이 곳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게 나 스스로를 지키는거야."

"저기, 저희 이래뵈도 실험병기와 기계 전문가에요. 어떤 역할을 맡아도 여러분에게 폐 끼지치 않을 자신 있어요."

"커다란 로봇을 볼 수 있을 기회, 놓칠 수 없죠."

 입장차가 쉽게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때, 사령관 일행의 뒤에서 중절모를 쓴 AGS가 들어왔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저 또한 여러분들의 머리카락을 가져 올수 있는 기회를 놓칠수는 없습니다!"

"아저씨!"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Mr. 알프레드라고 합니다."

 알프레드가 모자챙을 살짝 내리며 인사했다. 그는 곧바로 페더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페더, 혹시 이분들이 그 분의 함정일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랬다면 저희는 이미 살아남지 못했을겁니다. 이분들은 저희를 무력으로 충분히 제압 할수 있었을태니."

"아저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알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뭔 도와주면 될까?"


*****


 알프레드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신인류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곳이라고 한다. 철혈침공 당시 총책임자인 팩스의 회장이 사실상 사망하면서 프로젝트가 중지되었으나, 아무래도 써니가 이야기한 그 바이오로이드가 프로젝트를 재가동 시켰을거라고 했다. 

"아마 그녀들은 실험체로 쓰이거나, 경비용도를 위해 세뇌되었을겁니다. 또, 인간분들이 멸종되었다고 해도 이런 프로젝트가 다른이의 귀에 들어가선 좋을 일이 없다고 판단했을겁니다."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이야기 하네."

"물론입니다. 그와 저는 사실상 동일한 게체라고 해도 무방하지요. 그의 AI는 저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제 형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덕분에 그의 의도와 행동쯤은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지요."

 알프레드의 디스플레이가 더욱 밝게 빛났다. 

"그리고 또 그 덕분에, 제가 메인 컴퓨터에 연결만 한다면, 그 프로젝트를 다시 중지시킬수 있답니다!"

"해킹을 한다는 거네."

"뭐,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지만, 그 정도로 이해해 두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메인 컴퓨터란 곳에 어떻게 연결 할거야?"

"그 위치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허나..."

 알프레드의 손이 지도의 X 표시를 가리킨다. 표시 주변엔 AGS로 보이는 수많은 점들이 빼곡히 찍혀있었다.

 3명의 인원으로 이렇게 많은 병력들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접근하는게 문제라는 거네."

"정확합니다."

 그가 보여준 자료들엔 메인 컴퓨터가 있는 요세의 지도뿐만 아니라, 이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AGS들의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도상에는 요새와 멀지 않은 곳에 바이오로이드 마을도 있어, 유사시 세뇌된 바이오로이드들과도 충돌이 있을 수 있었다.

 한참동안 지도를 모고 있던 사령관은 티아멧과 아자즈를 불렀다. 

"티아멧, 여기 있는 AGS들의 설계도를 유심히 봐줘. 혹시 동력원이라든지 중앙 컴퓨터라든지의 위치를 잘 파악해줘."

" 네, 사령관."

"그리고 아자즈?"

"말씀하세요, 사령관님." 

"그 신호기 말이야... 아직 가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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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령관 모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허허ㅓ헣

기다린 라붕이들한테 너무 미안해. 

이제 현생에 여유가 어느정도 남으니 이렇게까지 텀이 길지는 않을거야. 

(아마도...) 


피드백이나 감상은 언제나 환영하니 댓글에 부담없이 써주면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