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차 감상용)


어찌저찌 그날의 회의를 끝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나는 방에 돌아왔다.


“빨리 저녁먹고 쉬어야지..”


오랜만에 일을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에너지 소모가 상당했다.


그런데 카드키를 찍고 열린 문 사이로 언뜻 보이는 실루엣이 있었으니..


“버..벌써 왔네?”


“리앤? 있었구ㄴ.. 으엙?!”


나는 그녀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허둥거렸다.


왜냐고? 리앤이 지금 걸치고 있는 것은 새하얀 앞치마 하나뿐, 그 외에는 전부 알몸이었으니까!


“그그그그그그그그..그건 왜 입은 거야?”


“응? 아니, 그.. 모리아티가 복귀 첫날인데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서 좀 위로해 주려고..”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어깨 끈을 만지작거렸다.


“근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오르카 기준에서’ 나름 양호한 편이긴 했다.


이 잠수함 내에선 펜리르처럼 다 벗고 복도에서 전력질주를 하는가 하면. 


세크메트 씨처럼 아예 옷인지 뭔지 모르는 걸 걸치고 활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애써 그런 걸 무시하며 일에 집중했기 때문에 면역이 생긴 줄 알았으나, 리앤의 알몸 에이프런을 보니 면역은커녕 나 자신이 아주 개복치라는 것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늘하늘한 프릴이 달린 새하얀 에이프런, 그리고 그 아래로 드러난 실오라기 하나 없는 풍만한 모래시계형 몸매와 백옥같은 피부..


어떤 남자라도 분명히 혹할 옷차림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내게는 너무 자극이 강했다.


"그, 일단 이거라도 걸치고 있어.."


나는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둘러 주었다.


최대한 시선을 피하면서..


"에이, 매일 봐 놓고선 왜 그럴까아~?"


리앤은 그 풍만한 바스트를 내 흉부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 생글생글 웃었다.


"아아아아아니.. 그으으으으건.. 좀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아아아아…"


"아하핫! 얼굴 엄~청 빨갛네!"


그녀의 손에 붙들려 간 식탁에는 먹음직스러운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 메뉴의 상태가..


"주방장님한테 기력에 좋은 음식 알아왔어♡"


장어덮밥, 생굴, 복분자즙, 전복, 그 외 기타 등등.


자랑스럽게 음식들을 내보이는 리앤의 눈에는 하트가 띄워져 있었다.


‘아, 이거 쥐어짜일 각이네.’


그래도 사랑하는 애인이 차려 준 음식이니 짜여도 일단 먹고 짜이자.


수저를 들어 조금씩 먹으니 입 안에서 신선한 재료가 하나로 섞이며 깊은 풍미를 자아냈다.


“맛있다.”


“다행이네, 처음 만들어보는 것들이라 망칠까봐 걱정했는데..”


 멋쩍게 웃는 리앤에게 나도 환한 미소로 대답해 주었다.


“근데 알몸 에이프런은 안 해도 돼.”


“남자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누가 그런 말을 했어?”


“페더가…”


죄목 추가해서 죽여주마, 리쿠하치마 딸페! 


“난 이런 이벤트보다는 네가 옆에 있어주는 게 더 좋아.”


나는 그녀의 붉어진 볼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주었다.


식사가 끝나고 달콤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우리는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했다.


“LRL하고 알비스가 또 창고 털다가 걸려서 안드바리가 여기로 끌고 왔었는데 엄청 겁먹은 표정이더라구.”


“하하, 여간 화난 게 아니었나보네.”


“그래도 어린애들이라 반성문 쓰는 걸로 넘어갔어. 바리는 여전히 분이 안 풀린 것 같지만.”


잔뜩 겁먹은 두 꼬마들의 얼굴을 상상하니 폭소가 터져 나왔다.


“모리아티 최근 들어서 많이 웃네.”


“리앤 덕분이야.”


그녀와 만난 나는 참으로 행운아였다.


“근데 좀 괜찮아?”


“응?”


“좀 있으면 오메가랑 싸울 거고, 회장과도 마주해야 할 텐데..”


회장이라는 단어를 듣자 목의 핏줄이 불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애써 차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괜찮을 거야,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그래도..”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서는 두려움이 깊게 묻어나왔다.


“왜 그래?”


“모리아티가 잘못될까봐..”


“걱정하지 마, 너 두고는 절대 안 죽어.”


나는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한 리앤을 꼭 안아주며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할 말이 있는데..”


“그런 말 하면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 마.”


“하하, 알겠어.”


그녀의 등이 가볍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늘 쾌활한 모습으로 다니는 리앤이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게 나쁜 일이 생길까 봐 늘 염려하고 있었다.


그동안 중상을 입으면서 싸워왔기 때문에 가장 규모가 클 것으로 보이는 이번 전투에서는 정말 잘못될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던 걸까.


