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다음날 아침, 홍련과 장화는 얼굴을 가릴 수단이라도 있다면 당장이라도 빌려쓰고 싶을 만큼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숙소를 나서는 순간, 복도를 지나치는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눈치가 없는 브라우니가 오-하고 대놓고 쳐다보다 레프리콘에게 제지되는 것은 흔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가는 것보다 더더욱 감당안되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많은 인원들이 모이는 식당이었다.


게다가 홍련도 장화도 둘다 오전에 임무가 있었기에 식사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절대 식당을 거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혼자도 아니고, 같은 팀이 된 인원들이 옆에 붙어다니는데 단독행동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식당에서는 장화를 본 천아의 웃음소리와 함께 몽구스팀 대원들의 함성소리가 가장 먼저 터져나왔다.


"ㅋㅋㅋㅋㅋㅋ 야 저게 장화랜다 ㅋㅋㅋ 아 배아파 ㅋㅋㅋㅋㅋ"


"작전관이라고 하는데 인정해줘야하지 별 수 있나."


"너희들 싹 다 안 닥쳐!?"


"녀휘들 싸악 돠 안 닥춰어?! ㅋㅋㅋ"


"이것들이 진짜!!!"


"엄마! 그 모습 뭐에요? 완전 잘 어울려요!!!"


"야, 드라코!! 말 조심...!!!"


"근데 확실히 엄마가 머리 푼게 너무 찰떡이야."


"팔에 이건 뭐에요? 그린 거에요?"


"저...저기 여러분? 일단 잠깐 진정하세요."


뒤죽박죽 개판이 되어버린 상황에 주변의 시선이 몰리자 장화와 홍련은 어떻게든 이들을 조용히 시켜보려고 했지만 이미 고삐가 풀릴대로 풀려버린 뒤였다.


하지만...식당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아 지켜질 수 밖에 없었다.


쉬리릭...!콰앙!!!


어디선가 중식도 두자루가 날아와 묵직하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자, 모두의 앞에는 언제부터였는지 소완이 나타나 부메랑처럼 던진 칼을 회수하며 싱긋 웃었다.


"식사시간에는 식당에서 품위를 지켜주시지요. 여기서 더 시끄럽게 한다면 다음번엔 정확히 눈앞으로 칼이 날아들지도 모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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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완의 개입으로 상황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서로 마주보고 앉은 자리에서 천아가 킥킥대며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너희들 어제 장화 얘랑 별일 없었어? 얘 성격에 니들 앞에서 가오 잡고 가족놀이에 안 어울리니 이랬을 거 같은데?"


"아니? 어제 우리 장화이모랑 같이 환영식도 하고 맛있는거 먹고 그랬어!"


"이, 이모? 푸흡 ㅋㅋㅋㅋ 장화야 너 이모라고 불리냐? ㅋㅋㅋ 옷도 그렇고 호칭까지 언밸런스의 극치다 극치 ㅋㅋㅋ"


"어제 주인님께 불려갈때만 해도 자기는 휘둘리지 않는다던 분이 생각나는군."


"...입을 꿰메버리기 전에 닥치고 밥이나 먹어."


"세상에 처형인님, 한팀을 이끄는 작전관님이나 되시는 분이 타 부대인 우리보고 입 닥치라는데요?"


"......"


당장 못 패서 주먹이 운다는 식으로 이를 바득바득 가는 장화를 뒤로하고, 드라코가 불쑥 끼어들어 천아에게 물었다.


"저기저기, 우리 엄마랑 같이 지내는 건 어땠어?"


"드, 드라코?"


"아, 어제? 우리쪽은 분위기 좋았지~"


"...평소에 매사 삐딱하게 나오는 누구랑 달리 경우가 바르더군."


드르륵---


바르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화는 못봐주겠다는듯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여기 있으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네."



"야야, 농담도 못하냐?"


"알겠으니까 너희들끼리 실컷 떠드셔. 난 간다."


"저기, 장..."


"흥!"


마지막 홍련의 시선은 본체도 하지 않고 장화가 자리를 떠나자, 몽구스팀도 곧바로 일어나 장화를 따라갔다.


"작전관님, 아니 엄마, 아니 뭐라고 불러야되지, 일단 저희가 따라가볼게요."


"나중에 정찰임무 때 봐요!"


"그래요, 모두들 장화를 잘 부탁해요."


몽구스 아이들이 장화를 따라가자, 홍련은 표정이 싸악 변하더니 천아와 바르그를 째릿하고 째려보며 말했다.


"...너희들,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아?"


"장화 걜 보자마자 입꼬리가 씰룩씰룩거리는걸 어쩌겠어."


"큰소리는 다 저녀석이 낸거니 나는 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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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뒤, 장화가 이끄는 몽구스팀과 홍련이 포함된 엠프레시스 하운드는 인근 도심지로 자원탐색 및 정찰임무를 위해 출격했다.


그렇다해도 두 팀이 서로 다른 포인트에서 자원을 탐색하고 일정 지점에서 모이는 것이었기에 당장은 따로따로 움직이는 상황.

장화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알아서하라는 의미로 몽구스팀 대원들에게 손짓을 했지만, 오히려 이들은 장화의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뭐야? 알아서 돌아다니라니까 왜 모여드는건데?"


"우리는 자원탐색 할때도 다 포지션 정해서 움직였는데? 그러니까 작전관인 장화 이모가 지시를 해줘야지."


 

"아, 그냥 눈에 보이는 쓸만한거 주워가면 됐지, 뭘? 그냥 너네들 편한대로 알아서 해. 홍련이 있을때랑 달리 풀어줘도 불만이냐?"


