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울음을 터뜨리던 사령관이 문득 오르카호 내부가 이 지경이면 대체 바깥에 파견나간 인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지는 걸 보고 싶다. 대충 옷 챙겨입고 경호실 애들을 부르는데 인게임에서는 항상 살갑게 달라붙던 페로나 하치코가 쭈볏거리거나 으릉거리는 걸 보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걸 보고 싶다.


리리스는 진짜 마주보기 싫다는 얼굴을 조금만 눈치채면 알 수 있고, 비서실장 콘스탄챠랑 부관인 바닐라도 슬금슬금 딴청을 피우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는 걸 보며 전임 사령관의 업보를 느끼며 좌절하는 사령관이 보고 싶다. 그래도 어떻게든 명령이라는 말에 리리스는 한숨을 내쉬고, 콘스탄챠는 어디로 갈거냐고 묻는 걸 보고 싶다.


갑자기 생각난 거라 약간 얼타던 사령관은 스틸라인한테 가보자고 하고, 바닐라가 안색이 약간 하얗게 질리는 걸 보고 싶다. 왜 저러지, 싶은 사령관이지만 이미 뱉은 말이라 다시 담지도 못하고 결국 스틸라인에게 가는 걸 보고 싶다.





 "알겠습니까, 브라우니? 꼭! 꼭 사령관 앞에서는 침묵해야 합니다!"


 레프리콘 7291은 자신의 후임으로 들어온 브라우니 8792에게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말했다. 최후의 인간 사령관에게 시달린 그녀의 자매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녀는 스탈라인이었고,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배웠다. 뺀질거리며 짱박혀 있기 일쑤인 이프리트조차 사령관이 온다는 소식에 자해를 해서 검열에서 탈출하려 들거나, 아니면 소속 분대를 들들 볶으며 흠집하나 잡히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이프리트가 말이다. 온화하고 수줍음을 타는 걸로 유명한 실키들마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지옥견마냥 브라우니와 레프리콘들을 참깨 볶듯이 갈아대면서 멀쩡한 물건들을 어떻게든 조달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나마 레프리콘 7291이 소속된 분대는 최전방에서 싸우는 덕분에 상대적으로 보급 수준이 양호해서 다행히 실키가 날아와서 쪼인트를 까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분대에서는 실키에게 외골격을 장착한 다리로 얻어차여서 실려간 브라우니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래야 함까?"

 "그래야 합니다!!! 이유는 묻지 마세요! 명령입니다!"

 "알겠슴다!"


 브라우니의 우렁찬 목소리에 레프리콘은 아자젤에게 간절히 기도하며 빌었다. 제발 여기에 사령관이 오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자젤은 바이오로이드의 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송기의 로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해치가 열리고 레프리콘은 평소에 구경도 못한 고급 바이오로이드들이 줄지어 내려왔다. 인상이 기이할 정도로 썩어있고, 불길한 기색이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긴 하지만 레프리콘 수십 기는 커녕 수천 기에 필적하는 가격의 고급 바이오로이드들이 잘 차려입고 나오는 광경은 레프리콘 7291에게 장관이긴 했다. 하치코 모델이 일제히 튀어나와 방패를 내려찍으며 사주경계하고, 그 뒤를 페로가 날카로운 기색으로 사방을 훑으며 내려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간 사령관이 튀어나오자 모두의 목에서 꿀꺽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리리스 모델과 콘스탄챠, 바닐라 모델을 하나씩 끼고 내려온 사령관은 눈부신듯 인상을 찡그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들려오던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훤칠하게 생겼기에 레프리콘 7291은 방심할 뻔 했으나 이내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저것은 그녀의 자매와 브라우니 자매들을 무자비하게 다룬 악마 중의 악마였다. 그 충성심과 애정 높은 리리스 모델조차도 세 번이나 '해체'당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미쳐버린 족속임이 분명했다.


 "전원, 차렷!"


 레드후드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사열한 전원이 일제히 착, 하고 발을 붙였다.


 "사령관 각하께 경례!"

 "충-성!"


 레프리콘 7291은 알고 있었다. 이 사령관은 자신들의 경례따윈 받아주지 않았다. 초창기에 몇 번 현지를 시찰하러 왔지만 경례를 받을 때마다 '감히 바이오로이드 주제에?'라는 표정으로 자신들을 쳐다보며 비웃기만 했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대충 손만 흔들고 때려치우리라,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들의 충성이 보답받지도 못하고 자매들이 쓰레기처럼 취급받는 걸 보는 건 아무리 스틸라인의 병사인 레프리콘이라해도 견디기 힘든 가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레프리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어?"


 숙련된 이프리트의 멍청한 목소리가 앞에서 울려퍼졌다. 그러나 그걸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장 병사들을 감독해야 할 임펫이나 레드후드조차 멍청하게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령관이 그들에게 경례를 해주고 있었다.


 리리스도, 콘스탄챠도, 바닐라도, 하치코도, 페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령관이 경례를 해주는 걸 끝내고 손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움직이거나 말을 하지 못했다. 레드후드가 나서서 이제 더 이끌어나가야 했지만 레드후드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잠시 어버버 얼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태를 해결한 것은 불굴의 마리였다.


 "쉬어."

 "쉬, 쉬어-!"


 마리의 조용한 명령에 그제서야 [상태 이상 : 마비]에서 풀려난 스틸라인과 컴패니언, 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이 허둥지둥 움직였다. 리리스조차 이마에 살짝 땀이 맺혀있을 정도니 다른 이들은 어떤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일이었다. 그리고 불굴의 마리가 저벅저벅 걸어가서 사령관에게 몇 마디를 했고, 사령관이 그걸 유심히 듣더니 마리를 바라보며 뭔가를 말하는 것을 레프리콘은 볼 수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궁금해하던 레프리콘은 곧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레프리콘이 소속된 분대의 이프리트가 쪼르르 마리에게 달려가더니 이내 죽을 상이 되어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미 행사는 반쯤 흐지부지 되었고, 사령관은 해산 명령을 내렸다. 보통 마리였다면 해산 과정의 어수선함따위는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겠지만 마리는 신경쓰지 않고, 도리어 날카로운 눈으로 사령관을 살피며 혼란상을 부추기는 듯한 모양새였다. 적어도 레프리콘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얘들아."

 "네, 이프리트 병장님."


 레프리콘이 그렇게 착륙지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이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사령관 각하께서 브라우니와 함께 우리 부대를 보시겠단다."

 "예...?"

 "ㅈ됐네..."


 이프리트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허공을 바라보았고, 레프리콘도 안색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왜 하필 브라우니십니까. 레프리콘은 아자젤을 원망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이제 제조된지 1개월도 채 되지 않은 브라우니만이 신이 나서 싱글벙글 웃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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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붕이들아, 소설 식으로 써보는 것도 시험해봤어. 어떤게 더 보기 좋아? 반응보고 방식 정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