솔직히 내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다는 말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멋대로 죽어버리면 절대 용서 안 할거야."


"알았어.."


급기야 울먹거리기 시작한 그녀를 진정시키느라 한동안 포옹을 풀지 못했다.


그렇게 수 분 동안 안고 있던 중..


갑자기 몸에 이변이 일어났다.


"크윽.."


"모리아티? 괜찮아..?"


타는 듯한 느낌이 명치를 시작으로 점점 온 몸으로 퍼져 나갔고, 그와 동시에 하반신이 묵직해지는 것을 직감했다.


심장은 평소보다 수십 배는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호흡은 가빠졌으며 입에서는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이..이거 설마.. 미약.."


가슴을 부여잡고 돌아봤을 때, 리앤은 야릇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에이프런의 끈을 천천히 풀고 있었다.


"오늘 많이 힘들었으니까.."


"마음껏 즐겨줘..♡"


이윽고 에이프런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져 그 육감적인 나신을 눈 앞에 드러냈다.


바로 그 때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난 리앤을 그대로 안아들고 침대로 돌격했다.


"크르르르.. 못 참겠다! 넣을게!!"


"으응.. 거칠게 다뤄ㅈ.. 헤으으응!! 아아앙♡!!"


그날의 정사는 평소보다 야성적이었다.


참고로 미약이 들어간건 소완 씨와 탈론페더의 아이디어였다는 걸 다음 날 알게 되었다.


기필코 죽여주마!





뉴욕의 오메가 빌딩.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지하 연구실의 냉동수면 캡슐들 중 하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회장님.."


바로 자신의 주인, 오메가 회장이 잠든 캡슐을.


동생이나 다름없는 미하일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한다는 것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으나 어디까지나 오메가가 만들어진 목적은 회장을 보필하는 것.


사사로운 정은 대의에 방해가 될 뿐이라며 정신을 다잡는 그녀였으나 슬픔과 분노, 배신감과 광기가 한 곳에 뒤섞인 그의 눈빛은 계속 그녀를 고뇌의 수렁에 빠뜨렸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다시 부활한 회장이 이끄는 펙스의 새로운 인류 문명을 만든다는 '숭고한' 이상을.


"회장님, 제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오메가는 차가운 캡슐에 손을 맞대고 중얼거렸다.


동물과 교감하듯이 캡슐에 손을 붙이고 상념에 빠져있던 중, 비서 유미가 들어왔다.


"오메가 님,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뭐야."


"오비탈 와처 팀이 엡실론 님을 생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났다고 합니다."


"열심히 해 보라지. 그리고?"


"...그리고 오르카에 새로운 협력자가 나타난 모양입니다."


"뭐..?"


"메이터라는 바이오로이드인데, 그 정체에 대한 단서를 도저히 잡아낼수가 없는 신출귀몰한 인물입니다."


"...올라가서 자세히 브리핑해."


오메가는 황급히 맨 꼭대기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심박계에서 다시 '삑' 하는 소리가 울려퍼진 걸 듣지 못한 채.





오메가가 사라지고 괴괴한 적막만이 감도는 지하 연구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재빠르게 CCTV를 해킹해 자신의 모습 대신 텅 빈 연구실만을 비춰주도록 화면을 조작했다.


조치를 취한 후, 그 은발의 여성은 조용히 회장이 잠든 캡슐로 다가가 수증기를 손으로 걷어내고 그 노쇠한 얼굴을 노려보았다.


"곧 있으면 당신은 끝이야."


"당신의 목숨을 거두어 갈 저승사자가 오고 있으니, 그때 실컷 후회하게 만들어 줄게."


하고 그녀는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에 쓴 마스크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내었다.


"내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걸 뼈저리게 후회해 보라고."


메이터의 누군가를 닮은 푸른 눈은 분노에 가득 차 이글거렸다.


바로 그때..


"거기 너, 누구지? 누군데 여기 들어와 있는 거야!"


뒤에서 오메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메이터는 이에 응답하듯 천천히 몸을 돌렸고,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자 오메가의 표정엔 점점 공포가 퍼지기 시작했다.


"허..허억..!"


"안녕, Моя дочь?"


"다, 당신은..!"


분명 헛것을 봤을 것이라 생각해  좌우로 머리를 흔들고 다시 바라본 정면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 그.. 그렇지. 헛걸 봤나.. 빨리 들어가서 쉬는 게 낫겠어.."


그녀는 비척비척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어 다시 꼭대기층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오메가 빌딩에서 몇 블록 떨어진 건물의 옥상.


메이터는 꼭대기를 바라보며 조용히 되뇌였다.


"네 뜻대로 두진 않을 거란다."





오메가전 슬슬 들어간다

미하일 표정콘은 일부러 빼봤음

재밌게 보셨으면 개추와 댓글 많이 남겨주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