"하지만 엄마처럼 옷 입고 그러는것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됐어. 남들 앞에서만 홍련처럼 컨셉 잡으면 되지, 여기서까지 그러고 싶진 않거든? 그리고 너네는 뭐든지 홍련한테 물어보고 해? 알아서 할건 알아서 척척 하면 그만큼 홍련이 너네한테 뭐라고 안할거 아냐."


"...엄마가 챙겨줘서 좋은건데?"


"...하아, 알았다 알았어. 내 옆에 한명만 붙고 나머지는 셋이 뭉쳐서 다녀. 됐지?"


"라져!!"


그렇게 자원탐색을 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슬슬 자원탐색을 마치고 홍련과 천아, 바르그와 합류한 지점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그들이 있는 쪽에서 굉음과 함께 바르그와 천아의 무기가 무언가에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엄마! 엄마가 있는 방향이야!"


"철충들의 습격인가봐!"


"제길, 일단 빨리 저쪽으로 합류해! 다들 움직여!"


조금씩 가까워지는 병장기 소리도 잠시, 장화와 몽구스팀 대원들이 도착했을 그때, 현장은 지하철이 지나다녔을 지하도에서 갑자기 올라온 철충들의 습격으로 전투중인 홍련과 천아, 바르그의 모습이 있었다.


"지하도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군."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끝이 보이겠지. 이봐, 홍련씨 괜찮아?!"


"전 괜찮아요! 그러니-"


"조심해라! 뒤다!"


바르그의 외침과 동시에 시야가 가려진 빅칙들 사이로 무섭게 돌진하는 와습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뛰어난 급전전과 육탄전이 가능한 바르그, 천아와는 다르게 홍련은 한 팀을 지휘하는 지원기의 입장. 홍련은 혼자서 철충들을 상대로 난전을 펼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기에 빈틈이 클 수 밖에 없었고, 어느새 철충은 홍련의 지척까지 다가와있었다.


""엄마!!!""


미호의 사격과 함께 핀토와 드라코, 불가사리가 서둘러 홍련에게 달려갔지만 이대로면 홍련의 큰 부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불그스름한 와이어와 함께 난입한 장화에 의해 홍련에게 돌격하던 철충은 그대로 반으로 조각나 여기저기 흩어졌다.


"...고, 고마워요. 장화."


"......."


"장화야?"


예상과 달리 팀원들보다 먼저 달려와 자신을 지켜준 장화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홍련이었지만, 장화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홍련을 향해 돌아보고는 크게 소리쳤다.


"너 바보야?"


"....."


"멸망 전에 나한테 니 팀원들이랑 같이 죽어나가던 니가 뭘 믿고 그렇게 철충들 한복판에 서 있어?! 쟤네들 뒤에서 안전하게 있으면 어디 덧나?"


"하지만 지원과 별개로 저도 싸울 수..."


"싸우긴 개뿔이 지랄하고 있네! 널 괴롭히는 역할은 난데 니가 여기서 철충놈들한테 당하면 내가 뭐가 돼?"


"...미안해요."


"그 빌어먹을 미안해요 소리좀 하지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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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일어나기 1시간 전, 장화는 자신 옆에 선 미호와 함께 드라코와 핀토, 불가사리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걸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자신이 홍련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는듯한 모습을 바라본 장화는 슬그머니 미호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날 보면 아무런 생각이 안들어? 이래봬도 우리, 처음 만났을땐 적이었잖아?"


"...그랬지. 그땐 너한테 몽구스팀의 실력을 따끔하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너에게 좋지 않은 감정들은 없어. 그도 그럴게, 엄마가 용서하고 이해했으니까."


"내가 자기 동생뻘 개체라는 이유로 홍련이 나한테 뭐라 못한거였겠지."


"흐음, 그 이유랑 별개로 그거 알아? 우리 몽구스팀은 테러로부터 인간님들을 지키고 구출하던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어."


"갑자기 뭔 소리야?"


"지금의 몽구스팀을 만들기 위해 다른 인간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어 우리 훈련용으로 삼았고, 우리는 그들을 희생시켰어. 그래서 엄마는 우리들의 죄를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생각했대. 하지만 이전 개체들과 달리 엄마는 널 보고도 자기 혐오 보다는 그쪽을 포함해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랬어."


"속죄는 자신 혼자서 지면 되는거고, 무엇보다 더 이상 구인류의 도구가 아닌 지금 우리의 멋진 사령관에게서 네가 행복해지길 원했으니까. 나랑 자매들은 엄마의 마음을 아니까, 그래서 네게 거리낌 없이 대할 수 있는거지. 어떻게 생각해, 장화이모?"


"...사령관 그녀석도 그렇고 홍련도 그렇고...그놈의 가족..가족이라..."


"어쩌면, 이런 날을 보기 위해서였는지도."


회상을 통해 미호와의 대화를 떠올린 장화는 말없이 홍련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


"팔 아프게 하지 말고. 빨리!"


"...응, 알았어."


"네가 딸처럼 아끼는 쟤네들은 걱정하지 마. 이런 상황에선 내가 너보다 더 잘 지휘할 수 있어."


"그러니까, 홍련 넌 쟤네들 싸우는거 보고 배워. 맨날 짜증나게 해도, 실력은 진짜니까. 나한테 나자빠질정도로 약한 꼴 따위 보이지 말란 말야!"


"미안, 걱정하게 했네."


"알았으면 움직여. 어디가서 당하고 다녔다는 소리 같은거 듣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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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3편이 마지막일듯